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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공주 태화산 마곡사■

작성자혜연정/주분남/22기|작성시간26.01.31|조회수80 목록 댓글 0

안녕하십니까?

이번에는 태화산 마곡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ㆍ
9월 21일 (세째주 일요일)사찰순례로 다녀온 곳입니다ㆍ
추석연휴로 많이 늦어졌습니다ㆍ
그래서 9월16일사진과 11월2일 사진이
함께 탑재되었습니다ㆍ

《유튜브는 더 상세한 설명과 영상들이 담겨 있습니다ㆍ》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의 태화산 동쪽 산허리에 자리 잡은 마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제6교구본사입니다.


'春마곡’이란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봄볕에 생기가 움트는
마곡사의 태화산은 나무와 봄꽃들의 아름다움이 빼어 납니다.


마곡사지에 따르면 '마곡사는 643년(의자왕 3년)에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고려 명종때인 1172년 보조국사가 중수하고 범일대사가
재건하였다고 합니다.

도선국사가 다시 중수하고 각순 대사가 보수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이 절에 들러 ‘영산전’이란 사액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할 당시만 하더라도 30여 칸에 이르는 대사찰이었으나 현재 마곡사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을 비롯한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영산전(보물 제800호), 사천왕문·해탈문(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등의 전각들이 가람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도량의 성보로는 5층 석탑(국보)과 괘불(보물) 1폭,
범종(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목패, 청동 향로(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세조가 타던 연( 충청남도 민속문화유산)이 있으며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6권(보물)과 감지은니묘법
연화경 제1권(보물)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되어 있습니다.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에 따르면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 율사가 통도사. 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절로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으나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합니다ㆍ

절의 이름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는데, 자장이 절을 완공한 후 설법했을 때 사람들이 '삼밭의 삼 대' 같이 빽빽하게 모여 들었다고 해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과 신라 무선 대사가 당나라 마곡보철선사에게 배웠기 때문에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이라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ㆍ


마곡사는 고려 문종 이후 100여 년간 폐사되어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으나 1172년 ( 명종 2)에 왕명을 받아 보조국사가 그의 제자인 수우와 함께 왕으로부터 받은 전답 200결(160만평)에 중창하였습니다ㆍ
당시 사찰의 규모는 지금의 2배가 넘는 대가람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습니다ㆍ

그뒤 1650년(효종1) 주지인 각순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옛 모습을 찾았으나 1782년 (정조6)에 다시 큰 화재로 영산전과 대웅전을 제외한 1051여 칸의 건물이 소실되었습니다. 대광보전은 1788년 (정조12)에 재건되었고 영산전과 대웅보전은 1842년 (헌종 8)에 개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ㆍ

또한 항일독립운동가 김구가 일본 헌병 중위를 죽이고 잠시 피신해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합니다ㆍ

마곡사가 있는 태화산은.....
택리지나 정감록 등 지리서(비기) 등에 삼재(전쟁·질병·기근)와 팔난(배고픔·목마름·추위·더위·물·불·칼·병란)이 들지 않는다는 십승지지(열 곳의 뛰어난 땅)로, 또는 몸을 지키기 좋고 오래 살 땅이며.. 착한 정승과 좋은 장수가 나온다는 보신의 땅 열 곳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승의 땅은 경치 좋은 명승지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1) 보신의 땅 열 곳은..
정감록에 기록된 풍기 예천, 안동의 화곡, 개령의 용궁, 가야, 단춘, 공주의 안산심마곡, 진목, 봉화, 운산봉 두류산, 풍기의 태백..소백산입니다.

2) 십승의 땅 열 곳은..
도참설과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풍기 금계촌, 안동의 춘양, 보은 속리산, 운봉 두류산(지리산), 예천 금당동, 성주의 만수동, 공주의 유구와 마곡, 영월의 정동 상류, 무주의 무풍, 부안 변산이라 합니다...실제로 임진왜란이나 6.25 한국전쟁때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합니다.

▲ 마곡사 일원은 2018년 1월 22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9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마곡사 일주문●

'태화산 마곡사' 일주문은 진입로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태화산 주변 유구와 마곡은 택리지나 정감록 등에 십승지로 알려져 6.25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모여들던 곳입니다ㆍ

泰華山 麻谷寺(태화산 마곡사)” 편액은 근 현대 서예가인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 1927~2007)이 2007년에 쓴 글씨이며  ‘如初居士(여초거사)’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서각은 목우 조정훈이 판각하셨습니다ㆍ
크기는 100cmX260cm 입니다.

