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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_01_24 (수) 널 위해, 늘 응원해 그리고 돌무화과나무...

작성자사랑하는사랑을위하여|작성시간18.01.24|조회수119 목록 댓글 0



 2018년 1월 24일 (수)요일 [신약성경통독 눅13 ~ 눅21]

널 위해, 늘 응원해 그리고 돌무화과나무...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1-10)



01.

토크쇼에 나와 모두가 부러워하고 선망의 대상이 될 부부의 결혼생활을 이야기 하는것 같지만, 정작 속내는 감춘 채 그 모든 게 방송용이었다는... 그리고 실상은 말할 수 없이 건조하고 냉랭한 삶을 사는 무늬만 부부. 쇼윈도 부부란, 실제로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 못하지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여 마치 잉꼬부부인 것처럼 행동하는 부부를 뜻하는 말입니다. ‘디스플레이 부부’라고도 합니다.


02.

[쇼윈도 부부] 소비자의 시선을 끌어 구매욕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화려하고 깔끔하게 상품을 진열해 놓은 백화점이나 상점의 쇼윈도처럼 실제로는 원만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 못하지만 마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부부들을 쇼윈도 부부라 부른다. 이들은 사회적 지위와 체면 때문에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여 공개적인 곳에서는 행복한 부부인 것처럼 행세할 뿐 개인적인 대화나 부부관계, 서로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전혀 없는 부부이다.


대중들에게 자주 노출되는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등의 유명인처럼 자신들의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이들 중에 부부간 불화가 있어도 갈등을 숨기고 잉꼬부부인 것처럼 포장하는 쇼윈도 부부의 사례가 많다. 물론 평범한 부부들 중에도 실제로는 별거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여 남들 앞에서 행복한 부부인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두산백과)


03.

예수님 당시 당시 여리고는 국경 도시이자 향료의 생산지였다. 이곳에는 관세 등을 걷는 세무서가 있었는데, 여리고 세무서의 서장이 바로 삭개오였다. 당시 세관은 백성들이 내는 세금을 거두어 로마 정부에 다시 바치는 중간 매개 역할을 하였다.세리들은 세금을 로마에 바치는 과정에서 서민들에게 불법으로 세금을  징수하여 자신이 소유하기도 했다. 따라서 대개의 세리들은 백성들을 착취하는 ‘면허증을 가진 강도’라 불렸고, 삭개오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부자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성경사전)


04.

삭개오(Zacchaeus, 순결)는 부정 축제로 큰 부자가 되었으나 그의 직업과 그의 불의한 행동 때문에 동족들의 멸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삭개오에게는 인생의 기쁨이 없었습니다. 민족을 등지면서까지 야비하고 무던히 노력하였지만, 거기엔 즐거움과 참된 만족이 없었습니다. 하나의 욕망이 채워지면 다시 다른 욕망이 계속해서 꿈틀대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한이 없습니다.


05.

삭개오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와 늘 남들 눈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신체적 결함을 안고 살았습니다. 삭개오에게도 사랑과 관심에 갈망이 있었지만, 언제나 그 자리는 욕심이 대신하였습니다. 남들로부터 빼앗은 것으로 그 욕망을 채우고 그 상처를 지우려 하였지만 그럴수록 상처는 더해만 갔고 동족으로부터 더 멀어져만 갔습니다.


06.
아주 오래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과 삭개오와의 만남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키 작은 삭개오를 배려하여 돌무화과나무를 예비해 주셨습니다. 혹여나 돌무화과나무가 그때까지 시들까 천사를 시켜 돌보게 하였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하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기쁨입니다.


07.

예수님이 여리고 성을 지나 가실 때에 삭개오도 군중들 틈에 끼어 예수님을 만나려 했으나 키가 작음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 옆에 돌무화과나무가 있어 그 위에 올라가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키 작은 세리장 삭개오에게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기쁨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08.

예수님께서도 많은 무리들 가운데, 주님을 만나서 순전한 기쁨으로 가득 찬 삭개오를 발견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여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바로 삭개오의 삶에, 삭개오의 미래에 들어 오시는 예수님을 삭개오는 기뻐하며 맞이하였습니다.


09
삭개오는 부자요, 세리장입니다. 삭개오는 계산이 빠른 사람입니다. 하지만, 삭개오의 즐거움은 자신에게 근거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에게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희생하지 않고는 예수님을 집으로 모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희생하지 않고서는 죄인의 집에 머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비아냥거리고 비판하는 수군거림이 있었지만,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삭개오의 인간적인 기쁨보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머무시겠다는 그 기쁨이 오히려 더 큰 것이었습니다.


10.
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기뻤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삭개오를 기쁨으로 만나 주셨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기쁨 그리고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만난 기쁨 그렇게 두 기쁨이 예수님을 삭개오의 집으로 오시게 하였고, 예수님을 삭개오의 집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11

예수님은 돌무화과나무 아래서 걸음을 멈추시고 삭개오를 불러 내려 그의 집에 묵어 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삭개오는 예수님 앞에서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으며, 자기가 다른 사람의 것을 억지로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결심을 들으신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선포하셨습니다.

 

12.

삭개오는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약속, 최고의 선물을 받습니다. "삭개오야, 오늘 너와 네 집에 구원이 임했다. 너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란다." 결코 세상의 것으로 채워지지 않던 욕망도, 지워지지 않았던 상처였습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만남으로 그리고 주님의 기쁨으로 참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였고 굳은 결단을 낳았으며 새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13.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커다란 연회나 커다란 업적이 아닙니다. 주님을 내 마음에, 주님을 내 집에 모실 수 있었던 것은 화려하고 엄청난 그 무엇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의 동기, 주님에 대한 사랑의 동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14.
모든 민족중에 가장 작은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처럼, 애굽의 노예로 있을 그때 아들로 삼아 주신 것처럼, 우리가 연약하고 죄인되고 원수되었을 그 때에 우리를 택하시고 그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여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고, 정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여 주셨습니다.



♣ 삶의 한가운데...


01.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세상의 욕망 그리고 여전한 목마름...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 그리고 마음의 울분과 삶의 결함들... 그래서 끝없는 세상의 갈망과 인간의 욕망을 채우며 얻는 그 즐거움은 가짜이다. 자신의 죄와 콤플렉스를 가려줄 것 같지만 잠시 잠깐 일시적일뿐이다.


참 기쁨을 만나 즐거우면 욕망이 사라진다. 참 기쁨을 만나 즐거우면 세상에서 구하려던 만족이 사라지고 만다. 우리가 예수님안에서도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삭개오에게는 예수님이 참 기쁨이요 참 만족이었다.


02.

아주 오래전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해 두신 돌무화과나무가 있다는 사실.. 오래전부터 오로지 나를 위해 예비해 두신 돌무화과나무를 혹여나 나의 눈이 죄로인해 어두워져서 보지 못하고, 나의 귀가 세상의 것들로 가득차서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돌무화과나무의 궁극적 목적은 주님과의 만남이다. 그 만남의 목적은 바로 기쁨이다.


[사랑하는 사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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