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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물자 밀가루 한포대

작성자★더불어 함께|작성시간17.01.30|조회수142 목록 댓글 0

문득 어린 시절 동사무소에서 한포씩 주던 밀가루가 생각났다.
서로 악수하듯 손을 맞잡고 있는 그림이 인쇄된 누런 밀가루포대는 내 청소년기의 빛바랜 사진처럼 가슴 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서울 그 도시 한구석 종암동 개천 옆 무허가집 단칸방에, 8남매와 엄마를 놓아두고 강원도 어딘가로 약초캐러가셨다는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님은 무던히도 뼈빠지게 일하셨다.
길음동, 종암동, 장위동 일대에서 포장마차를 하시며 결사적으로 밥상머리에 달려들던 애들을 먹여살렸다.

딱히 공부할 방이 없던 나는 어머님이 졸고계시는 포장마차 구석 카바이트 불빛 아래에서 밤늦도록 책을 보곤 했다. 가끔씩 찾는 손님들이 드시던 우동이며 닭똥집을 맛나게 먹었는데, 남녀 한쌍이 들어오면 공연히 더 반가와 했다. 데이트하는 이들이 비교적 많이 남긴다는 것을 알게되었던 것이다.

자정이 다되어 리어카를 끌며 엄마와 함께 돌아오면 동생들은 강아지들마냥 뒤엉켜 잠이 들어있었다. 비좁은 방바닥은 발조차 들이밀기 어려웠다.
발가락을 조심조심 밀어내며 간신히 들어가 등짝을 벽에 기댄채 쪼그리고 앉아 무릎에 가방을 얹고 그 위에 머리를 대고 졸다 깨다 하면서 밤을 새우곤 했다.

단칸방 문앞은 동네 공중화장실이었는데 푸세식이라 늘 방문앞으로 넘쳐흐르는 노오란 물길에서는 온갖 역한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골목 술집에서 나온 아저씨들이 밤새 웩웩대던 소리가 귓전에서 맴돌았다.
부엌조차 달리 없어 밥그릇이며 숟가락하며 길바닥에서 한데 뒤엉켜있었다. 밥때에 한번씩 주인집 마당에 그릇을 들고 들어가 씻는 것이 전부였다.
아이들이 철모르는 어린 나이였던 것이 다행이었을까.

장남은 중학교 1학년생으로 신문팔이, 껌팔이, 좌판과 구두닦이로 학비를 벌고 있었다.
지금은 목사가 되신 맏딸은 식모살이를 나섰다. 줄줄이 달린 동생들은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그 시절에 구호물자로 얻는 밀가루포대는 그야말로 천국의 은총이 아닐 수 없었다.
동네 부잣집에서 일찍한 김장이 시었다며 내어놓으면 주워다가 빨아서 밀가루덩이인 수제비와 함께 먹으며 주린 배를 채웠다. 가끔씩 칼로 신김치를 다져내어 만두속처럼 만들어 만두국이라면서 끓이노라면, 냄비옆에 둘러 앉아 일일이 갯수를 헤아리던 동생들의 퀭한 눈동자가 생각나 가슴이 먹먹하다.
그 시절, 나어린 아이들에게는 먹는 일이 가장 큰 일이 아니었을까.

... 8명의 아이들에서 5명까지 다둥이가족과 함께 한 한우불고기 잔치다. 5가족이지만 35명이 넘는 대부대다.
하나같이 맛있게 먹는 짭짭소리를 들으며, 공연한 옛생각에 목이 메인다.

초청자인 진항구 축협조합장께서 잘 먹는 아이들을 보며 얼마나 신이나시는지, 추석때 또 내시겠다며 좋아하신다.
딸만 넷을 두신 진조합장님의 넉넉한 품새와 사람좋은 웃음에 맺혔던 응어리가 어느새 풀렸다.

야쿠르트 아줌마네 8남매의 장남인 중학생 녀석이 복분자를 들고와 "시장님 한잔 따라드리고 싶어요~"한다.
제 어머니가 시켰을지 몰라도 이보다 더 맛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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