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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 음악에 대하여

작성자클래식사랑|작성시간12.04.21|조회수525 목록 댓글 3

고전주의 음악의 범주는 넓다. 바로크시대의 음악을 포함, 그 이전부터 존재한 그레고리오 성가, 그밖에 종교음악과 합창을 통틀어 고전음악으로 보는 사람도 있으나, 서양음악사적인 통설로는 하이든 Franz Joseph Haydn 1732∼1809,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시대에 형성된 음악을 "고전파음악"으로 정의하고 있다. 음악분야에서의 고전주의는 이전까지 종교에 예속되어있던 음악을 교회의 속성에서 해방시켜 인간의 감정에 호소하는 음악으로 정립하려는 일종의 문화예술운동이었다.

종교의 도구가 아닌 예술의 본질로서의 "절대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고전주의 예술운동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는 않으나 이런 경향이 음악에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는 오스트리아의 하이든, 모차르트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고, 그 후에 베토벤이 이를 완성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즐겨 감상하는 고전음악의 대부분은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이른바 고전파 3대 악성이 바로크시대부터 있던 음악에다 그 골격을 정형하고, 혈관을 확장, 또 근육을 균형 있게 다듬어서 만든 음악이다. 서양음악사를 보면, 하이든과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이 활약하던 1750년대부터 1820년대까지를 고전주의 음악시대로, 슈베르트에서 시작하여 멘델스존, 로베르트 슈만까지의 시대를 초기낭만주의시대, 바그너, 브람스, 차이코프스키에 이르는 시기를 후기낭만주의시대로 정의하고 있다. 음악 사는 또, 체코의 스메타나 이후를 국민주의 음악시대, 스트라빈스키 이후를 현대음악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빈 고전파의 대가들]

18세기. 특히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에 빈에서 활약한 작곡가들은 새로운 음악양식으로의 전환이라는 새 사명감을 묵시적으로 부여 받게 된다. 이른바 "초기 빈 고전악 파"로 불리는 일단의 작곡가들. 이를테면, 바겐 자일 Georg Christoph Wagenseil 1715∼1777, 마티아스 몬 Matthias Monn 1717∼1750 의 음악은 그대로 슈타르차, 가스만 Frorian Leopold Gassmann 1729∼1774 등을 거쳐 하이든, 그리고 모차르트에게 전수되면서 마침내 고전파시대가 빈을 중심으로 개화하기에 이른다.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빈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빈 고전파시대"를 완벽하게 구축하기 시작했다. 하이든은 장기간 에스텔하지 후작의 악장으로 활약, 모든 악기의 장르와 소나타 및 현악4중주곡, 그리고 교향곡의 범례적인 작품을 만들어 냈고, 모차르트는 하이든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개성적인 기량을 자신의 작품에 새겨 넣음 으로서 고전파의 모든 장르에 걸친 영원한 레파토리를 창조 해낸 것이다. 이때부터 음악은 바로크적인 요소를 탈피, 형식이 자유화되기 시작했고, 엄격했던 조성마저 무시되는 쪽으로 기울어지자 일부 음악가들은 거세게 반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바로크음악의 형식과 격조를 그대로 채용하면서도 음악의 예술화와 대중화를 위해 그 동안 고정관념에 억매어 있던 음악의 형식을 자유화하기 위해 부득이 조성을 무시할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빈 고전악 파의 작곡가들이 고전주의 음악예술을 완성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을 감수한 것은 사실이다. 모차르트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그는 빈에 진출한 이래 남다른 고생을 하다가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모차르트의 음악적 재질을 높이 평가하여 13세의 모차르트를 궁정관현악장으로 임명했던 잘츠부르크의 대 사교가 세상을 떠나자 후임 대 사교는 모차르트가 종교의 예속을 벗어난 고전주의 음악에 치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한 나머지 결국은 그를 파직 시켰다.

교회라는 커다란 비호세력의 울타리를 과감히 벗어난 모차르트는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초지일관, 고전주의의 예술음악을 많이 남기고 간 위대한 악성이다. 하이든, 모차르트에 뒤이어 고전주의의 마지막 보루 베토벤이 등장함으로써 마침내 고전파 음악은 완성된다.

모차르트가 요젭 2세 시대의 전형적인 음악가였던 것에 비해 베토벤은 자신의 작품에 정신적인 요소를 주입하고자 한 이념적인 음악가였다. 베토벤은 프랑스혁명 이후에 나타난 고전주의 음악 최후의 거장이다. 이와 같은 베토벤의 음악성향은 계몽주의의 승리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폴레옹 체제의 시대에서 빈 회의의 격동기에도 그는 위대한 음악가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고전주의시대의 서양문화사 메모


*하이든 출생(1732) ....................................... .*J.C 바흐 출생(1735)
*오스트리아 계승전쟁(1740∼48) .....................*비발디 사거(1741)
*헨델<메시아>(1742) ................................... ..*헨델<왕궁의 불꽃놀이>(1749)
*바흐<푸가의 기법>(1749) ........................... ...*괴테 출생(1749)
*모차르트 출생(1756) .................................... .*헨델 사거(1759)
*그루크<올훼와 에우리디테>(1762) .................*루소<사회계약론>(1762
*소년 모차르트 연주여행개시(1763)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출생(1769
*베토벤 출생(1770) .......................... ............ .*프랑스혁명 발발(1789)
*슈베르트 출생(1797) .................................. ...*베토벤<교향곡 제1번>(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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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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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쿠쿠 강동점 | 작성시간 14.03.13 감사합니다
  • 작성자우량땅콩 | 작성시간 15.07.10 으~음!!
  • 작성자소하 | 작성시간 17.06.02 이론까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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