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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QT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작성자사랑하는사랑을위하여|작성시간18.03.16|조회수191 목록 댓글 0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시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 4:8-11)


거룩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코데쉬’(kodesh)는 ‘잘라냄, 분리함’을 의미하는 말로 ‘더러움과 분리된 상태’를 말한다. 원래 거룩은 하나님께만 있는 성품으로 모든 피조물과 완전히 다르게 구별되심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사 12:6; 17:7; 41:14)라고 불렀다. 


거룩은 하나님의 속성 중 가장 중심을 이루는 말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첫 번째로 요구되는 명령이다(레 19:2; 벧전 1:15-16).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그 자체만으로는 거룩하지 못하며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계될 때 거룩하게 된다. 


다음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과 관련하여 거룩해진 것들이다. 


● 거룩한 장소 

하나님의 임재와 현현이 있는 특별한 곳(신 23:14), 떨기나무(출 3:5), 시내 산(출 19:23), 이스라엘 백성의 진영(레 10:4-5), 언약궤가 머무는 곳(대하 8:11), 벧엘과 호렙(창 28:17; 왕상 19:8), 약속의 땅(출 15:13), 예루살렘 성(사 48:2; 52:1-2) 등. 


● 하나님에 의해 구별된 시간

안식일(창 2:3; 출 20:8; 느 9:14; 10:31; 사 58:13), 안식년(레 25:2-7), 희년(레 25:8-18) 등.


● 제사 의식과 관련된 모든 물건들 

제사와 예물(레 7:1), 십일조(신 26:13), 제사장의 예복(레 16:4), 거룩하게 구별된 물건들과 접촉한 물건들(출 29:37; 학 2:12). 


● 이스라엘 백성 

이들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택하셨기 때문에 거룩하며,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킴으로 거룩해진다(레 19:2). 



신약에서의 거룩의 예


● 예수님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을 공유하고 계신 분으로(요 10:36; 계 3:7) 태어나기 전부터 천사를 통해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눅 1:35)로 불릴 것이 예언되었으며 귀신들로부터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고 불렸다(막 1:24; 눅 4:34; 요 6:69). 그 밖에도 예수님은 ‘거룩하고 의로운 자’(행 3:14), ‘거룩한 종’(행 4:27, 30)으로 언급되었다.


● 성령 

그리스도와 같이 성령은 거룩한 분으로 거룩을 교회에 나누어 주시는 분이다(롬 15:16; 살후 2:13).


● 신자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히 2:11; 10:10, 14) 구원받은 신자들은(교회) 성도라고 불린다(롬 1:7; 고전 1:2; 골 3:12). 믿는 자들의 거룩은 그리스도로 인한 것이므로(고전 1:30) 그의 백성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살도록 요구된다(롬 6:19; 12:1; 살전 4:3-7; 벧전 1:15; 2:5; 벧후 3:11). 그러므로 거룩한 삶은 영적인 차원뿐 아니라 윤리적 차원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마 5:8; 롬 12:13; 고전 6:11; 10:16-17; 16:20; 엡 4:12-16; 빌 2:17; 유 1:20). 



우리 그리스도인이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여 선택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그의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둘째, 거룩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거룩한 삶을 살아 가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축복을 누릴 수 없는 위험에 놓여 있었다. 하나님께 대해서 거룩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그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자들은 반드시 죽이라고 명하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해서도 우리를 성전 삼으시고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임재하는 그가 성전을 더럽히면 멸하시겠다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거룩한 삶을 살지 않는다고 택한 자라면 지옥에 보내는 것은 아니지만 약속하신 신구약 66권의 복을 금생과 내생에 누릴 수 없는 비극에 처하게 됨을 말씀하신 것이다.

**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 11:45)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살전 4:7)

**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 3: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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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 레지날드 히버(1783-1826). 영국의 목사. 위트터치의 문법학교에서 시작을 배운 그는 42세에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을 때까지 인도 캘커타 지역의 국교회 감독을 역임하는 등 여러 곳에서 사역을 담당하였다. 그는 추앙받는 인물이었으나 교만하지 않고 ‘면류관을 주께 빗어드리는’ (2절) 삶을 살았다.


[작곡] 존 바커스 다이크스(1823-1876). 영국의 목사. 작곡가

/이 곡은 부활절 후 여덟 번째 주일인 성삼위 주일을 위해서 지었다. 이 찬송 중에는 1절과 4절의 끝부분에 삼위일체 교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니케아회의(325년)의 명칭을 따서 곡명으로 붙였다



영국 국교회 레지날드 히버 목사가 계 4:8-11을 의역한 것으로, 피조물과 구별되는 창조주 하나님의 탁월하신 성품('거룩하심', '전능하심', '자비하심 등')을 인하여 찬양할 것을 가르친다. 이 찬송은 특별히 삼위일체 주일(부활절이 지난 후 여덟번째 주일)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히버가 삼위일체 주일에 사용하기 위해 작사한 것이다.


이 주일은 주후 325년 니케아 회의를 기념하는 주일이다. 니케아 회의는 아리우스 이단에 반대하고, 삼위 일체 신앙을 확고히 하였다. 이 회의의 주된 논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성부 하나님의 신성과 과연 동일한 것인가' 라는 것이었다. 아리우스 이단은 동일성을 부정했으나 아타나시우스 및 다른 소수의 지도자들은 동일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삼위 일체 신앙이 1절과 4절에 잘 나타난다. 작곡자는 이 곡에 '니케아'(Nicaea)라는 곡명을 붙였는데, 그것은 작시자의 의도를 잘 살린 제목이다.  



