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 갈길을 물으며
† 설교일시 : 2006/03/12
† 설 교 자 :신우인목사
† 설교제목 :하나님께 갈길을 물으며
† 성경본문 :사무엘하 2:1-7
프랑소와 모리아크의 저서, “독사의 매듭”에는 결혼 생활
수십 년을 아내와 떨어져서 마룻바닥에 내려와 잔 한 노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30년 전 다섯 살 난 딸이 병이 들었을 때에
보인 남편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처사가
너무나 섭섭했습니다. 그 이후, 다툼이 날 때마다 그 불만이
확대되었고, 그 불만은 남편에 대한 공격으로 상처를 남겼습니다.
남편이나 아내, 그 누구도 먼저 용서하려, 화해하려 하지 않아서
생긴 불행입니다. 용서가 없는 곳은 곧 죽음입니다. 용서가 사라진
그 곳은 오직 죽음의 세력 사탄이 판칠 뿐입니다.
용서가 없이는 시작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처음 하신 말씀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가복음 1:15)는 것입니다.
1991년 미국의 기독교 대표단이 구 소련 KGB를 방문하였을 때,
부국장 니콜라이 스톨랴로프 장군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소련인들이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하나님을 잊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없이는 정치문제도
풀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이
나라를 하나되게 합니다. 회개 없이는 개혁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버렸고 십계명을 어겼습니다. 이제 과거를
회개할 때가 왔습니다.”
KGB는 구소련을 움직였던 중추조직이었습니다. KGB는 국민들의
숨은 생각까지 샅샅이 조사하고, 공산주의 이념과 상치되는
모든 것에 무자비한 탄압을 가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특히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가장 무섭고 극심했습니다.
스탈린 시대에만 줄잡아 4,200 명의 사제가 목숨을 잃었고,
총 사제 수는 38만 명에서 172명으로 줄었습니다. 수도원 1,00개와
신학교 60개가 문을 닫았고, 교회는 98%가 폐쇄되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탄압은 그 이후도 계속되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한 것은 그래야 공산주의가 발전하고 나라가 번영하고 국민들이
잘 산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죄를 하나님께
고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했던
소련의 비밀경찰 조직 KGB가 하나님의 용서 없이는 개혁도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달은 것입니다. 유토피아는 공산주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방법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은 오직 회개와 복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러시아 영화감독 텐지즈 아불라제는, 당시의 참혹한 핍박상을 한 시골
마을의 모습을 통하여 한편의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제목은 “회개”입니다. 마을 아낙들이 강줄기를 따라 떠내려오는
통나무를 하나하나 들쳐보며 목재 하치장 진창 속을 샅샅이 헤집고
다닙니다. 수용소에 갇혀 중노동에 동원된 남편들이 통나무에 적어
보낸 소식들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한 여인이 나무 껍질에 새겨진
남편의 소식을 발견하고는 울면서 통나무를 어루만집니다.
그 나무는 수용소에 끌려간 남편과 연결해 주는 유일한 끈입니다.
이 영화는 한 시골 아낙이 교회로 가는 길을 묻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질을 잘못 들어섰다는 말에
아낙이 대답합니다. “가도 교회가 안 나오는 길이라면 그게
무슨 길인가요?”
“가도 교회가 안 나오는 길이라면 그게 무슨 길인가요?”
이 말은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살아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인생이라면 그게
무슨 인생인가요?”
왜 교회가 없는 길은 길이 아니며,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 아닐까요?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에게 십자가에서 죽으라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돈을 주기 위해서 건강과 행복을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들이 지은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짓습니다.
그 죄는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지은 죄는
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입힌 만큼 그 사람을 죽입니다.
나만 아는 죄는 죄 지은 나를 죽입니다. 내가 아무리 잘 나가도,
내가 아무리 잘 해도, 죄를 지은 그 부분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는 것은 우리가
무엇인가 잘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죄인이라는 말을 쉽게 수긍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잘못을 지적하면 화를 냅니다. 남에게 피해를 준 일도 별로
없으며, 더더군다나 살인하지도 않았고 도둑질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그 죄를 열심히 부인합니다.
다른 사람 때문이다. 상황이 그랬다. 대부분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나는 죄에서 자유로울까요?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 십계명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지키지 않으면 죄를 지은 것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있게 말지니라.
내가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기는 것이 있다면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큰 죄를 지은 것입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
우상은 하나님이 앉으셔야 할 자리에 대신 앉아있는 모든 것입니다.
돈이 가장 중요하면 돈이 우상입니다. 자녀가 가장 중요하면 자녀가
우상입니다.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 만약 이 십계명을 어겼다면 나는 죄인입니다.
