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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 2: 27 너희가 알 것이라 ( 2 )

작성자jung8h|작성시간26.06.22|조회수14 목록 댓글 0

 

욜 2: 27 너희가 알 것이라 ( 2 )                                                                   

                                                                                                              

    

4] 너희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 욜 2: 21-27 ) / 전병금 목사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의 북방 국경 근방에 새옹이라는 늙은이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기르는 말이 아무런 까닭도 없이 도망쳐 오랑캐들이 사는 국경 너머로 가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고 동정하자 늙은이는 “이것이 또 무슨 복이 될는지 알겠소” 하고 조금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몇 달 후 뜻밖에도 도망갔던 말이 오랑캐의 좋은 말을 한 필 끌고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이 이것을 축하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늙은이는 “그것이 또 무슨 화가 될는지 누가 알겠소” 하고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집에 좋은 말이 생기자 전부터 말타기를 좋아하던 늙은이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달리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아들이 병신이 된 데 대하여 위로하자 늙은이는 “그것이 혹시 복이 될는지 누가 알겠소” 하고 태연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런지 1년이 지난 후 오랑캐들이 대거 쳐들어왔습니다. 장정들이 활을 들고 싸움터에 나가 모두 전사하였는데 늙은이의 아들만은 다리가 병신이어서 부자가 모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꼭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꼭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입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 세상살이의 한 모습이기에 너무 현재의 모습만 보고 실망하거나 반대로 너무 흥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르고 기쁠 때에는 극도로 흥분하여 즐거워하다가 슬플 때에는 반대로 너무 낙담하여 신앙을 잃어버릴 정도로 실의에 빠지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들을 ‘돌밭에 뿌린 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마 13:20-21).

신앙은 이렇게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환경에 구애됨이 없이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슬플 때에라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 가운에 임한 하나님의 뜻이고 그 뜻이 비록 고통스러운 것일지라도 아멘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장로님 한 분을 만났는데 그분의 투병 생활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3년 전에 간암 수술을 받았고, 요즈음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제 수술한지가 3년이나 되었으니 암이 재발하지 않게 완전히 뿌리째 뽑혔다는 소리를 듣기 원해서 “아직 뿌리째 뽑히지 않았습니까? 아주 없어졌다는 진단을 내릴 수는 없을까요?”하고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그 때 의사는 “미안합니다만 장로님에게 암의 가능성이 완전히 뿌리 뽑혔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불행히도 그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언제 암이 재발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장로는 자기 속에 죽음의 가능성을 늘 가지고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장로는 “내가 어떻게 되어도 주께 감사하고 찬송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늘 기도한다고 합니다.

삶의 가능성에는 기뻐하고 감사하지만 죽음의 가능성에는 슬퍼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가능성에서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 그 뜻에 감사하고 찬송하고자 하는 그 장로님의 믿음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8).

감사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우리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행복과 기쁨만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슬픔과 불행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슬픔과 불행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감사할 거리를 찾아 감사하는 것이 진정한 신자의 자세라 할 것입니다.

탈무드는 말합니다. “만일 다리를 한쪽만 잘렸으면 하나님께 두 다리를 다 잘리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 만일 두 다리가 잘렸으면 하나님께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라. 목이 부러졌으면 그 뒤는 걱정할 일이 없어진 것에 감사하라.”

우리는 올해 미국 발 금융위기로 달러와 환율의 급상승과 주식 가격의 급격한 하락으로 무서운 경제위기를 겪었습니다. 세계 경제가 점차로 글로벌화됨으로써 발생한 이번의 경제위기로 많은 서민층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금년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비가 위축되어 실물경제는 그렇게 활발한 것은 아니지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끊임없이 환난을 겪었습니다. 메뚜기가 온 땅을 뒤덮어 푸른 것은 모두 먹어 치웠고 극심한 가뭄으로 초목들은 말라 버리고 남은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거의 희망이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취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절망적이었습니다. 막막했습니다. 이렇게 상황이 절박하고 막막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절망 속에서 오로지 슬퍼하고만 있어야 할까요?

아닐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보았을 때는 인생사 새옹지마, 즉 슬픔 뒤에는 기쁨이 오게 마련이고, 신앙적으로 보았을 때는 환난이나 절망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반드시 존재합니다.

이런 절망 가운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섭리가 존재합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께서는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알려주셨습니다.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욜 2:12-13).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환난과 고통 가운데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거기에 감사하는 신앙을 갖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1. 세상의 모든 재앙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두려운 일들이 계속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팟종이와 메뚜기 떼와 늣과 황충의 재앙이었습니다.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고”(욜 1:4).

그들은 마치 큰 군대 같이 파죽지세로 몰려와 사자의 어금니 같은 입으로 모든 것을 먹어 치워 그것들이 지나는 곳마다 그만 수목이 말라버렸고 모든 가지는 하얗게 변해 버렸습니다.

그 뒤로 곧 가뭄이 왔습니다. 가뭄으로 곡식과 나무는 다 말라 비틀어졌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에서 생명 있는 것은 거의 없었고 생명을 이어갈 그 어떤 방법도 없었습니다.

