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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요11d -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작성자송다니엘|작성시간10.09.20|조회수106 목록 댓글 1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11:28-40

요절: 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지난 시간에는 기독교의 가장 가르침 중의 하나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이며 생명이시니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는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믿는 하나님 자녀들은 죽음을 관점에서 , 예수님을 믿었던 친지와 가족들의 죽음을 원칙적으로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그들을 아상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네가 이것을 믿느냐라고 물어보심으로써 신앙 고백을 시키셨습니다. 우리는 부활에 대해서 분명한 신앙 고백을 해야 합니다.

 

오늘은 믿음의 본질에 대해 조금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믿는 자는 믿음이 삶에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마르다는 훌륭한 믿음을 가졌고 올바른 고백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완전히 변화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마르다의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28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자매 마리아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표현으로 보아서 예수님의 제자가 먼저 마르다를 불러내어 예수님께서 마르다를 위로하시면서 가르치시고, 그다음에 마르다를 통하여 조용히 마리아를 부르신 같습니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부르신다는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나갔습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매우 슬픈 중에서도 예수님이란 말을 듣고 즉각적으로 반응을 했습니다. 여기에 벌써 마리아의 예수님께 대한 깊은 존경과 사랑, 의존감이 나타납니다. 우리도 아무리 슬프고 어려운 상황에 처할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되면 즉시 반응을 해야 하겠습니다.

 

32 마리아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앞에 엎드리어: 여기에 마리아의 깊은 감정이 나타납니다. 그녀는 예수님 앞에서 몸을 던지고 마르다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르다와는 달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울었습니다(33). 나사로가 죽은 데에 대한 고통이 너무 커서 고통의 감정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함께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함께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아마도 마리아는 아직 예수님 앞에서 쓰러져 울고 있고, 따라온 조문객들은 마리아가 우는 것을 보고 슬퍼서 따라서 울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같이 슬퍼하셨습니까? 아니면 민망해 하셨습니까?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비통히 여기다라는 말의 원어는 언짢게 생각하여 화를 내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통히 여기시고 누구에게 화를 내셨을까요?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죽음은 원래 인간에게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인간에게 오히려 낯선 것입니다. 인간은 낙원에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지어진 존재입니다. 죽음이란 인간에게 비본래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죄의 노예가 되고, 죄로 말미암아 사단이 인간을 지배하게되고, 끝으로는 그를 사망으로 몰아갑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 , 그는 사단의 노예이고 죄의 열매로 사망하게 됩니다.

 

따라서 사단은 원래 하나님께 속하는 인간을 속여서 사망으로 몰고 감으로써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예수께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사망을 이기시고, 이로써 사단을 약화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재림 시에 믿는 자를 부활시키심으로써 사망을 완전히 멸하십니다: „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15:54-55). „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고전15:26)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사망의 그늘 아래서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사단에게 분노를 하신 것입니다. 사망은 단지 부활을 통해서만 극복되는바, 이제 나사로의 부활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사단의 능력을 이기신 것을 보여주시려고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죽음의 그림자에 가려져서 사는 운명적인 사람에 대해서는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우셨습니다(35). 우시는 것은 격한 감정의 표시입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격한 감정이 여러 군데에 표현되어 있으며 예수님도 자신의 감정 표현을 하셨습니다:

1:41-42 „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예수님의 감정 중에서 두드러진 것은 사랑하시는 외에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난하고 억눌려서가 아니라,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고 희생을 하신 것이 이러한 죄인들에 대한 compassion에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 가시니 무덤 이라 막았거늘

 

예수님께서 다시 비통히 여기셨을까요? 사람들의 불신 때문일까요? 그런것 같지 않습니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보다는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로부터 믿음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지금 나사로가 부활한다는 믿음을 가질 것을 요구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지금 예수께서는 바로 사단의 세력 앞에 계십니다. 여기에서 거룩한 분노를 느끼시며 즉시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옮겨 놓으라 하시니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 되었으매 벌써 냄새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죽은 지가 나흘 되었으매 벌써 냄새 나나이다: 예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마르다가 이제 가장이 되었으니 마르다에게 명령을 하신 같습니다. 마르다가 명의 장정들에게 지시를 해야만 이것이 가능합니다. 돌판으로 무덤은 막혀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돌판을 옮기라고 하신 이유는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마르다가 처음으로 예수님께 반박했습니다. 예수님을 주요,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마르다가 어찌 감히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할 있었을까요?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보려고 무덤 속으로 들어가신다고 생각했을까요? 이미 나흘이 되었으므로 냄새가 나니 예수님께 그것을 알려주려고 했을까요?

