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왕 17,7-16, 마태 5,13-16)
주님께서는 진복 팔단을 선포하신 산상설교에서, 우리 각자가 저마다의 삶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의 모습을 하느님의 사랑과 지혜 안에서 영적으로 변화될 축복의 근거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이 실상 부정적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판단과 예상을 뛰어넘어 모든 것의 조화를 근본부터 이루시어 다시금 하느님나라에서 완성될 은총으로 변화되게 하신 거지요.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의 모습이 초라하고 가난할 지라도,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채워가는 매일매일의 땀과 눈물을 결코 사라지는 허상(虛像)으로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부족한 저 역시 실제로 삶의 여정에서 체험하여 왔던 소중한 기억의 선물로 남아있습니다.
사렙타의 과부는 한 줌 남은 밀가루와 병에 조금 남은 기름마저, 엘리야가 전했던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아낌없이 내어주었지요. 그리고 열왕기 상권 17장 16절과 같이,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는” 축복을 얻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일찍이 마더 데레사는, 우리가 지닌 부유함을 힘임어 무엇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우리일지라도 그 존재 자체를 내어주는 것이라고 하신 바가 있지요. 가진 것의 일부를 주는 것은 바로 그것만을 주는 것이지만, 비록 초라할 만큼 가난하더라도 존재를 주는 것은 남은 공간이 없는 사랑을 온전히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처럼 가진 것의 일부는 세월이 더할수록 사라지고 그 크기가 줄어들다 소진되고 마는 것이지만, 전부를 주었던 마음은 갈수록 가슴에서 가슴으로 옮아가 소중하게 불씨를 건네주고 어두웠던 마음을 밝혀줄 것입니다.
마태오복음 5장 13절, 14절, 15절, 16절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형체를 잃고 녹아 들어야 비로소 소금이 제 맛을 내고, 자기를 녹여 타들어가야 비로소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되는 법이지요. 스스로 자기를 버리는 가난을 통과할 때 다른 이의 허허로운 고통과 외로움을 헤아릴 수 있고, 가슴이 타들어가는 번민의 고통을 딛고서 비로소 상처 입은 이의 영혼을 치유하고, 세상의 빛을 더하는 주님 복음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가난을 통하여 가난의 현실을 치유할 수 있는 바탕에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연민과 영적 은총의 힘이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시련이나 힘겨움도, 우리가 그 모든 것을 하나의 여정으로 받아안을 힘을 기르고, 남은 것을 계산하지 않는 순수한 사랑으로 내어줄 때, 선(善)과 사랑의 열매를 이 땅에 맺을 수 있는 축복으로 변화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의 가운데 허락되어 주어진 모든 여건을,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을 향해 나아가도록 받쳐주는 디딤돌로 삼을 수 있는 혜안과 인내로 저 끝자락까지 다다를 용기와 너른 지혜의 은총을 간청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믿고 나아갑시다. 마침내 우리가 주님의 빛으로 아름답게 빛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