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이 지옥으로 변한 뉴질랜드 왕가레이 - 사례
저는 왕가레이에 거주 한지 7개월 된 김 선봉입니다. 처음에 천국으로 보여졌던 왕가레이가 이제는 제게 지옥이 된 한 장면의 이야기를 여러분께 드리면서, 저와 같은 쓰라린 경험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는 한국에서 임상병리사로서 16년을 일해 왔고, 첫째 아이는 4살이며 둘째는 5일 전에 뉴질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갑갑하고 희망이 안 보이는 내 미래를 개척하고자 이민을 생각하고 있던 중 마침 Web site에서 Telah group의 대표로 소개된 이 모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그가 뉴질랜드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하면서 영주권도 받고, 또한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무척 부러웠습니다. 제게 매우 친절하게 도와주는 이 모씨에게 저는 무척 신뢰감이 색겼고, 또한 고마운 마음뿐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이 분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겨 보자고 결정했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 12월에 우리 식구는 답사를 할 겸 이 모씨를 만나러 왕가레이를 방문 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름다운 Bay of Island를 다녀왔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좋은 온천도 보면서, 왕가레이가 우리가 기다렸던 우리의 희망이라고 다시 다짐했습니다.
즉시 한국으로 들어가 서류를 하나씩 준비하면서 장기사업비자 신청을 위해 이 모씨에게 NZ$12,000을 송금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부푼 마음으로 이 모씨의 결과만 기다리는 중에, 2002년 11월 20일 부로 이민법이 바뀌어 우리가 수고했던 것들과 비용도 물거품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실망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뉴질랜드 왕가레이를 잊지 못하고 이 모씨와 다른 방법을 의논하며, 결국은 재산을 정리하여 뉴질랜드로 2003년 6월 21일에 도착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같이 고민하며 기도하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라는 조언에 동의하면서 새로운 힘을 얻어 정착을 준비했습니다. 우리는 집을 구할 때까지는 이 모씨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Work visa라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왕가레이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한인교회에 다니면서 매우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에게 사랑과 봉사를 하시면서, 우리 가정은 마음의 안정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목사님도 진실로 좋은 말씀으로 우리를 위해 심방도 해주시고 기도를 해주시면서 우리를 한 가족으로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모씨는 자기가 운영하는 골프연습장에서 생활비라도 벌 수 있게 해 주겠다고했으며, 그리고 Work visa도 자기가 운영하고 있는 Down Town B.P(Asian mart)이름으로 2004년 4월쯤에 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이 일들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려면 자기한테 $70,000을 맡기고 ,또 Work visa를 위해 $2,000을 더 요구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70,000하고 거기 이익금과을 돌려 받을 수 있으며, 또한 제가 홈스테이를 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것은 물론 영주권까지도 해결된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저는 이 모씨의 말을 믿고 $70,000을 주었고 홈스테이를 할 수 있는 집까지 샀으며, 골프연습장에 일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게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골프연습장에서 일하면서, 몇 주 후 연습장 소유주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3주 후에 저는 골프연습장 일을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장기사업비자 취득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필요한 IELTS 점수 때문에 학원에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홈스테이 할 학생도 없고, 직장도 없고 그렇지만 집은 샀고,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인교회에 다니던 분들 중에 이 모씨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귀뜸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을 통해 변호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변호사는 서류를 보자고 했지만 저는 여기에 대해 서류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대해 서류가 필요한지도 몰랐고 계약서를 나중에 써준다는 말을 믿었습니다. 그 변호사는 뉴질랜드에서의 모든 계약은 쌍방의 solicitor를 통해 해야 하며, 서류가 없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즉시 나는 이모씨 돈을 돌려 달라고 하자 $30,000을 돌려 받았고 한국에 급히 출국하니 12월에 귀국하면 잔금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이후로 이 모씨는 말과 행동이 바뀌었고 나도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불안한 나는 목사님께 전화로 도움을 청했습니다. 담임 목사와 집사님들은 이 일을 파악하신 후에 너무 황당하다고 하시면서 이 모씨(집사)에게 저의 돈을 돌려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씨가 한국을 나간 후에 저는 너무나도 놀란 일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장기사업비자 신청서는 아예 이민성에 접수도 안 되었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니까 이 아름다운 나라와 천국 같았던 왕가레이에 대한 매력과 순수함을 잃어 버렸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더 이상 같은 교회에서 이 모씨와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불가능해져 저는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렇지만 교회 안에서 만났던 좋으신 많은 분들에게는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감싸주셨던 김성훈 집사님 저의 처를 동생처럼 아껴주시던 이재심 집사님, 모두 무척 좋은 분들이셨습니다. 그렇지만 12월에 돌아온 이모씨는 돈을 돌려주지 못한다고 하고, 목사님마저도 교회를 떠난 사람에 대한 차가운 감정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나는 다시 깊은 상처를 받게 되었습니다. 타협으로 둘이서 해결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이 모씨는 이것에 동의하려고 하는 마음조차 없었습니다. 이 나라 법도 모르고 ,영어도 안 되는 저에겐 너무나 큰 시련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일에 서류를 요구하지 않고, 이 나라의 이민법을 파악하지 못했던 나의 잘못도 있지만, 너무나 확실하게 한 사람을 믿게 하며, 내가 갖고 있던 꿈을 이용하여, 재물을 탐내며, 법적으로 유리하다는 생각을 갖고, 약한 자를 멸시하며, 너무나 책임 없이 많은 것을 약속한 뒤에 그 잘못을 새로 이민 온 사람에 덮어씌우며, 자기가 잘 한 것 같이 남들에게 자기의 정당성을 보이려고 하는 것은 인간적으로도 예의에 벗어나며 자기가 주장하는 하나님의 법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클랜드에 알아본 결과 나 보다 더 불쌍하게 당한 사람도 많더군요. 액수도 저보다 훨씬 많고 그렇지만 지금 이 먼 나라에서 평생 모았던 돈을 빼앗기고, 사람들에게 바보 소리 들으며 5일 밖에 안된 둘째 아이를 볼 때마다, 이모씨가 기도 하고 찬양했던 그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인지 질문이 안 갈 수 없습니다. 이런 좋지 않은 일로 여러분께 알려서 죄송하지만 이런 일들을 말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터질 것 같아 이 글을 씁니다.
이 아름답던 왕가레이가 저한텐 항상 어둠 컴컴한 도시가 되었고, 희망을 갖고 새롭게 시작하고자 했던 나의 삶은 한 사람의 욕심 때문에 짓밟혀 버렸습니다. 나는 지금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며, 나의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정직하고 올바르게 사는 것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복수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더 열심히 붙들고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다음검색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수호천사 작성시간 04.02.10 하나님을 더 열심히 붙들고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멘!~
-
작성자코란도 작성시간 04.03.03 외국인들이 제일 이상하게 여기는 한국사람의 특징은 이민온 자기나라 민족한테 사기치는것이랍니다.
-
작성자사랑하나요 작성시간 04.03.10 안녕하세요 저는 오클랜드 시티에 있는 사람입니다 선생님 글을보니 너무나도 안스럽고 화가 많이 나는군요 여기서는 한국 사람만 조심하면 된다는 말이 있어요~힘 내시고요 앞으로 좋은일만 있기를 기도 드릴게요 님~~~~~화이팅 해요
-
작성자물망초라고 햐~ 작성시간 04.03.21 허걱....ㅡㅡ;;님아 힘내세요.
-
작성자쉥커 작성시간 04.10.01 미국이민 카페에도 나쁜 한인들 이야기가 꽤 나오던데... 왜 그렇게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