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왜 성령신앙인가?
- 신앙의 단계, 당신의 영적 수준은 어디에? -
딤전4:1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2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4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6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7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미쁘다.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10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11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14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15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가>.영적 성숙의 유형과 단계
1.성령 세례 받아, 영적으로 성숙한 신자가 되어야 한다.
‘영적 성장’, ‘영적 수준’이란 말은 매우 애매한 말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교회에 잘 나오고, 교회의 맡은 바 직분에 충성을 열심히 하고, 헌금에 남다른 아름다움을 보이며,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잘 인도하고, 죄악된 행위를 삼가며, 다른 사람들을 돕고, 그리스도인의 봉사에 분주하게 몰두하면 영적으로 성숙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런 일들은 영적인 성숙이 아닌, 다른 동기로도 얼마든지 최고로 잘할 수 있는 일들이다.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일종의 영적인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다. 평생을 영적인 유아기, 영적인 사춘기를 헤매다 끝나는 인생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끊임없이 성장하여 성숙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리고,(영적 성숙에 속하는) 완전한 데 나아 갈지니라.”(히6:1절)
육적 성숙
사람은 태어나서 3개월이 지나면, 출산 시의 두 배로 자란다. 6개월 후에는 3배가 된다. 이후 성장률은 점차 둔화된다.
신체적 성숙의 절정기는 25세이다. 그리고 신체는 대체적으로 70세가 되면 급속도로 쇠약하여 석양으로 기울어 간다.
1.육체는 태어나서 6개월 동안에 최고 속도로 자란다.
2.지적 능력은 15세에 최절정기를 맞는다.
그리고 20세 이후에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3.신체는 25세에 최절정기를 맞는다.
40대 이후에는 급격히 그 기능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4.성숙한 사고와 판단의 시작은 35세로부터 시작된다.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진다.
40대는 정신에 몸이 따라 가지 못함으로 신경증과 노이로제에 가장 많이 걸린다.
30대와 40대의 차이는 무엇인가?
자고 나면 몸이 개운하고 개운치 않은 것이 차이이다.
재미있는 말이 있다.
50대는 외모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
60대는 지식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
70대는 건강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
영적 성숙
1.사람은 태어날 때 영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은 상태로 태어난다.
웟치만 니의 <영에 속한 사람>은 탁월한 책이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통할 능력이 끊어졌다는 말이다.
성령> 영> 혼> 육의 관계가 정상이지만, 타락한 인간은 거꾸로 되고 말았다. 성령< 영< 혼< 육의 순서로 되고 말았다. 그런데 혼과 영의 단계가 거의 막혀 있다. 영과 성령의 관계는 완전히 끊어져 있다.
2.평균적으로 10세 정도에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거듭난다.
영적으로 거듭남은 순간적이며, 하나님은 바로 구원하신다. 영적으로 죽어있던 자가 그리스도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며, 마귀의 자식이었던 신분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바뀐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자들은 4가지 유형으로 나뉘어진다.
1>.영적 낙제 수준의 그리스도인 상태(영적 지수 10점 정도)
이 사람은 구원받은 상태 그대로 일생 동안 거의 변화가 없다. 예수 믿고, 교회 다닌다는 이름만 걸고 있다. 영적 영양실조 상태의 사람들이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장이 도무지 없다. 생애를 마치는 날, 그는 통탄하게 될 것이다. 영적으로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약 20% 의 교인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일 년에 교회를 두 달도 채 나오지 않는다. 목사는 이들을 이끄는데, 목회력의 30%를 거의 다 소진한다.
2>.평균적인 그리스도인 상태(영적 지수 30점 정도)
이들은 구원을 체험한 후에 조금 자라다가, 그만둔다. 자녀가 자라는 동안 교회에 좀 가 준다. 아이들을 예수 믿은 아이로 이름이라도 걸어두려 한다.
그리나 영적인 일들에 관심이 전혀 없고, 애를 쓰지도 않는다. 일년에 3-4개월 정도 교회 나온다. 교회 일들을 하지 않는다. 매사가 세상적이고, 이기적이다.
구원의 확신은 있으나, 빈 쭉정이들이다. 일생에 몇 번 쯤은 영적인 일에 열심을 내어 보려하나, 이내 포기하고 만다.
이런 성도의 수는 약 50%이다.
목사는 이들에게 목회력의 40% 정도를 소진한다.
3>.육신적인 그리스도인 상태(영적 지수 50점 정도)
이들은 외관상으로 전적인 헌신자들이다. 전적으로 주님께 의탁하고 산다. 신앙생활이 외관상 완전히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이다.
