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리의 역할과 기능은
마츠리가 개인이나 집단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해서 수행하는 역할과 기능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회의 가장 최소 구성단위로서의 개인이 해방감을 맛보게 한다는 점이 아닐까? 코오치(高知)시에서 매년 여름 열리는 [요사코이 마츠리]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한 여고생으로부터 춤을 추는 마츠리 행렬 속에서 '머리 속이 하얗게 비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마츠리의 시공간은 바로 일상을 벗어난 카오스와 엑스터시의 시공간이다. 이는 바로 일상생활에서는 할 수 없는 것 혹은 하지 못하게 금지된 것들로부터 의 해방공간인 셈이다. 이곳에서 개인은 일상의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소우주를 소유하고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 이러한 개인의 집합으로서의 가족 또는 집단, 그리고 지역사회의 성원으로서의 정체성 확인이 마츠리가 가지는 또다른 중요한 기능으로 지적된다. 즉 각 개인이 속한 집단고 사회의 통합과 아이덴티티의 확인 기능을 마츠리는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마츠리는 그 주체집단에 의하여 가장 중심이 되는 행사를 하게 되는데 이 때 제일 중요시되는 것은 일치 단결된 정신과 힘이다. 가령 가마나 수레로 거리를 누비게 될 때 그 팀의 리더십에 따른 팀워크는 유감없이 발휘되고 확인된다. 이와 함께 부수 집단에 의해 행해지는 각종 예능이나 경기에서도 이들 팀 구성원들의 결속과 의사통일은 집단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는 매체로서 작용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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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마츠리의 기능으로서 평소에 쌓인 불만과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역할도 있다는 점이 곧잘 지적되기도 한다. 이는 예전에 권력자들에 의해 마츠리가 이용되어 온 측면을 역으로 확인할 수 점이기도 하다. 즉 마츠리에는 그 진행을 맡은 주재자를 필요로 했는데 권력자는 이 주재자를 임명한다던지 겸하므로서 자신의 의도를 반영하고 하였다. 때문에 마츠리 영역의 확대는 지배권의 확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츠리가 실제 수행되는 과정에서 권력의 대립이 그대로 나타나는 일은 많지 않았고, 일상에서의 갈등을 재통합한다는 전제하에서 마츠리는 행해져 왔다. 마츠리에 보이는 지배층에 대한 풍자 또는 대항적 요소들은 마츠리가 가진 이러한 갈등해소와 조직통합의 기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때문에 집단과 사회의 구조가 복잡화하면 할수록 그만큼 유희적 요소가 들어간 의사(疑似)적 투쟁 즉 싸움은 직접 혹은 간접적인 형태로 마츠리에 부수되게 되는 것이다. 마츠리의 역할이나 경비 분담의 방식, 의례공간의 위치나 행차 경로의 결정 방법, 축제의 내용, 경기나 예능의 선택과 진행 상황 등에 마츠리와 그 조직의 내부구조가 분명하게 반영되는 것은 바로 마츠리가 가진 정치경제적 측면 때문이다. 그래도 마츠리가 정기적으로 행하여지는 것 그 자체는 어떤 집단이나 조직의 성원들에 의한 공동체적 질서유지와 재생산에 순기능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기능들이 엷어지게 되면 일부사람이나 집단/조직들의 이익 추구를 위해 만들어진 이벤트나 쇼 혹은 단순한 향연이나 퍼레이드로 전락해 버리기도 한다.
여러 사회에서 행하여지는 '축제'의 의의와 기능으로 흔히들 '일상의 전도'를 지적한다. 축제는 일상을 비일상의 시공간으로 격리하며 세속의 삶을 일정 기간 전환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축제의 시공간은 일상의 부정이며 정지이며, 따라서 카오스 상태 즉 혼돈과 무질서의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일시적으로 해방된 공간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는 축제가 끝나고 다시 일상의 질서로 전환될 때까지 지속되게 된다. 일본사회의 마츠리도 바로 이 축제 일반의 속성과 다르지 않음은 앞에서 보아 온 바이다. 일상의 시·공간을 '비일상의 시·공간'으로 전환시키므로서 얻게 되는 카오스의 해방공간과 거기서 얻게 되는 희열감·도취감이 마츠리의 최대 매력이 된다는 점이 바로 마츠리의 기능과 역할이자 현대적 번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