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 7,6-11, 1 요한 4,7-16, 마태 11,25-30): 주님의 성심으로 물들고, 그분의 사랑으로 피어나라
무척이나 뜨거운 열기가 데우는 날, 이 땅 위와 대기의 온도보다 더욱 뜨거운 주님의 성심(聖心)이 우리 마음 가득히 물들이도록 기도하는 마음이 감싸안는 시간입니다.
때로는 무질서한 세상의 혼돈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거듭하는 상처와 반목의 움직임을 마음 깊이 눈물과 엮어 묵상하면서, 부디 주님 사랑이 붙들어 줄 수 있는 사랑과 평화가 저 멀리 있는 신기루가 아니기를 바라는 맘 깊어집니다. 비단 이 세상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은, 주님 당신께 맡겨두는 게으름이나 회피가 아니라, 바로 당신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이 땅 위에서 갈망하는 우리의 성실한 땀과 행동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그 일에 함께 하도록 우리를 부르고 계시지요.
신명기 7장 7절에서, “주님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주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것은 너희가 어느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길 위에 초대받은 당신의 종으로서 감히 저의 성소(聖召)를 돌아보아도, 그 부르심의 따스한 추억에는 저의 능력이나 인간적인 능력이 바탕을 이룬 것이 아니라, 외려 당신의 섬세하고 자애로운 섭리로 이루신 축복이 채워져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사랑하도록 이끌어주신 정서적이며 영적인 가정의 배경이 그러했지요.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마련해주신 좁은 골목과 아픈 이들과의 교감으로 성장해 올 수 있었던 시간도 그랬습니다. 인생의 올곧은 목적을 부여잡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의지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저 혼자만으로는 이룰 수 없었던 것이 당신께서 이끄신 여정에 놓여있었다고 말할 수밖에요.
기어이 돌아보면, 당신께 돌려드릴 수 있는 것은, 이어지는 11절에서, “네가 오늘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명령하는 계명과 규정들과 법규들을 너희는 지켜야 한다.”라고 했던 말씀에 어긋남이 없이 응답하도록 다져주신 이 영혼과 육신이 전부입니다. 이렇게 응답할 수 있는 것 또한 요한 1서 4장 10절에서,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라는 말씀이 영혼을 파고든 까닭입니다. 그리고, 그토록 큰 감사로움이 당신께 희망을 두고 성숙해 올 수 있었던 근저가 되었던 덕분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 머물다 가는 것만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자부하거나 포기하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어느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는 끈기와 사랑의 힘을 간구하면서 살려는 것입니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메마른 곳이 적셔지는 은총이 되도록, 외로왔던 이에게 벗이 되어주도록, 가뭄 들어 멈추어 선 영혼의 땅이 다시 생기를 얻도록 하는 복된 은총의 도구가 되기를 기도하며 나아가려 합니다. 이어진 13절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하셨던 말씀을 온전히 믿으면서 말입니다.
주어진 시간과 여건이 우리의 삶마다 전혀 다르진 않을지라도, 어떤 지향과 의지를 가지고 나아가느냐에 따라 삶의 온도와 열매는 너무도 다를 것입니다. 주님의 성심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우리를 태우도록 내어드리지 않겠습니까?!
마태오복음 11장 28절, 30절에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라고 하신 주님 말씀과 같이, 모든 여정이 다다른 그 끝자락에서, 살아계신 주님 품안에 쉴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주님 안에 쉬기까지는 제 영혼이 착잡하였나이다.”라고 고백했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처럼, 정성을 다한 삶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다음 주님과 함께 할 은총으로 불림받도록 기도하는 복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