오늘 지구촌은 무서운 재앙으로 큰 고통 속에 있습니다. 금년에도 남태평양의 사모아섬과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덮친 지진과 해일로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산을 잃고 수많은 사람들이 통곡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피해를 없애기 위해서 자신들의 토속신에게 빌고 부적과 무당의 힘을 빌려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재앙은 줄어들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만도 없습니다. 무서운 재앙에 뒤치다꺼리만 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욜 2:12)

그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천지의 대존재이신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그 모든 재앙을 내린 분은 하나님이시오 그것을 해결하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럼 왜 하나님이 이런 재앙을 내리십니까? 조금 작은 어려운 일을 주실 일이지 너무 잔인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재앙을 내리시는 것은 자신의 사랑하는 모든 백성들이 회개하기를 바라셔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통하여 자신의 백성들이 회개하고 자신에게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는 재앙의 영적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영적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자연 재앙에 대해 예수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를 우리는 누가복음에서 알 수 있습니다.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로 아느냐. 너희에게 이로노니,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4-5).

당시 바리새인들이 가진 인과응보사상에 의하면 예루살렘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의 희생은 어떤 특별한 죄로 말미암아 일어난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죄인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일어난 일은 회개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것에 대한 예시적인 서막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국 쓰촨성 대지진이나 태국 푸켓의 쓰나미 재앙에 대하여 이들이 더 많은 죄를 지어서 형벌을 받았다고 해석하는 것은 예수의 말씀의 진의가 아닙니다.

재앙은 분명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우리의 불순종과 죄에 대해 다가올 하나님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하나님은 자연의 재앙을 통하여 우리들이 이웃과 자연에 대하여 올바른 삶을 살도록, 불의한 삶을 버리고 의로운 삶을 살도록 경고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4에서 예수가 말씀하신 종말의 때의 징조는 자연의 재앙과 더불어 시작합니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라는 세상 종말의 징조에 관한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는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7-8)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가 말씀하신 것처럼 종말의 때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종말의 때를 맞아 이단들의 시한부 종말론에 휩쓸려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것이 아니라 어지러운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올곧게 실천하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경제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계의 경제 위기 앞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할 때 이러한 위기도 하나님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2.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면 큰 일을 행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은 큰 일을 행하셨습니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다 힘을 내는도다”(22).

이렇게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이 임했습니다. 재앙은 하나님만이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그 누가 극심한 가뭄을 막을 수 있으며 큰 재앙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그의 백성들이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이 직접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26-32).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한데 새를 길러 주시고,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하지 아니한데 들의 백합화도 길러 주시는데 독생자 예수까지 십자가에서 희생시킨 우리 인간을 사랑하여 돌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께 눈물로 회개하는 사람의 가정과 그의 나라를 풍족하게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 6:34).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면 아무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저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 생활을 했습니까? 일본의 하천풍언 선생은 안질로 눈이 거의 실명상태에 빠졌었는데 좋은 의사를 만나 수술을 한 다음 희미하게 무엇이 보이기 시작할 때 얼마나 황홀했는지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감사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감사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하나님은 우리같이 부족한 사람들을 지금까지 얼마나 잘 인도하여 주셨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감사했습니까? 또한 감사하여 하나님이 주신 것 가운데 얼마나 십일조 헌금 생활을 했습니까?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일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 감사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일을 행하십니다.


3. 하나님의 백성들을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십니다.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워 할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땅이여 두려워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21).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이제 모든 것을 잘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27).

하나님은 우리가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염려를 할 것이 아니라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영광 돌려야 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4-5).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기뻐하면서 넓은 마음으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 속이 좁아서 남들과 갈등하면서 살면 안 됩니다. 모든 이웃이 우리의 관용을 보고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합니다.

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는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고 간구할 때는 감사하면서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까? 미국의 억만장자인 A. A. 하이리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십일조 헌금 생활을 철저히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사업이 어려워져서 그만 많은 부채로 파산위기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기업 경영원리라 먼저 부채를 갚고 십일조를 해야 하는데 그는 파산위기에서도 십일조를 철저히 했습니다. 그 회사의 중역들이 와서 하이리 회장에게 항의했습니다. “이것은 기업경영원리상 문제가 있습니다.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 부채 먼저 상환해야지 십일조를 우선적으로 하다니요? 이것은 망하기로 작정한 사람이 하는 짓입니다”

그 때 하이리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부채를 상환하는데 있어 그 부채 상환의 원리가 아니라 도적질한 것부터 상환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 것입니다.”

직원들은 회장 같이 정직한 사람이 도적질을 했다니 의아해했습니다. 그 때 하이리는 성경 말라기를 펴 놓고 “나는 하나님의 십일조를 훔친 도적놈이기 때문에 부채 상환도 중요하지만 도적질 상환부터 먼저 한 것입니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 후에 그는 사업에 성공하여 미국 전역을 다니면서 십일조에 대한 간증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지켜주십니다.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합니다. 이 얼마나 위로가 되고 축복된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큰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모든 재앙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서 그 재앙을 보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축복하고 우리를 통해 큰 일을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진리로서 이러한 진리를 삶으로 실천하여 하늘의 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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