서예가 김응현 선생은 근현대 한국 서예의 대가를 이룬 김충현, 김창현과 형제인 서예가 집안으로, 추사 김정희의 맥을 이은 소전 손재형, 검여 유희강 이후 형인 김충현과 한국 서예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습니다ㆍ
두 형제는 전국 사찰의 편액과 주련 등 대부분을 썼습니다ㆍ

<마곡천을 따라 마곡사로 갑니다>

●마곡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념석●

공주 마곡사는 2018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진승원)에 등재되었습니다. 총 7개 사찰이 등재되었는데, 나머지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입니다.

기념석의 한글로 쓴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글씨는 부여 출신의 서예가 원곡 김기승(原谷 金基昇 1909~2000)선생의 글씨이며, 한자로 쓴 '麻谷寺(마곡사)'는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서화가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선생의 글씨입니다.

마곡사는 마곡천을 기준으로 남원과 북원으로 나뉜니다ㆍ
남쪽권역에는 해탈문과 천왕문을 비롯하여 영산전, 명부전, 매화당, 수선사,흥성루, 산신각, 군왕대 가는 진입로 등이 있습니다ㆍ

● 마곡사 해탈문●

해탈문은 마곡사의 정문입니다.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이 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부처님의 세계 즉 법계에 들어가게 되며 ‘해탈을 하겠다’는 원력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두 번째 문인 마곡사 해탈문은 추녀 밑에 처마의 하중을 받고 장식도 겸해 나무쪽을 짜 맞춘 도구를 여러 개 배치한 겹처마 팔작지붕집입니다.

건물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모두 판장 벽으로 막았습니다. 공포는 3제공 형식으로, 제공 조두형 돋을새김을 하고 있으며 제공에는 연꽃을 조각하였습니다. 정면의 중앙 칸을 개방하여 통로로 사용하고 있으며, 해탈문 내부에는 금강역사상과 보현, 문수동자상을 모시고 있는데, 이런 경우 보통 금강문이라고 부르는데 마곡사에서는 해탈문이라고 합니다.
해탈문(解脫門) 편액은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선생의 글씨입니다. 

<해탈문 문수동자와 밀적금강>
해탈문 오른쪽에는 지혜의 상징 문수동자가 절 밖으로 향하고 있는 사자를 타고 있고, 옆에는 밀적금강역사가 있습니다. 밀적금강은 부처님을 호위하는 야차신으로 부처님의 비밀스런 사적을 들으며, 항상 입을 다물고 '훔' 소리를 낸다고 하여 '훔금강역사'라고 합니다. '훔'은 범어(고대 인도어)의 마지막 글자입니다.

<해탈문 나라연금강과 보현동자>
해탈문 왼쪽에는 실천의 상징 보현동자가 절 안으로 향하고 있는 코끼리를 타고 있고, 옆에는 나라연금강역사가 있습니다. 나라연금강은 천상계의 역사로 그 힘이 코끼리 100만배가 되고, 항상 입을 열고 '아' 소리를 낸다고 하여 '아금강역사'라고 합니다. '아'는 범어의 첫 글자입니다.

● 마곡사 천왕문 ●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습니다.
태화산 남쪽 기슭에 있는 마곡사의 두 번째 문으로,
사천왕을 모신 건물입니다ㆍ

마곡사 천왕문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입니다ㆍ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며 내부에 걸린 편액에는 “1910년 6월에 중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왕문 편액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서화가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선생의 글씨입니다. 

●마곡사 소조사천왕상(보물, 2023년 09월 지정)●


공주 마곡사 소조사천왕상은 동방지국천왕 안에 남겨진 묵서를 통해 1683년 조성됐음이 확인된 작품으로, 사천왕상 편년 연구에 기준이 됩니다.

사찰 입구 천왕문에 봉안된 사천왕상은 수미산 중턱에 살며 동서남북 네 곳에서 불법 및 불국토를 수호하는 호법신입니다.
사천왕은 동방지국천왕, 서방광목천왕, 남방증장천왕, 북방다문천왕 네 방위에서 맡은 바를 수행하는데 각기 보검, 보당과 보탑, 용과 여의주, 비파 등 지물을 들고 있으며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일정합니다.

