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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Korean (가해)

20260618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강론

작성자그리움하나|작성시간26.06.18|조회수18 목록 댓글 0

(집회 48,1-14, 마태 6,7-15): 참된 기도: 내 뜻의 관철이 아닌,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 것

 

주님께서 허락하신 이 하루가 새롭게 열릴 때마다, 그리고 깊은 밤에 이르러 내일을 위한 휴식을 취할 때마다, 그 어떤 것보다 하느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며, 마음을 모두 열어 기도에 얹어 의탁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게 다가와서 질문을 던지시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기도를 ‘내가 원하는 바를 하느님께 청하고 설득하는 과정’으로 생각하곤 하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간청했던 기도가 들어지지 않는 것만 같아 실망하기도 하고, 하느님과의 대화에 마음을 닫아두거나 심지어 하느님께서 자신을 버리셨다고까지 조절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는 마태오복음 6장 8절에서,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기도가 하느님께 새로운 정보를 드리거나 우리가 바라는 것을 이루도록 이끌도록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는 행위가 아님을 일깨워 줍니다. 참된 기도는 우리의 목소리를 높이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우리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의 깊은 사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침묵의 시간이지요. 

 

집회서 48장 1절, 12절, 14절에서,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엘리사는 일생 동안 어떤 통치자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살아생전에 엘리사는 기적들을 일으켰고, 죽어서도 그의 업적은 놀라웠다.”라고 전합니다. 

 

엘리야 예언자처럼 불길 같은 열정으로 주님 말씀을 세상에 전했던 이들도, 결국은 가장 먼저 하느님의 섬세한 목소리를 듣고 주님의 영을 갈망했던 이들이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우리 삶의 자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 욕심의 소음이 걷히고 그분의 따스한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친히 이끄시는 주인이 되실 때 우리가 감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선 일들이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의 핵심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고백에 있습니다. 이는 단지 미래에 대한 막연한 유보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선하심을 온전히 신뢰하기에, ‘그분의 뜻은 이미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믿고 오늘을 봉헌하는 신앙의 신비입니다.

 

내 계획과 다를지라도 하느님의 안목이 언제나 옳음을 고백하는 겸손한 수용, 당장 눈앞에 열매가 보이지 않더라도 주님께서 이미 일하고 계심을 믿는 굳건한 신뢰가 그 바탕을 이루어야지요. 그럴 때, 우리의 기도는 ‘불안한 애원’에서 ‘평화로운 의탁’으로 변화합니다. 살아계신 주님 뜻이 이미 승리했음을 믿는 이의 마음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깊은 평화가 자리 잡게 될 테니까요.

 

이 미사를 통하여 우리는 참된 ‘기도생활’의 깊은 맛을 깨닫기를 간청합니다. 기도는 제단 앞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로 흘러 넘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의 뜻을 신뢰하는 사람은 세상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매 순간 주님의 뜻을 분별하며, 그분께서 채워주신 사랑을 가지고 고통받는 이웃과 이 세상에 실질적인 도움과 위로를 전하는 ‘살아있는 기도’가 됩니다.

오늘 하루, 내 뜻을 잠시 내려놓고 주님의 현존 안에 가만히 머물러 보세요. 이미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시는 주님의 따스한 손길이 당신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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