내가 어긴 그 부분에서 나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나는 죄로 인하여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이미 나는 죽은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죽어 가는 내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또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아무리,
출세하고 부자가 되고 권력을 잡아도, 구원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가 대신
죄 값을 치르라 명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 함은 그 누구도 가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십계명을 주신 것도 은혜입니다. 죄가 아닌 줄 알고
떡먹듯이 범하는 죄, 그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십계명도 가감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동한 구원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가감할 수 없습니다. 스톰스라는 신학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은혜란 우리의 공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우리의 무공로로 잃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 우리의
선행과 자랑할 만 한 것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그것은 은혜일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의 악하고 부끄러운 것을
이유로 주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 역시 은혜일 수 없습니다.
은혜는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주시는 무조건적인 선물입니다.
그 놀라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 어떤 선행과 봉사와 헌신도 하나님의 은혜에 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겸손하십시오. 죄로부터 해방시켜 나로 귀한 일을
하며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동시에, 그 어떤 죄도,
허물도, 약점과 단점도, 실패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낙담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포기하지도 마십시오.
교회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세운 곳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 안에만 용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사함 받고 교회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가도 교회가 없는 길이라면 그게 무슨 길인가요?”
이 말은 또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건물은 있으나,
그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고, 예수님의 용서가 없다면,
그게 무슨 교회인가요?
우리 신사동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고,
예수님의 죄 사함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그래서 그 어떤 실패한
사람도 우리 신사동 교회에서 은혜 가운데 다시 시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시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 내십시오.
꼴 보기 싫은 사람. 그리고 마음 속으로 말씀하십시오.
“예수님, 그 사람을 미워한 죄, 용서하지 못한 죄를 사하여 주세요.
그 사람을 용납하는 큰마음을 주세요.”
용서는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닙니다.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회개와 용서 없이는 한 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한번 더 마음 속으로 기도하십니다. “예수님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 죄 사여 주세요. 그 사람을 용납하는 큰마음을 주세요.”
마음이 한결 낫습니다. 그 커진 마음에 하나님의 큰복이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 이야기를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부자입니다. 큰 회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한 성실해 보이는 사람을 채용하였습니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나와 회사를 위하여 충성을 다해 일했습니다. 그래서 칭찬도 하고
격려도 하고 승진도 시키고 나중에는 큰돈도 맡겼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말도 안하고는 어느 날 회사를 옮겨버렸습니다.
그것도 경쟁회사입니다. 내가 맡긴 돈으로 자기 집도 사고는 슬슬
거짓말도 하고 요령과 재주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곤경에
빠져버렸습니다.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에게 돌아와서 용서를 구합니다. 다시 기회를
달라는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할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믿을 수 있을까요?
그를 용서하고 다시 기회를 줄 사람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딱 한 사람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돌아오는 사람을 무조건 받아들이십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다윗을 택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골리앗도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온갖 것을 다해주었는데, 블레셋으로 가버립니다.
그리고는 아기스 왕 밑에서 성 하나 얻어서 요령 피우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점점 사망으로 치달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낭떠러지 맨 끝,
한발만 더 가면 끝나는 곳에서, 다시 하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섰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덮어주시고
다윗에게 더 좋은 것, 더 높은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 온 사람이
어떻게 사는 지 보여줍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올라가라.” 다윗이 묻습니다.
“어디로 가리이까?”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다윗이 시시콜콜 한 것까지 묻고 있습니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블레셋으로 망명하고, 자기 생각대로 이방인의 성을 공격하였던
다윗이었습니다. 제법 잘 나갔던 다윗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사망으로 향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생각은 오직 죽음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만이 생명 길,
살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십니까? 성경이 나를 향하여 잘못을
지적하면 받아들이고,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보십시오.
하나님께 갈 길을 물으십시오. 그 어떤 죄도 용서하시는
하나님께서 생명 길로 인도하십니다. 초라해 보여도 험해 보여도,
그 길 따라 가노라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곳곳마다 쌓여 있음을
온 몸으로 체험케 됩니다.
헤브론으로 올라간 다윗이 처음 한 일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상을 베푼 일입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 왕의 장례를 치러준 것입니다. 사울 왕은 다윗의 둘도 없는
원수였습니다. 다윗에게 못할 짓을 수도 없이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사울 왕에게 선을 베푼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었습니다.
작은 일 같으나 이 일은 다윗의 지도력을 온 유다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됩니다. 다윗이 명성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용서하라.
복수를 하나님께 맡기라. 선을 행한 자에게 선을 베풀라.
계산하지 맙시다. 내가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잘했다고 그러겠지.
요만큼 하면 내 체면이 살겠지. 그런 생각들은 버리십시오.
그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리라 그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로마서 8:30)
다윗은 유다의 한 귀퉁이에서 왕으로 세워집니다.
아직도 이스라엘의 열 한 지파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온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온 나라를 맡기십니다.
돌아온 자들의 그 어떤 죄도 용서하시며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시며
그 끝을 창대케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최고의 영광을 돌립니다.
다윗의 복이 우리의 복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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