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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삶의 글

가슴의 글들

작성자배종부 목사|작성시간25.11.13|조회수97 목록 댓글 0

♥🌐🔥👭💖🍅🍂💕 '가슴'의 글들 1 (28P)

출애굽기 28:29 아론이 성소에 들어 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
30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이 여호와 앞에 들어 갈 때에
그의 가슴에 붙이게 하라.
아론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흉패를 항상 그의 가슴에 붙일지니라.

모든 신자는 항상 가슴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가슴으로 자녀들을 품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늘 가슴에 품고 살고, 주님 앞에서 점검해야 한다.
기도 골방에서, 늘 내 가슴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분별해야 한다.
항상 주님 앞에 나의 진정한 가슴으로 서 있어야 한다.


🌐 가슴에 남는 좋은 느낌

소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에게는 소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의 한 가지 소망은
내 마음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는 것입니다.

높아지기 보다는 낮아질 때
마음이 따뜻해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날마다
마음이 낮아지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나에게는 소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의 한 가지 소망은 내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해지는 것입니다.

생각이 복잡할 때보다 단순해질 때
마음이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날마다 생각이 단순해지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나에게는 소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의 한 가지 소망은
내 마음이 부유해지기보다는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유해질 때보다 가난해질 때
마음이 윤택해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날마다 마음을 비워내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나에게는 소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의 한 가지 소망은
나의 자랑할 것을 찾기보다는
나의 부끄러움을 찾는 것입니다.

나를 자랑하기 보다는
나를 부끄러워할 때
내 삶이 아름다워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날마다 내 부끄러움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나에게는 소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의 한 가지 소망은 기쁨보다
슬픔을 더 사랑할 줄 아는 것입니다.

기쁨은 즐거움만 주지만
슬픔은 나를 성숙시키기 때문입니다.

나는 슬픔이 올 때
그것을 내 인생의 성숙의 기회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나에게는 소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의 한 가지 소망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만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랑의 기도보다
용서의 기도를 먼저 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 정용철
가슴에 남는 좋은 느낌 하나 중에서 -



출애굽기 29:26
너는 아론의 위임식 숫양의 가슴을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으라. 이것이 네 분깃이니라. 27 너는 그 흔든 요제물 곧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위임식 숫양의 가슴과 넓적다리를 거룩하게 하라.


🌐 ♡ 가슴 설레는 나의 성령의 비전 My heart beats the vision of the Holy Spirit ♡

'성령의군대'를 이끄는 '새성교회' 배종부 목사가 인도하는 '성령 컨퍼런스'는 대한민국의 전무후무한 성령의 대축제가 될 것이다.
'성령사관학교'는 일당천의 위대한 성령의 殉將(순장)들과 일당백의 탁월한 성령의 고급 장교들을 길러내는 성령의 산실이 될 것이다.
배종부 목사의 한국교회를 향한 부흥 사역은 날이 갈수록 가열찬 성령의 불을 내뿜을 것이다. 배종부 목사의 '성령의군대 기도원' 집회는 인산인해를 이루며, 폭발적으로 부흥하여 일어 설 것이다.
너는 오직 성령의 열매와 능력과 그 은사를 구할지어다.

사랑하는 목사님, 전도사님, 사모님 여러분!
장로 안수집사 권사 집사 중요 직분자 여러분!
모든 남녀 성도 여러분!
배종부 목사가 인도하는 '성령의군대' 운동과 '성령 컨퍼런스'와 '성령사관학교'가 활성화되고, 한국교회를 향한 힘있는 부흥사역과 막힘이 없는 하나님의 영권, 인권, 물권을 위해 함께 동참하시고, 중보기도해 주십시오.
'새성교회와 성령의군대'가 크게 부흥하여, 한국교회와 선교한국의 위상을 높이 들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 An army of the Holy Spirit led by Saesung Church Pastor Jong Boo Bae, will be the great festival of the Holy Spirit in Korea.
The Holy Spirit Academy will nurture one-thousand-one generals of the great Holy Spirit and one-half of the superior Holy Spirit officers.
The revival ministry of the Rev. Bae Jung-bae for the Korean church will spark a flaming fire.
His new congregation will be made up A lot of people and will rise up in explosive revival.
Let us seek the fruit and power of the Holy Spirit and its gifts.

A loving pastor!
Gentlemen!
Lady!
Pray for the revival of the Holy Spirit, the Holy Spirit Conference, the Holy Spiritual Academy, and the power of revival ministry for the Korean church and the right of God without clogging.
Pray that the new church will revive greatly and elevate the Korean church and mission Korea.



레위기 7:30
여호와의 화제물은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져올지니, 곧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31 그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 것이며,


🌐 가슴으로 울자

신난희 님 / 동화작가

얼마 전 우리 앞집에 특별한 아주머니가 새로 이사왔습니다. 언제나 멋진 모자에 화사한 스카프를 두르고 장갑까지 끼고 다니는 아주머니입니다. 이웃과의 왕래도 없고 가끔씩 만나도 눈을 아래로 깔고 혼자 다니는 아주머니의 소문이 아파트 안에 무성했습니다.

"무슨 무슨 극단의 연극 배우라더라."
"어디 어디 밤무대에 선대."
"손에 물 한 방물도 안묻히고 여왕처럼 산다나 봐."
"모자와 스카프만 한 방 가득하다지 뭐야, 글쎄."

그 아주머니가 실제로 누구와 마찰하거나 피해를 준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도 날마다 곱지 않은 시선만 늘어갔고, 같은 통로에 사는 아주머니들은 차 모임이 있어도 그 아주머니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였을까? 나도 괜히 그 아주머니가 거북하고 싫었습니다.

어느 날 도서관에 갔다 오다가 문 앞을 쓸고 있는 아주머니와 마주쳤지만, 나는 피하듯 얼른 집으로 들어 와 버렸습니다.

"엄마 엄마, 그 아줌마 정말 웃겨요. 배우면 다 저렇게 티를 내야 하는 건가. 현관 앞을 쓰는데도 모자를 썼더라구요. 너무 웃겨요. 그치요?"

함께 웃어 줄 엄마의 맞장구를 기다리는데, 엄마의 얼굴이 다른 때 같지 않았습니다.

"그 아주머니 연극 배우 아니다!"

"그으럼?"

"불이 나서 큰 화상을 입었다더구나. 얼굴은 성형수술을 몇 번이나 했대. 손가락은 살점이 많이 떨어져 나갔고, 머리 위쪽은 아예 머리카락도 자라지 않는다더라."

"네에? 정말이요?"

"낮에 은행에 갔다가 앞집 아주머니를 만났어. 돈을 세는 데도 장갑을 끼고 쩔쩔 매기에 도와 주었다. 같이 돌아오게 되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어렵게 대답해 주더구나. 모습이 너무 흉해서 외출이 두렵대. 한 번 나가려면 너무나 신경을 써서 식은 땀까지 쏟는다더라. 얼마나 힘들고 외로울까? 여름엔 또 얼마나 괴로울까? 소문에 눈이 멀면 강아지도 여우로 보인다더니, 공연히 가엾은 사람을..."

