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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QT

하나님의 생각은

작성자사랑하는사랑을위하여|작성시간20.01.18|조회수448 목록 댓글 0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이사야 55:8-9)


하나님은 당신의 생각이 우리와 다르지만 당신께서 하신 약속은 반드시 이뤄주신다는 다짐을 무엇으로 보증하고 있습니까? 곡식이 열매를 맺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약속이 때가 되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신자들이 잊고 또 잊어버리는 진리는 곡식이 열매 맺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입니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오직 하나입니다.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무 조급합니다. 항상 지금 당장 바로 여기에서 필요한 것을 내 놓으라고 하나님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바로 기적을 베풀라고 떼를 씁니다.

혹시 나는 그렇게 기적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여겨집니까? 나는 절대로 대박을 터뜨려 달라거나 남들보다 더 잘 살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고 단순히 현재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환난에서 벗어나게만 해달라고 한 것뿐인 것 같습니까? 환난을 제발 없애달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기도했고 그것도 당장 구원하지 않으면 두려워 미치겠다는 뜻 아닙니까? 그 환난이 자기 잘못이나 죄에서 기인한 것인지, 사단의 방해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다른 생각이 있는지에 관해선 전혀 관심이 없다는 반증 아닙니까?

하나님은 단순히 곡식이 열매 맺는 과정으로 당신의 뜻이 이뤄짐을 설명하지 않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곡물의 씨앗과 비유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씨앗이 뿌려진 것을 눈으로 확실히 볼 수 있다면 기다리지 못할 바보는 없습니다. 열매 맺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누구나 압니다.

하나님은 씨앗 대신에 비와 눈이 농사에서 하는 역할로 당신의 약속이 역사하는 원리와 방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와 눈은 단지 토지를 적시는 것으로 끝납니다. 곡물이 자라는데 겉으로 보이는 직접적인 역할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비록 눈에 안 보여도 곡물이 자라는 것은 적셔진 토지에서 섭취되는 영양분 때문입니다. 땅이 적셔지지 않으면 싹도 나지 않고 열매는 당연히 맺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신실하게 그것도 대대로 이어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눈에 안 보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도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의심이 없어야 합니다. 현실은 힘들고 고달프지만 장차 열릴 풍성한 열매를 미리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환난 가운데도 소망이 있기에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우리보다 높고 다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진리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생각과 길을 자꾸 하나님의 생각과 길에 맞추려 드는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수준에 맞지도 않는 일을 시도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꾸 당혹되고 오히려 의아심과 불만마저 생깁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생각과 길을 그분의 생각과 길에 맞추려 들지 않는 것이 더 좋은 믿음입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무조건 우리 기분 내키는 대로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최소한 그분이 싫어하지 않는 범위 안에는 항상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당장에 그분의 기쁘신 뜻은 몰라도 그 뜻이 자기에게 이뤄지기를 소원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자가 믿음을 바로 세우려면 가장 먼저 그분의 길과 생각이 나와 다르고 높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모든 생각을 이어가야만 합니다. 말하자면 그런 전제가 없이 억지로 뜻을 맞추려 들면 들수록 그만큼 그분과 나의 거리는 멀어집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신자가 그분과 나의 차이가 너무나 깊다고 인식할수록 오히려 그 거리가 좁아집니다.

본문의 비유로 바꿔 표현하자면 어떤 씨앗이 언제 어디에 떨어지는지에만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미 씨앗이 떨어진 것을 확인하면 어떤 열매가 언제 열릴지 미리 알 수 있어 쉽게 인내할 수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우리 모두 체험했듯이 하나님은 그렇게 확연히 눈에 보이도록 역사하지는 않습니다.

신자는 대신에 하늘에서 소리 없이 내리는 비에 주목해야 합니다. 아니 비가 내리기 이전에 구름이 생기는 것을, 또 구름 이전에 공기 중에 습기가 차면서 바람이 부는 것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신실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당신의 일을, 특별히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당신의 주권대로 이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선 안 됩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뜻이 서서히 드러나거나 심지어 끝까지 전혀 알 수 없는 일에도 그분의 신령하고도 초자연적인 권능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종종 훨씬 더 큰 은총과 능력으로 드러납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열린 열매라 그 열매가 주는 유익 또한 더 오래 지속됩니다. 당장 환난을 없애주실 능력이 하나님에게 없는 것은 결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분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러면 그 효과와 은혜가 신자에게 절대 오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는 일에 그분만의 은혜가 함께 하지 않는 일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절대로 헛되이 그분에게로 돌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당신만의 뜻을 이루시며 신자에게 가장 형통하는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소망을 품고 오래 기다려서 얻는 열매야말로 그분의 가장 큰 기적이자 최고의 은혜입니다. 또 신자는 이미 그 열매만큼이나 놀랄 만큼 크게 성숙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환난 중에 있는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다릴 줄 아는 소망입니다. 최소한 그분의 생각과 길이 나와는 다르다는 분명한 인식입니다. 그런 인식이 있는 신자에 한해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헛되이 되돌아가지 않는 법입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란 책이 나오기 전까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를 중심으로 해와 달과 모든 별들이 회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지구가 중심이 아니고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당시 교권을 가진 이들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고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진실 그 자체를 바꾸거나 변경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어떤 일들에 대해 가치판단을 할 때, 그 모든 것의 중심에 나를 놓고, 나의 입장과 경험, 나의 현실적 이익을 기준삼아 판단하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부터 인생의 많은 문제들과 갈등, 분쟁이 시작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과연 이 일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8절)면서 그 차이를 하늘과 땅에 비유합니다.

가끔 믿음이 좋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가 바라는 소원이 주님의 소원이요, 자기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인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이며,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상실된 존재요, 하나님의 깊은 경륜과 섭리를 모두 담을 수 없는 한계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것을 고백할 때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우리 안에 담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때와 하나님의 때가 다를 수 있음도 알아야 합니다. 전도서 3장 1절은 “천하의 범사가 다 때가 있고 기한이 있다”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때에 그 기회를 살리는 사람입니다.

이사야는 “지금이 바로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요, 하나님을 부를 때”라고 합니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일을 이룰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을 때가 온다는 긴박한 호소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그 나라가 회복되어질 비전을 보여 주십니다. 포로가 되고 갈라진 민족이 다시금 일어나 하나의 모습으로 회복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그 벅찬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각은 반드시 이루어질 때가 있습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 그 온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음같이”(사 55:10) 반드시 열매를 맺는 때가 옵니다.

잠언 기자는 “무릇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니”(잠 23:7)라고 했습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의 모습과 미래가 전혀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을 품고 그 뜻을 좇아갑니다.

오늘 우리들의 생각은 무엇을 향하고 있습니까?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롬 8:6)이라 했습니다. 인간적인 이해관계나 세상의 이념, 과거에 얽힌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하심 앞에 우리 자신을 세우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맞으시기를 바랍니다. (김덕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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