정규적인 봉사와 충성, 직분 수행으로 그의 일정은 꽉 차 있다. 교회에서 중요 직분을 맡고 있다. 소위 중진급 신자 들이다. 장로, 권사, 충성된 집사들 군이다. 이들이 교회 일들을 전담한다. 적극적이다. 시간과 돈, 정력을 아낌없이 바친다. 스스로도 믿음이 대단하다고 착각도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3년- 5년- 7년- 10년이 지나면, 주기적으로 탈진하기 시작한다.
삶에 영적 승리감이 없다. 패배감이 든다. 영적으로 방황한다. 은혜를 찾아 헤맨다. 아무리 애써도 영혼의 갈급함이 채워지지 않는다. 주님과 실제로 교제함이 없다. 끝없이 은혜를 찾아 방황한다. 뭔가가 더 있는데 찾지를 못한다. 심지어 교회를 옮기기도 한다.
그리고는 영적 방황이 다시 시작된다. 새로운 교회에서, 다시 출발하여, 더 열심을 내어보지만 역시 결과는 같다. 그는 자아의 힘을 극한까지 다하여 스스로의 영성을 밀어올린다. 그러나 역시 허무와 공허 뿐이다. 율법과 짐을 더욱 더 느낄 뿐이다. 마음속에 진정한 행복, 기쁨, 평안, 삶의 만족감, 영적 충족감이 없다. 영적인 세계가 도무지 열리지 않는다. 왜 그런지 아는가?
이유는 단 하나, 그의 신앙의 뿌리가 성령이 아닌, 육적인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목사는 이들을 위해 목회력의 약 20%를 소진한다. 이들은 교회안의 최상층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30-35% 정도의 신자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이상의 사람들이 다 육신적 신앙생활 속에 갇혀있는 사람들이다. 마음으로 이 지적에 공감하는 분들은, 이제부터 저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4>.신령한 그리스도인 상태(영적 지수 80점 이상)
이 그룹이 영적 성인으로 성숙하는 이상적인 모델이다.
그는 봉사, 충성보다, 자신의 영적 성장의 원리를 바로 붙든 사람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과의 살아있는 실제적인 교제가 있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충만함, 기쁨, 평안,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음, 하늘에 대한 소망, 영적인 것에 대한 실제적 체험, 일상의 것들을 채우시는 하나님 경험, 기적의 경험, 성령의 역사와 은사의 일상적 체험... 등이 생생히 살아있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하나님께 훌륭하게 쓰임받는다. 성령님은 언제나 그의 마음속에서 동행하시며, 인도하신다. 그의 영혼을 늘 그것을 느끼고 누린다. 그의 가치관은 세상에서 떠나 언제나 하늘에 가 있으며, 그의 목표는 영적인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는 인생의 모든 일에서 자기가 일하지 않는다. 그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이 그를 통하여 일하신다. 비유하면, 어린아이가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려고 끙끙 댄다. 그는 도무지 들 수 없다. 그런데 들어야 한다. 그 때 어른이 와서 달랑 들어준다. 그는 행복해 한다. 이와 같다.
그는 신앙의 뿌리가 자아에 기초한 육에 있지 않고, 영에 기초한 성령께 닿아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신앙의 길을 걸어가려고 애쓰는 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 힘으로 밀어올리는 율법적 신앙생활이 아닌, 성령 안에서 누리는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문제는 목사 가운데도 이런 사람이 5%가 채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도들에게 이 영적 신앙을 가르쳐 줄 수가 없다. 그래서 목사나 성도나 교회가 하나 같이 “무거운 짐 지고 길 가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영적 신앙의 유형의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40세 정도에 영적 회심을 경험한다. 성령 세례를 받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신앙을 갖게 되고, 성령의 사람으로 전환하고 나면, 아무리 몸부림치며 노력해도 50점 대에 머물던 영적 삶의 수준이 갑자기 80점 대로 수직 상승한다.
그는 범사에 그리스도의 삶과 동일시되며, 성령의 사람이 된다. 그에게는 갑자기 풍성한 성령의 삶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자기 안의 그리스도가 살기 시작한다. 갈2:20절의 삶이 나온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肉體)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爲)하여 자기(自己)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살지만, 나는 부인되고 깨어지고 없어졌다. 내 안에 예수님이 직접 살기 시작하신다. 성령님이 나를 사시기 시작한다. 이는 마치 처녀가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시집 간 이후 아내의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과 같다. 남편을 너무나 사랑함으로 자기는 없이 오로지 남편의 삶을 대신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남편의 삶을 대신 살면서 그녀는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
이처럼 이제 성령님 안에 사는 그는, 이전의 자기는 날로 날로 십자가에 못 박힌다.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상상할 수 없는 영적인 풍요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토록 끊어지지 않던 죄악의 삶이 실질적으로 청산되기 시작한다.