강아지와 여우...

나는 갑자기 정미 생각이 났습니다. 눈동자 깊숙이까지 슬픔이 고여 휑해 보이던 정미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콱 막혔습니다. 하루 종일 말없이 앉아 있다가 가끔 슬며시 교실 밖으로 나가곤 하던 정미.

말끔한 인상이 깍쟁이처럼 보여 왠지 친하기 힘들 것 같았던 정미는 2학기에 들어 와 같은 실험조가 되면서 속을 알게 된 아이입니다. 나직 나직한 목소리에 가만 가만 웃는 정미는 잔잔하지만 속이 깊었습니다.

내가 "가슴이 작아 걱정이야" 라고 은밀한 고민을 털어놓았을 땐, "가슴과 머리는 반비례한다"며 나를 기분 좋게 추켜 주었고, 내가 정미보다 토끼 꼬리 만큼 더 성적이 좋았는데도 공부 잘 하는 친구가 있어 든든하다고 겸손해 했습니다.

정미와 나는 점점 가까워져 갔습니다. 둘이 똑같이 영어 선생님을 짝사랑하고 있다는 유치한 사실조차 우리를 이어 주는 끈이 되어, 영어 시간이면 둘이서 남 모르게 눈길을 주고 받으며 쿡쿡거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뜻하지 않은 일로 정미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정미 어머니가 연거푸 몇 번 학교에 다녀 가신 뒤, 선생님들의 관심이 유난히 정미에게 쏠리자, 몇몇 친구들이 수군거리며 공공연히 정미를 따돌렸습니다. 우연히 영어 선생님이 정미의 머리를 쓰다듬고 지나는 것을 보았던 나 역시 한 마디 말도 없이 정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방학하던 날 정미는 머뭇 머뭇 무언가 나에게 말하려 했지만, 나는 모른 척 지나가 버렸습니다.

앞집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정미 어머니가 학교에 다녀 가신 즈음부터 그 애의 교복주머니에 매일 들어 있던 자그마하고 네모난 약 봉투가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그것으로 인해 선생님들의 사랑과 관심이 정미에게 더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영어 선생님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아니면 내가 정미같은 따돌이가 아니라는 다행스러움에 급급해, 눈먼 소문에 묻혔을 정미의 진심을 한 번도 헤아리지 않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자책이 막 밀려 왔습니다.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정미의 말간 얼굴이 사무치게 보고 싶어졌습니다.

"눈이 와. 올해는 눈이 참 많이 온다. 하늘도 덮어 줘야 할 게 많은 걸 아나 봐. 저 눈들이 가슴으로 내리면 상처들이 덮어질 수 있을까? 정미야! 네 이름 부르기가 미안해. 용서해 줘. 이번 겨울엔 우리 서로의 가슴으로 눈을 내리자. 포근하게 쌓인 사랑 밑에서 상처마다 부드럽고 하얀 새살이 돋아나도록."

나는 수첩을 꺼내 들었습니다.
정미의 이름을 찾는데 가슴이 떨렸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

"은희구나. 은희 맞지? 눈 보면서 네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고 싶었던 말들이 눈이 되어 가슴으로 하얗게 쌓여 갔습니다.



레위기 7:34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가져다가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


🌐 빌 게이츠의 가슴 뜨끔한 명언

1.태어나서 가난한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죽을 때도 가난한 건 당신의 잘못이다.

2.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난 건 죄가 아니지만, 당신의 가정이 화목하지 않은 건 당신의 잘못이다.

3.실수는 누구나 한번 쯤, 아니 여러 번, 수 백번, 수 천번 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그건 못난 사람이다.

4.인생은 등산과도 같다. 정상에 올라서야만 산 아래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듯이, 노력없이는 정상에 이를 수 없다.

5.때론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다지만, 노력조차 안해 보고 정상에 오를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폐인이다.

6.가는 말을 곱게 했다고, 오는 말도 곱기를 바라지 말라. 다른 사람이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지도 말라. 꾸준히 먼저 배려하고, 먼저 이해하라.

7.주는 만큼 받아야 한다고 생각지 말라.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라.

8.시작도 하기 전에 결과를 생각하지 말라.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생각하지 말라.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도 말라.

9.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갚을 땐 갚고 받을 땐 받아라.

10.모든 걸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리라. 나없인 못산다는 생각 또한 버려라. 내가 사라져도 이 세상은 잘 돌아간다.


레위기 8:29
이에 모세가 그 가슴을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았으니, 이는 위임식에서 잡은 숫양 중 모세의 몫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 분당남서울교회 최요한 목사 - ‘뜨거운 가슴 하나로...’ (4P)

1992년 1월 12일, 최요한 목사가 수명의 교우와 함께 분당구 서현동 시범 한신상가 B동 208호에서 예배를 드린지 만 5년, 1997년 1월 말 현재 총재적 2,400여 명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있는 분당 남서울교회를 방문했다.
지난 해 개척교회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들을 나누려고 목회자 세미나를 열었을 때 400명을 예상하고 진행했다가 1,200여명의 목회자가 몰려 일부는 되돌아 가야만 했던 바로 그 기적의 현장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최요한 목사, 그는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별 어려움 없이 유년시절을 지냈다. 3대째 뿌리 깊은 신앙의 가정에서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라면 보수적인 신앙분위기 속에서 영적으로는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영적 전환점은 12년 동안 고통을 당하던 두통을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시절에 간절히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히 고침을 받으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총신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사모와 함께 깊은 산중에 들어 가 생명을 걸고 장기금식에 들어가 기도하던 중, 깊은 영적인 체험을 하였다고 한다.
이 때의 경험이 지금의 영성목회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때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고 서원하였던 것이 모두 응답되었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교회를 방문했더니, 마침 97년도 신년 제직세미나가 열리고 있었다. 외부 강사없이 담임목사 자신이 인도하는 집회였지만, 월요일 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임원, 제직들이 나와 훈련을 받고 있었다.

세미나를 마친 후 최목사와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무엇보다 먼저 한국교회의 성장둔화요인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글쎄요, 저는 학자가 아니라서 깊은 것은 잘 모릅니다만, 일선에서 느낀 점은 강단권의 약화가 아닐까 합니다. 목회의 생명은 강단에서 외쳐지는 말씀에 있는데, 말씀에서 복음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안타갑고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삶에 지치고, 죄에 넘어지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그들을 주님의 보혈로 씻어주고, 깨끗케 해 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교회에 오면 심령이 자유케 되거나 새로운 용기가 생기지 않아요. 그냥 더 주눅 들게 되는 것이지요. 제 자신이 그것을 느낍니다. 복음의 말씀이 온전히 잘 외쳐졌다 싶으면 성도들의 표정이 기쁨으로 넘치고, 반면에 제 자신의 메시지가 시원찮다 싶은 날에는 성도들도 영 기력이 나지 않는 것 같고, 또 저도 참 괴롭습니다.
지식이 아니라 심령에서 나오는 설교가 될 때, 그래서 성도들의 심령 속에 파고 들어 갈 때, 말씀의 능력이 개인의 삶에서 나타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깡마른 체구, 그렇지만 다부진 모습에서 어디서 저런 영성이 솟아날까 싶을 정도로 최목사는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했다.

