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가구 남짓한 조그만 시골 동네
높은 곳에 자리한 초라한 초가집 두채
그곳에서 태어나 나의 유년 시절은 시작되었다
아주 어릴 적 생활은 몇 끄나풀의 희미한 기억밖에 없지만 가만히 유추해 보면 짐작은 간다
시골 농부의 막내 꼬맹이는 어떻게 커갔을까
나는 소와 더불어 자랐다.
먼동이 트기 전 이른 새벽마다
아직 가시지 않은 새벽이슬과 벗 하며
송아지 딸린 어미소를 몰고 단 하루도 빠짐없이
소풀 먹이러 가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어떨 땐~ "연수야~ 소 먹이러 가야지~~" (연수는 집에서 부르던 내 이름)
하시던 당신의 그 말씀이 얼마나 싫었었는지
좀 쌀쌀한 새벽에는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고
당신의 부름을 못 들은 척한 적도 많았었다.
지금 당신의 그 목소리를 들을 수 만 있다면
훨~훨~ 타오르는 불속이라 하더라도 문을 박차고 뛰쳐나갈 것이다
당신의 그 목소리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이후 들을 수가 없었다
논 대여섯 마지기 밭떼기 예닐곱 마지기,
이처럼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소와 송아지가 독보적인 재산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으리라
막내인 나에게 그 소를 키우는 막중한 소임이 주어졌으니
나는 그 임무를 충실히 실천하는 착한 막내였다.
학교를 마치면 책보따리 내팽개치고
곧바로 소 몰고 둑으로 산으로...
풀이 있는 곳 이면 그 어디든 갔었다
소먹일 풀을 위해 꼴망테 둘러메고
지금 내 왼손의 검지는
그때 풀 베던 낫에 베인 상처로 생긴
수많은 흉터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도 간혹 이 흉터를 볼 때마다
그 시절의 애틋한 그리움에 멍해지기도 한다
이렇듯 소와 더불어
"사람은 가끔 일부를 주지만 언제나 전부를 바치는 소"
워낭소리와 더불어
나의 유년시절은 흘러 흘러갔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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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여명(경기-남) 작성시간 26.06.16 굿 나잇(춘천-남)
있는 건 활용을 ㅋㅋㅋ ㅋ -
작성자몰운대 작성시간 26.06.16 진주 근처 南江 이 보이는 시골 마을에서,, 8남매나 되는 남매들 사이에서,, 어렵게 성장을 하셨나,,봅니다,,ㅎ
지금이야 소를 이용해서 농사를 짓는 農家들이 쉽지는 않겠소만,, 그 집안에 대단한 資産이라,,,,
고향을 떠나,, 먼~타지에서 애틋하게 추억을 기리면,, 어린 시절을 회상 하는 굿~나잇님의 추억 한편을 들여다 봤읍니다,,
지금은 무슴 일을 하는지 몰라도,,, 農心만은 기억 해주길,, 바랍니다~~,,ㅎㅎ -
답댓글 작성자굿 나잇(춘천-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7 ㅎㅎ
여전히 촌늠 이니까요 -
작성자둘이서/부산/여 작성시간 26.06.16 그때 그시절~ 시골에서 소있는집은 부자 였어요
여자애들도 소 먹이러 다니곤 했더랬는데..
행인지 불행 인지
저희집은 소가 없어서
그런 경험이 없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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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굿 나잇(춘천-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7 대학을 우골탑이라 했으니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