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2026 - Korean (가해)

20260622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강론

작성자그리움하나|작성시간26.06.22|조회수14 목록 댓글 0

(2 열왕 17,5-8.13-15ㄱ. 18, 마태 7,1-5): "눈 속의 들보를 빼내는 사랑의 시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허락하신 복된 하루의 시작에 새로이 이루어질 모든 관계를 용서와 평화의 은총으로 충만하게 시작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구약성경의 가장 비극적인 장면 중 하나인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제1독서로 마주합니다. 실상 이스라엘이 무너진 이유는 군사력이 약해서도, 외교를 못해서도 아니었지요. 열왕기 하권 17장 7절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신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올리신 주 저희 하느님께 죄를 짓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였기 때문"이라고 적확하게 지적하였듯이 말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보내신 예언자들의 끊임없는 경고를 외면한 채, 눈에 보이는 이방 민족들의 화려한 풍습과 우상을 쫓았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비껴나 '세상의 눈'으로 자신과 이웃을 바라보기 시작한 순간, 그들의 영성은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이 이스라엘의 비극은 마태오 복음 7장 3절에서,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예수님이 경고하신 말씀과 영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지닌 부정적인 요소 중 타인의 아주 작은 잘못(티)은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기가 막히게 찾아 내면서도, 정작 자기 안에 있는 거대하고 고질적인 죄와 교만(들보)은 보지 못하는 ‘영적 맹목’이야말로 참 기묘하다 할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했던 이유와 비슷하게 여겨집니다. 곧 자기 안의 부족함과 초라함,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갈망을 직면하기 두렵기 때문이지요. 열등감이든 시기심이든 결국 자기 내면의 어떤 부정적 요소를 회피하게 만드는 주요한 내적인 원인이 작용하는 탓입니다.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보기가 무섭고 괴로우니까, 본능적으로 시선을 밖으로 돌려 남의 '티'를 들춰내며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나아'라는 ‘자기 합리화’의 ‘가짜 위안’을 얻으려는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 "남을 심판하지 마라"고 하신 것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착하게 살라는 훈계가 아니라, 우리 영혼을 살리기 위한 '치유의 처방전'입니다. 타인을 끊임없이 심판하는 마음 안에는 결코 하느님의 평화가 머물 수 없고, 결국 남을 판단하는 저울은 결국 나 자신을 옥죄는 감옥이 되기 때문입니다.


형제의 눈 속에서 '티'가 보일 때, 우리는 분노하거나 정죄하는 대신 조용히 우리 자신의 내면을 향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주님, 제가 왜 저 사람의 저 모습에 이토록 흔들리고 분노할까요?’ 혹은 ‘혹시 제 안에도 저 사람과 똑같은 나약함이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탐욕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라고 스스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는 의미물음 말입니다.


이 질문을 마주하는 순간이 바로 우리 눈 속의 '들보'를 깨닫는 은총의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들보를 주님 앞에 내려놓고 눈물로 고백할 때, 비로소 우리는 비극으로 끝났던 이스라엘의 길에서 벗어나 참된 회개와 구원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빼낸 사람만이 비로소 타인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시선은 심판하는 눈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모두를 소중히 여기시는(지혜 11,26)" 자비의 눈입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 때마다 오늘 복음의 말씀을 화살기도로 바쳐봅시다. 

"주님, 제가 형제의 티를 보기 전에 제 안의 들보를 먼저 보게 하시고, 제 영혼을 당신의 자비로 먼저 치유해 주소서. 그리하여 저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날카로운 심판 대신 따뜻한 용서와 은총의 향기가 번져나갈 수 있도록 하여주소서. 아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