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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Korean (가해)

20260606 연중 제9주간 토요일 강론

작성자그리움하나|작성시간26.06.06|조회수27 목록 댓글 1

(2 티모 4,1-8, 마르 12,38-44): 식지 않는 열정으로 오늘을 달려갑시다!

 

예수성심성월의 거룩한 의미를 되새기면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당신의 열정과 사랑을 다하셨던 주님의 성정(性情)을 되새겨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만큼 그 사랑에 매료되어 온전히 하나로 일치된 영이셨기에, 하느님을 기쁘게 하지 않고는 견디실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만큼 사랑하기에 온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삶을 매진할 수 있고, 또 그 열매 또한 소중하고 값지게 맺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동시에 가장 사랑하는 일은, 사랑하는 그만큼 도달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에 가장 고통스러운 선택이기도 합니다. 그 사랑하고 기대하는 만큼 돌아오는 상처도 큰 법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간절하고 아름다운 꿈을 이루고 그 과정을 통해 이 세상에 사랑과 선을 이루기 위해 복된 저마다의 성소(聖召)에 응답합니다.

 

하느님께 봉헌하는 사제나 수도자의 길도 그러하고, 평신도로서 가정이나 자기 삶의 자리에 투신(投身)하는 여정 또한 그러하겠지요. 그러나 가난한 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자 헌신했던 곳에서 겸손하고 거룩한 사랑의 절정을 만나기보다 오히려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거나 더욱 깊은 모순이나 권력적 질서에 휘둘리는 모습을 만나게 될 때는, 그 실망이나 깊은 상처적인 체험의 반복이 일생의 좌표와 희망을 뿌리째 흔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수없이 넘어지셔도 다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일어서신 주님을 그려봅니다. ‘영광의 주님이시면서도, ‘처참한 몰골로 걸어가야 했던 그 고단한 길 위에서도 아버지의 사랑을 바라보며 당신의 소명을 완수하시던 주님의 뒤를 좇으려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 242, 5절에서,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 그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 내며,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고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라고 격려하고 계십니다.

 

실제 삶이 그러하지요. 매일 정성을 다해 강론을 준비하는 밤이나 새벽이 짙어져도 수없이 마음을 다잡습니다. 모국어와 다른 언어로 강론하고 강의할 때, 눈마저 지그시 내려감고 냉담한 신자들의 모습을 대할 때도 실상 회피하고 싶은 커다란 유혹이지요. 말씀 가운데 주님께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걸어온 삶의 여정을 녹여내어 한마디라도 살아계신 주님의 목소리로 전하고자 정성을 다한 강론에 대해, 그 내용의 진정성과 영적 사랑보다 먼저 시간을 재는 신자들의 몸부림도 커다란 부담이나 외로움의 생채기를 남기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노력을 최선으로 생각하며 은근히 조소를 보내는 젊은 세대의 차가움을 대할 때도 그런 경험들을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강론대 위에 서면, 모든 것을 지우고 한 가지만을 생각합니다. 이곳에 머문 단 한 사람에게라도 그 삶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은총의 단비가 되어드릴 수 있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법이지요. 그리고 그 사람의 영혼이 깨어있는 그 순간만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그래도 밤을 지새는 일이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설령 듣고자 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마저 없는 사막일지라도, 하느님과의 대화는 결코 식을 수 없고 멈출 수 없는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주는 축복이니까요.

 

삶은 다른 누군가가 정의해주는 것이 아니듯이, 그렇게 충실하고 아름답게 몸부림치는 날들이 다한 뒤에 주님 품에 안긴다면 오히려 얼마나 감사하고 보람될까요?! 서간의 이어지는 7절에서 바오로 사도처럼, “나는 훌륭히 싸워왔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라고 회상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지식 혹은 은총을 받은 사람인가 하는 것이 요긴할 수 있을지 모르나, 삶의 자취를 좌우하는 필요 충분 조건은 되지 못합니다.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정성을 다하였고, 얼마나 많은 부분을 열정으로 쏟아부었는가 하는 것, 곧 봉헌의 마음이 더 중요하니까요. 그것은 곧 사랑의 크기에 비례하는 결과입니다.

 

주님께서 마르코복음 1243, 44절에서,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돌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신 것도,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에 깃든 사랑과 열정을 보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만큼 짙고 강한 사랑과 열정은, 삶의 행보(行步)가 주변적인 조건에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줍니다. 참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도록 일깨워 견고한 믿음을 더해주는 까닭입니다. 오늘도 한결같이, 그리고 꾸준히 주님의 길에 함께 응답하며 걸으시겠습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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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에우제니 | 작성시간 26.06.0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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