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쉬운 성경 예레미야 48장 11 - 17절
11 모압 백성은 젊었을 때부터 평안하게 살았으며 포로로 끌려간 적이 없다. 이 병에서 저 병으로 옮겨 부은 적이 없어 찌꺼기가 가라앉은 포도주와 같이 평온하였다. 그래서 그 맛이 예전과 같고 그 향기가 변함이 없다.
12 하지만 보아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병에서 쏟아 버릴 날이 곧 올 것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그들은 모압의 병을 비워 버릴 것이며 잔들을 깨뜨려 버릴 것이다.
13 이스라엘 백성이 벧엘 신을 의지하다가 부끄러움을 당했듯이 모압도 그모스 신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14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는 용사다! 용감한 군인이다!'라고 말하느냐?
15 적군이 와서 모압과 그 성들을 쳐, 모압의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이 죽을 것이니 이는 왕의 말씀이요.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16 모압의 마지막 날이 가까워 왔으므로 그들이 곧 멸망할 것이다.
17 모압의 모든 이웃아, 모압을 위하여 울어라. 모압의 이름을 아는 모든 자들아, 그를 위하여 울어라. '그 강력했던 권세가 무너졌고 그 권력과 영광이 사라졌다'고 말하여라.
<묵 상>
예레미야 48장은 모압의 심판을 통해 교만, 우상숭배,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비와 회복의 약속을 드러냅니다. 11-17절은 오랫동안 평안함 속에서 안일함과 교만에 빠져 있던 모암이 결국 철저하게 파멸될 것을 예언합니다.
2. 모압의 교만과 죄악에 대한 책망(11-17절)
"모압 백성은 젊었을 때부터 평안하게 살았으며 포로로 끌려간 적이 없다. 이 병에서 저 병으로 옮겨 부은 적이 없어 찌꺼기가 가라앉은 포도주와 같이 평온하였다. 그래서 그 맛이 예전과 같고 그 향기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보아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병에서 쏟아 버릴 날이 곧 올 것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그들은 모압의 병을 비워 버릴 것이며 잔들을 깨뜨려 버릴 것이다."(11-12절) 모압은 역사적으로 대규모 포로 생활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치'찌꺼기 위에 앉은 묵은 포도주'처럼 고유의 향과 맛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교만과 악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병을 기울여 포도주를 쏟고, 잔을 부수듯, 모압을 철저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기 우리말 '평안하다, 평온하다'는 '안일하다, 조용하다, 안심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 단어는 고난이 없어서 찾아오는 평안을 뜻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종종 '하나님 없이 스스로 안전하다고 믿는 영적 태만과 교만'을 책망할 때 사용됩니다. 모압의 평안은 하나님이 주신 평강이 아니라 심판을 축적하고 있는 '영적 침체와 안일함'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안함을 축복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 평안이 하나님을 떠난 평안이라면, 그것은 복이 되지 못하고, 가장 무서운 저주일 수 있습니다.