 

어쨌든 마르다가 예수님의 명령에 당황한 같습니다. 그래도 매우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마르다 만이 시체에서 썩는 냄새가 난다는 말을 있는것 같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랑했던 나사로가 이제는 죽어 시체가 되어 썩으면서 냄새가 난다는 것은 죽음이 얼마나 잔인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사랑했던 자가 시체의 냄새를 내는 것은 정말로 잔인한 인간의 운명입니다. 운명은 누구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오늘 아름답게 옷을 입고 예배에 모였지만, 언젠가는 나사로와 같이 죽어서 냄새를 내는 운명을 피하지 못합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주인공 히드클리프는 곳에서 돌아오자 이미 죽은 오래된 꿈에서도 그리워하던 애인 캐티의 무덤을 찾아가 파헤쳤습니다. 영화 바롤로매 밤의 학살에서 마곳 공주는 길로틴에서 죽은 애인의 목을 찾아서 그것을 가지고 길을 떠났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은 죽어도 위대한 사랑은 죽음도 부패한 시체도 뛰어 넘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속이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인간이 찬양하는 낭만의 본질입니다. „냄새가 나나이다라는 마르다의 말은 아무리 슬프고 사랑해도, 현실을 똑바로 보는 냉철하고 현명한 여자의 상이라고 있을 것입니다.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그러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선 말씀은 마르다를 꾸짖는 말씀이 아닙니다. 마르다를 상기시키시는 말씀입니다. 바로 전에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귀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르다가 약속의 말씀의 구체적인 이해를 못한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의 의미를 자세하게 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먼저 주신 말씀은 25-26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예수님 자체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살아서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지금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지금 나사로를 냄새가 나는 시체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 그는 이미 죽었습니다. 이상 신경쓰지 마세요! 멀리서 여기까지 오시느라고 수고를 하셨으니, 저희 집에 가셔서 쉬세요!“

 

그러나 예수님은 무덤에 죽어서 누워있는 살아있는 그를 보고 계십니다.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몸은 단순히 영혼을 담고 있는 껍질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미 허물어진 몸을 다시 일으킬 있습니다.

 

지금 마르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는 사실 부활을 믿지만, 믿음은 이론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녀는 부활의 영광을 모릅니다. 너무 현실적인 사람이라 미래에 부활이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고, 지금 나사로가 살아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모릅니다. 이것은 실제로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만약 성경이 단순한 인간이 책이라면 이렇게 적혀있었을 것입니다: „마르다야! 걱정 마라. 내가 나사로를 지금 일으켜서 부활의 능력을 보여주마. 그러면 네가 나를 믿게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와는 반대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생각을 뒤엎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기적을 보아야 믿습니다. 지금도 많은 교회에서 기적집회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신앙을 샤머니즘화 시킨 것입니다. 기독교는 믿게하기 위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의 믿음을 확증시키기 위해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은 믿는자들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기적은 없어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기적이 믿음의 조건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나사로를 일으키시기 전에 네가 이것을 믿느냐?“라고 먼저 물으신 것입니다. 지금 마르다는 나사로의 부활을 체험하기 전에 사실을 먼저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순서는 하나님의 말씀 믿음 체험 됩니다. 체험과 기적은 믿음을 굳건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기적을 통해 믿게 사람은 하나님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자는 하나님을 올바로 인식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기적을 보는 순간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던 미신적인 하나님 상이 굳어져서 일생동안 우상숭배로 끝날 수가 있습니다.

 

신앙의 본질이란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아는 것이며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복음을 믿을 있게 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믿음보다 기적을 바라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기적 중의 기적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적을 믿고 있는 우리에게 다른 작은 기적은 더욱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1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음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믿음 자체가 실상이요 증거라고 합니다. 따라서 신자에게 있어서 인식의 수단은 눈에 보이는 기적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써 예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변화된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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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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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Jay 문정은 | 작성시간 10.09.21 죄의 세력에 굴복했던 제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믿게 된 것이 저에게는 가장 으뜸되는 기적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 다른 것을 구하기 보다, 이미 저에게 행하신 많은 기적들에 대하여 되짚어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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