부릅뜬 눈, 크게 벌어진 입 등 두려움을 주는 얼굴 모습, 갑옷을 입고 있는 신체, 발밑에는 악귀 등의 생령을 밟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조선 후기 일반적인 사천왕상 배치의 경향대로 천왕문의 진입 우측 방향에 동방지국천왕과 북방다문천왕이, 천왕문의 진입 좌측 방향에 남방증장천왕과 서방광목천왕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약 4m에 이르는 크기로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덧붙여 만들었는데 의자에 걸터앉은 모습입니다.

특히 서방광목천왕은 한 손에는 보당을, 다른 한 손에는 연잎 위에 공양물을 올려놓은 지물을 취하여 다른 사천왕상과 차별성을 보입니다.

17세기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되는 소조기법의 사천왕상으로 세장한 신체 비례, 독특한 눈꺼풀, 야위고 주름이 많은 얼굴, 작은 주먹코, 연잎을 응용한 지물 등 제작자의 재치와 개성 가득한 표현은 조각승 단응과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직지사, 마곡사를 거쳐 예천 용문사 소조사천왕상으로 이어지는 단응계 사천왕상 양식의 변화와 흐름을 연구하는데 단서가 됩니다. 따라서 17세기 사천왕 도상 및 조각 유파의 활동범위와 동향, 불상의 제작 방식과 제작 순서 등 다양한 방면에서 학술적 가치가 있어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있습니다.

●마곡사 영산전, 보물 제800호 ●

“예가 어진 정승과 용맹스러운 장수를 만들어 낸다는
태화산 군왕대의 혈 자리라.”

마곡사의 영산전은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마곡사에서 가장 영험이
큰 전각으로, 특히 어진 정승과 용맹스러운 장수를 만들어 낸다는
군왕대의 모든 기운이 모여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라의 큰일을 할 인재 배출을 원하는 많은 불자들이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고 소원을 성취하고 있습니다.

마곡사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효종2년(1651)에 각순대사가 절을 다시 일으키면서 세워졌습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입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입니다.

靈山殿(영산전)’ 편액에는 세조대왕어필 (재위 1455 세조 1~1468 세조 14)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세조가 김시습을 만나기 위해 마곡사에 들렀다가 그의 잠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마곡사에 남긴 글씨입니다.

영산전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던 당시의 영산회상을 재현한 곳으로, 통상 부처님과 10대 제자, 16나한 혹은 500나한을 함께 모시는데, 마곡사 영산전은 과거 장엄겁 3불과 현겁 4불 등 7분의 여래불상과  그 뒤로 1,000분의 작은불상이 모셔져 있어 천불전이라고도 불립니다. '영산'은 영축산의 줄인 말입니다.

칠불좌상은 1681년 수화승 단응을 중심으로 20여 명의 조각승이 함께 제작하였습니다. 과거칠불이란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 출현하였다고 하는, 좌로부터 비바시불, 비사부불, 구나함모니불, 석가모니불, 가섭불, 구류손불, 시기불 입니다.

영산전 좌우에는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매화당과 수선사가 있고, 앞에는 흥성루라는 누각이 있습니다ㆍ

●마곡사 매화당●

공주 마곡사 매화당은 남원 권역의 요사채 역할을 했었으나,
현재는 태화선원의 중심건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건물은 'ㄷ'자 형태로 내부 안뜰 쪽으로 계단을 내어 출입하도록 하였습니다.

매화당은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 를 지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다 김시습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합니다ㆍ

梅花堂(매화당) 편액은 좌측에 佛紀二五二八年 友松 閔孝植 書劃(불기이오이팔년(1984년) 友松 閔孝植 書劃(우송 민효식 1926~?) 선생의 글씨입니다. 민효식 선생은 광주 출신으로 서도를 독학하여 '구양순체'의 계승자로도 인정 받았습니다. 하동 쌍계사의 금강계단의 편액도 썼습니다.

● 마곡사 흥성루●

흥성루는 영산전 맞은편에 있는 건물로 법회나 고승들의 강연 등 학습의 장소로 이용되는 곳입니다.

