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주님께서 당신의 온 삶과 사랑을 우리에게 온전히 내어주신 날,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우리 가운데 오시는 성찬의 신비를 묵상하며, 주님께서 베푸시는 한결같은 사랑과 배려를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기고자 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아주 오래전 척박한 광야를 걸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억에서부터 시작하지요. 그들이 걸었던 광야는 낮에는 타는 듯한 더위가, 밤에는 살을 에어내는 추위가 찾아오는 막막하고 고단한 곳이었습니다. 굶주림과 목마름이 일상이던 그 길 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저한 무력감을 마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결코 홀로 두지 않으셨지요. 매일 아침, 광야의 바닥에 ‘만나’라는 생명의 양식을 내려주셨고, 그들 발이 부르트지 않도록, 맘이 지쳐 힘겨운 시련에 무너지지 않도록 걸음마다 동행하셨습니다. 신명기 8장 3절에서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라고 하셨던 말씀은 우리에게 그 기억을 환기(喚起)시켜 주듯이 말이지요.
이 말씀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어쩌면 우리도 저마다의 ‘삶의 광야’를 걷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이나 진로의 장벽, 삭막해지고 두려워지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혹은 가족 간의 갈등이나 건강의 악화, 불안의 증가로 인해 우리 일상이 때로 척박하고 메마르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나’,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버텨내야 하나’ 하는 눈앞의 빵 걱정에 마음이 무거워지곤 합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의 존재 근거가 단순히 육신의 배를 채우는 빵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시는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의 사랑에 있다고 부드럽게 일깨워주십니다. 하느님은 우리 영혼의 목마름까지도 섬세하고 깊게 배려하시는 분이시니까요.
더 나아가 요한복음 6장 51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라고 선언하셨듯이, 주님께서는 구약의 만나를 넘어,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온전히 내어주시는 ‘살아있는 빵’이 되어 오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가슴 벅찬 배려입니까? 주님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미사 중에 모시는 작은 성체 한 조각을 통해, 주님은 우리의 연약한 몸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오십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지친 영혼을 치유하시고,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하신 말씀처럼 우리와 가장 깊은 내적 일치를 이루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위로나 물질로도 채울 수 없던 우리 마음의 빈자리가 주님의 현존으로 채워지는 순간입니다. 이 성체의 힘이야말로 우리가 매일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이자, 세상을 버텨낼 영적인 에너지가 됩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1서 10장 17절에서,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한 빵을 나누어 먹기 때문입니다.”라고 전하고 있지요. 곧, 우리가 성체를 모시고 주님과 하나 되는 이 은총이, 나 개인의 신심이나 위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혈이 담긴 잔을 마시고 하나의 성체를 나누어 모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형제자매로 연결하는 ‘한 몸’이 되는 것이니까요.
이 말씀은 우리 곁에 있는 이웃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게 만듭니다. 우리는 매주 미사에서 같은 성체를 모시면서도, 성전 문을 나서는 순간 내 곁의 이웃이 겪는 광야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하지요.
성체성사의 거룩한 일치는, 내 곁에서 아파하고 외로워하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짐을 함께 나누어서 질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살과 피를 아낌없이 내어주셨듯, 우리도 주님의 지체인 이웃들에게 우리의 시간과 마음, 그리고 작은 사랑을 내어주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대축일은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우리의 메마른 삶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 함께하고 싶어 하시는지를 다시금 깨닫는 은총의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모시는 거룩한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의 가없는 사랑이 우리 마음의 상처를 따뜻하게 치유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그 힘으로, 이번 한 주간 우리 가족에게, 직장 동료들에게, 그리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어줄 수 있는 복된 성체의 삶을 살아갑시다. 우리가 그렇게 서로에게 작은 빵이 되어줄 때, 우리가 걷는 이 세상의 광야는 주님의 은총과 평화로 가득 찬 하느님 나라로 변화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머무시는 살아있는 빵,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축복이 오늘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늘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