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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자료실

29기 김나연 53차 여름하나 자료조사

작성자29기 김나연|작성시간26.06.13|조회수23 목록 댓글 0

<사도광산과 조세이 탄광의 강제징용 사례>

 

  강제징용은 일제감정기 말기, 일본의 필요한 노동력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선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광산 또는 군수시설 등에 동원한 것을 말한다. 또한 이때의 작업 환경은 석연치않고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노동을 했었다. 그러면서도 임금은 종사한 노동력에 비해 턱없이 낮거나 없기도 했다.

 

  이어서 사도 광산의 강제징용을 알아보면 사도광산은 사도섬에 위치한 금광으로, 2차 세계 대전중 중요한 광산이었다. 1940년대, 전쟁이 더욱 길어지면서 일본 내에서 부족해진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조선인들이 동원되었다. KBS 뉴스의 리포트 중 내용에 따르면 노동자는 약 1,200 ~ 1,500명으로 알려졌다. 사도광산에서는 가혹한 환경에서 갱도 굴착과 광석 운반을 맡으며 열악한 숙소와 턱 없이 부족한 식량속에서 버텨왔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10여명은 노동 중 사망에 이르고 약 148명은 섬을 탈출했다. 그런 강제징용의 장소가 된 사도광산은 현재 유네스코로 지정되어 다시 그 날의 역사에 대해 다시 말이 나오는 추세이다. [1] [2]

 

  그 다음, 조세이 탄광의 강제징용을 보면 조세이 탄광은 우베시에 있던 해저 탄광이다. 이 곳도 똑같은 이유로 노동력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선인들을 동원 시켰다. 아시아 경제의 뉴스에 따르면 갱도의 깊이도 얕아 배의 엔진소리가 들리는 정도였다. 그래서 일본인들 조차 위험을 느껴 꺼리던 곳이기에 조선인들을 집중적으로 투입시킨 곳이다. 그러면서 1942년 2월 3일 오전 9시 30분 쯤 해저 갱도에 수몰사고가 발생했다. 해저 갱도 광산법이 금지한 얕은 층을 파내다가 바닷물이 흘러서이다. 결국 갱도가 무너져 작업중이던 183명이 사망했고 그중 조선인이 136명이었다. [3]

 

  물론 학교에서 배워서 강제징용에 어느정돈 알고있긴 했는데 알아보니 더욱 가슴 아픈 사건도 있었다. 자료를 찾아보면서 '아버지는 바다의 밑에' 라는 책표지의 말이 너무 마음에 남았다. 우리가 아 이정도면 알지, 싶어 넘겼던 것들이 실은 더 아픈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앞으로도 역사에 대해 관심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겠다고 생각됐다.

 

 

 

 

[1] KBS NEWS 사도광산 강제동원, 일본 정부 외면했지만 주민드링 기록 보존/ 영상 리포트 중 https://youtu.be/KNGkn3Z1pz4?si=JPjijlgZu-StnzIo

 

[2] 서울신문 "한일 사도광산 강제동원 역사 반영 합의…세계유산 등재 유력"

https://m.seoul.co.kr/news/international/2024/07/26/20240726500058?utm_source=chatgpt.com

 

[3] 아시아 경제 [뉴스속 용어]조선인 136명 희생된 ‘조세이탄광’ 수몰 사고 

https://view.asiae.co.kr/article/2024092611525876593?utm_source=chatgp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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