성령에 붙들려, 성령의 신비한 임재와 기름부름, 능력, 은사,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기적도 나타난다. 치유를 행한다. 영적인 세계가 열리고 보이기 시작한다.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삶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변화된 자신의 삶과 내재한 성령의 역사로 자신이 스스로 놀란다. 성경이 전혀 다르게 영으로 읽혀진다. 남을 부정적으로 보며, 비판하던 눈이 완전히 달라진다.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눈이 열리기 시작한다. 전도인의 실질적인 삶이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한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면, 마음속의 넘치는 기쁨과 평안 때문에 때때로 황홀경속에 들어가기도 한다. 병 고침, 성령의 은사, 역사, 기름 부음, 능력 행함, 기적들이 주변에서 수시로 일어난다.
그러나 이런 사람 역시 항상 성령 충만한 것은 아니다. 자아가 다시 살아나 영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기도 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성령님을 주목하고, 성령 충만함을 지키기 위하여 성령님께 복종하면 나날이 성령 충만한 삶이 진보한다. 그는 매일, 매 순간 성령님을 주목하여 자기가 십자가에 못박힌 몸임을 확인한다. 자기 부인이 계속된다.
나는 이러한 풍성한 영적 삶을 성령 24년 세월에 어언 15년 가까이 살아 온 듯 하다. 목사인 저의 경우, 이러한 풍성한 영적인 삶을 유지하려면, 3개월 정도마다 10여일 씩 금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일 10시간 정도의 순수한 골방의 영적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치열한 영적 전투를 경험하며, 나날이 거룩하게 변해져 간다. 그리고 승리를 향해 다가간다. 매 순간 항상 그의 자아는 죽음에 넘겨져야만, 영적 전쟁은 승리로 끝난다. 이 때 성령 충만한 그의 영적 점수는 90점-95점 대로 상승한다. 거의 그리스도와 가까운 삶을 살게 된다.
그는 죄와 무관한 삶을 살게 된다. 마음속에 죄악을 생각만 해도 성령님의 탄식하시는 음성을 듣는다. 성화란 이론이 아니다. 실제로 내 속에서 이루어지고, 삶으로 살아지는 역사이다.
이런 사람은 교인 비율상으로 2-3% 정도 된다고 생각한다.
목사도 마찬가지이다. 전체 목사 중에 이러한 부류에 드는 목사는 5% 미만이라고 생각된다. 목사는 사실 이들 성숙한 신자들에게는 목회력을 전혀 소진할 필요가 없으나, 깨어있는 목사는 이들에게도 10% 정도의 목회력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당신은 어느 길로 걸어 가려는가?
성령 안에서 멈추지 말고 계속 성장하라.
가야 할 길이 멀다. 정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렇게 육적인 삶에 갇혀 살 때가 아니다.
지금은 영적 전쟁의 시대이다. 악한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다. 그러나 마귀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은 거의 공격하지 않는다. 공격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놔 두어도 자기 스스로 주님과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고 타락된 삶을 살기 때문이다.
사탄은 영적 그리스도인만 공격한다. 그들만이 진실로 살아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을 점검하고, 방향을 선회하라.
오직 성령신앙으로 돌아서라.
오직 성령의 사람이 되라.
당신도 성령 세례 받으라.
이제 나는 없다.
나는 육적인 신앙의 삶을 떠났다.
나는 성령님과 함께, 성령님이 끄는대로 성령의 길을 걸어, 성령의 삶을 살아 갈 뿐이다.
2.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 따라 충성하는 신자가 되어야 한다.
은사는 수백가지이나, 특별한 성경이 말씀하는 은사는 28가지이다. 피터 와그너가 분류한 은사는 다음과 같다.
