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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규학 시 모음 15편

작성자그도세상김용호|작성시간19.06.18|조회수514 목록 댓글 2


권규학 시 모음 1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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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을과 겨울 사이

권규학

1. 만추(晩秋)에 어울리는 짙은 향취
차가운 바람과 즐기고 싶어
초겨울, 열차여행의 옷을 입다

문득
잎을 떨군 나무 위에
나만의 집을 짓고 싶은…,

길섶으로
가을을 기록하는 바람과 억새
그들의 풍경을 두 눈에 담는다
그곳에, 뭔가 있었다

가볍지 않은 가벼움
무겁지 않은 무거움
비움과 채움의 흔적이다

비움이 있기에 채울 수 있고
채움이 있기에 다시 비울 수 있는
여행이 주는 안식을 맛보는.


2. 양버즘 나뭇잎이 거리를 뒤덮었다
그리움을 찾으러
그리워할 대상을 물색해 본다

새삼
교복차림의 고교시절이 떠오른다
스스스-
을씨년스런 바람이 나뭇잎을 긁어모으면
나무들이 계절의 향기를 널리 퍼뜨린다

실로 눈물겨운 만남이 아닐 수 없다
차창 가에 부딪히는
아름다운 서정시의 낭송이 아름답다

휑당그레-, 다랑논이 썰렁하다
서정시집 돌담 위
누런 호박 덩이가 가을 논 구경에 한창이다
세월을 낚는 농부와
언덕배기를 지키는 우공(牛公)
농촌이 맺어준 자연의 한 쌍이 아름다운….


3. 바람이 짧게 머물다 흩어지면
동행의 존재가 더욱 빛이 나고
추억의 이야기 소리도 멀리 퍼진다

함께 걸어 좋은 길
만추(晩秋)의 하루가 바람으로 스러진다
초동(初冬)의 하루가 희망으로 일어선다

사람이 곧 풍경이듯이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불멸의 이상향을 꿈꾸는 사람처럼
황무지 위에서 희망을 쏜다

한 편의 시를 쓴다
시는 쓰는 게 아니라 짓는 것이라기에
밥을 짓듯이 정성을 다한다
옷을 깁듯이 열정을 쏟는다
짓는 게 아니라 지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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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낙화(落花)

권규학

꽃이 진다
세상에 지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리
지는 꽃이야 서럽겠지만
보내는 줄기야 아쉽겠지만…,

정녕 뒷모습이 아름답다
잎이든
꽃이든
가야 할 시기를 안다는 것은……,

아름다운 그꽃
오늘 비록 속절없이 떨어지지만
내일 다시
올망졸망 예쁜 꽃망울로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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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눈먼 사랑

권규학

어느 날엔가 눈이 멀었다
그대가 내 눈에 들어오던 날
하늘에선 천둥 번개가 치고
그 다음엔 온통 암흑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당신의 해맑은 미소와
또그르르 구르는 목소리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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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음이 먼저다

권규학

너무 아픈 사랑일랑 하지 말아라
사랑이 아프다는 건
너무 아프게 사랑했기 때문일 거야

너무 깊은 사랑일랑 하지 말아라
사랑에 빠져 헤어날 수 없다는 건
너무 깊이 사랑했기 때문일 거야

피할 일이다
굳이 아픈 사랑 깊은 사랑일랑
뭐니뭐니 해도 마음이 먼저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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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밤꽃 피는 6월에는

권규학

밤꽃 피는 6월…, 농염한 꽃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밤꽃에서는 무슨 냄새가 나는 걸까?
구린내도 아니고, 구린내 비슷한 얄궂은 냄새라고나 할까?
어쨌든 밤꽃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야릇해진다.
남자인 내가 맡아도 그렇지만
특히 여자들이 밤꽃 냄새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밤꽃 향기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분명한 것 같다.
남자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까?
여자들도 다 같은 생각들을 할까?
궁금한 마음이야 한이 없지만 그냥 접어두기로 한다.

누군가 그랬다.
밤꽃에선 남자의 정액 냄새가 난다고…!

