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가는 서울도성이 구불구불 흐르고 있다.
이 도성을 따라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서울국제고와 서울과학고가 있고
왼쪽 북쪽으로는 서울의 부자촌 성북동이 있다.
이 성북구(城北區)는 도성 북쪽에 있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지었고
서울에서 아홉번째 생긴 구(區)이다.
서울과학고 뒤(성북동 쉼터)에서 도로로 서울도성은 끊긴다.
이곳에는 서울과학고와 경신중·고등학교가 도로 하나사이로 인접해 있다.
서울과학고 앞에는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이 있다.
옛날 우암 송시열선생 집터인 동시에 북관묘가 있던 곳이다.
경신고등학교를 지나면서 다시 서울도성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학교 근처에서는 서울 도성이 학교의 담밑에 깔려 있었다.
경신고등학교 운동장을 끼고 돌아 경신중학교와 주택을
지나 내려가면 교회다. 교회 정문 축대 밑에도 서울 성곽의 흔적이 남아있다.
교회에서 혜화문길을 따라 주택가로 가면 높다란 축대위에 고급주택이 있다.
이곳에서 주택들의 축대는 성곽과 함께 이루어져 있다.
혜화동에서 동소문동을 연결하는 도로에서 서울도성은 끊긴다.
주택가를 조금 지나면 나뭇가지 사이로 혜화문(惠化門)이 보인다.
태조 이성계가 서울도성을 축성할때 혜화문은 홍화문(弘化門)으로 불렀다.
중종때 홍화문은 오늘날의 혜화문으로 바뀌어 서울도성의 동소문 역할을 한다.
성종때 창경궁을 건축하고 그 궁의 정문을 홍화문으로 명명해 혼란이 있었다.
혜화문 현판은 영조시대 명필 조강이(趙江履)이 썼다고 한다.
혜화문의 홍예틀이다.
원래는 홍예틀에는 용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이곳 홍예틀 천정에는 봉황이 대신 들어있다.
이 주위에 새들이 많아 새의 왕인 봉황으로 이들을 막으려고 했다고 한다.
혜화문(惠化門)은 서울도성의 사소문 중 하나로, 속칭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했다.
혜화문은 북쪽의 숙정문이 항상 닫혀 있으므로 함경도 등 북방으로 통하는 경원가도의
관문으로 여진의 사신이 조공차 한양에 입성할 때 이용하던 북문이었다.
혜화동 로타리에서 동소문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마루터에 자리했다.
원래 소문을 지키는 출직호군(出直護軍, 문을 지키는 병사)이 20명이고
대문은 30명이지만 혜화문은 출직호군이 30명이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성북구 돈암동으로 넘어가는 큰길 옆 언덕에 새로 지은 혜화문이 있다.
본래는 큰길 복판 5~6m쯤 높은 곳에 있어 되너미고개까지 한눈에 보였다고 한다.
되너미고개란 병자호란에 '되놈'들이 쳐들어 왔다가 되돌아갔다 해서 지은 이름이다.
지금의 미아리 고개다.
혜화문 밖에 펼쳐진 넓은 분지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무성하고 복숭아나무가 많아
해마다 봄철이면 놀이 나온 사람들로 골짜기가 미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도화동(桃花洞)이라고도 한다.
혜화문을 소재로 겸재 정선은 소나무숲이 우거진 「동소문도(東小門圖)」를 남기고 있어,
동소문 부근의 옛 모습을 살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