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님은 수필"인연"에서
"아사코"와의 세 번에 걸친 만남과 이별을 회상하며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고 고백했다.
내게도 피천득 님과 비슷한 인연이 있다.
두 번째 만남까지만,
영미.......
이는 내 가슴속 깊이 새겨져 있는 그립고 그리운 이름이다.
나는 공고를 졸업 후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에서 1년남짓 근무한 적 있었다.
그때 회사 근처에서 입사동기랑 자취를 했었는데
자취집주인 딸아이 이름이 바로 '영미'다.
영미는 나를 "키다리 오빠"로 동기를 "땅딸이 오빠"로 불렀었다.
자취집은 작은 정원과 텃밭이 있는
전원주택이었다
영미 엄마는 서양화를 전공한 늘씬한
미인이셨고
나에게 항상 잔잔한 미소를 보여주시는 분이셨다
영미 아빠는 중학교 생물교사셨는데 술을 너무 좋아하셨고
거의 매일 거나하게 술에 취해 밤늦게 귀가하거나 숙직이라며 외박도 잦으신 편이었다,
영미는 초등학교 4학년으로 정말 깜찍하고 어여쁜 소녀였다
동화책이나 만화책 속의 주인공 소녀처럼.
나는 휴일이면
그 집의 정원관리와 텃밭 가꾸기,
화장실 청소 등 영미 아빠가 해야 할 집안의 잡다한 일들을 거의 도맡아 했었다
이런 나를 영미 엄마는 동생처럼 좋아하셨고 나도 누이 마냥 그분을 좋아했었다.
밥도 반찬도 영미를 통하여 수시로 가져다주셨고 (영미가 키다리 오빠 주라며 조르기도 했었다고 한다)
영미 아빠가 안 계실 때는 함께 식사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영미는 아빠의 정이 부족했었던 탓인지
나를 유달리 따랐고 무척이나 좋아라 했었는데
급기야 어느 날 우리 방에서 나랑 함께 자겠다고 엄마와 나에게 생떼를 부렸다.
영미 엄마는 물론 나도 그건 절대 안된다 라고
수차례 달래고 얼레어 보았지만.
결국은 엄마도 나도 영미의 고집에 항복하고 말았다.
영미는 잠잘 시간이면 자기 베개를 들고 뒤편의 우리 방으로 쪼르르 왔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 팔을 베고 잠들곤 했었다.
난 간간히 영미의 볼에다 가벼운 뽀뽀를 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영미는 영미 엄마의 믿음 속에 나랑 함께 자는 날이 다반사였고
영미는 자라서 반드시 나에게 시집을 오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나도 영미 엄마도 그렇게 하자고 했었다
그러던 중 난 대학 진학을 결심하여 회사를 그만두고 그 집을 나와야 했다,
영미에겐 모든 것을 비밀로 했었는데 그 집을 나오기 전날,
영미 엄마는 영미에게 이사실을 알렸다.
"키다리 오빠~ 가지 마~. 왜 가야 하는 거야~"가지 마 안 가면 안 돼~~"
엉~엉~
영미는 울면서 나에게 매달렸었다
이삿날 영미는 학교도 안 가고
나를 못 가게 울면서 붙들었고 난 6개월쯤 후 다시 오겠노라고 달래며
우는 영미를 뒤로한 채 눈물의 이별을 하였다
영미는 그날 이후 2일간
학교도 안 가고 거의 밥도 안 먹고 울먹였다고 들었다.
그 이후로 영미 엄마랑만 간간히 통화했었고
영미랑은 일부러 통화도 안 했다 하고팠지만. 보고팠지만...
공고를 졸업한 놈이 서울의 대학에 입학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고
헤어질 때 곧 돌아오겠다고 한 영미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음이 너무 미안해서
난 2년 후에야 간신히 서울로 진학했었고, 복학 후 3학년 때
난, 영미 아빠가 재직하던 학교를 통하여
바뀐 영미네 집 전화번호를 알아냈고
수원 남문 근처 커피숍에서 영미와 영미 엄마를 만났다
어리디 어린 소녀였던 영미도 여고 3학년의
어엿하고 어여쁜 여고생이 되어 있었다.
영미와 난 7년 만에 두 번째 인연으로 만났었다,
그날의 내감회가 어떠했는지....
영미와는 옛 추억을 되뇌며
셋이 함께 저녁을 먹었고
영미 엄마는 먼저 집으로 돌아가셨다
영미와 난 근처 팔달산에서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설레는 시간을 보냈었다
늦은 시간... 영미를 가볍게 안아주고 볼에 뽀뽀한 후 헤어졌다.
여대생 되었을 때 또 보자고 하고,
정치외교학과에 재학중인 나는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에
시대적 요청을 외면치 못하고 수없이
쫓기기도 했으니
여대생이 된 영미를 찾지 않았다,
그날 이후
영미는 그립고 그리운 소녀로..
청순한 여고생으로...
내 가슴 한구석에 자리한
아름다운 추억의 소녀가 되었다.
피천득 님은 "아사코"와의
세 번째 만남 후에
"아사코"는 "백합처럼 시들어가는 모습이었다"라고 하시면서
그 만남이 영원한 이별과 인연의 끝임을 직감하셨다
난 영미와 두 번째 만남에서
인연의 끝이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했지만
결국 영원한 이별이 되었고 인연의 끝이 되고 말았다
영미와 세 번째 만남이 없었기에
어여쁜 소녀로...
청순한 여고생의 영미로...
그리고 마지막 포옹에서의
온기와 뽀뽀한 볼살의 향큼함이
온전히 내 가슴속에 고이고이
간직되고 있다
지금은 오십 대 중후반의 중년 여인이
되어 있을 영미.....
같은 하늘 아래 어느 곳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유난히 추운 오늘
이 추위를 헤치고 영미가
내 가슴속으로 슬며시,
그리고 따스하게 파고들고 있다
어느 해 겨울 ㅡ
수원/삼성전자 재직 때 입사동기들과 함께
부산 /해운대/국립부산기계공고 졸업식 때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여명(경기-남) 작성시간 26.06.16 굿 나잇(춘천-남)
설익은 ~ㅎㅎㅎ -
작성자달무리 (대구 여) 작성시간 26.06.16 전 어릴적 큰언니
께서 해운대
살아서 방학때면
해운대 1달씩
살았었는데요
동백섬 자전거
타고 가다 넘어
지기도 하고
수영도 하고
제 추억은 해운대
많이 있지요 ㅋ -
답댓글 작성자굿 나잇(춘천-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6 일요일은 해운대 백사장 휴지줍기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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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달무리 (대구 여) 작성시간 26.06.16 그 당시 조선비취랑
극동호텔 하나
밖에 없었지요
완전 허허 벌판 ㅡ -
답댓글 작성자굿 나잇(춘천-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6
극동은 박통 숙소로
조선비취는 재학중 착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