필자는 다시 한번 물어본다. 그러면 정말 생명력 있는 메시지는 어떤 메시지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자, 이렇게 답했다.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 설교 뿐 아니라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아! 저분의 설교는 독서에서 나오는구나.
아! 저분의 설교는 무릎에서 나오는구나 하고 느껴집니다.
아마 다른 목사님이 제 설교을 들으면 무엇이라고 평가할까요?
저는 제 설교가 무릎에서 나오길 원합니다. 무릎 꿇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영감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제 자신이 주님 앞에서 깨어지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새로워질 때, 참 죄인의 괴수라도 용서하시는 그 분의 사랑을 느낄 때 그 메시지가 어찌 사람의 심령을 흔들지 않겠으며, 또 붙잡아 주지 않겠습니까?
본질 문제라고 봅니다. 메시지는 영혼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강단권이 회복되면 교회는 부흥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와 교회들이 프로그램을 구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해마다 철따라 주기적으로 프로그램을 시행해 본다.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들이 교회에 소개되고, 또 사라져 갔는가?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는 사이에 한국교회는 메시지가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현대인들의 세속적인 가치관에 조금씩 물들어 가는 교인들에게 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의 선포가 있어야 함에도, 시류를 따라가는 적당한 말씀들이 얼마나 맥없이 강단에서 외쳐지는가?

필자는 차세대 목회자들과 새로운 목사 후보생들에게 강단권의 회복에 대하여 충고할 말씀을 부탁했다.

"물론 지식과 지성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기독교 맹신주의나 광신주의로 흐르게 됩니다. 그러나 설교나 목회는 지식이나 책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가 되기 전에, 교회를 이끄는 리더가 되기 전에, 인생이 무엇일까 하는 깊은 고뇌를 겪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도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들을 위로하며 가슴에 품을 줄 아는 것입니다. 가슴이 넓고 뜨거운데 어떻게 사람이 모여들지 않겠습니까? 실패한 사람을 이해하고 격려할 수 있는 사람은 실패해 본 사람 뿐입니다. 고난과 고뇌에 찬 인생의 광야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한 발 한 발 내딛는 사람은 메시지가 다릅니다.
저는 그런 목회자들, 그리고 후배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목사 자신도 역시 깊은 고뇌와 고난의 길이 있었다. 개척도 해 보았고, 또 만성두통으로 좌절도 해 보았고, 또 농촌목회를 통하여 인내의 시간도 겪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듯 했다. 고난이 올 때 그것을 훈련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최목사는 후배들에게 고난을 무서워하지 말고, '인생학교'요 '신앙교육'라고 생각하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만 5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2,400여 명이라는 경이적인 성장을 하게 된 남서울교회의 부흥과 성공 요인에 대하여 질문을 했다.

"글쎄요. 과연 목회에 성공이라는 말이 어울리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릇에 따라 사람을 쓰신다고 했으니까, 작은 교회라도 최선을 다하고, 그 곳에서 복음으로 변화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성공한 것이지요. 큰 교회가 그냥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위에 더 많은 작은 교회들이 있기 때문에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교회성장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고 보아야겠지요.
저도 막상 이 곳에 와서 교회 개척을 준비하는데, 수중에 돈이라고 오백만원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백만원을 대출받았지요. 그 돈으로 겨우 계약금을 치룰 수 있었는데, 어느 날 집사님 한 분이 옛날에 저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개척하는데 보탬이 되라고 1억을 빌려 주셨어요. 그래서 상가를 빌렸는데, 이게 또 하나님의 기적이었어요. 5년 전만 해도 분당지역엔 돈이 있어도 상가를 빌릴 수가 없을 만큼 절대적인 수가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상가를 분양 받은 목사님 한 분이 싼값에 상가를 임대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하고 믿음으로 시작했더니, 여기 저기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현재의 성전을 얻게 된 배경입니다. 그 동안 다섯차례나 이사를 했는데 교인이 많아서 더 이상 상가건물에서는 회집할 수 없는 규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성전 건축을 준비하고 있는데, 성동철 목사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 분이 유치원 부지를 분양받아 교회당을 크게 건축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은퇴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와 연합하기로 하고, 젊은 목사인 저를 위해서 교회를 물려주고 은퇴하신 것입니다.
연건평 300평이 넘는 성전을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된 것입니다. 연합을 했지만 성도들도 다 한마음으로 교회를 섬기고 저희들은 이렇게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모두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구구한 인간의 말이 필요 없는 것이지요.
성전 건축하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비됩니까?
그런데 저는 전혀 고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것도 제가 젊어서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덤으로 주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정말 100배의 축복을 하시는 분입니다.
제가 개척 초기에 돈을 한 3,000만원 빌려 주었다가 못 받은 일이 있는데, 지금 이 건물이 꼭 30억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꼭 100배이지요"(웃음).

지금까지 교회 성장을 경이적으로 이루어 가는 많은 목사님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 분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적을 믿는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분당 남서울교회를 이끌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시는 법이다.
분당 남서울교회의목회 방향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희 교회는 분명한 세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첫째, 가르치는 교회입니다.
철저한 그리스도 중심, 말씀 중심으로 가르치는 목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 성도들의 신앙이 성숙될 때 헌신이 있을 수 있지요.

둘째,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교회 재정의 50%를 선교에 투자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 15개 지역에 단독, 혹은 파송 선교사를 보내고 있고, 앞으로 전 세계 지역 곳곳에 선교사를 보낼 생각입니다.

셋째, 치유가 있는 교회입니다.
오늘날 산업화 사회의 다양한 스트레스 속에서 원인 모를 질병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적 존재인 인간의 질병 문제는 말씀과 기도를 통한 심령 치료만이 온전히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전인 구원입니다. 치유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역시 분명하고도 확고한 철학이 오늘의 분당 남서울교회를 있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필자는 교회와 목사의 비젼을 물어 보았다.
목사님의 대답은 "첫째, 교회적으로는 더욱 교육에 치중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인들의 영성을 깨우기 위해 강단권을 강화하고 기도훈련을 많이 시킬 생각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지역사회의 등대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둘째, 한국교회를 위해서는 목회자들의 설교 연구와 강단권 회복을 위해 헌신할 생각입니다. 연구와 문서 출판,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최목사와의 대담을 마치고 교회를 나서니 벌써 밤 11시가 넘었다.
택시를 타고 가겠다는 필자를 한사코 말리며 자신의 차로 배웅해 주겠다는 배려를 뿌리치지 못해서 주차장 입구에서 기다리는데, 최목사가 몰고 나온 승용차는 96년형 프라이드 베타였다.
오늘 따라 밤거리가 그렇게 깨끗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 최요한 목사님과 나 배종부 목사와의 인연

까마득한 그 옛날, 최요한 목사님은 나의 처부모인 장인, 장모가 섬겼던 경남 기장군 철마면 이곡리 이곡교회의 담임전도사였었다.
당시에도 늘 장기금식을 하곤 했었다.
한 마디로 고난의 목회 현장속에서, 오직 기도와 성령과 영성으로만 빚어진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었었다.
당시에 부산에 살던 우리 집에 오시면 금식이 31일째, 18일째... 이런 식이었다. 접대하고 싶어도 우유 한 컵도 드실 수 없었다.
그리고 대구에서 천막교회를 몇년 간 하신다는 소식을 들리고, 서울로 가시고, 성남에서 교회를 인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의 부지가 그린벨트로 묶인 땅인데 기도 응답 후에 구입했더니, 해제가 되어 금싸라기 땅이 되었단다.