피터 와그너 <은사를 발견하라>의 28가지 은사
롬12장 6-8절
1.예언(설교, 영적으로 감동된 발언)
2.섬김(사역)
3.가르침
4.권위(권면, 믿음의 격려)
5.구제(기부, 관대한 행위, 나눠 줌)
6.지도력(권위, 다스림, 행정)
7.긍휼(동정, 슬픈 자를 위로함, 친절을 베풂)
고전12장 8-10,28절
8.지혜(권면, 말)
9.지식(공부, 지식으로 말함)
10.믿음
11.병고침
12.이적(능력 행함)
13.영 분별함(영적인 일들을 분별함)
14.방언
15.방언 통역
16.사도적 은사
17.서로 돕는 것
18.다스림(행정, 조직)
엡4장:11절
19.복음 전하는 자(전도자)
20.목사(하나님의 백성을 돌봄)
21.독신, 금욕(고전7:7절)
22.자발적 빈곤(고전13:3절)
23.순교(고전13;3절)
24.선교(엡3:6-8절)
25.후한 대접(벧전4:9절)
성경에 없는 은사
글 쓰는 은사
선교하는 은사
匠人의 은사
26.중보기도의 은사
27.구출(귀신축출)의 은사
28.예배 인도의 은사
3.오직 성령으로 신앙생활 하고, 삶을 살아 가는 신자가 되어야 한다.
성령충만함은 절대 식으면 아니된다. 이제는 능력으로 나아가야 하며, 능력으로 사역해야 한다. 기도와 말씀에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충만해야 한다.
메마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신호이다. 끊임없이 성령님께 물으라. 원인을 제거하고 충만한 성령의 기름부으심 하에 움직여라.
깊은 말씀 묵상,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골방기도, 영적 독서, 찬송의 삶, 전도의 삶, 헌신 봉사의 삶 등이 매일 있어야 영적 삶이 유지되며, 성령 동행이 가능해진다.
나>.성령세례
(행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세례의 전문가란 그에게 성령님이 나타나시는 사람을 말한다. 성령의 나타남을 주목할 때, 중요한 질문 2가지가 있다.
성령님은 누구에게 나타나시는가?
두 가지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 두 잣대를 대면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1.예수님의 경우 성령세례는 어떻게 나타나셨는가?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태어나시고, 성령세례 받으시고, 성령이 임하신 후에 사역을 시작하셨다.
온통 성령 자체이신 예수님에 임한 성령 역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진정한 신앙생활과 사역을 위해서는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성령세례 이후에 놀라운 공생애를 비로소 시작하신 것이다. 성령세례 이전의 30년은 그냥 한 인간으로 묻혀 있다.
요 1장에는 예수님이 말씀이시며, 창조에 하나님과 동역하신 분이시다. 창조주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성령세례 받으신 이유는 모든 사역자들이 성령세례 받고 일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다.
너는 성령세례도 받지 아니하고, 신앙생활하고, 사역에 나선 자가 아니냐?
다 소용없는 일이다.
2.사도들의 경우 성령세례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1>.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3년 반을 살았다. 그러나 성령이 나타나시지 않았다. 그들은 사역의 실패자들이었다. 갈릴리신학대학을 나와도 안된다. 예수님께 직접 3년 반을 배워도 안된다.
성령받기 전에는 사역하지 마!
개척 나가도 안돼!
실패야!
2>.그 다음, 부활하신 주님께 40일을 더 배웠다.
얼마나 대단한가?
그러나 40일 간을 보충수업을 해도 안돼!
3>.그리고 “몇 날”이 지났다.
“성령의 나타남”은 기독교 2,000년 역사의 최대 승부점이다.
성령님이 나타나심은 교회 부흥의 폭발점이다.
모든 목사와 성도는 반드시 자기 자신의 성령세례에 대하여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성령세례를 받아버리면 머리의 예수님 사랑이, 가슴의 예수님 사랑으로 바뀌어 버린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성령세례 받은 자는 비로소 주님이 들어쓰시기 시작한다. 교회는 부흥하게 되고...
행2:14절-베드로가 열 한 사도(使徒)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人)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성령세례 받고 가야 해!
성령세례의 사건이 나에게 일어나야 한다.(행1:5절)
그 날이 바로 성령세례의 날이다.
주여! 부어 주시옵소서.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를 죽인 로마가 거꾸러졌다.
행전11:15절, 고넬료의 가정에 임한 성령세례 -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聖靈)이 저희에게 임(臨)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행전2:38-41절, 초대교회의 폭발 - (38)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悔改)하여 각각(各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洗禮)를 받고, 죄(罪)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聖靈)을 선물(膳物)로 받으리니, (39)이 약속(約束)은 너희와 너희 자녀(子女)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主)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者)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또 여러 말로 확증(確證)하며 권(勸)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悖逆)한 세대(世代)에서 구원(救援)을 받으라 하니, (41)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洗禮)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弟子)의 수(數)가 삼천(三千)이나 더하더라.
오순절 성령세례를 단회적 사건, 지나간 사건이라고 말하는 신학은 오류이다.
성령세례는 계속되는 사건이다. 이것이 성령의 나타남의 관건이다.