밤꽃은 생긴 모양부터가 다른 꽃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것도 지나치게 달라서 꽃이라고 볼 수도 없다.
꽃은 잎이 있고 꽃대가 있기 마련인데,
밤꽃은 유난히 길게 늘어진 알갱이의 형태다.
암튼 밤꽃 피는 6월이면 밤꽃 냄새가 온 주변을 진동케 한다.
올 6월에도 밤꽃 향기 진동하는 고향의 밤나무골에 들려
진하디 진한 밤꽃 향기에 흠뻑 취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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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봄과 겨울 사이

권규학

바스락바스락
겨울의 노랫소리 발끝에 묻어나는
마른풀이 양탄자로 깔린
하늘과 맞닿은 겨울 들길을 걷습니다

어지럽게 널린 낯선 발자국 사이
까마중 열매 같은 까만 배설물들
텅 빈 텃밭, 가득한 자연의 정취
저만치 장끼 까투리가 부부애를 뽐내는

겨울과는 같은 듯 다른 색깔
봄과는 사뭇 다른 듯 같은 느낌
마른풀 아래로
물밀 듯 새봄의 기운이 솟아오릅니다

이제는 봄입니다
아니, 아직은 겨울입니다
봄인 듯 겨울, 겨울인 듯 봄인 계절
마른풀 아래로 봄의 숨결이 들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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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람 사는 세상

권규학

가뭄이 길어지면
너무 가물다고 투정을 부리고
비가 많이 내리면
또 비 없이 맑은 날을 갈망합니다

그런 게 연약한 우리 인간입니다
또 그런 게 우리 사는 세상입니다

무사안녕의 영원한 세상은 없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햇볕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림자도 그만큼 더 진해진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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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랑하고 싶습니다 이 가을엔

권규학

사랑이 멀리 있을 때
사랑이 멀리 있다고 생각될 때
괜히 계절마저 멀다고 느껴지는…,
그래서 그런지 이 가을엔
마음까지도 부쩍 멀어지는 듯합니다

가을 숲길을 걷다가
길섶의 움츠린 풀꽃을 봅니다
이 발걸음 저 발길에 밟히고 채여
짓이겨진 몰골에 만신창이가 된 몸
제대로 성장할 기회를 얻지 못한…,
그런 풀꽃도 누군가에겐 의미이듯이
이 가을엔 사랑이 메마른 음지(陰地)
우리 사회의 외진 곳을 돌아봅니다

휘황찬란한 도심(都心)의 한 쪽 모퉁이
아무도 돌아봐 주지 않는 버려진 땅
그곳에서도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 나오고
왁자지껄 생명성(生命聲)이 들려옵니다

사랑이 비켜간 외로운 자리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시들어 가는 아이
그들도 식물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을 잃으면 저도 몰래 웃자라는 풀꽃처럼
그들 역시 어쩌다 어른이 됩니다
몸집은 작아도, 생각은 짧아도
저도 몰래 마음만 훌쩍 커버리는 아이들
이 가을, 그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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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세상의 남자라는 이름으로

권규학

누구나 사랑할 수 있지만
아무나 사랑할 수는 없다는 논리 앞에서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가 없고
미워도 미워할 수가 없는 슬픈 현실에
때론 죽음을 도피처로 선택하기도 하지만
죽음보다는 버림받는 게 더 두렵다는
이유 아닌 이유로 허탈감에 빠지고 마는……,

말이 많아서 수염이 나지 않는 게 여자라지만
여자보다 말 많은 남자가 더 많은 요즘
그런 남자의 턱에도 수염이 나지 않는 걸까?
아무리 둘러보고 재 봐도 알 수 없는 여자의 속내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도 속이 보이지 않는다는…,

