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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 Georg Friedrich Händel ] : 오페라 대 작곡가

작성자클래식사랑|작성시간12.06.06|조회수581 목록 댓글 0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 Georg Friedrich Händel ]

 

 

 

 

작곡가 헨델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또 헨델은 대개 그와 비슷한 가발을 쓴 모습으로 나타나는

 바흐와 대조적인 인물로 소개됩니다.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고 성실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으며 두 번의 결혼에서 십수

명의 자녀를 얻은(물론 그 중 다수가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바흐와는 달리 헨델은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국제 무대

에서 활동했고 아내도 자녀도 없이 평생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수상음악], [왕궁의 불꽃놀이]같은 유명한

 관현악곡의 작곡가 헨델이나, 저 유명한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작곡가 헨델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오페라 작곡

가 헨델에 대해서만 살펴보겠습니다.

 국왕 조지 1세에게 [수상음악]을 소개하고 있는 헨델의 모습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은 프랑스의 장 필립 라모와 함께 18세기 전반에 후기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였습니다. 독일 작센 지방의 할레라는 도시에서 63세 된 이발사이자 외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지요(당시에는 이발사가 응급의사를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공작 궁정의 이발사로

일할 때 헨델은 그 궁정에서 오르간을 연주할 기회를 얻었고, 헨델의 재능을 알아본 공작은 내켜하지 않는 부모를 설득해

 헨델에게 음악공부의 길을 열어주었다는군요. 그래서 헨델은 부모가 원하는 법학과 자신이 원하는 작곡, 연주를 함께

공부했다고 합니다. 물론 차츰 법학은 접어두게 되었지요.


열여덟 살이 되자 헨델은 할레에서 함부르크로 옮겨 공부를 계속했는데, 당시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유일하게 상업

오페라하우스가 세워진 도시였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던 헨델은 21세에 피렌체에 초청받아 3년간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이탈리아 기악과 오페라 작법을 공부했습니다. 바로 이 시기가 헨델의 운명을 결정했습니다.


1710년에 헨델은 자신의 [리날도 Rinaldo] 공연차 영국으로 갔다가 현지에서의 열광과 성공에 감격해 런던에

정착했답니다. 1719년 영국귀족들은 이탈리아 오페라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왕립음악아카데미를 창설했고, 헨델은

그 총책임자로 취임했습니다. 이때부터 8년간 런던은 유럽 오페라의 중심지로 발돋움했고, 헨델은 1724년에 발표한

 [줄리오 체자레Julio Cesare](줄리어스 시저)를 비롯한 여러 이탈리아어 오페라 작품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마법의 환상세계와 가상현실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 오페라는 레치타티보와 아리아가 핵심 요소였고, 중창이나 합창도 간혹 사용되지만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소재는 주로 신화나 영웅담에서 취한 진지한 내용들로, 거세한 성악가인 ‘카스트라토’를 주인공으로 한 수많은 기교주의 오페라들이 인기를 끌었지요. 헨델 역시 바로크 오페라의 기본 규범에 충실했습니다. 정형화된 연기와 과장된 의상 및 무대장치로 귀족의 신분과 품위를 과시하는 작품들을 만들었거든요.

 

특히 바로크 오페라의 특징이었던 ‘마법을 통한 환상세계의 출현’이 헨델의 오페라에도 종종 나타납니다. 바로크 시대 전쟁 상황의 참혹한 현실을 극장 무대에서는 그 정반대의 화려함과 신비로움으로 포장해 보여준 셈이지요. 2009년 헨델 250주기를 기념해 전 세계 오페라하우스에서 헨델의 작품들이 봇물 터지듯 무대에 올랐는데요, 이즈음의 헨델 오페라 연출 경향을 보면 현대에 유행하는 ‘가상현실’이 최대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이퍼미디어를 이용해 바로크 오페라의 지루함을 극복하고 있기도 합니다.


헨델은 자신의 모든 작품에서 A-B-A' 형식의 다카포(Da capo. 앞으로 되돌아가라는 뜻) 아리아로 청중의 머릿속에 주요 멜로디를 각인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헨델의 오페라들은 대개 레치타티보와 ‘다 카포 아리아’의 끊임없는 교차로 이루어집니다. 예쁘고 개성 있는 무늬의 벽지 같은 음악이라고 할까요? 벽지의 샘플만 보았을 때는 대단히 화려하고 독특해 보이지만, 막상 방 전체를 도배해 놓고 보면 비슷한 패턴이 일정 간격으로 반복되는 것이죠.


오페라 [리날도]의 한 장면. 마법사 아르미다와 아르간테

 장군.

그래서 오페라의 첫 번째 아리아를 들었을 때는 ‘옛 음악이 이렇게 멋지고 다채롭다니!’ 하며 기뻐하지만, 열 번째 아리아쯤

 가면 ‘이거 아까 나왔던 멜로디 아냐?’라고 갸우뚱거릴 만큼 비슷비슷한 멜로디와 음형이 되풀이된답니다. 바로크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청중이라면 15분쯤 지난 뒤부터 벌써 졸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 주인공 역의 카스트라토 가수는 기본적으로 다섯 곡의 아리아를 불렀는데요, 비장한 아리아, 기교적인 아리아,

낭송조의 아리아, 혼합적인 성격의 아리아, 그리고 밝고 화려한 아리아 등이었습니다. 또 당시의 오페라 작곡가들은

보편적 정서를 담은 아리아들을 작곡해, 음악에 특별히 조예가 깊지 않은 평범한 관객들을 만족시켰다고 합니다. 헨델의

 오페라들을 보면 베르디나 푸치니 못지않게 질투나 분노의 감정이 자주 표현되거든요. 연인끼리의 약속, 연인과 떨어져

 지내는 괴로움과 그리움 등 실제의 삶에서 연인 간에 벌어질 수 있는 일상적인 상황들이 오페라 속에 들어 있어,

오페라가 끝난 뒤 일상으로 돌아간 관객들이 그 아리아의 가사를 적절히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답니다.