성령님은 성령세례를 통하여 나타나신다.
주여! 나에게 성령세례를 주시옵소서.
성령님의 지시에 따라 목회적 사업들을 시행해 나가라. 인생의 문제들을 풀어 나아가라.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최우선적인 일이다.
2004년 3월! 배종부 목사가 성령세례 받은 그 날!
이렇게 울면서 기도드렸다.
“주님! 이제는 출발선에 서야 합니다. 더 이상 물러 설 수도 없고, 물러 설 형편도, 처지도 아닙니다. 저는 마지막 선까지 밀려 나간 자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피할 길도 없습니다. 여기서 죽기를 각오하고, 이제 밀고 나가야 합니다.
나의 탈진한 심정, 무너진 경제와 목회, 새로운 길을 찾음, 환경과 여건 등을 바라봄은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성령의 권능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 보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을 찾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을 걸어 가게 하옵소서. 일단 저로 하여금, 일년에 2회의 세례식에서 10명씩, 20명씩 만이라도 우선 세례를 주게 하옵소서.”
성령의 나타남의 전문가가 되라.
네 삶에 실제로 성령님이 그렇게 주인공으로 역사하셔야 한다.
사생결단하고 성령 충만을 받으라. 나에게서 성령님이 나타나셔야 한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 보혜사, 그리스도의 영, 은혜의 영, 축복의 영이시다.
은혜받아, 충성하라. 은혜받지 못하면 절대 교인은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
은혜받은 다음에라야 성령 충만도 된다. 그러니 은혜받지 못한 집사나 교인들, 식어버린 집사 들에게 결코 실망하거나, 기대하거나, 낙심하지 말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기도하고, 인내하고, 은혜를 주고, 오직 성령님의 나타나심을 구하라.
은혜는 조건없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는 이 은혜를 먹고, 마시며, 산다. 우리는 마땅히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죄인들이다. 알면서도 행치 않는다. 성령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전적으로 그 분 만을 의지하고 나아가라.
우리의 삶은 성경의 삶과 일치하지를 않는다. 과거 사도들이 체험한 그 성령님을 체험하고, 모셔들이고, 내 삶 속에 구현해야 한다.
그 분을 너도 똑같이 모셔라. 시대는 변했으나 그 분은 성경에 나타나신 그대로이다. 모세도, 사도 베드로도, 사도 요한도, 사도 바울도 다 갔으나 이 시대에 빛을 밝히는 소명을 갖고, 내가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이 시대의 하나님의 대안이며, 희망이며, 소망이며, 능력이며, 성령의 대변자이다.
흑인 영성의 대가 케냐의 아더 키퉁가 목사의 안수를 받으려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목사님이 피하여 손을 높이 드니, 안타까운 손길들이 따라간다. 예수님을 따르던 군중들도 저렇게 했으리라.
저토록 갈급해 하는 손길들을 보면서 눈물이, 눈물이 폭포처럼 솟구쳤다. 저 안타까운 손길 들이 구원을 바란다. 은혜를 바란다. 성령님의 권능을 바란다. 얼마나 목회가 안되고, 힘들고, 배가 고프고, 어려울까?
다 나같은 사정이기에 내가 보지 않아도 다 안다.
오호라! 배목사여!
저 안타까운 손길들을 붙들어 주는 큰 목사가 되라.
교회가 뜨거워지려면 온 성도가 오직 성령 충만해야 한다.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 성령세례의 사역과 현장을 즉시 가동하라.
성령의 목사들은 하나같이 열정적이다. 힘있게 설교한다. 원고에 매달리는 법이 없다. 순간 순간의 은혜로 설교한다. 이제 나도 그렇게 한다.
모든 집회와 예배는 성령 집회여야 한다. 성령님이 가장 뜨겁게 임하실 수 있는 그러한 풍토와 분위기, 배경이어야 한다.
성령님이 나타나셔야 한다. 나의 심령과 목회와 삶과 생활 전반에서...
매일 저녁의 <365성령축복대성회>를 뜨거운 기도회, 깊은 성령 세미나 형태로 발전시켜라. 성령의 불도가니가 되게 하라.
늘 성령님이 나타나시는 현장이 되게 하라.
설교 내용은 항상 “성령” 주제일 필요는 없다. 다양하게 골고루 하되, 항상 성령님의 사역이 그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모든 교인들을 챙겨 주일예배에 절대 빠지지 않게 하라.
네게 성령세례의 그 날이 있느냐?
2004년 3월 초의 어느 날!