●마곡사 수선사●

수선사는 매화당과 마주하고 있는 건물로 선원입니다ㆍ

<수선사 편액>

수선사 현판은 만공이 썼습니다ㆍ


● 마곡사 명부전 ●

명부전은 죽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면서 그 동안의 업장을 참회하고 소멸하는 기도처입니다.

지장보살님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모든 중생들까지 다 구제할 것을 서원하신 보살님이십니다. 그러하기에 지장보살님께 기도하면 과거와 현재의 모든 업보와 죄를 소멸할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있는 명부전은 특히 군왕대의 좋은 기운이 모인 곳으로, 참회 정진에 특히 좋은 정진 터입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고색창연한 건물로 1939년에 세워졌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이승에서 업보에 따라 극락으로 가거나, 저승(명부)에 가서 7일마다 시왕에게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명부전 댓돌 아래에 두 개의 파란색 등이 이채롭습니다.

<명부전(冥府殿) 편액>


<명부전 내부>
명부전 불단 중앙에는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고, 좌우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명부전 좌우에는 명부의 시왕과 판관, 인왕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지장보살을 제외한 나머지 존상들은 모두 1677년에 돌로 조성하였습니다. 시왕중 5번째 왕인 염라대왕이 머리에 금강경을 쓰지 않고, 관을 쓴 것이 다른 절과 다릅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좌상은 높이 112.5cm의 중형 보살로 나무로 조성하였고,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은 110cm 정도이 크기로 돌로 조성하였습니다. 후불탱화는 정토종 포교당 지장보살도로 1928년에 면 바탕에 그린 것입니다.

● 마곡사 산신각●

산신각은 전통적으로 산에 대한 신앙을 믿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각입니다.

마곡사 산신각(山神閣) 편액 글씨는 장곡 선생님이 2006년에 쓴 글씨이며, 서각은 목우 조정훈(木牛 趙丁勳)선생입니다.

<산신각 내부>
할아버지 산신 외에 할머니 산신도 동시에 모시고 있습니다.

<산신각으로 가는 길에 바라본 마곡사>

● 마곡사 군왕대●

마곡사는 풍수지리적으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당에 자리잡고 있습니다ㆍ
그중에서도 군왕대는 마곡에서 지기가 강한 곳으로 임금이 나올 만한 명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ㆍ


극락교를 지나 북원으로 갑니다ㆍ

마곡사 극락교 북쪽으로 대광보전을 비롯하여 오층석탑, 대웅보전, 응진전, 백범당, 범종각, 심검당, 대향각, 연화당 등이 있습니다ㆍ

극락교를 지나면 북원이 한눈에 들어옵니다ㆍ

이제부터 마곡사의 진짜를 볼 차례입니다ㆍ
국보인 오층석탑을 필두로 보물인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나란히 서 있 습니다ㆍ


●마곡사 오층석탑(국보 2025년 01월 지정)●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마곡사 오층석탑은 1984년 보물(보물 제799호)로 지정된 후 약 41년 만에 국보로 승격하게 돼었습니다.

절마당에 우뚝 서 있는 이 탑은 탑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을 2단으로 쌓고, 그 위로 5층의 탑신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린 모습입니다. 

탑신의 몸돌에는 부처, 보살 등을 조각해 놓았고,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보이는데, 요즘은 5층 지붕돌에만 1개의 풍경이 남아 있습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으로, 중국 원나라의 라마탑과 그 모습이 비슷합니다.

마곡사 오층석탑은 고려후기에 조성된 5층 석탑으로 '풍마동'이라고도 불리는 길이 1.8m의 금동보탑을 옥개석 위에 올려 이른바 '탑 위에 탑'을 쌓은 매우 특수한 양식을 보입니다.

특히 금동보탑은 중국 원나라 등에서 유행했던 불탑양식을 재현하고 있으며, 제작기법이 정교하고 기술적, 예술적 완성도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석탑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당시 불교문화의 국제적인 교류 양샹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매우 큽니다.

마곡사 오층석탑의 2층 네 면에는 소박한 솜씨로 ‘사방불’이 양각되어 있습니다ㆍ사방불이란 동서남북의 방위개념으로 모든 방향을 포괄하는 상징 이기도 하므로 사방불은 모든 공간에 부처님이 영원히 거주한다는 불신상주의 전형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불에서 과거불과 미래불이라는 삼세불로의 확대는 시간을 횡으로 가르고 다시 공간적으로 투영되어 사방, 팔방, 시방에 현재불이 등장함으로서 현재의 다방불, 천불, 삼 천불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상적 경향은 모든 중생이 본래 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이미 깨달은 상태에 있다는 내재불 사상으로 발전했습니다.

