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왕 19,19-21, 머태 5,33-37): 주님의 옷을 입고 나아갈 준비를 하십시오
삶의 과정에서 어떤 결정적일 때가 오면, 지금껏 머물어 익숙해져 왔던 그 자리에서 기꺼이 벗어나 새로운 삶의 자리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결심과 용기 있는 행동이 뒤따라야 하지요. 그것이 인간적으로 기대어 왔던 평화를 흔들어 놓기도 하고, 심지어는 새로운 불안요소와 함께 힘겨운 고난의 시작처럼 다가오고 절감(切感)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변화에 따른 고통을 감수해야만, 비로소 성장할 수 있고 또 다른 한 단계로 뛰어넘어 나아갈 수 있는 법이지요. 그러기에, 삶은 늘 일종의 도전의 연속이고 시험을 통해 넘어가는 하나의 여정(旅程)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여행의 과정이란 늘 평탄하고 안전한 길만이 놓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굴곡을 맞닥뜨려야 하는 번민과 힘겨움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수긍’의 과정입니다.
열왕기 상권 19장 19절, 21절에서, “엘리야가 엘리사 곁을 지나가면서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 주었다. 엘리사는 일어나 엘리야를 따라나서서 그의 시중을 들었다.”라고 엘리야 예언자의 삶을 좇아가는 엘리사의 여정을 보여주는 장면을 만납니다.
자기 겉옷을 물려주어 걸쳐준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순간들이 채워온 경험과 권위를 넘겨준다는 뜻이 내포된 것이지요. 곧 만나는 순간의 감정만이 아니라, 지금껏 걸어온 은총과 축복까지, 그것을 물려받는 이가 충실히 살아가고 풍요롭게 하도록 힘을 실어주고자 하는 의도가 녹아있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엘리야의 발걸음을 붙좇아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한 길을 따라 걷게 되겠지요.
그 길은 인간적인 호기심이나 속적인 기대를 품고 응답하는 길이 아닙니다.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세상 가운데서 주님의 뜻을 온 몸과 영혼으로 밝혀주어야 할 예언자의 몫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모두가 흔쾌히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다가올 편안한 삶이 예정된 탄탄대로가 아닙니다. 오히려 무관심이나 무반응이 다가올 때의 외로움을 견뎌내야 하는 길이고, 수없는 오해나 반대를 직면하기도 하는 수난과 슬픔의 길이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믿음으로 지켜왔던 소중한 신념마저 흔들어대는, 그야말로 그물처럼 얽힌 이해관계 사이에서 번민과 갈등을 겪게도 될 쉽지 않은 길입니다.
오직 위로가 되는 것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사랑과 자비로 이 세상의 길을 밝혀주시는 주님께 의탁하는 믿음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분별의 기준이 되고, 주님의 행위가 따라 나서야 할 응답의 모범이 되며, 주님 친히 이루시는 일들이 지향해야 할 목적이 되도록 끊임없이 바라보고 실제로 체험을 더할 때 힘과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어떤 유혹 앞에서도, 마태오 복음 5장 37절에서,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주님께서 심어주신 양심대로 정성을 다하여 노력한 다음 모든 것을 주님의 섭리에 맡깁시다.
우리의 이성과 판단으로 예상하고 이루기를 원하는 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주님의 뜻을 묻고 찾으려는 눈물과 땀으로 주님께서 앞서 걸어가신 발자국 위에 우리의 발자국을 그대로 얹어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주체성을 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함께 하시는 주님 안에서 당신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고, 모든 것을 보시고 충만하게 하시는 주님을 깊이 뵙고 동행하는 축복으로 이끄는 은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주님의 옷을 입고, 주님 뜻을 이루도록 시중을 들 준비에 언제든 나설 수 있도록 깨어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에겐, 주님께서 맡기실 소중한 소명이 저마다 주어진 까닭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