이전부터 오랫동안 뭔가 툭- 하고 터지려는 느낌을 들더니, 나는 드디어 성령 충만함속으로 들어갔다. 나에게는 예전에 방언받을 때 성령세례가 왔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2004년 3월에 성령 충만과 성령세례속으로 동시에 들어 간 것이다.
이후, 2개월 동안 온전히 성령 충만함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5 - 6월에 식고 말았다. 부산 00 교회에 부임해 가려는 마음으로 간에 바람이 든 이후이다. 성령 충만은 급속도록 깨어져 나가며, 무너졌다.
사람들이 마귀짓을 부추겼다. 무기력, 탈진, 낙심, 좌절이 다시 나의 심령을 깊은 어두움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다시 7월 1일 - 20일에 20일 작정 금식을 하면서 성령 충만이 회복되었다.
이제는 애써 회복한 이 성령 충만함을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 지난 5-6월의 성령 충만함이 식고 난 이후의 탈진과 절망감을 잊지 말라.
나는 이제는 성령 충만함이 없이는 결코 살 수가 없는 사람이다.
성령세례는 지속적으로 사모하고 기다리는 자가 일순간에 받는다. 구원받음, 중생과 성령세례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성령세례 받은 것이 아니다. 성령세례란 성령을 받은 체험적인 사건이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내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있음을 볼 때, 나는 비로소 성령의 사람이 된 것이다. 구원받음, 중생과는 달리, 성령님이 정말 나를 만지고 지나 간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 경험을 뚜렷하게 체험으로 알 수가 있다.
성령세례는 일반 평신도도 어느 누구나 그 충동을 느끼고, 만지고 싶고, 병을 고칠 수 있다. 나는 이제 비로소 종말론 세미나, 성령 세미나, 내적치유 세미나는 다 자신이 있다.
지식으로 아는 것 말고, 직접 경험했느냐가 중요하다.
너도 사도행전을 경험했느냐?
왜 너의 개인적인 성령체험이 교회 부흥으로 이어지지 않느냐?
왜 네게는 성령님이 나타나시지 않느냐?
지금은 그 과도기이다. 이제 교회 부흥으로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기다리라. 열매가 맺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최소한 1-2 년의 시간은 걸린다.
교회 부흥은 성령님을 향한 나의 중심의 진정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중심의 진정이 교회 사랑과 교회 부흥으로 불붙고, 성도의 영혼 사랑과 구령의 열정으로 불붙을 때 교회 부흥은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결코 그냥 있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동안의 나의 탈진, 절망, 낙심, 좌절, 목마름, 갈증, 소망 잃음, 길을 찾음 등이 다 성령님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깊으신 배려였다. 몸부림과 피나는 고통없이 어찌 성령님의 길을 가리?
정말 다 버리고, 포기하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갈 수 있느냐?
아멘. 그렇습니다.
성령세례는 사역을 위한 능력세례이다. 성령님이 비로소 사역자로, 능력자로 인침이다.
성령세례 받으려면 고개 들고, 가장 큰 목소리로 기도하며, 성령의 증거가 오면 즉시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방언은 혀가 부드럽게 꼬이며, 구른다.
불, 진동, 향기, 생수, 환상... 등이 나타난다. 온전히 맡기고, 충만히 성령세례가 임하도록 성령님께 위탁하라.
한국교회에는 성령세례가 임하는 부흥회가 별로 없다. 정말 성령세례가 임하는 부흥사의 집회가 있어야 한다. 나 배종부 목사가 그 현장을 만들 것이다.
내게는 하나님이 주신 “五能福音(오능복음-신유의 복음, 문제 해결의 복음, 축복의 복음, 은혜의 복음, 은사의 복음)”이란 무기가 있다.
“悔心(회심)의 말씀”의 권능이 있다.
중국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사람이 차를 타고 가다가, 성경책을 한 권 던지고 갔다. 온 마을 사람들이 그 성경책을 읽고, 말씀의 은혜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산에 올라 가 두 손 들고 기도하는데 오순절 마가의 성령을 달라고 하니,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졌다. 비를 맞으며 계속 기도하는데, 마침내 방언이 터져 이웃 동리로 번져 가 버렸다.
본인의 마음의 상태가 문제이다.
갈멜산의 엘리야의 기도는 “850개의 칼을 맞고 죽느냐,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죽이느냐?”의 전무후무한 영적 대결이었다. 사생결단의 대결이며, 물러설 수 없는 영적 대결이었다.
“성령세례 안받아도 나는 목회 잘 할 수 있다.”는 말은 “나는 성령없이도 목회를 잘 할 수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어리석은 교만의 말을 버려야 한다.