오층석탑에는 나라의 기근을 3일간 막을 수 있다는 전설도 전해 내 려오고 있습니다. ‘풍마동’은 금보다 귀하고 바람에 마모되면 더욱 빛나는 까닭에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조선후기 문신 이의봉(1733~1801)이 1761년 북경의 궁궐을 방문한 뒤 쓴 《북원록(북경 견문록)》 “십자각에는 금정(금빛으로 빛나는 정수리)을 더해 놓아 빛이 유난히 찬란했는데, 이는 금이 아니요 이른바 풍마동으로 외국의 소산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마곡사에도 그러한 것이 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 마곡사 대웅보전, 보물 제801호●


싸리나무 기둥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는 대웅보전!

[무슨 말이냐구요?
2층으로 된 대웅보전은 통층으로 전각의 내부에는 싸리나무 기둥이 네 개가 있는데 여기에도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설화의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사람이 죽어 저승의 염라대왕 앞에 가면‘그대는 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많이 돌수록 극락길이 가깝기 때문이지요. 아예 돌지 않았다고 하면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생에서 아들이 없는 사람에게는 마곡사의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고 일렀다고 합니다. 이런 재미난 전설로 인해 지금도 이 싸리나무 기둥은 윤기가 나고 손때가 묻어있습니다.
아들을 낳고 싶은 여인들이 많아서 이겠죠?]

<마곡사 대웅보전>

대웅전 혹은 대웅보전은 법화경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큰 영웅이라 한데서 유래한 것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석하시는 집이라는 뜻입니다ㆍ

마곡사 대웅보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조선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에 의해 중수되었습니다. 중수기에는 대장전으로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언제부터 대웅보전으로 바뀌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규모는 1층이 정면 5칸·측면 4칸, 2층이 정면 3칸·측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입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습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 위에 연꽃을 조각해 놓아 조선 중기 이후의 장식적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건물 안쪽은 우물 정(井)자 형태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천장을 2층 대들보와 연결하여 만들었고 마루도 널찍해 공간구성이 시원해 보입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의 편액은 대웅전의 격을 높힌 명칭으로, 편액은 '해동서성'이란 별명으로 중국에까지 유명한 신라의 명필 김생의 글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생의 편액 글은 직접 남긴 유묵이 아니라 글을 한 자씩 모아 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마곡사 삼존불>
대웅보전에는 주불로 가운데에 현세불인 석가모니불, 오른쪽(좌협시)에 과거불인 약사불, 왼쪽(우협시)에 미래불인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삼세불은 전부 나무로 조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약사여래는 약함을 들고 있지 않고 아미타여래와 똑 같은 손 모양을 하고 있어 약간 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웅보전 안 기둥 4개는 싸리나무(실제는 느티나무나 소나무일 것으로 추측됨)인데 두 아름쯤 되는 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고, 6년씩 수명이 연장된답니다.

 ●마곡사 석가모니불 괘불탱 (보물 제1260호)●


 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열 때 사용하던 대형 불화를 말하며, 이 괘불은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그린 것입니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6대 보살, 10대 제자, 제석천과 범천, 사천왕, 천자, 아수라, 용왕 등이 좌우 대칭으로 화면 가득히 그려진 모습입니다. 석가모니불은 용화수가지를 양 손에 받쳐 들고 있는 모습으로 손이 다른 신체 부분에 비해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는 둥근 머리광배와 배 모양의 몸광배로 구분되는데 머리광배에는 작은 부처 여러 구를 그려 넣었습니다.
석가모니불을 좌우에서 협시하고 있는 제화갈라보살을 비롯한 6대 보살은 관음·대세지·문수·보현보살로 구성되었으며 10대 제자상과 보향·명월천자가 상단 좌우 끝에 그리고 아수라 가루라 용왕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남아 있는 글로 보아 시주자를 비롯한 여러 승려와 일반인들이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석가탄신일 외에도 수륙재와 49재에 쓰였던 그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형화면에 나타난 중후한 형태·화려한 색채 등 17세기 전반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작품으로 본존불을 중앙에 크게 묘사하고 다른 무리들을 주위에 작게 배치하여 석가모니가 일반 대중들을 압도하는 듯한 인상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삼신불 가운데 석가불을 노사나불과 동일하게 보살형으로 형상화한 독특한 형태의 그림이며 ‘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이란 석가의 존명과 함께 각 상들의 명칭도 기록되어 있어 불화 연구에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입니다.