고난이 없는 안일함은 영적 부패를 가져옵니다. 모압은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외세의 침략을 비교적 덜 받았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적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찌꺼기가 가라앉은 묵은 포도주'와 같다고 하십니다. 이 병에서 저 병으로 옮겨지지 않아 맑은 포도주가 되지 못하고, 가라앉은 찌꺼기와 함께 썩어 향기와 맛이 변해버린 상태입니다. 여기 '찌꺼기'는 '앙금'을 뜻합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보존하다, 지키다'라는 뜻의 동사와 어근이 같습니다. 포도주를 좋은 상품으로 만들려면 찌꺼기를 걸러내기 위해 이 그릇 저 그릇으로 자주 옮겨 담아야 합니다. 하지만 모압은 옮겨 담는 과정, 즉 고난과 변화의 과정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죄악 된 본성과 교만이라는 '찌꺼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고난이 없는 안일함이 오히려 독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삶에 고난이 없고 모든 일이 뜻대로 잘 풀릴 때가 위험한 때입니다. 변화와 개혁의 옮겨 담음이 없는 인생은 내면의 죄악과 교만이라는 찌꺼기가 그대로 굳어지게 됩니다. 고난은 우리를 맑은 영성의 포도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정화 과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벧엘 신을 의지하다가 부끄러움을 당했듯이 모압도 그모스 신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는 용사다! 용감한 군인이다!'라고 말하느냐? 적군이 와서 모압과 그 성들을 쳐, 모압의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이 죽을 것이니 이는 왕의 말씀이요.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다."(13-15절) 하나님은 이제 병을 기울일 사람을 보내실 것입니다. 모압이 가라앉아 있던 그 안일함의 그릇을 쏟아버리고, 그들이 의지하던 병들을 부수실 것입니다. 모압은 자신들을 지켜줄 줄 알았던 우상 '그모스'로 인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 '벧엘 신'은 이스라엘이 '금송아지 우상'으로 인해 수치를 당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랬던 것처럼, 모압은 자신들의 우상인 '그모스'로 인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들이 자랑하던 용사들은 엎드러지고, 만왕의 왕이신 만군의 여호와의 위엄 앞에 무릎 꿇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안주하던 세상의 그릇들, 재물, 건강, 명예 등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한순간에 깨어집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 없이도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나만의 그릇은 무엇인지? 하나님은 그 그릇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도록 그 그릇을 흔드십니다. 모압은 '우리는 용사다. 용감한 군인이다'라고 스스로 싸움에 능한 자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모압의 마지막 날이 가까워 왔으므로 그들이 곧 멸망할 것이다. 모압의 모든 이웃아, 모압을 위하여 울어라. 모압의 이름을 아는 모든 자들아, 그를 위하여 울어라. '그 강력했던 권세가 무너졌고 그 권력과 영광이 사라졌다'고 말하여라."(16-17절) 모압의 재앙은 속히 임할 것이며, '강력했던 권세와 권력'이 참담하게 무너지고, 주변 나라들의 비웃음과 애통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우리말 '권세와 권력'은 히브리어 '막대기와 지팡이'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히브리어 '마테', 막대기는 '아래로 뻗다, 의지하다'에서 유래했고, 히브리어 '마케르' 권력은 '싹이 돋다, 빠르다'라는 의미와 연결됩니다. 성경에서 막대기와 지팡이는 '권력, 통치, 국력'을 상징합니다. 모압이 세상적으로 의지하고 자랑하던 정치적, 군사적 힘, 즉 지팡이와 막대기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한순간에 꺾이게 될 것임을 경고합니다. 이는 인간이 의지하는 힘의 허무함을 단적으로 나타냅니다. 세상의 권력과 물질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세상의 썩어질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가 아니라, 여호와의 지팡이를 의지하며 걷는 자들입니다. 고난 없는 안일함은 교만을 낳고, 하나님을 떠난 세상의 자랑은 반드시 꺾이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아무 문제 없이 안일함에 빠져 있다면, 내 영혼의 찌꺼기를 돌아보며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만군의 왕이시요. 만왕의 왕이 되시는 여호와 아버지 하나님! 인생의 고난이 없고 평탄할 때, 그것을 나의 의로움이나 힘으로 착각하지 않게 하옵소서. 영적 안일함과 교만에 빠져 있지 않게 하옵소서. 내 삶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죄악의 찌꺼기, 게으름의 찌꺼기, 세상 정욕의 찌꺼기, 영적 질병을 만들어내는 모든 찌꺼기들을 제하여 주옵소서. 스스로 안전하다고 믿었던 모든 묶임을 풀어 주옵소서. 때때로 나의 삶에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와 아픔과 결핍을 겪을 때, 원망하기보다 나를 정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세상에서 자랑하던 강력했던 막대기와 지팡이를 의지하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나의 목자 되신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만 의지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지팡이가 나를 영원토록 안위하실 것이기에 나의 평생에 주님만 따르게 하옵소서. 오늘도 썩어질 세상의 안일함 대신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강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거룩한 주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옵소서. 그러한 나로 인해 이 사회와 삶의 터전 위에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