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왕 17,1-6, 마태 5,1-12)
살아가는 어떤 순간, 가끔은 아무런 열매도 맺히지 않고 숨죽인 적막이 주변을 감싸는 끝없는 가뭄처럼, 마치 사막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요.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을 가늠하려 해도, 어느 노래 가사처럼,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싸인 길, 멀어져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과 같이 느껴져서 막연하고 외로움이 찾아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마치 삶의 여정이 고달프고 언제 어떤 일들을 맞닥뜨릴지 헤아릴 수 없어서, 삶의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 자존감을 얻지 못한 채 수동적으로 살아가게 되기도 하지요. 현실적인 장벽 앞에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나 기반을 갖지 못했다고 여길 때, 혹은 다른 이들과 비교되는 상황이 더욱 아프게 파고들 때는 그 아픔이 배가(倍加)되기도 할 것이고요. 또한 그런 마음을 누군가로부터 어떤 편견도 없이 이해받고 힘을 얻기까지는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 막연함이 주는 무게 또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이 되겠지요.
그래서, 그렇게 절박할 때 오히려 희망에 대한 목마름은 간절할 것이고, 어떻게든 현실을 타개하려는 몸부림 또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현실이 어떻다 하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정성을 다해서 살아가는 이 순간들이 쌓이고 채워질 때, 반드시 선과 좋은 결과로 돌아올 것이라는 소박한 희망이 그저 신기루와 같은 망상으로 치부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 소명과 의무가 있으니까요.
그러기에 오늘 주님 말씀은, 결코 이 세상을 우리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란 믿음과,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주실 위로와 평화로 이끌어줍니다.
열왕기 상권 17장 3절, 4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곳에 가뭄을 예고하며 자신 또한 배고픔과 목마름에 처할 엘리야 예언자에게 “이곳을 떠나 동쪽으로 가, 물은 그 시내에서 마셔라. 그리고 내가 거기에서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하겠다.”라는 주님 말씀이 전해집니다.
메마른 곳을 피하여 목을 축이도록 이끄시는 자비, 힘겨움 속에 의지할 수 있도록 내어주시는 온기가 있는 품, 절망에 허덕일 때 기묘한 인연으로 자비를 드러내시는 주님의 현존(現存)을 감히 느낄 때마다, 한없이 작고 초라한 저 자신의 미약한 목소리와 기도의 외침마저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시는 섬세한 모성의 하느님을 깊이 만나왔습니다. 그것이 저의 성소(聖召)를 지탱해 주었던 든든한 보루였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응답의 절정입니다.
마태오복음 5장 3절부터 12절 사이의 말씀은, 그와 같이 우리가 멈추어 서 있는 그곳의 처지를 가장 명확히 헤아리시고 채워주실 주님의 은총을, 너무나 따사롭고도 명료한 확신으로 새겨지도록 일러주십니다.
산상에서 제자들인 우리를 굽어보시며 건네시는 거룩한 설교의 말씀에는, 오늘날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인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실제적인 아픔들이 적나라하게 들추어집니다. 가난과 슬픔, 세상을 견뎌내는 강함 속에 드러나는 온유함,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 안에 고통받는 이의 현실 앞에서 느끼는 정의에 대한 목마름, 숱한 유혹 가운데서도 지켜내는 순수를 향한 갈망, 폭력과 억압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평화에 대한 기도, 진정으로 투신하는 데 따른 박해의 현실은 바로 척박한 이 땅 위에서 최선을 다해 지켜보려는 처절한 부르짖음이 집약된 것이니까요.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영적인 대답으로 그 귀결을 돌려주십니다. 그러나 그 영적인 해답이 결코 우리 현실과 유리된 이상적인 신앙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아파하고 있는 이 순간, 이곳, 이 땅 위에서 현실화될 것이라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와 영원한 위로, 천상의 머물 곳, 자비와 하느님을 만날 은총, 하느님 자녀로서의 소명 등은 결코 ‘언젠가’ 다가올 내세(來世)를 바라보는 미지(未知)의 영역에만 머무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적 가치를 살아갈 때 이곳이 우리가 살아 나갈 하느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곁에 있는 이에게 온기를 실어 진심 어린 존중을 전할 때 새겨질 위로가 삶의 희망으로 싹틀 테니까요. 그럴 때 두 발을 디디고 선 이 땅이 살아갈 만한 천상의 예표가 될 테니까요. 바로 우리 서로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소중한 존재임을 확인하게 될 테니까요.
그렇게 하느님 나라는 가까이 있되, 우리 각자를 통해 그 조각이 흩어져있을 뿐입니다. 그 사랑이 모아지고 또 모여들 때, 그래서 전체의 그림이 짜맞추어 지면, 비로소 이곳이 목마름과 배고픔을 씻고 채워줄, 예언이 완성되는 곳, 현실로 이루어진 하느님나라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불림받은, 대체 불가능한, 소중한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