 

헨델 다카포 아리아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영화 [파리넬리]로 유명해진 오페라 [리날도]의 ‘울게 하소서’입니다.

 이 [리날도]는 11세기 십자군 전쟁을 소재로 삼은 극이죠, 배경이 십자군 전쟁이긴 했지만 사실 당시 대본을 쓴 작가

애런 힐의 목표는 18세기 영국이 요구한 궁정신사(galant homme)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오페라 속의 젊은 리날도 장군은 처음에는 완벽한 남성이 아니지만, 알미레나 공주의 사랑을 통해 용기를 얻으면서

 현명하고 용맹한 장수로 거듭납니다. 애런 힐은 이런 리날도를 통해 ‘사랑과 사회적 의무를 조화시킨 이상적 남성상’

을 제시하려 했다는군요.


헨델은 1711년에 초연한 [리날도]를 여러 번 손질해 1731년에는 개정판을 공연했습니다. 주인공 리날도 역은 초판과

 개정판 모두 알토 카스트라토의 배역이었고, 여주인공 알미레나 역시 양쪽 모두 소프라노 배역이었지요.

 그러나 초판에서 알토 가수가 불렀던 고프레도 역은 개정판에서 테너로 바뀌었고, 알토 카스트라토 배역이었던

고프레도의 형제 에우스타치오 역은 개정판에서 사라졌습니다. 아르간테 역은 원래 베이스 배역이었다가 개정판에서

알토 역으로 바뀌었고, 아르미다는 소프라노에서 알토 역으로 교체되었답니다.

 

 

성부에 따른 부드러운 남성상과 강한 여성상


헨델의 [줄리오 체자레]는 [리날도]보다 훨씬 음악적으로 풍요로워진 작품입니다. 멜로디와 화성이 다채로워졌고,

등장인물들의 복합적인 감정을 깊이 있게 표현하는 음악이 쓰였습니다. 로마 총독 줄리어스 시저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사랑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시저가 부르는 아리아 ‘교활한 사냥꾼은 말없이 숨어서 먹잇감을 노린다’,

‘아름답게 꽃핀 초원에’, 그리고 클레오파트라가 시저를 유혹하는 ‘사랑스런 눈동자여, 사랑의 화살이여’ 같은 걸작

아리아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 클레오파트라의 아리아는 입시곡으로도 자주 등장합니다. 시저 역은 카스트라토가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 대개 메조소프라노나 카운터테너가 부르고 있습니다.

오페라 [줄리오 체자레]에서 시저 역을 연기하고 있는 메조 소프라노.

 

헨델의 수많은 오페라 가운데 또 하나의 비중 있는 작품은 ‘라르고’로 유명한 [세르세]입니다.

영화 [300]에 등장하는 거구의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Xerxes)를 기억하시나요? 그 이름을 이탈리아어로 읽은

것이 바로 ‘세르세(Serse)’랍니다. 원래 크세르크세스 왕은 남성적이고 위엄 있고 냉혹한 통치자로 유명했지만

 ‘오페라 세리아(정가극)와 오페라 부파(희가극)의 절묘한 혼합’으로 불리는 이 오페라의 주인공 세르세는 사랑에 빠진

 소심하고 섬세한 남성으로 그려집니다. 더구나 소프라노 또는 메조소프라노가 이 역을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무대 위에서 왕의 존재는 더욱 부드럽고 인간적으로 보이겠죠.


‘라르고’는 아리아가 아닌 ‘아리오소’로 불립니다. 아리오소란 ‘레치타티보 끝에 등장하는 짦은 선율’을 가리키는 말이죠.

 연인을 찾으려고 성안의 온 정원을 돌아다니던 왕이 지쳐 나무그늘에서 쉬며 ‘이렇게 소중하고 사랑스런 나무그늘은

 처음이야(Ombra mai fu...)’라고 말하는 것이 ‘라르고’ 가사의 전부입니다.


이처럼 헨델의 오페라에는 대개 부드러운 남성상과 강한 여성상이 등장합니다. 남자 주인공들은 대부분 기사나

군주들이지만 여성음역 성부를 사용하기 때문에 남성성이 희석되며, 여주인공 가운데는 마법사로 등장해 권력과 권위를

 행사하는 경우가 흔하지요. 언어만을 사용하는 연극 무대와는 달리 오페라에는 음악이 있고 성악의 여러 성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작곡가가 주인공을 위해 어떤 성부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남녀관계의 역학이 달라집니다.

또 요즘 연출에서는 헨델의 세리아에 깃든 부파적 요소를 포착해 현대적인 유머감각으로 무대화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1720년대부터 영국의 민생이 어려워지고 예술에서도 국민주의가 득세해 이탈리아 오페라가 인기를 잃기 시작하자,

 헨델은 차츰 오라토리오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메시아], [유다스 마카베우스]같은 걸작 오라토리오를 남긴

 헨델이 오페라에서 오라토리오로 관심을 돌린 것은 특이한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오라토리오라는 장르는

 오페라와 같은 시대에 발전했고, 음악형식 면에서도 레치타티보, 독창 아리아, 중창, 합창으로 이루어진 오페라와

차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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