● 마곡사 대광보전, 보물 제802호 ●

<삿자리를 짠 앉은뱅이 전설이 있습니다>
[앉은뱅이, 그가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부처님의 자비를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세세생생 회향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날은 그가 부처님께 공양 올릴 삿자리를 짜기 시작하면서 앉은뱅이로서의 삶을 거두고 걸을 수 있게만 된다면, 그 자비광명을 얻게 된다면 이생을 넘어 세세생생 보시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맹세하고 부처님께 의지하며 생활한지도 어느덧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는 이미 자신이 너무도 주제 넘는 소원을 품었던 터라 더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가진 업보가 그 얼마나 큰데 감히 부처님께 그런 소원을 빌다니!
얼마나 더 공덕을 쌓아야 그 동안 지은 억겁의 죄업을 다 씻을 수 있을 것인가, 슬프도다 슬프도다.’지난 100일 동안의 기도 끝에 깨달은 것은 첫째도 참회요, 둘째도 참회였다. 그러한 나날이 계속 될수록 그는 걷게 되는 것을 염원하기보다는 길가에 무심히 핀 들꽃이 소중하고 그것이 살아있음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며 그 무엇에건 감사하게 되었다.
들꽃과 함께 호흡하고 나를 느끼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는 부처님께 감사했다. 일체의 삼라만상에 부처님의 자비를 회향하겠노 라고 다짐하는 날이 늘어갔다. 그렇게 100일이 채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삿자리가 완성되었다. 그는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치 않은 다리를 끌고 부처님께 기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지극한 마음으로 절을 올리고 법당을 나왔다.그런데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그가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자신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그는 어느새 걷고 있었다. 그는 그 파란 하늘과 푸른 숲, 무심히 흐르는 마곡천을 바라보며 부처 님의 자비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또 다짐했다. 이 같은 부처님의 자비를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숲,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이들에게 회향하겠노라고, 그리하여 나누는 삶, 자비의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대광보전에는 ‘삿자리를 짠 앉은뱅이’ 전설이 담겨 있습니다.]

대광보전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1788년에 중창되었으며
보물 제80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마곡사 대광보전은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입니다. 임진왜란으로 불 타 없어진 것을 정조 9년(1785)에 다시 지었습니다. 

규모는 정면 5칸·측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입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입니다. 

정면 5칸에는 3짝씩 문을 달았는데 문살은 꽃 모양을 섞은 조각으로 장식하였고 가운데 칸 기둥 위로 용 머리를 조각해 놓았어요.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몄고, 불단은 서쪽으로 마련하였는데 불단 위에는 불상을 더욱더 엄숙하게 꾸미는 닫집을 정교하게 꾸며 달았습니다.

뒷쪽의 대웅보전이 수직적 구조라면, 대광보전은 수평적으로 긴 구조입니다.

<대광보전(大光寶殿) 편액>
약 1x2m 가량의 <대광보전(大光寶殿)> 편액은 처마와 공포장식 사이 정중앙에 비스듬히 걸려 있습니다. 먹색 바탕 판에 액자는 꽃과 칠보 무늬 장식이 아름답습니다. 편액 좌우 기둥머리의 용 조각이 눈길을 끈니다. 오른쪽 용이 여의주 대신 잉어로 보이는 물고기를 입에 문 표정이 해학적입니다.

글씨는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이 쓴 행서체입니다. 시인이자 서화가로 당대를 풍미한 강세황은 중국 송대 미불과 원대 조맹부 서체를 익혔다고 합니다. 더불어 조선 후기 새로운 조선 서풍을 일으킨 백하 윤순(白下 尹淳, 1680~1741)을 배워, 행서나 초서체가 갸우뚱한 개성미를 지닙니다.

‘대광보전(大光寶殿)’ 행서체는 강세황의 서풍 가운데서도 윤순에 이어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 1705~1777)의 서체를 떠오르게 합니다. 특히 사람이 걷는 모습의 ‘大’ 자와 ‘光’ 자가 유난하게 원교체를 닮았습니다.

