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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추사 김정희 고택

작성자조영희|작성시간11.02.23|조회수100 목록 댓글 0

 

 

조선후기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가 태여난 곳이다.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이 고택은 그의 증조부이며 영조의 부마인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이 
용궁리 일대의 토지를 별양전으로 하사 받아 지은 살림집이다. 

영조의 왕명으로 짓는 집이라 당시 53개 충청도 군현에서

각각 한 칸씩을 부조해 건축한 53칸 규모의 양반 대갓집이다.

 

 

세한도(국보 제 180호)를 새긴 비(碑)가  추사 고택 주차장에 있다.

이 세한도는 추사가 8년 간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두번씩이나 북경에서 귀한 책을

구하여다 준 제자 역관(譯官)인 이상적(李尙迪)을 생각하며 그려준 것이다.

 긴 화면에 단지 쓰러져 가는 오막집과 그 좌우에는 절개와 지조의 상징인

소나무와 잣나무만을 대칭되게 그렸을 뿐이다.

지극히 절제되고 생략된 화면은 험한 세상에서도

지조를 잃지 않은 선비 정신을 의연히 나타내고 있다.

                                                                              

 

추사 김정희의 고택 솟을대문이다.

원래는 장동(현 통의동)에 있었으나

53칸의 양반 대갓집을 지을때 이곳예산으로 옮겼다고 한다,

건물 전체가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서쪽에 있고 사랑채는 안채보다 낮은 동쪽에 따로 있다. 

 

            

 

사랑채는 'ㄱ'자형으로 안채와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
남쪽에 1간, 동쪽에 2간의 온돌방을 두고 

나머지는 모두 대청과 마루로 되어 있다. 
사랑채는 남자주인이 머물면서 손님을 맞이하던 생활공간이다.

 

 

 

6간의 안채와 2간통(間通)의 대청과 안방
건너방이 있으며 안방과 건너방의 부엌과 안대문

협문, 광 등을 갖춘 'ㅁ'자형집이다.

'ㅁ'자형 가옥은

 중부 지방과 영남 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이른바 대갓집이다. 

 

 

추사 영실(秋史影室)로 오르는 길이다.

그의 고택 윗쪽에 추사 김정희의 영정을 모신 추사영실(秋史影室)이 있다.

 

 

<추사영실> 현판은 김정희와 평생 막역한 사이였던 권돈인(權敦仁 1793~1859)의 작품이다.

 

 

추사고택 주위는 아주 부드러운  흙산이다. 

뒷산 용산(龍山)도 마찬가지로 야트막한 구릉이다. 

어디 한군 데 험한 곳이라곤 없다. 한마디로 부드러움 그 자체다. 
고택은 좌청룡에 기대어 서있다. 

집의 좌향이 동향(東向)이니 좌청룡은 북쪽이 된다. 

이 고택은 건물 전체가 53칸의 저택이었다.

지금은 그 절반인 20칸만 남아

한국전통가옥의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서쪽에 있고 사랑채는 안채보다 낮은 
            동쪽에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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