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을 두 번 격파하다! - 고려 영웅 김윤후

작성자대야.정|작성시간08.08.15|조회수70 목록 댓글 0

[제13회]몽골을 두 번 격파하다!
- 고려 영웅 김윤후 -



▣방송 : 2007. 9. 15(토) 20:1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이상호 아나운서
▣연출 : 김현기PD
▣작가 : 박민경

 


13세기, 고려의 40년 대몽항쟁!
유라시아의 대부분을 제패한 최강 몽골군에 대적해
두 차례나 몽골군을 격퇴한 고려의 영웅이 있었다.
그는 바로 김 윤 후〔金允候〕

몽골군의 총사령관인 살리타를 처인성에서 사살하고〔1232년〕
몽골 황족인 에쿠의 주력부대를
70일간의 항쟁 끝에 퇴각시킨다.〔1253년〕

대몽항쟁의 영웅, 김윤후
역사 속에서 잊혀진 그의 업적을
한국사 傳이 새롭게 조명한다.


▶처인성에서 출토된 고려도검

김윤후의 첫 승전지인 처인성. 이곳에서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많은 유물이 출토됐다. 특히 대몽항쟁의 치열함을 증명하듯 화살촉과 칼이 발견되었는데, 고려시대 칼로는 두 번째에 해당하는 매우 드문 발견이다. 처인성에서 출토된 고려도검은 현재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에 보존되어 있다. 한국사 傳 제작진이 고려도검을 통해 처인성 전투의 흔적을 취재했다.


▶다인철소 - 고려시대의 포항제철

김윤후의 두 번째 승전지인 충주, 이곳에서 용광로와 숯가마, 그리고 철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슬래그(강재, Slag)가 다량 발견됐다. 충주 야철 유적 지표 조사에 의하면 총 41곳의 야철지가 확인되었는데 그 중 35곳이 다인철소 지역이다. 다인철소는 충주시 이류면 일대의 대규모 수공업소로 금, 은, 동, 철이나 종이, 도자기와 같은 수공업생산물을 생산하는 곳이었다. 고려시대 다인철소의 철물 주조기술은 질과 생산량에 있어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국내 최대 규모를 갖추고 있었던 다인철소는 오늘날의 포항제철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한국사 傳 제작진이 고려시대의 첨단 무기 제작소인 다인철소를 집중 취재했다.

 

 

김윤후. 그는 누구인가?

13세기, 세계 역사상 유래 없는 강력한 정복전쟁이 몽골에 의해 진행되고 있었다. 몽골은 30여 년 동안 무려 여섯 차례에 걸쳐 고 려를 침략하는데. 몽골이 결정적인 패전으로 고려에서 철수한 경 우는 단
두 번 뿐 이었다. 바로 처인성 전투(1232년)와 충주성 전투(1253년). 그런데 이 두 전투를 이끈 지휘관이 놀랍게도 동 일인물이다! 그는 바로 고려 대몽항쟁의 영웅 김윤후. 백현원의 승려인 김윤후 는 어떻게 두 번이나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

 

▶첫 번째 승전(1232년) : 몽골의 총사령관 살리타 사살

처인성 전투 : 화살 하나로 풍전등화의 고려를 구하다

 

1232년, 고려가 대몽항쟁의 의지를 밝히며 강화도로 천도하자 몽골은 2차 고려 침략을 단행한다. 고려 침 략을 이끈 몽골의 장수는 살리타(撒禮塔). 살리타는 몽 골군의 총 사령관으로, 당시 세계 최강대국으로 급부상 하고 있는 몽골의 핵심인물이었다. 그러나 파죽지세로 고려를 침공해 내려오던 살리타의 운명을 뒤바꾼 일대 사건이 일어난다! 용인군 아곡리에 위치한 처인성. 살리타는 제대로 된 군사조차 남아있지 않은 처인성을 공격하면서 방심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살리타와 몽골군을 향해 화살이 비 오듯 쏟아졌다. 매복한 처인성 부곡민들의 기습 공격이었다. 처인성 안으로 피신한 부곡민들을 모아 매복 전투를 계획하고 적장 살리타를 사살한 인물, 바로 김윤후였다.