과거, 안성 공도교회에 부임 오후설교 선을 보러 가는 주일에, 시간이 애매하여 주일 오전에 분당 <남서울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었다.
그 날 오전, 내 차 앞에서 5중 이상 추돌사고가 나는데,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 화물차가 앞의 승용차를 살짝 건드리니 바로 전복, 이어지는 이중 삼중 오중 충돌... 급정거한 나의 차가 겨우 충돌을 면했었다.

최요한 목사님을 생각하며, 원숙한 나이가 되어가는 이 시간대에, 나의 삶으로 고백하는 말 한 마디!
하나님은 우리 행한대로 갚으신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하나님은 가장 정확하시다. 아멘.



레위기 9:20
그 기름을 가슴들 위에 놓으매, 아론이 그 기름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21 가슴들과 오른쪽 뒷다리를 그가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드니, 모세가 명령한 것과 같았더라.


🌐 가슴 아픈 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행복 (9P)

강준민 지음

두란노/2001년 9월/133쪽/6,000원

행복은 생각에 있습니다.
생각하는 즐거움에 있습니다.
한 맺힌 자신을 비우고,
그 안을 말씀으로 채우면, 인생은 달라집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세상이 변화될 때
인생은 새롭게 태어납니다.

▣ 저자 강준민
서울 신학대학 졸업(B.A.) 후 아주사 신학대학원(Amusa Pacific University, M.A./M. Div.), 탈봇 신학교(Talbot Theological Seminary, Th.M.)를 마쳤다. KOSTA(국제 복음주의 학생 연합회)와 미주 두란노 서원의 큐티 세미나 강사로 섬기며, 월드 미션 신학교에서 기독교의 영성과 목회 지도력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또한 미국 LA 소재 로고스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뿌리 깊은 영성』, 『뿌리 깊은 영성으로 세워지는 교회』, 『묵상과 영적 성숙』, 『독서와 영적 성숙』, 『자아 발견과 영적 성숙』,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꿈꾸는 자가 알아야 할 21가지 믿음의 법칙』, 『사랑과 열정으로 쓴 목회 서신』, 『잡초 같은 인생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는 성경 암송』이 있고, 역서로는 존 맥스웰의 『당신 안에 잠재된 리더십을 키우라』가 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가슴 아픈 것들은 다 소리를 냅니다. 가슴 아픈 사람들은 소리를 냅니다. 우리 주위에는 가슴 아픈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가슴 아픈 사람이요, 이 글을 읽기 시작하는 당신도 가슴 아픈 사람입니다.
우리 민족의 가슴에는 한이 맺혀 있습니다. 한이 맺힌 사람들의 가슴에는 소리가 있습니다. 울먹이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가 있습니다. 소리를 내지 못하고 숨죽이며 우는 소리가 있습니다. 한 맺힌 소리가 슬픈 가슴에 파묻혀 더 깊은 한이 되어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한을 풀 수 있는 길은 한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한을 품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임을 이해해 주는 것입니다. 한을 품고 사는 사람들을 따뜻한 품에 안아 주어야 합니다. 흐느끼는 그들과 함께 흐느껴야 합니다.

한을 풀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원한 맺힌 과부처럼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한을 풀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것입니다. 영혼의 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부치지 않을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마음에 맺힌 한을 토로하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자신의 한을 시에 담은 다윗처럼, 포로로 끌려가서 받은 고통을 노래에 담은 유대인들처럼 글을 쓰는 것입니다.
글로 자신의 한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을 풀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노래하는 것입니다. 노래하면 한이, 품고 있는 독이 제거됩니다. 한이 노래가 되면, 한은 승화되어 하늘을 날게 됩니다. 한이 노래가 되면, 춤을 추게 됩니다. 춤을 추면, 자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한이 사라지고, 환희의 춤만 남게 됩니다.

행복은 생각에 있습니다. 생각하는 즐거움에 있습니다. 한 맺힌 사건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해석하면 행복해집니다. 한 맺힌 자신을 비우고, 그 안을 말씀으로 채우면 인생은 달라집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세상이 변화될 때 인생은 새롭게 태어납니다. 이 세상은 새롭게 태어납니다.


▣ 차 례

서문
1. 작은 것이 아름답다/ 2. 작은 관심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3. 좋은 생각을 품으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4. 잠시 멈추어 방향을 점검하라/ 5. 행복의 조건을 선택하라/ 6. 마음의 온도를 조절하라/ 7.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 8. 침묵하는 지혜/ 9.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10. 빈손을 가진 사람의 행복/ 11. 연약한 자가 누리는 행복/ 12. 상처받은 사람의 행복/ 13.무대 뒤에 선 영웅의 행복/ 14. 낮은 데로 임한 사람의 행복/ 15. 못생긴 사람이 누리는 행복/ 16.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린 사람의 행복/ 17. 가슴 아픈 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행복/ 18. 어두운 밤을 통과한 사람의 행복/ 19. 버림받은 사람이 누리는 행복/ 20.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누리는 행복/ 21. 침체를 통과한 사람의 행복/ 22. 로뎀 나무 아래 쓰러진 사람의 행복/ 23.벼랑 끈에 서 본 사람의 행복/ 24. 검은 보자기에 싸인 행복/ 25. 촌사람이 누리는 행복/ 26. 노년에도 꿈꾸는 사람의 행복/ 27. 모험하는 인생의 행복/ 28. 소원을 갖고 사는 사람의 행복/ 29. 겨울을 껴안은 사람의 행복/ 30. 자신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의 행복/ 31. 그늘마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 32. 고상한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의 행복/ 33.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 34. 염려를 극복한 사람의 행복/ 35. 농심을 갖고 사는 사람의 행복/ 36. 동심을 갖고 사는 사람의 행복/ 37. 따뜻한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의 행복/ 38. 절망을 던져 버린 사람의 행복/ 39. 고통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누리는 행복/ 40. 약점 때문에 잘된 사람의 행복/ 41. 고독을 사랑한 사람의 행복/ 42. 깊이 생각하는 사람의 행복/ 43. 역경을 이긴 사람의 행복/ 44. 눈부신 끈기를 갖고 사는 사람의 행복/ 45. 새벽을 깨우는 사람의 행복


마음의 온도를 조절하라

마음은 정원과 같아서 가꿀수록 아름답다. 돌볼수록 향기를 발한다. 내면의 마음을 가꾸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고상한 사람이다. 마음을 가꾼다는 것은 인격을 가꾼다는 것이다. 성취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품이다. 성공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실이다. 성실에는 황혼기가 없다. 가장 위대한 성취는 무엇을 얻는 것보다 향기로운 사람이 되는 데 있다. 향기로운 사람이 되려면 마음의 정원을 잘 가꾸어야 한다. 마음은 하나님의 활동 무대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에서 지혜와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 인생을 승리한 사람들은 마음의 세계를 알았다. 그리고 마음을 가꾸고 다스릴 줄 알았다.