“성령”이란 단어가 항상 그 입과 생각에서 떠나지 않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성도를 죽이는 영적 살인자가 목사들이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성령을 모르고, 성령 충만함을 입지 않은 목사는 성도들을 영적 죽음의 구덩이로 몰아가는 소경들이요, 우맹이요, 영적 살인자들이다.
행전11:10절-고넬료의 가정이 성령세례를 받았다. 성령세례는 계속되는 사건이다. 예수님의 속죄의 역사와 성령세례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바로 연결된다.
고넬료의 가정의 경우, 속죄의 원리를 말씀으로 배우는 동시에, 바로 성령님이 성령세례로 임하셨다. 행11:15절에,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신지라.” 하셨다.
루터는 말하기를, “주님이 오실 때까지 종교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오직 성경말씀으로 개혁하라.”했다.
너에게도 성령의 불이 떨어져야 한다. 나와 나의 교회는 계속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고넬료의 가정에 대한 베드로의 환상은 “더러운 것들을 잡아먹으라.”였다.
복음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잡아먹어야 한다. 오순절 사건이 없는 목사는 자기 교인에게 잡아먹힌다. 장로에게 잡아먹힌다. 교인과 장로를 다스릴 능력이 없다. 결국 장로와 교인들에게 쫓겨간다.
시간만 있으면 성령님 앞에 무릎을 꿇으라. 아니 모든 시간을 그 분을 위하여 예비하라. 너의 속에서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음성과 감동에 예민하여라.
성령으로 구원받고 거듭나는 역사와 성령세례의 역사는 전혀 다르다. 사역을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 한 시대를 풍비한 사역자들은 반드시 “성령세례의 그 날”이 있다.
주여! 제게 “성령세례의 그 날”을 주시옵소서.
“그 날”이 분명해야 한다.
“그 날”이 있는 사람은 그 체험이 분명하다.
“그 날”이 없는 사람은 목회하기 힘들다. 적어도 이 목회 장사는 안된다. 아는 것 말고, 내가 직접 체험한 “그 날”이 분명하게 있어야 한다.
무디는 성령님이 너무 강하게 누르시니 죽을 것 같아, “주님! 제발 그만 해 주세요.”라고 부르짖었다.
주여! 성령의 나타남을 주시옵소서. 아멘.
어느 목사는 “오늘 밤에 성령님이 찾아 오십니다.” 설교 중에 감동으로 말했더니, 기다린 사람들이 다 성령을 받고, 자면서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 방언은 옆 사람으로, 옆 사람으로 계속 계속 번져갔다.
기도와 연결되는 잠을 많이 자라.
기도하다가 잠들어라.
“그 날”이 있는 사람은 말 한마디에도 그 분이 밀고 나오신다.
알 수 있다.
“그 날”을 경험한 사람 만이 “그 날”을 안다.
“그 날”이후로부터 그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나타나신다.
드디어 배종부 목사의 목회 현장에도 그 분이 나타나시기 시작했다. 너의 예배 인도, 찬송 인도, 설교 인도에 그 분이 간단없이 나타나시게 하라.
계속 계속 나아가라. 충만 충만하게 나아가라. 기도와 말씀에 힘쓰고, 또 힘쓰라.
성령 세례가 임하는 경우:
1>.말씀을 듣는 중에 - 고넬료 가정의 경우
2>.안수받을 때 - 사마리아 교회와 에베소 교회의 경우
3>.기도할 때 -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설교 들을 때 얼마나 충만하게 듣는가?
000 목사는 설교를 들을 때, 방언으로 화답을 다 했다. 내가 충만해지면 轉移(전이)가 일어난다. 000 목사는 고등학생 때 교회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자기 앞의 여집사님들이 대화중에 그냥 방언이 터져버렸다. 교육 전도사 때 한 사람만 안수해도 줄줄이 방언이 터져버렸다.
권능이 충만해져야지!
양수리 기도원에서 000 목사의 설교 도중에 찬양을 하는데 찬양이 충만해지니, 귀신들린 여자 둘이 나왔다. 극심하게 이상한 몸짓을 하다가, 쓰러져버렸다. 귀신 들림인지, 성령충만인지 처음에는 헷갈렸다.
“한 번 손 얹어 분별해 봤으면?”했다.
저렇게 음란한데...
성령님의 깊은 세계를 내가 어찌 알리?
더 배우고, 분별하라.
