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늠의 추억 3 ...두분 형

작성자굿 나잇(춘천-남)|작성시간26.06.17|조회수32 목록 댓글 19

 
나의 유년시절에도 시련이 찾아왔다,
당시 큰형을 대학에 보내는 일 때문이었다

큰형은 당신들의 전부였었고
희망의 동아줄 같은 존재였었다

줄줄이 다섯 딸 이후
몽매에도기다리던 아들이었으니...

시골 중학교에서 마산고등학교에
합격한 날...
당신은 곤궁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동네잔치를 할정도였다,
(당시엔 시골 중학교에서 3~4명 정도만 마산고에 갈 수 있었다)

 
첫 번째 맏이만 출세하면
그 밑에 동생들은 맏이 그늘 아래서 저절로 먹고살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계신 당신들 생각 때문에

작은 형은 중학교 진학도 못했다
공부도 잘했구 글씨체를 잘 쓰기로도 칭찬받으셨던 형이었는데
 
지금도 작은 형의 평생 한이 돼버린 일이다
당신의 곤궁 함으로.
당신들께선 큰아들 한 명 도회지에 유학 보내기에도 그 당시엔 얼마나 힘 드셨을는지.....
 
그리고 내가 6학년이 되고
큰 형은 서울대학교 입학시험 준비한다며
자취로 배도 굶어가며
잠도 설쳐가면서 공부에만  매진 중 이셨다

나에게는 작은 형의 중학 진학 때 보다 더 어려운 시기가 되었다

"연수야~행님 대학 보내야 하니께 니는 중핵조 갈 생각은 말거래이"
당신들의 힘없는 목소리

눈물로 매달리는 내게 긴 한숨과 눈물로만 화답하셨다.

"중학교 교복만 입어보고 그만두겠다"라고
"더욱 열심히 소멕이고 꼴 밸 테니 입학만 하게 해 달라"라고

끼니도 거르며 엄마팔을 부여잡고 눈물로 여러 날을 간청하였다
 
그즈음 큰형이 집에 내려 와서
" 대학에 가더라도 제가 벌어서 다녀 볼 테니 막내 중학교는 보내주자"라고 훈수해 주셨고

작은 형도"내가 진학 못한 건 괜찮으나 동생은 나처럼 만들지 말아 달라"라고 훈수해 주셔서
간신히 중학교 교복을 입어볼 수 있었다
 
아마 그때 형들의 훈수가 없었더라면
"내가 출세해서 내가 도와줄 테니  농사일이나 도와줘라"

"형인 나도 못 갔는데 쪼맨은 니가 왜 이리 까부냐"라고
하며 나무라기도 했더라면
내 인생이... 내 삶이 어찌 되었을까.
 
작은형과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되신 세분(큰형과 당신들)당신들께
이 막내가 예순이 넘은 지금도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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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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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굿 나잇(춘천-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8
    시험바서 드갈때 ~~
  • 답댓글 작성자둘이서/부산/여 | 작성시간 26.06.18 우리 큰시숙은 마중 들어 기려고 6학년 두번 하고~
    일곱살에 학교 입학 하여 1학년 두번 하고..8년만에 마중 들어 갔어요~
    예전에 맏이 한테 기대 많이 걸었으니^^
  • 작성자몰운대 | 작성시간 26.06.18 형수 두분은 살아 있는지요~~,,ㅎㅎ
    형수,, 조카와도,, 잘~지내시리라, 보여 집니다~~,,ㅎ,
  • 답댓글 작성자굿 나잇(춘천-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8 네,,
    잘 살고 있습니다 ,
  • 작성자우정/여/남양주 | 작성시간 26.06.18 그 시절엔 그랬어요.

    장남이 젤이고
    아들이 장땡이던 시절.

    여식애는 남의집 보낼거라 공부시키는건 아까워하시던 울 어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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