인간의 마음에는 양면성이 있다. 인간의 마음은 생명의 근원이면서, 또한 부패의 원천이다. 악한 생각, 추한 생각, 파괴적인 생각 등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온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천국도 마음에서, 지옥도 마음에서 경험한다. 사랑도 마음에서, 미움도 마음에서 나온다. 우리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 마음에 가득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다.

우리가 가꾸어야 할 마음 중 하나는 온유한 마음이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한 마음이다(마 11:29). 온유한 마음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이다. 사람은 차갑고 딱딱한 마음 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찾아 간다. 따뜻함과 부드러움은 함게 가는 동반자이다. 따뜻함은 부드러움을 준다. 부드러운 것은 따뜻하다. 강하다는 것은 세고 딱딱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강한 것은 부드러운 것이다. 또한 모든 것을 살리는 것은 따뜻한 것이다. 따뜻한 온도에서 모든 것이 소생한다. 봄바람은 따뜻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살린다.

마음이란 너무 차가우면 냉정해지고, 너무 뜨거우면 분별력을 상실하게 된다. 적절한 마음의 온도가 필요하다. 그것은 따뜻한 마음이다. 마음의 온도를 조절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에너지가 된다. 그 에너지 가운데 25%는 몸과 정신이 운동하는 데 쓰이고, 나머지 75%는 몸의 체온을 유지하는 데 쓰인다고 한다. 몸의 체온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것이 음식이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마음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 그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매일 말씀을 읽으라. 읽은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마음의 온도를 조절하라.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 상태를 유지하라. 당신이 품은 마음에 따라 당신 주위의 사람과 환경도 변화되리라. 당신 마음에 푸른 잎이 있으면 평화의 비둘기가 와서 깃들게 되리라.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떠남은 새로운 만남을 의미한다. 떠남이 없이 새로운 만남은 없다. 떠남은 벗어 버림을 의미한다. 익숙한 것들을 잠시 벗어 버리는 것이다. 벗어버림은 비움이다. 비움은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집착을 버리면 초연해진다. 참된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두 손을 펴는 것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다. 창조적인 개방성이다. 두 손을 펼 때 우리는 붙잡고 있는 것을 버리는 아픔을 경험한다. 그러나 두 손을 펴서 붙잡고 있는 것을 놓을 때, 새로운 것들을 붙잡을 수 있다.

인생은 역설적이다. 떠남은 만남을, 버림은 얻음을, 비움은 채움을, 포기는 창조적인 개방성을, 파괴는 창조를 전제한다. 피카소는 “창조가 있기 전에 파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여행은 모험이다. 가장 가 보고 싶은 땅이 있다면 아직 가 보지 않은 땅이다. 가 보지 않은 땅은 모든 것이 새롭다. 여행은 경이로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브라함 허셀은 “나는 하나님께 결코 성공을 구한 적이 없다. 다만 경이로움을 구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하셨다.”고 말했다.

여행에서 경험하는 경이로움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경이로움은 동심에서 나온다. 경이로움은 우리의 눈을 열어 준다. 내면 깊은 곳에서 환희에 찬 소리를 발하게 한다. 경이로움이 없으면 감격이 없다. 감격이 없다면 깨달음도 없다. 깨달음이 없다면 배움도 없다. 배움이 없다면 성장도 없다. 성장이 없다면 의미도 없다. 의미가 없다면 살맛도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의미를 추구할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의미를 발견하도록 도와 주는 모험이다.

여행을 떠날 때는, 그것이 잠시일지라도 철저하게 떠나라. 길을 떠날 때는 전화를 두고 가라. 필요하다면 공중전화를 사용하라. 잠시 전화를 받지 않고 걸지 않아도 우주는 여전히 잘 돌아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길은 떠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일터에 있고 집에 있다면 그는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다.

진정한 여행이란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있다.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사람은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라. 내면에 천국이 있다. 예수님은 “너희 안에 천국이 있느니라(눅 17:21).”고 말씀하신다. 내면의 천국으로 들어 가는 열쇠는 침묵이다. 거룩한 상상력만 있으면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은 가능하다. 침묵 속에서 내면의 천국으로 들어 가라. 깊은 바다 속은 항상 고요하다. 폭풍의 눈이 고요한 것처럼, 내면의 깊은 세계는 잔잔한 호수와 같다. 그 깊은 곳에 보화가 담겨 있다(사 45:3). 사랑과 지혜로 충만한 깊은 샘이 있다.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고 안타까워 할 것 없다.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내면의 천국으로 여행을 떠나라.


침묵하는 지혜

지금 우리는 침묵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자연 공해 만큼 소리 공해도 심각한 문제다. 전화 소리, 차 소리, 그리고 싸우는 소리는 우리 마음을 흔들고 있다. 소리 공해는 마음 공해를 만들어 낸다. 사람들의 마음은 불안하고 공허하다.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빈곤한 마음의 현 주소를 발견한다. 핍절한 마음과 한 맺힌 마음들은 분노와 원한으로 가득 차 있다. 평강을 모르고 싸움을 일삼는다.

빈곤한 마음을 살찌게 하는 것은 침묵이다. 마음이 흔들리면 세상이 흔들린다. 마음의 동요는 불안이다. 동요는 염려와 분노가 두려움이라는 자식을 잉태하고 출산한다. 마음이 요동하면 평화가 없다. 마음이 분리되는 것이 불안이다. 두 마음을 품으면 불안하다. 평강은 두 마음이 하나가 될 때 경험하는 지복의 상태다.

침묵은 두 마음을 하나 되게 한다. 한 마음에 이르는 영성 훈련이 묵상이다. 침묵 중에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 묵상이다. 조용히 묵상하는 중에 마음의 흐름을 읽으라. 마음을 관조하라. 마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라 보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바라 보라. 처음에는 생각의 퍼레이드가 시작될 것이다. 수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갈 것이다. 그냥 계속해서 지켜 보라. 그러면 어느 덧 생각의 퍼레이드는 사라지고 만다. 침묵하면 보게 된다. 침묵하면 마치 잔잔한 호수같이 마음이 고요해진다. 요동하는 호수는 맑지 않다. 그러나 고요한 호수는 맑다. 푸른 하늘을 담고, 하얀 구름을 담고, 버드나무의 모습을 담아 낸다. 그 속에 세상의 모습이 맑게 비친다. 고요한 마음은 그처럼 청정하다.