♣찬미의 내용이 없는 찬송은?♣


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미국에 유학을 가 신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매일 예배를 드리며 찬송을 부르는데 자기가 아는 찬송을 한 장도 안 부르더라는 거예요. 그가 아는 찬송도 거의 미국 곡인데 말이죠. 하도 궁금해서 룸메이트에게 물어 보았답니다. “이 학교에선 내가 아는 찬송을 왜 한 장도 안 부르지?”라고요. 그랬더니 친구가 되물었답니다. “너희 한국에선 무슨 찬송을 부르는데?”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죠.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울어도 못 하네’ ...” 그랬더니 그는 껄껄대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이 사람아, 그 건 찬송(hymn)이 아니고 복음가(gospel song)야.”라고요. 갑자기 헷갈리죠? 우리가 잘 아는 찬송들이 찬송가에 다 들어있는 데 찬송이 아니라니요?


초기 기독교의 지도자인 어거스틴(St. Augustine, 354-430)이 말한 찬송의 정의를 소개할까합니다. 그는 찬송이란 찬미하는 노래로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인데 그 중 한 가지만 빠져도 찬송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찬미’, ‘노래’, ‘하나님께 드려짐’을 가리켜 흔히 ‘찬송의 3요소’라 일컫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거스틴의 찬송의 3요소 중 첫 번째 요소인 ‘찬미’를 중심으로 예배찬송인 이 찬송과 복음가인 ‘울어도 못 하네’(343장)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울어도 못 하네’의 가사에선 찬미의 내용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혹 나타날까하여 끝까지 불러 봐도, 후렴에 “나를 구원 하실 이 예수 밖에 없네”라든지, “4절에서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로 끝났지, 감사하다든지, 영광을 돌린다든지 하는 찬미의 내용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노래는 ‘찬송’(hymn)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찬송을 보세요. 처음부터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이른 아침 우리 주를 찬송 합니다”하지 않습니까? 찬송, 경배, 감사, 찬미, 영광, 존귀 같은, 드리는 내용이 있어야죠. 즉 찬송가는 예배 적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복음가는 예배의 내용보다 복음적인 데 비하여) 우선 이 정도 해 놓고 이 찬송에 대하여 살펴보죠.


곡명 NICAEA는 소아시아 비누니아 지방애 있는 지금의 이즈닉의 옛 도시이름인데, 그 곳에서 열렸던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 1차는 325년, 2차는 787년)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니케아신조’(Nicaea Credo)를 채택한 이 공의회에선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하는 아리우스주의자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호모우시오스(homoousios, 동일본질성)란 단어로 표현하고 삼위일체론을 확고히 하였지요. 그런 의미에서 제목만 보고서도 이 찬송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드리는 귀한 찬송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찬송은 멜로디를 보나 시로 보나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노래를 시작하면서 음이 계단처럼 한 층, 한 층 올라가죠? ‘도도 미미 솔솔’하면서... 이는 하나님의 존전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씩 올라가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데요, 이 역시 음화(音畵, word painting, 115장 참조)로서 음의 상징(tone symbol)이라 볼 수 있습니다. 


‘도 미 솔’하며 계속해서 오르면 제일 높은 정점은 어디이겠습니까? 네 째단 첫 소절을 보면 우리 가사에서 ‘성삼위 일체’의 ‘성’자가 제일 높은 음인데, 영어 원문 가사의 ‘God in three Persons’에서 ‘God’에 이르는 것입니다. 위 음 ‘도’의 그 높은 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오른 것이죠.


그 뿐만이 아닙니다. 가사를 살펴보면 ‘거룩 거룩 거룩’ 하는 처음 시작 부분도 요한 계시록 4장 8절 말씀인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의 영어 성경 본문을 “Lord God Almighty"라고 찬송 시에 그대로 인용되고 있어 더욱 성경적이어서 은혜롭고요, 이 찬송이 지닌 문학적인 아름다움도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영어찬송을 불러보면 금방 느낄 수 있는데요, 영어찬송 가사에서 4째, 8째, 10째, 12째, 16째 마디 모든 끝 음의 발음이 ‘이’(i)모음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주 단어인 ‘Holy’는 물론이고, ‘Almighty’ ‘Thee’ ‘see’ ‘sea’ ‘seraphim’ ‘Mighty’ ‘Trinity’ ‘be’ ‘purity’등 모두 ‘이’모음으로 끝나죠? 운(韻, rhyme)이 착착 맞아 들어가 시를 더욱 아름답게 합니다. 각 행의 처음 시작하는 패시지도 마찬가지인데, ‘Holy’ ‘Lord’ ‘All’ ‘Tho''''’ ‘Early’ ‘Only’ ‘God’ ‘Perfect’ 같은 단어로 거의 ‘어’모음으로 되어 있지요. 이런 시적 감흥을 우리말로 옮기기는 절대 불가능하지요.


3절에서 “모든 죄인 눈 어두워 보지 못 하네” 하는 대목은 하나님의 숨결을 쉬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천국의 이 귀한 장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면류관을 쓰신 보좌 위의 주님과 천군천사들과 수많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아름다운 찬송소리도 들리지 않겠죠.


이 찬송 시를 쓴 히버(Reginald Heber, 1783-1826)의 찬송은 273장, 298장, 398장, 그리고 작곡자인 다익스(John Bacchus Dykes,1823-1876)의 찬송은 59장, 81장, 85장, 129장, 140장, 429장, 477장, 508장이 우리 찬송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김명엽 찬송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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