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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QT

달리다굼

작성자사랑하는사랑을위하여|작성시간18.10.06|조회수291 목록 댓글 0


달.리.다.굼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막 5:38-41)

거라사 지방에서 배를 타고 건너 오신 예수님께 회당장 야이로가 와서 엎드렸습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와 함께 딸아이를 살리시기 위해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다 내어 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셨습니다. 아이는 이미 죽어 있어 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라고 말씀을 하시자 12살된 소녀가 일어나 걸었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크게 놀랬고, 예수님께서는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 [Talitha Koum]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킨 때에 말씀하신 아람어의 음사이다.마가복음에만 나오는데(막 5:41) 예수께서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아람어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즉 달리다굼’에서 '달리다'는 어린 암양을 말하는데, 소녀를 부르는 애칭이기도 했다. '쿰'(qum)은 '쿠미'(qumi), '일어나다'라는 단어의 여성 단수 명령형이다.

영적인 의미에서 달리다굼이란 무슨 의미일까요?

1. 달리다굼이란 죽은 자를 일으키는 주님의 권능의 음성입니다.

달리다굼은 죽은 성도들을 향해서 부르시는 주님의 권능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육신의 장막을 잠시 떠나 무덤에 있을 때가 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님께서 심판의 때가 되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면서 큰 소리로 호령하여 달리다굼이라고 우리를 부르실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 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6-17)

"달리다굼"은 병든 자를 향해서 부르시는 주님의 권능의 음성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루살렘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향하여 베드로와 요한이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일어나라 라는 말씀의 의미는 달리다굼입니다. 

결국 달리다굼은 병든 자를 향하여 신유의 능력을 보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달리다굼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영적, 육적 질병에서 고침 받읍시다. 


2. 달리다굼이란 환난 날에 기도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의 응답입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소녀의 아버지 야이로는 주님을 급히 찾아가 간청을 했습니다. 성도들이 위급할 때 하나님을 찾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도들 가운데는 건강의 환난, 가정의 환난, 사업의 환난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낙심하며 절망하며 믿음에서 떠나 세속에 묻혀 원망하고 반항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믿음의 생활을 한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어려움을 당할 때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부자나 권세자나 지혜와 지식이 많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병들고 약하고 가난하고 남들이 돌아 보지 않는 죄인과 소외된 자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 9:12-13)

주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은 낮이나 밤이나 언제나 항상 우리들 곁에 계시고 우리들을 지켜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언제나 우리들을 사랑과 용서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환난이 임하면 안심하고 주님이 계시는 성전으로 달려나와 기도로 주님을 찾고 부르짖읍시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응답하십니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시 118:5)

고통 중에 환난 중에 주님을 부르면 주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구원의 손길을 뻐쳐주십니다. 주님은 야이로의 간청에 응답하시고 구원의 발길을 야이로의 집으로 돌리셨던 것입니다. 달리다굼이란 환난 날에 기도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축복의 응답입니다. 

환난의 날에 하나님을 부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신다고 시50:15에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달리다굼은 환난 날에 기도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축복의 응답입니다.

환난을 당한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을 찾아와 그분의 발아래 엎드리어 맣이 간구하기를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라고 간청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들이 달려와 "당신의 딸이 죽었으니 이제는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히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딸의 비보를 듣고 낙심한 야이로에게 주님께서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퓨즉 환난 날에 두려워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환난을 당하면 두려워하지 말고 성전에 나와 엎드려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환난을 당하면 불평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반항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멸망으로 가는 길 인 것입니다. 

"달리다굼"은 불평하는 자, 낙심하는 자, 반항하는 자를 향해서 하신 주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즉 달리다굼이란 절망 속에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신 주님의 소망의 음성입니다. 죽은 딸자식의 비보를 접한 아버지는 그만 맥이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 주께서 야이로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 낙이 없고 아무 힘이 없을 때 주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여 주십니다. 달리다굼 일어나라고.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지난 생애의 발걸음을 돌이켜 봅시다. 빛을 잃었을 때 주님은 내 빛이 되어 주셨고 가난했을 때 주님은 내게 부유함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인생에 실패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한 이별을 하고 낙심되어 울고 있을 때 주님은 내게 위로 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캄캄한 인생길 홀로 걸어가다 지치고 곤하여 내 영혼 깊은 잠이 들었을 때에도 주님은 나에게 달리다굼 하셨습니다. 


3. 달리다굼은 영적으로 잠자는 자들을 일으키는 주님의 음성인 것입니다. 

사탄은 현대 문명을 악용해 우리의 영혼을 잠재우고 있습니다. 마귀는 지금 잠자고 있는 영혼들을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키려고 두루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 리는 이 때 정신없이 잠자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심령들은 "달리다굼"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기도의 제목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데교회 성도들처럼 살았으나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에배소교회 성도들처럼 처음 사랑을 잃어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한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처럼 말씀을 들어도 심령이 냉랭하지는 않습니까? 

원수 마귀는 우리가 영적으로 잠잘 때 가라지를 뿌리고 갑니다. 성경은 마13:35에서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심령이 어둡고 영적으로 잠을 자게 되면 세상에 것들인 가라지들을 뿌리고 갑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게 되고, 명예를 추구하게 되며, 권세를 차지하려고 혈안이 됩니다. 

"잠자는 영혼아 일어나라 ! 믿음과 사랑이 식어 가는 자녀들아 일어나라" 주님은 우리를 향해 '달리다굼'하시면서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이 음성을 듣고 영적으로 깨어 일어납시다. 주님을 떠나 방황하는 나에게 주님은 오늘도, 내일도, 아니 세상 끝날 까지 나에게 "달리다굼" 하시면서 영적인 잠을 자는 나를 부르시고 깨우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부르시는 이 음성을 듣고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믿음의 잠에서,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충성의 잠에서, 기도의 잠에서 일어납시다. 할렐루야!! (KCM)

주님의 말씀에 생명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듣는 사람들은 살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셔서, 
그 속에 생명을 가지게 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또,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다. 
그것은 아들이 인자이기 때문이다.
이 말에 놀라지 말아라.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
나는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나는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심판한다. 
내 심판은 올바르다. 
그것은 내가 내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분의 뜻대로 하려 하기 때문이다.
(요 5:24-30,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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