침묵하면 듣게 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하나님은 침묵의 친구시다. 침묵은 하나님의 음성이다. 하나님은 침묵 중에 일하신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보라. 침묵 중에 태어나고,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다. 가장 큰 소리는 침묵의 소리이다. 침묵하면 하나님을 만난다. 그리고 힘을 얻는다. 성경은 잠잠하고 신뢰하면 힘을 얻는다(사 30:15)고 말씀한다.

침묵하면 살리는 말을 하게 된다. 침묵하는 사람의 말은 깊이가 있다.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의 언어는 버릴 것이 없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모든 말이 살아 움직인다. 침묵 중에 나온 말은 담백하다. 힘이 있다. 감화력이 있다. 생동감이 있다. 마음을 녹이고, 사람을 살리는 말은 침묵 속에서 나오는 언어다.

하루에 5분 만이라도 침묵하라. 입을 닫고, 침묵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라. 침묵으로 마음을 살찌우라. 내면의 힘을 키우라. 침묵 중에 들은 것과 본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라. 그 때 우리의 언어는 천상의 언어가 되고, 우주의 지혜를 담은 언어가 되리라.


상처 받은 사람의 행복

나는 상처를 받고 살았다. 이민 목회를 하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상처가 썩어 마음에 독이 될 때도 있었다. 상처는 아프다. 상처는 고통을 준다.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 육체의 상처가 흔적으로 남듯이 우리 내면의 상처도 나무의 나이테처럼 흔적을 남긴다. 상처는 영향을 준다. 관계에 영향을 준다. 상처는 쓰디 쓴 경험이다. 경험은 어떤 시각을 갖게 한다. 상처는 선입견을 갖게 하고, 사람과 사건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한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 때문에 일평생을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도 있다. 상처를 품고 한이 맺힌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

상처는 마음을 상하게 하고 우리에게서 삶의 풍요로움을 빼앗아 간다. 상처 속에 사는 사람은 과거 속에 사는 사람이다. 우리는 상처를 치유하고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자신을 상처로부터, 과거로부터 풀어 놓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상처 입은 치유자시다. 예수님은 상처투성이로 십자가를 지셨다. 배신당하시고, 무시당하시고, 버림받으셨다. 상하시고, 찢기셨다. 상처를 받으신 예수님은 상처받은 자의 아픔을 아신다. 상처는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에게도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상처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상처에서 거룩한 피가 흘러 나왔다.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피가 나왔다. 예수님은 썩을 고목이 아니라 향나무 같으셨다. 찍혀도 향을 발하는 향나무처럼 예수님의 상처에서는 아름다운 향이 나왔다. 그 향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향이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서 상처를 내어 놓으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드러 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로 치유 받으라.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치유 받으라. 그때 당신의 상처는 아름다운 흔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상처는 잘 다루면 복이 된다. 상처 때문에 오히려 잘된 사람들이 많다.

미국에 와서,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던 그랜드 캐년을 방문했다.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랜드 캐년은 땅이 움푹 패인 상처의 결과로 형성된 지축의 변화다. 상처가 깊은 부분일수록 더욱 아름다웠다. 얼마 전 브라질에서 이과수 폭포를 보면서 감탄했다. 나는 이과수 폭포가 만들어진 것은 지진 때문이라는 안내원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이과수 폭포의 아름다운 자태는 지진 덕분인 것이다.

상처 때문에 상심하지 말고, 상처 때문에 감사하라. 상처 받은 사람의 행복을 누리라. 예수님같이 상처 때문에 감사하라. 상처받은 사람의 행복을 누리라. 예수님같이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살라. 당신의 상처로 그랜드 캐년과 이과수 폭포의 영광이 되게 하라. 찍혀도 찍혀도 향을 발하는 향나무가 되라.


침체를 통과한 사람의 행복

침체의 늪에 빠지는 것은 혹독한 시련이다. 1989년, 나는 영적 침체를 통과했다. 목사인 내가 영적 침체를 통과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내게 영적 침체가 찾아왔을 때 그것은 결코 쉽게 건널 수 있는 강도, 가볍게 정복할 수 있는 산도 아니었다.

침체가 찾아 왔을 때, 제일 먼저 의욕이 상실되었다. 식욕, 성취욕 뿐 아니라 삶의 모든 의욕이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염려가 엄습했다. 두려움이 매 순간 문을 두드렸다. 의심의 안개가 영혼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았다. 죽을 수만 있다면 죽고 싶었다. 마음의 변화와 함께 육체의 변화도 찾아왔다. 두려움을 받아들이면 심장이 뛰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몸이 아프기 전에, 마음이 아팠다. 생각이 혼란스러웠다,. 무슨 일을 하든지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나의 이런 증상을 이해해 주는 의사들은 많지 않았다. 다행히도, 목회자의 사위인 한 의사가 내가 겪고 있는 영적 침체를 이해했다. 그는 “목사님, 하나님 앞에서 굳세게 이기셔야 합니다.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라는 말과 함께 격려자로 곁에 있어 주었다.

침체를 통과하면서 나는 침체의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성경을 연구하면서 모세, 엘리야, 다윗, 세례 요한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도 혹독한 침체를 통과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침체를 통과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고백은 죽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예수님도 침체를 통과하실 때 “내가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성경과 하나님의 사람들을 연구하면서, 영적 침체가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 앞에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침체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나의 치료는 시작되었다. 나의 침체를 객관화해서 연구하면서 침체를 극복하는 원리를 터득했다. 영혼과 마음의 관계, 마음과 육체의 관계를 연구했다. 침체도 생각에서 오기 때문에,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님의 말씀과 좋은 책들은 나의 양식이 되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지금 침체를 통과하고 있다면 낙심하지 말라. 당신 만이 겪고 있는 고통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잊지 말라. 주님 안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라. 눈부신 끈기로 당신 자신을 품어 주라. 필요하다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라. 침체를 노려 보라. 당신을 쓰러뜨리지 못한 침체는 당신을 강하게 만들 것이다.


벼랑 끝에 서 본 사람의 행복

벼랑 끝에 서는 것은 위험하다. 추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서 보면 인생이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든다. 인간은 희망하는 존재이다. 희망을 먹고 사는 것이 인간이다. 모든 것이 다 무너질 때도 희망이 있으면 이긴다. 희망은 바라보는 것이다. 인간은 바라 볼 것이 있을 때 쓰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바라 볼 것이 사라지면 인간은 절망한다. 절망이란 바라볼 것이 단절된 상태를 말한다.

벼랑 끝에 선 사람은 절망을 직면하는 사람이다. 벼랑 끝에 선 사람은 죽음을 삶보다 더 그리워 한다. 산다는 것이 고역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는 것이 고통이기 때문이다. 내일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오히려 큰 짐이 되기 때문이다.