편액의 왼쪽 아래 ‘殿’ 자 아래에는 전서체로 강세황의 노년 아호인 ‘표옹(豹翁)’이라고 음각해 새기고 붉은색을 칠해 인장처럼 꾸몄습니다

<비로자나불>
대광보전 건물 내부에는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이 지권인 수인을 하고 동쪽을 바라보도록 봉안되어 있습니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진리 자체를 상징하는 부처님으로 진리의 몸이 온누리에 두루 비치는 광명의 빛을 내어 모든 이들을 지혜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ㆍ 건물이 설법을 하는 대법당의 기능을 위한 공간배치와 뒷쪽 대웅보전의 석가모니불과 방향이 중복되어 동쪽을 향했다고 추정됩니다.

<영산회상도>
1788년에 조성된 영산회상도(유형문화재 제191호)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ㆍ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6대보살, 10대 제자, 용왕과 용녀, 사천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ㆍ

<백의관음보살도(19세기초 515 x 296cm)>


<불전 뒤로 돌아가면 뒷벽에 관음보살 벽화가 있어 눈길을 끈니다. >

고주 사이에 한지를 여러 겹 겹쳐 발라 후불벽을 조성하여 일반 화폭에 그린 것처럼 매우 섬세하게 그려졌습니다. 관음보살은 물결이 넘실거리는 해상 위의 기암괴석에 앉아 머리 위에서부터 아래로 백색의 장포를 입고 정면을 향해 반가좌한 형태입니다.두광과 신광을 갖추었으며, 상호는 초승달 모양이 둥근 눈썹에 꼬리가 위로 올라간 가늘고 긴 눈, 두툼한 코에 자고 붉은 입술을 표현하였습니다.

양손은 반가좌한 오른쪽 다리위에 자연스럽게 놀려놓았고, 맨발인 상태의 왼쪽 발은 홍련의 청록색 연밥을 밟고 있습니다. 옷자락 사이로 빠져나온 긴 머리칼이 양쪽으로 3갈래씩 드리워져 있으며, 입상의 화불이 표현된 보관을 쓰고 목에는 영락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옷자락의 주름을 비롯하여 연꽃의 꽃잎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매우 섬세하게 그렸습니다.또한 보살의 양쪽 반석 위에는 관음보살을 향해 청조(靑鳥)를 받치듯 합장 배례하는 남순동자(선재동자)가 화면 우측에 버들가지가 꽃힌 흑색의 정병이 좌측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배경을 이루는 부분은 모두 먹으로 표현하였는데, 암벽의 세밀한 단층과 명암표현에서부터 굽이치는 물결과 포마라, 우측 상단에 표현된 대나무 잎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섬세하게 공들인 작품임을 알수 있습니다.

내부 바닥에는 참나무로 만든 돗자리가 깔려 있으며, 전면 창호에는 다양한 꽃살 무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대광보전은 안팎으로 구성과 장식이 풍부하고 건축 수법이 독특한 건물로 조선 후기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ㆍ

●대향각●


현재 마곡사 주지 스님(원경 큰스님)의 선방


●마곡사심검당 및 고방, 유형문화재 제135호●
(1991년 12월 3일 지정)

<심검당>
마곡사 심검당은 대광보전 5층 석탑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스님들의 거처인 요사채이며, 고방은 창고건물이다.

<고방>

심검당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조 21년(1797)년에 보수공사가 이루어진 기록과 편액에 적힌 글에 의하면 철종 7년(1856)년에 고치고 1909년에 기와를 다시 올렸다고 합니다. ㄷ자 평면에 자연석을 쌓아 1층의 기단을 형성하고 주춧돌을 놓은 위에 둥글고 네모난 기둥을 혼합하여 세웠습니다. 고방은 앞면 4칸·옆면 1칸 규모의 남향집입니다.