세상사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기에
정도(正道)보다는 사도(邪道)로 빠지기 쉬운 법
그렇기에
바른 길을 가고자 말(馬) 머리를 돌리는 건
배신(背信)이라기보다는 결단(決斷)이라 할만하다
굶주린 맹수가 사슴의 목을 물어뜯는 건
죄악이 아닌 생존을 위한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남자들이여!
속이 보이지 않는 여자에게 집착하지 말고
눈물을 흘려야 할 때는 두 주먹을 불끈 쥐자
정처 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비록 속절없는 세월에는 꺾일지라도
절망이나 무지한 힘에는 결코 부서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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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세월의 강

권규학

한 발짝 다가서고 싶은데
한 뼘조차 가까워지질 못했다

막무가내 떼를 쓰고 싶어도
그러기엔 나이를 너무 먹었고
아무렇지 않은 듯 엉겨 붙고 싶은데
그러기엔 아직도 쌓은 경험이 적다

주고받은 소식에 설레었던 건
사랑이라기보다는 책임감이었을 뿐

그저 세월 따라 흐르고 흘러
물처럼 바람처럼 부대끼노라면
지워질 건 저절로 지워질 것이고
사라질 건 조용히 사라지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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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자라보고 놀란 가슴

권규학

싫어서 그런 걸까
미워서 그런 걸까

어쩌면 아무런 소식도 없이
모른 척 지낼 수 있는 걸까

몰라서 그런 거겠지
바빠서 그런 걸 거야

너는 그냥 무관심일 뿐이겠지만
온통 가시가 돋는다, 내 가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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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장미의 계절

권규학

장미, 너는 알까
세상 많은 꽃들의 존재이유를
장미, 너는 믿을까
5월은 너를 위해 존재한다는 걸

석가탄신일, 이런 날은
성인(聖人)의 탄생을 축하하려는 게 아니야
사실은
너의 생일을 축하하고자 사람들이 만든 거야

네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서 웃고 떠들고
폭죽도 터뜨리고 술도 마시고
아이들은 연을 날리며 난리법석을 떠는 거야

너는 알아야 해
너의 그 뇌쇄적인 아름다움을 시기해서
예쁜 꽃잎과 줄기 사이에
뾰족한 가시를 살며시 숨겨두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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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저녁놀

권규학

해거름…, 노을이 진다
너와 나, 삶의 하루가 저문다
저물녘…, 하늘이 탄다
너와 나, 우리의 사랑이 익는다

어스름…, 노을빛 사이로
우윳빛 안개가 짙게 깔리고
어렴풋…, 황금들판 옆으로
코스모스가 산들산들 교태 춤을 춘다

백발을 휘날리는 억새들의 군무(群舞)
멀리
하늘 높은 곳…, 철새들의 날갯바람에
태양의 빛내림인 양 그을린 겨울이 다가선다

한 마리 두 마리…, 늘어나는 철새들
노을보다는 그들의 가는 곳이 궁금해진다
수없이 옷을 갈아입는 자연의 활동사진
그저 감사한 눈빛으로 너를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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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조금만 더

권규학

그때 조금만 참았더라면
그때 조금만 잘 했더라면
그때 조금만 알았더라면
그때 조금만 조심했더라면…,

그럴 바에는

지금부터 조금만 더 참고
지금부터 조금만 더 잘하고
지금부터 조금만 더 알도록 노력하고
지금부터 조금만 더 조심하자

먼 훗날
오늘이 그날이 되면
지금이 곧 그때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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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혼자 피는 꽃은 없습니다

권규학

잘난 그대
너무 잘난 척 뻐기지 말아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듯이
세상에 혼자서 피는 꽃도 없답니다

그대가 잘났으면 잘난 만큼
당신을 위해 헌신하는 누군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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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자스민 서명옥 | 작성시간 19.06.18 꽃이 진다
    세상에 지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리

    지는 꽃이야 서럽겠지만
    보내는 줄기야 아쉽겠지만

    자연도
    우리네 인생도
    비슷한 점이 많아요

    인생꽃도
    피고 지는것을요
  • 작성자자스민 서명옥 | 작성시간 19.06.18 그때 조금만 참았더라면
    조금만 더 잘 했더라면


    늘 지나고 보면
    후회될 일이 많아요

    그렇게 배우며 사는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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