인정하든지 인정하지 않든지 간에 인생은 전쟁터다. 싸움터다. 인간은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 살고 있다. 이기지 않으면 지게 되어 있다. 정말 삭막한 것이 인생이다. 지금처럼 변화무쌍한 시대에는 이겼다고 자랑할 것도 없다. 인기도, 승리도 한순간이다. 밀물처럼 밀려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것이 인기요, 성공이요, 승리다. 이런 황량한 싸움터에서 인간은 누구나 한 번쯤 벼랑 끝에 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실패와 좌절과 절망 중에 벼랑 끝에 선 사람은 추락할까 봐 두려워 한다. 벼랑 끝에 선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맡긴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 내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다스리고 조정하면서 살았던 인간이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 두 손을 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맡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그러나 벼랑 끝에 서는 것을 두려워 말라. 벼랑 끝에 서면 육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을 경험하게 된다. 세상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경험하게 된다. 추락할 줄 알았던 인생이 오히려 하나님과 함께 하늘을 비상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노력과 훈련으로도 안 풀리던 인생의 문제들이 하나님의 초월적인 역사로 풀리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벼랑 끝에 서 본 사람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벼랑 끝에 섰다가 하늘을 날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벼랑 끝 바위에 붙어서 피는 꽃의 향기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라산 정상의 바위에 핀다는 돌매화가 그런 꽃이다. 백두산 바위 틈에 산다는 노란바위돌꽃도 그런 꽃이다.

벼랑 끝에 선 이여, 벼랑 끝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님을 잊지 말라. 오히려 벼랑 끝이 당신을 높은 하늘로 날게 하는 복된 장소임을 기억하라.


검은 보자기에 싸인 행복

하나님이 예비하신 행복은 역설적인 행복이다. 하나님은 신비로운 방법으로 행복을 경험케 하신다. 하나님은 검은 보자기에 행복을 담아서 우리에게 보내실 때가 많다. 고난이라는 검은 보자기, 상처라는 검은 보자기, 때로는 질병이라는 검은 보자기에 행복을 담아 두신다. 가난과 실패의 검은 보자기 속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보화를 담아 두신다.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형통의 수레를 타기 전에, 고난의 수레를 먼저 타야 한다. 꿈꾸는 소년이었던 요셉이 애굽에 내려갈 때 타고 간 수레는 고난의 수레였다. 요셉을 태운 고난의 수레는 거칠었다. 고난의 수레를 이끌었던 하인은 검은 옷을 입었다. 검은 옷을 입은 하인은 요셉을 거칠게 다루었다. 요셉의 아름다운 채색 옷을 찢었다. 그를 구덩이에 집어 던졌다. 그를 팔았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이별하게 만들었다. 요셉의 꿈을 찢어 버리고, 좌절과 절망의 수렁에 그를 집어넣었다.

요셉을 애굽에 끌고 갔던 검은 옷을 입은 하인은 요셉에게 종의 옷을 입혔다. 11년 동안 종살이를 하게 한 후 마지막에는 그를 감옥에 집어 넣고 그에게 죄수의 옷을 입혔다. 그리고 2년 동안 요셉이 그 어두운 감옥에서 잊혀진 존재로 살게 만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요셉이 그 어두움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이다. 요셉은 어두움 속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보화를 발견했다. 결국 요셉은 그에게 찾아 온 검은 하인의 손길이 하나님의 손길임을 깨달았다.

스펜서는 “세상의 혹독한 연단이 사실은 하나님의 다정함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요셉은 그에게 찾아왔던 혹독한 연단이 하나님의 다정함에서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검은 하인이 가져온 거친 짐 속에서 하나님의 보석을 발견했다. 요셉이 경험한 하나님의 신비로운 축복에 대해 A.B. 심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보석은 흔히 거친 짐 속에 넣어져 검은 옷을 입은 하인을 통해 우리에게 보내진다. 그러나 그 안에는 왕궁의 보물과 신랑이 주는 사랑의 선물이 들어 있다.”

하나님은 검은 옷을 입은 하인만 요셉에게 보내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친히 그와 함께 하셨던 것이다. 스펄전은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풀무에 던지실 때는 하나님께서도 그 안에 같이 들어 가신다.”고 말했다. 요셉은 어두운 구덩이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보디발의 집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어두운 감옥에서 밝은 별을 보았다. 결국 그는 어두움마저도 사랑하는 법을 터득했던 것이다.

당신이 어두움을 통과하고 있다면 그 어두움마저도 사랑하도록 하라. 당신의 손에 들려진 검은 보자기를 버리지 말라. 연장은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의 것이다. 고난이라는 연장을 잘 사용하라. 피할 수 없는 고난이라면 친구로 삼고 그를 사랑하라. 그 때 당신은 검은 보자기에 싸인 행복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고통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누리는 행복

고난은 역설적인 행복의 원천이다. 고난은 신비의 세계다. 고난은 겉에서 보면 어둡다. 결코 화려하지 않다. 검은 보자기에 싸여 있는 모습이 고난의 얼굴이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그 속에 놀라운 보화가 감춰져 있다. 그래서 고난을 변장된 축복, 검은 보자기에 싸인 보배라고 말한다.

고난은 하나님 나라의 표지다. 천국으로 들어 가는 열두 문은 진주로 되어 있다.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유리같이 맑은 정금으로 되어 있다(계 21:21).
왜 진주일까? 왜 정금일까? 묵상하다가 가슴에 사무치는 음성이 있었다. 그것은  고통을 아는 자 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진주는 고통 중에 만들어지는 보석이다. 상처 난 조개가 그 상처를 안고 씨름하다가 만들어 낸 것이 진주다. 맑은 정금도 고통 중에 만들어진다. 정금은 뜨거운 용광로의 연단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욥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고 말했다.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들은 배부른 사람들이 아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사모한다(마 5:3). 고통 중에 있는 자가 천국을 사모한다. 하지만 고통을 받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은 아니다. 결코, 천국은 우리의 노력이나 의로운 행위로 가는 곳이 아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 뿐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받으신 십자가의 고통으로 천국의 진주 문을 만드셨고, 맑은 정금으로 된 천국 길을 만드셨다는 사실을...

천국은 십자가를 아는 자들만 들어 간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받으신 고통의 의미를 아는 자들만 들어 간다. 십자가는 사랑의 현장이다. 사랑 때문에 고난 받으신 고통의 현장이다.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신 예수님은 고통 받는 자들을 아신다. 그리고 위로하신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은 진주로 된 천국 문을 생각하라. 맑은 정금으로 만들어진 천국 길을 묵상하라. 진주와 정금은 한 순간에 만들어지는 작품이 아니다. 오랜 기간 고통을 통과하면서 만들어진 보화다. 이는 십자가의 고통 후에 나타난 부활의 영광과 같다. 그러니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은 낙심하지 말라.

한편, 고통을 달라고 일부러 기도하지도 말라. 고통은 기도하지 않아도 매일 경험하는 인간의 실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치 않았지만 이왕 찾아온 고통이라면 차라리 환영하라. 그리고 고통의 의미를 깨닫도록 기도하라.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당신의 고통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손길임을 알게 되리라. 그래서 고통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레위기 10:14
흔든 가슴과 들어 올린 뒷다리는 너와 네 자녀가 너와 함께 정결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네 소득과 네 아들들의 소득으로 주신 것임이니라. 15 그 들어 올린 뒷다리와 흔든 가슴을 화제물의 기름과 함께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너와 네 자손의 영원한 소득이니라.


