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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인천오류동교회 작성시간 26.06.13 헬라 세계는 철학의 세계였습니다. 인간은 이성으로 진리를 탐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좋은 삶은 지혜와 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말과 논리와 사상이 높은 가치를 가졌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십자가 복음은 너무 투박해 보였습니다. “믿으라.”, “회개하라.”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구원자다.” 이 말은 철학적 체계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로마 제국 안에서 십자가는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이었습니다. 특히 헬라-로마 세계에서 명예와 수치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노예, 반역자, 최하층 죄수에게 주어지는 형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주님”, “구원자”,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전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헬라인은 지혜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인간 지혜를 최종 기준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말합니다.“인간은 자기 지혜로 하나님께 이를 수 없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다.”, “하나님은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셨다.” 이것은 헬라인의 지적 자존심을 무너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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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인천오류동교회 작성시간 26.06.13 헬라 세계는 이렇게 철학과 수사학, 논리와 고상한 사상을 중시했습니다. 그들에게 구원이란 더 높은 지식, 영혼의 고양, 철학적 깨달음,신적 질서에 대한 통찰처럼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한 복음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믿으라.” , 이것은 헬라적 지혜 기준에서 너무 투박하고, 너무 수치스럽고, 너무 비철학적으로 보였습니다. 헬라인이 기대한 지혜는 고상한 이론인데, 복음은 피 흘리는 십자가를 말합니다. 헬라인이 기대한 구원자는 위대한 현자나 영웅인데, 복음은 처형당한 유대인 예수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방인에게 십자가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이 기대한 하나님 모습과 정반대였습니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공통적으로 기대한 것이 있습니다. 강한 하나님. 눈에 보이는 승리. 인간이 납득할 만한 지혜. 영광스러운 구원자. 권세 있고 압도적인 왕. 그런데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은 인간 기대와 정반대였습니다. 낮아지신 하나님. 고난받는 메시아.수치를 당하는 왕. 죽임당하는 어린양. 자기 백성을 위해 저주를 담당하시는 그리스도. 인간은 이런 방식의 구원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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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인천오류동교회 작성시간 26.06.13 이같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반응을 한 문장씩 정리하면 유대인은 이렇게 걸려 넘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아가 어떻게 저주받은 자처럼 나무에 달려 죽을 수 있는가?” 이방인은 이렇게 비웃었습니다. “처형당한 죄수를 구원자라고 믿는 것이 어떻게 지혜인가?” 그런데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그 저주받은 죽음이 너희 죄를 담당한 대속이다.” “바로 그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다!" 이처럼 유대인과 헬라인의 표적과 지혜를 구하는 모습을 길게 살펴본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자녀를(유대인 디아스포라, 이방인 가운데 부른받은이들, 아직 믿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아시는 택한 백성, 복음으로 장차 하나님의 자녀로 드러날 사람) 모으시려고 한다고 하셨는데, 그 자녀들의 처음 현실이 바로 유대인이나, 혹은 헬라인이의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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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인천오류동교회 작성시간 26.06.13 자연인으로 태어나 유대인이 되었든, 이방인(헬라인,당시 로마인 포함)이라면, 최소한 저들은 위에서 길게 설명드린 현장에서 자라며, 그들에게 메시야란, 혹은 신이라 그렇게 표적이나 지혜차원에서 다뤄지고 있는게 현실인데, 정작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사람이 되게 하셔서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차원으로서의 메시야, 그리스도를 그것도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원하는 그 능력과 그 지혜를 보이시기에 대단히 이질적이고, 소위 정상적으로는 예수님을 믿기가 어려운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길게 설명을 드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사람.인류의 처지에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이런 식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셨다는 것인데, 정말 들어도 들어도 이상하지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전의 우리의 형편과 처지에서 그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접하며 사는 이 신비를 우리가 지금 여기서 지나고 있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일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지만, 우리에게는 거저 그냥 쉽게 아무렇게나 받아지지를 않는 아주 아주 이상한 여정입니다. 그런 여정을 우리는 고백하고 있는 중이며, 사는 중이며, 살아가고자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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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인천오류동교회 작성시간 26.06.13 아무쪼록 이토록 예수님의 화려한 이적과 기적의 표적들이 전혀 상상치 못한 결론을 통해, 온 인류, 온세상에 전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그 놀라운 복음이라하는 예수님의 속건제물로서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흩어져 있는 하나닌인의 자녀가운데 참여하게 하시고,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하나되어 호흡하며 살게 됨을 감사하며, 찬송과 영광을 돌리며, 온전히 이 복음을 전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