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Mozart, Violin Sonata KV 526/376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모차르트 [건반악기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의 역사는 어느 정도 음악 미디어와 장르의 변화, 18세기 음악문화의 변화와 관련 있다고 볼 수 있다. 여덟 살 무렵 파리에서 체류 중이었던 모차르트는 악기들의 혼성연주를 주제로 한 작품을 최초로 완성했다(이미 신동 모차르트는 7살 전에 이러한 것들을 시작했다). 그는 바이올린 반주부를 포함하는 건반악기 소나타(초기 단계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하고 있었다.
건반악기와 바이올린을 대등한 위치에 놓기 위한 노력
바이올린 소나타 장르는 앙시엥 레짐의 사회적 상황을 반영한 음악 장르로 발전해 나갔다. 왜냐하면 이 장르는 상류계층에 속해 있는 젊은 귀족 여성들이 하프시코드나 포르테피아노와 같은 건반악기 레슨을 위해 자주 활용한 장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들을 가르치는 신사적인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레슨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서도 귀족의 후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이올린 소나타 장르는 이러한 사회-문화적 상황을 바탕으로 딜레탕트 음악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18세기 무렵에 반주를 수반하는 소나타 장르는 지금과 달리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18세기 후반에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는 소나타 연주에 있어 보조적인 역할만 담당하고 있었고, 주력이 아닌 반주악기로서의 역할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바이올린 본래의 모습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18세기 사람들은 이 악기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 음악적 호소력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무심했다. 그러나 미개발 상태로 놓아두기엔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지닌 가능성은 엄청난 것이었다. 이 점을 간파한 모차르트를 비롯한 동시대의 음악가들은 소나타라는 음악 장르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점진적인 변화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1760년대부터 작곡된 반주를 수반한 소나타 작품들을 살펴보면, 음악에 관련된 모든 논쟁들이 바이올린이 아닌 건반악기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바이올린은 음률의 조화만을 유지하며 반주의 음형을 첨가했고, 더 나아가 3도 내지는 6도 아래의 선율을 반주하거나(심지어 단순하게 한 옥타브 아래의 선율), 포르테 악절의 건반 연주를 보강하는 역할만 했다. 극히 드물게 바이올린 연주자가 멜로디의 한 도막을 연주하거나, 건반악기 연주자의 오른손 연주와 함께 음악적 대화를 시도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러나 1780년 후반부터 딜레탕트 음악시장의 요구로 인하여, 몇몇 작곡가들이 이 두 악기들을 좀 더 대등한 관계에 놓은 통합적 소나타 스타일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 대등한 관계란 바이올린과 건반악기가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듯이, 각 악기들에게 다른 특성과 의미,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18세기에바이올린 소나타는 귀족 상류층의 음악레슨을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카르몽텔 [피아노를 치는 모차르트와 아버지, 누이] 18세기>
바이올린이 소나타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원동력으로 인정될 수 있었고, 건반악기가 오히려 보조나 보강의 역할을 맡는 진정한 바이올린 소나타의 시대는 19세기 낭만주의 비르투오소 시대에 접어들어서야 등장했다. 모차르트는 시대에 앞서 바이올린 소나타 장르에 선구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다. 이러한 사실은 모차르트가 비엔나 체류시 특별한 바이올린 비르투오소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K.454]에서 각 악기가 맡고 있는 역할의 균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바이올린을 주도적 악기로 활용하려는 모차르트의 창의적인 실험은 [바이올린 소나타 K.526]에서 더 적극적으로 구현되었고, 한 세기가 지난 후 세자르 프랑크나 브람스가 작곡했던 바이올린 소나타들의 단초가 되었다.
바이올린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변화와 색채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K.526]은 그가 남긴 바이올린과 건반악기를 위한 마지막 소나타가 아니라 해도, 바이올린 소나타라는 장르에 대한 모차르트의 마지막 사고를 보여준다. 그는 이 작품을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를 작곡한 이후인 1787년 여름에 작곡했다. 당시 그는 오페라 [돈 조반니]의 작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 바이올린 소나타가 완성된 후 출판되기까지 불과 몇 주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가 어떤 특별한 연주 공연이나 특정인에게 이 곡을 헌정 하기 위해서 라기보다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출판 목적으로 작곡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건반악기가 아직까지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은 바이올린 반주에 맞추어 도입부를 시작하는 부분에 분명히 드러난다. 또한 바이올린이 건반악기 반주에 맞추어 주요 테마를 연주할 때에 건반악기가 음악적 단편들을 반복 연주하는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Violin Sonata in F major KV 526
그러나 모차르트는 바이올린이 담당하고 있는 음악적 요소, 프레이징 구조를 개성적으로 이해했다. 바이올린이 건반악기의 아이디어를 이어받아 새로운 방향, 새로운 음조로 변화시켜 가는 과정이 그 점을 잘 보여준다. 또한 안단테 악장에서 모차르트는 새로운 종류의 건반악기 & 바이올린 텍스추어를 창출해 냈다. 건반악기가 꾸밈음 없는 옥타브를 연주하고, 바이올린이 이에 대항하여 대위법적 선율을 노래함으로써 악장 전체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내는데, 이 부분에서 바이올린의 중요한 활약이 돋보인다. 모차르트는 전통을 바탕으로 하여 새롭게 변신해가는 바이올린 소나타의 모델을 창조해낸 것이다.
또한 마지막 악장의 빛나는 도입부에서 건반악기는 음률의 주도권을 확실히 잡고 있다. 이 때 바이올린은 건반악기 연주에 맞추어 반주하거나 가끔씩 강조 부분이나 울림을 연주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마지막 부분에서 건반악기 선율의 역할을 바이올린의 선율로 대체시키려는 과감한 도전을 시도한다. 건반악기 선율 위로 떠다니기만 했던 바이올린이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히 드러내는 것이다. 이 악장은 우연하게도 모차르트가 런던 체류기 무렵부터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C. F. 아벨에 의한 주제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이 아벨의 사후 작곡되었다는 이유로 선배 작곡가 아벨을 기념하는 악장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바이올린의 우아함과 색채적인 특성이 잘 발휘된 작품이다>
이외 모차르트가 남긴 바이올린 소나타 중 K.376을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이 곡은 1781년 작품번호 2로 출판된 6곡 가운데 첫 번째 곡이다. 생동감 넘치고 에너지 넘치는 1악장 알레그로는 그의 스승인 요제프 하이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발전부에서 사용한 재료들이 앞선 제시부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특히 그러하다. 2악장 안단테 역시 하이든과 관련된 부분으로 주제 선율을 주도하는 피아노와 이를 반주하는 바이올린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3부 형식을 띄고 있다. 전형적인 모차르트풍의 3악장 론도는 밝고 씩씩한 행진곡풍 주제가 과감하게 등장하는 악장이다. 빈 스타일의 우아함과 장난기가 넘치는 분위기가 직선적으로 펼쳐진다. 이 곡은 1781년 여름 빈에서 작곡된 곡으로 요제프 아우에른함머에게 헌정되었다.
Violin Sonata in F major KV 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