🌐 죽어가는 사람들이 내게 말한 것들 (4P)

죽음의 강을 건너가는 여러 사람을 보았다.
청춘의 산맥을 오를 때
그들의 꿈과
다른 세상으로 옮겨갈 때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성공을 했다는 의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몸을 아끼지 않고 일을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의 췌장에서 암이 발견됐다.
그는 돈을 아끼지 않고 수술을 받았다.
몸을 위해서였다.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그에게 물어보았다.
“미국 이민 생활에서 성공과 실패는 무엇이었죠?”
“별거 없어요.
기본적으로 먹는 것은 같고,
골프 치면서 노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부자는
포르쉐 같은 좋은 차와 명품 골프장의 회원이고,
또 바닷가 경치 좋은 곳에
큰 집을 가지는 거죠.
나도 산타모니카 해변가에 저택을 샀죠.

살아보니까 별로예요.
교통도 불편하구요.
수술을 받으면서
내 인생이 무엇이었나 생각해 봤어요.
저택이나 고급 차가 아니라
그냥 내가 평생 진료한
이만 오천장의 챠트가 나였더라구요.”

그가 얼마 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다른 경험이 있다.
호주의 골드코스트 해변에
저택을 가진 분의 초청을 받은 적이 있다.
집안에 요트 선착장이 있고
통유리창으로
드넓은 태평양이 시원하게 보이는 집이었다.
그 집 주인은
이민을 와서 접시닦이부터 시작해서
안한 일이 없다고 했다.
그는 저택에 살지 않았다.
자기 가게의 구석방이 편하다고 했다.
거기서 라면을 끓여 먹고
간이침대에서 자는 게 좋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침마다
가게 구석방에서 일어나
진열한 물품들을 먼지 한 점 없이 닦았어요.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가겠어요?
물건들을 닦아 주다 보면
내 자식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 후 그 노인이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노인은 무엇이었을까.
사랑하던 가게였을까.
자랑하던 저택이었을까.


부두 노동자로 출발해서
부자가 된 노인이 있었다.
시장바닥에 떨어진 배춧잎을 줏어다가
된장을 풀어 국을 끓여 먹던 사람이다.
부자가 되어서도
생활 습관은 달라지지 않았다.
통장에 수백억이 있어도
좋아하는 소주 한 병 사 마시지 않았다.
식당을 가면
남들이 떠난 식탁에 놓여 있는 소주병을 슬며시 가져다가
남아 있는 술을 마셨다.

그런 그가
폐섬유증이라는 죽음의 초대장을 받았다.
그의 돈에 대한 사랑이 증오로 바뀌었다.
그는 자기가 가진 돈을
모두 불에 태워 버리거나
바다에 던져 버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부자였을까
가난한 사람이었을까.
그의 삶에서
돈을 빼면
남은 게 무엇이었을까.
그의 묘지에는
지나가는 바람만 스치고 지나 갈 뿐이었다.


담도암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떠난
고교 선배가 있었다.
금수저 출신인 그는 야망도 컸다.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정계로 진출하기 위해 변호사 개업을 했다.
돈을 많이 벌었다.
그가 성공을 거머쥐기 직전
암이라는 내용이 담긴 죽음의 소환장이 송달됐다.
죽음을 앞두고
그 선배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헛짓이었어.
그냥 가족과 함께
맛있는 고기나 구워 먹는 건데 말이야.”


폐암을 앓고 있던
시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살면서
매일 죽음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병상에서도
환자로서
또 시인으로
매일 매일을 충실하게 살고 있었다.
그가 누운 매트리스 밑에는
항상 공책과 연필이 놓여 있었다.
그는 죽기 전날까지 시를 썼다.
그가 죽기 며칠 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뭔가 쓰고 싶을 때는
바로 바로 쓰세요.
미루지 마세요.
나중은 없어요.
하늘이 내려준 일을 하면서
소중하게 매일 매일을 살아 가세요.”

나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죽는다는 걸 배웠다.

나도 병이 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늘이
어제 죽은 그들이
그렇게 희망하던
내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더 벌지 못해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서
한이 서린 사람은 없었다.

공통된 후회들은
삶의 좌표를 잘못 설정했다는 것이었다.


인생이란
하루하루 소소한 일상의 집적이 아닐까.
그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느껴야 하는
진정한 즐거움이란
어떤 것일까?

임상억 변호사



🌐 성구 – 가슴

출애굽기 28:29
아론이 성소에 들어 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 30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이 여호와 앞에 들어 갈 때에 그의 가슴에 붙이게 하라. 아론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흉패를 항상 그의 가슴에 붙일지니라.

출애굽기 29:26
너는 아론의 위임식 숫양의 가슴을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으라. 이것이 네 분깃이니라. 27 너는 그 흔든 요제물 곧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위임식 숫양의 가슴과 넓적다리를 거룩하게 하라.

레위기 7:30
여호와의 화제물은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져올지니, 곧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31 그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 것이며,

레위기 7:34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가져다가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

레위기 8:29
이에 모세가 그 가슴을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았으니, 이는 위임식에서 잡은 숫양 중 모세의 몫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레위기 9:20
그 기름을 가슴들 위에 놓으매, 아론이 그 기름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21 가슴들과 오른쪽 뒷다리를 그가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드니, 모세가 명령한 것과 같았더라.

레위기 10:14
흔든 가슴과 들어 올린 뒷다리는 너와 네 자녀가 너와 함께 정결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네 소득과 네 아들들의 소득으로 주신 것임이니라. 15 그 들어 올린 뒷다리와 흔든 가슴을 화제물의 기름과 함께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너와 네 자손의 영원한 소득이니라.

민수기 6:20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들 것이며, 그것과 흔든 가슴과 받들어 올린 넓적다리는 성물이라. 다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니라. 그 후에는 나실인이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느니라.

민수기 18:18
그 고기는 네게 돌릴지니, 흔든 가슴과 오른쪽 넓적다리 같이 네게 돌릴 것이니라.

욥기 38:36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수탉에게 슬기를 준 자가 누구냐?

욥기 41:24
그것의 가슴은 돌처럼 튼튼하며, 맷돌 아래짝 같이 튼튼하구나.

잠언 5:20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이사야 32:12
그들은 좋은 밭으로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에스겔 23:3
그들이 애굽에서 행음하되, 어렸을 때에 행음하여 그들의 유방이 눌리며,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져졌나니,

에스겔 23:8
그가 젊었을 때에 애굽 사람과 동침하매,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져졌으며, 그의 몸에 음란을 쏟음을 당한 바 되었더니, 그가 그 때부터 행음함을 마지 아니하였느니라.

에스겔 23:21
네가 젊었을 때에 행음하여 애굽 사람에게 네 가슴과 유방이 어루만져졌던 것을 아직도 생각하도다.

다니엘 2:32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나훔 2:7
정한 대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니, 그 모든 시녀들이 가슴을 치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우는도다.

마태복음 11: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누가복음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23: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누가복음 23: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요한복음 13: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요한계시록 1: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요한계시록 15: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요한계시록 18: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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