  ******고려인 김윤후, 조선시대까지 그 명성을 펼치다******

1592년, 왜군은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 국토를 유린하고 있었다. 관군이 대패하고 관료들이 명나라 망명을 준비하던 때, 임진왜란 의병 운동의 선구자인 ‘조헌’은 의병 모집 격문에 한 선례를 들어 거국적인 민중 봉기를 이끌어낸다.

김윤후는 화살 하나로 돼지를 맞혀 죽여 황성에서 몽병을 물리쳤으니
(金允侯一箭豕?退蒙兵於黃城)              - 조헌의 중봉집 -

바로 고려시대 대몽항쟁의 영웅 김윤후였다. 여기서 돼지로 묘사된 사람은 몽골군의 총사령관 살 리타. 김윤후는 300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의병운동의 상징으로 부활한 것이다. 세계 최강 몽골 군을 격퇴한 김윤후, 그는 세대를 초월한 백성의 영웅이었다.



▶두 번째 승전(1253년) : 충주산성, 그 70일의 기록


충주산성 전투 : 노비문서를 불태워 백성의 힘을 하나로
      모으다

 

1253년, 고려 조정이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출륙 환도하라는 몽 골의 요구를 이행하지 않자, 몽골은 황족인 에쿠(也窟)가 직접 지휘하는 최정예병을 고려에 투입한다. 몽골군은 고려 정벌을 끝내겠다는 각오로 한 층 더 잔인하게 고려를 도륙하면서 전략 적 요충지인 충주까지 밀어 닥쳤다. 당시 충주에는 살리타를 사 살한 처인성 승첩의 주인공, 김윤후가 방호별감으로 있었다. 끝까지 항전하는 김윤후와 몽골군의 싸움은 70여일을 넘겼다. 그 사이 성 안의 양식이 떨어지고 투항을 원하는 백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아비규환 속에서 김윤후는 결단을 내린다. 그는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노비문서를 불태워버리고 노획한 소와 말을 모두 나누어 주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일어날 수 없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김윤후의 결단에 백성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항쟁한다. 결국 몽골군은 충주에서 퇴각하고 만다.
고려가 몽골을 결정적인 군사적 패배로 철수시킨 사례는 대몽항쟁 기간 동안 단 두 차례. 처인성과 충주산성 전투뿐이었다. 이 두 곳에 바로 김윤후가 있었다.

▶고려 백성을 지킨 진정한 영웅. 김윤후

역사에서 잊혀진 대몽항쟁의 영웅, 김윤후

대몽항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지역민들의 신분이 단체로 승격된 지역은 모두 네 곳. 그 중 무려 두 곳의 지휘관이 바로 김윤후이다. 바로 처인성과 충주 지역, 그러나 이런 공적에도 불구하고 김윤후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는 왜 역사 속에 잊혀진 것일까?
몽골 침략 30여 년 동안 고려의 전 국토는 초토화 됐다. 부인사 초조대장경, 흥왕사 속장경 등 불교 문화재가 소실되고, 고려는 몽골의 부마국으로 추락해 몽골이 세운 원(元)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약 1세기 동안 원의 간섭을 받는다. 이 기간 동안 몽골에 대한 항전은 곧 반역과 모반의 역사가 되고 말았다. 더욱이 고려 멸망 후 세워진 조선은 유교를 받아들여 승려 출신인 김윤후는 건국이념 상 드러낼 수 없는 인물이 되고 만다.
김윤후. 그는 비록 역사 속에서 잊혀 졌지만, 대혼란 속에서 조국을 두 번 지킨 대몽항쟁의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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