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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냥을 키우는 보시바라밀

작성자백련 박선영 27기|작성시간24.05.02|조회수17 목록 댓글 0

440일차 명상 일지

 

사람은 누구나 제 깜냥만큼 보고 듣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깜냥에서 벗어나는 말은 할 수가 없다

어디서 그럴싸한 좋은 말을 얻어듣고 그대로 옮긴다 해도 결국 깜냥 안에서 좋다고 옮길 뿐이다

 

이 헤아릴 줄 아는 능력, 깜냥을 불교에서는 있어 보이게 근기라고 한다 

쉽게 말해 그릇이라는 말이다 

구구단을 가르쳐도 벌써 미적분을 터득하는 그릇이 있는가 하면, 삼각함수를 가르쳐도 삼각형도 잘 그려지지 않는 그릇도 있기 마련이다 

 

그릇에 넘치는 가르침, 타고난 용량 이상의 가르침은 세상 없는 진리라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자기 깜냥 자기 그릇을 조금이라도 키우고 넓히는 것이 중요한데 어떻게? 

책을 많이 읽고 사고력을 키우거나 사색하고 글을 써보는 것도 좋고, 참선을 하고 경전을 읽고 염불하고 절하는 것도 다 좋은 방편이다

 

그러나 깨달음의 인을 심고 불종성이 꽃필 수 있는 인연을 지어주는 선근으로는 보시만 한 것이 없다

대승불교에서 괜히 보시바라밀을 육바라밀 중 제일이라고 강조한 것이 아니다

세존께서도 출가 수행자들에겐 사성제 팔정도 삼법인을 설하시고 계정혜 삼학을 닦으라고 하셨지만, 재가자는 보시와 지계를 닦아 우선 선처에 날 것을 권유하셨는데, 각자 깜냥대로 근기 따라 그릇 따라 설법도 달라지는 이런 것을 대기설법이라고 한다

 

초기불교에서 선처란 주로 천상과 인간계 중 유복한 환경 등을 말했지만, 훗날 미타 신앙이 널리 퍼지면서 왕생의 목적지는 대개 극락 정토로 통일되어간다

극락은 아마도 아나함(불환자) 과위 이상이라야 태어날 수 있다는 정거천에서 발전한 것일 텐데, 극락 왕생하면 오욕락의 쾌락을 실컷 누릴 수 있어 좋은 것이 아니라 도 닦기 좋은 환경 공부하기 좋은 여건에서 불퇴전이 보장된 수행을 할 수 있다니, 지은 복이 다하면 도로 육도 윤회의 굴레 속으로 떨어지는 천상보다 낫다 하겠다

그러나 극락이나 천상에 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금생에 깨닫기 위해서도, 번뇌가 일어나는 족족 부처님께 바치는 <단바라밀>(보시바라밀)이 요긴하다고 대주 혜해선사도 돈오입도요문론에서 거듭 강조하고 계신다

 

내 것이라는 욕심과 집착을 조금이라도 덜고 베풀 줄 아는 보시바라밀 연습은, 나와 남의 분별 경계를 허물고 자타 불이 자리이타의 무애심을 닦는 기초가 된다

베풀자, 돈이든 공덕이든 좋은 말이나 환한 표정이든

깜냥이 커지고 넓어지며 쓸데없이 시비논쟁을 일삼는 일이 줄어들어 마음이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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