나중에 마치고 통성기도 시간에 분별해 보니, 여자의 머리가 큰 뱀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발악을 하고 있었다. 내가 강력하게 4-5회 축사하니, 여자가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경직되며 굳어 버렸다. 뱀이 나가 성령의 검에 4-5회 찔려 지옥 불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귀신들이 다 나간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보니, 여전히 마귀들이 들어있었다. 한 사람속의 귀신들이 한 두 마리가 아니다. 귀신들의 집이다.
그러더니 탈진하여 강대상을 계속 굴러 다니기만 했다. 귀신은 한 번 자리잡으면 쉽게 나기지 않는다.
뜨겁게 합심하여 기도할 때, 성령세례가 가장 잘 임하신다.
행전1:14절처럼,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하기에 힘쓰니라.”하면 성령세례가 반드시 터진다. 여기 “전혀”란 단어는 강도의 칼을 빼앗으려는 격투를 말한다. 진정으로, 전심으로 몸부림치며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세례 받기 힘들다.
첫 날 마지막 통성기도 중에, 나의 더러운 죄악들이 내게서 떨어져 나와, 내 앞에 펼쳐진 지옥불 구덩이로 막 빨려 들어가는 환상을 보았다.
회개기도하는 내가 보니, 그 마지막 죄악의 片鱗(편린)들이 떨어져 지옥 불구덩이로 들어간 이후, 지옥불이 확- 타오르고 사라졌다. 내 몸에 덕지덕지 붙었던 모든 죄악의 찌꺼기들이 다 불타버렸다. 이제는 죄악의 일만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오싹 쳐진다.
주님!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능력받은 이후에 내가 축사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환상을 너무나 비일비재하게 본다.
다>.왜 성령신앙인가?
행전1:4-9절
왜 성령, 성령 하는가?
왜 성령신앙의 길이 아니면 안되는가?
행1:4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사역 전체가 성령의 일이기 때문이다.
(마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 12:18)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눅 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 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눅 4:14)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 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2.성령으로 영계가 열리며, 귀신들이 나가기 때문이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3.위대한 주의 종들은 다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 들이기 때문이다.
(눅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눅 2: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눅 2: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 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행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행 11: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4.성령으로가 아니면 믿음도,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5.우리의 신앙과 사역과 교회 섬김과 전도도 다 성령의 일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아니고는, 성령을 훼방하고는 신앙생활도, 주의 일을 할 수 없으며, 성령으로 비로소 영적 사역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며, 알며, 가르칠 수 있으며... 모든 것이 다 성령의 도움이 아니면 아니되기 때문이다.
(마 10: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막 13: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눅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막 3:29)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눅 12: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행1:4) 사도(使徒)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約束)하신 것을 기다리라. (5)요한은 물로 세례(洗禮)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聖靈)으로 세례(洗禮)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딤후 1: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6.성령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성령이 없는 자는 곧 진정한 신앙이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요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 3: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요 7: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행 8: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행 8: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행 8: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 19: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행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성령으로 은사와 권능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행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8.성령 충만해야 진정한 주님의 충성된 헌신적인 일군이 되기 때문이다.
(행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행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행 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행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 13: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행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9.인간의 계획과 경영은 모두 성령을 거스리기 때문에, 오직 성령으로만 나아 가야 한다.
(행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갈5: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聖靈)을 좇아 행(行)하라. 그리하면 육체(肉體)의 욕심(慾心)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육체(肉體)의 소욕(所慾)은 성령(聖靈)을 거스리고, 성령(聖靈)의 소욕(所慾)은 육체(肉體)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對敵)함으로 너희의 원(願)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너희가 만일(萬一) 성령(聖靈)의 인도(引導)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律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10.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지시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과 음성을 그대로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14:26) 보혜사(保惠師),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聖靈)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행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행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 가,
(행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계 2: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 17: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계 21: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 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 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성령과 성령 신앙 만이 신앙의 핵심 중에 핵심이며, 실제적인 간증과 증거와 전도도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행 15: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유 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고전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12.성령으로 구원과 영생, 은사와 권능, 모든 하늘의 것들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롬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고전 12: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3.범사에 성령이 친히 도우시기 때문이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빌 1:19)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약 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14.성령으로만 진정한 주의 일군이 되기 때문이다.
(롬 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 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롬 15: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롬 15: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 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15.성령님 만이 하나님의 깊은 것, 신령한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16.우리가 성령의 것이며, 성령 안에 있기 때문이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후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엡 2: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 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엡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요일 4: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7.오직 성령으로 행하고, 육체로 행하면 아니되기 때문이다.
(갈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 4: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갈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18.성령을 소멸하거나 모독하면 아니되기 때문이다.
(살전 5: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히 10: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벧후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요일 5:7)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요일 5:8)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