●관음전 연화당●


● 마곡사의 범종루 ●

마곡사의 범종루는 불전사물이 봉안되어 있습니다ㆍ
범종은 큰 청동 종으로, 사찰 전체에 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는 용도이며
중생의 번뇌를 없애고,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며, 세상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루의 시작과 끝, 법회나 큰 불교 행사 때 울립니다ㆍ

법고는 큰 북으로, 주로 법회를 알리거나 스님들의 정진 시간을 알리는 데 사용되며 소리는 땅 위의 모든 생명에게 불법을 전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ㆍ

운판은 구름 모양의 청동 혹은 철판으로, 주로 공양시간을 알림에 사용되며 허공의 생명에게 불법을 전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ㆍ

목어는 나무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타악기이며, 사찰에서 스님들이 대중들을 운집할때 쓰이는 법구로 항상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끊임없는 수행을 상징한다고 합니다ㆍ

●마곡천●

마곡사 마곡천은 국사봉에서 발원한 마곡천이
마곡사를 관통하여 흐른다ㆍ

●관세음보살 보살상●

대한민국 33관음성지(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사찰로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선정한 33곳을 순례하며 인장첩으로 인증받는 문화 프로그램)중 한곳. 한 불자가 기증해서 세계 각지에 무단 반출된 모든 문화재가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만든 불멸의 불신ㆍ

●마곡사 조사전●
관세음보살상 옆에 고승들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조사전이 있습니다ㆍ

●마곡사 응진전, 문화재자료 제65호 ●
응진전은 철종 3년(1852)에 새로 보수한 것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습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짜올렸습니다.

안쪽에는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마곡사의 백범당 ●
마곡사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다 간 백범당이라는 건물이 있고
그 옆으로는 김구 선생이 해방 후 1946년 여러 동지들과 이곳을 찾아와 기념식수를 한 향나무가 아직도 파랗게 자라고 있습니다.

백범선생은 마곡사를 떠난 지 근 50년 만에 돌아와 대광보전 기둥에 걸려있는 주련 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 : 돌아와 세상을 보니 모든 일이 꿈만 같구나)라는 원각경에 나오는 문구를 보고 감개무량하여 이 향나무를 심었다 합니다.

백범 선생은 동학교도에서 승려, 독립군, 상해 임시정부 초대 주석에 이르기까지 투쟁과 투옥 그리고 망명으로 점철된 삶이었지만 언제나 해방된 조국, 하나 된 조국의 뚜렷한 목표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후대의 사람들은 선생의 고절한 생을 흠모하는 것입니다.
백범 선생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1896년 일본군 중좌를 살해하고 살인범으로 낙인찍혀 인천교도소에서 사형수로 복역 중 그곳을 탈옥하여 1898년 마곡사에서 은신하다가 하은당이라 불리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법명을 원종이라 하였습니다.백범일지에는 그의 출가에 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사제 호덕삼이 머리털을 깎는 칼(削刀)을 가지고 왔다.
냇가로 나가 삭발진언을 쏭알쏭알 하더니 내 상투가 모래 위로 뚝 떨어졌다.
이미 결심을 하였지만 머리털과 같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출가 당시의 착잡했던 심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지금도 마곡사에는 김구 선생이 삭발했던 바위가 있고,
지금은 마곡사와 공주 시청이 이곳 삭발바위와 마곡천을 잇는 다리를 놓아 백범교라 부르고, 그곳에서 마곡천 절경을 굽어보는 마곡사 또 다른 명소가 되었습니다.
또한 마곡사 생태농장에서 군왕대로 이어지는 <백범 솔바람 명상 길>을 두어 마곡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1시간가량 산보하기 좋습니다.

백범 선생이 지냈던 백범당에는 백범선생의 진영과 1946년 마곡사를 방문했을 때 마을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는데 백범 선생 뒤로는 왼쪽에는 완장을 찬 좌익이 서있고 오른 쪽에는 넥타이를 맨 우익이 서 있습니다. 이렇듯 백범선생은 사상 보다는 하나 된 조국을 더 원하였습니다.

사진 옆에는 백범선생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친필 휘호가 있는데
그것은 서산대사의 선시로 다음과 같다.

서산대사의 "선시"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에는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 반드시 뒷사람의 길잡이가 될 것이니..

일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사셨던 백범 김구선생께서, 자주 인용하신 서산대사의 선시입니다ㆍ



■공주 태화산 마곡사■ 해운대반야선원 9월 사찰순례2 ■ 2025년9월21일 일요일■11월2일 일요일 촬영사진도 포함■아주 상세한... - https://youtube.com/watch?v=a_NfWHiwp7Y&si=Jl4IbX9CptYUEN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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