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門中 참고 자료

조선시대 부자 영의정 가문

작성자홍인화|작성시간06.07.29|조회수364 목록 댓글 0
父子 영의정 가문]

(영의정의 아들이 영의정되다.)

"게, 물렀거라! 영상 대감 행차시다!"
TV 사극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영의정은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승상, 재상, 영상, 상상(上相) 등으로 불려지는 의정부의 최고 벼슬이다. 임금 아래 한 사람인 이 벼슬을 역임한 인물은 조선 500년을 통틀어 162명이 나왔다. 그러니까, 365명의 정승 가운데, 초대 조준부터 근대 직제개편이 이루어지기 전 김홍집까지 162명이 탄생되었다.
벼슬을 시작해서, 마지막 관문인 영의정까지, 수 만 명의 급제자 중, 162명만이 마라톤을 완주한 셈이다. 물론, 영의정 중에는 수양대군(세조) 이나 구성군(이준), 흥인군(이최응) 처럼, 왕실 종친도 끼어 있지만, 대다수는, 정상적인 절차로, 영상 대감이 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영의정을 아버지와 아들이 연이어 역임한 7가문이 조선시대에 탄생되었다. (참고로, 이 싸이트에서는, 진주 하씨의 하륜 - 하연 부자가 빠져있으니, 이 점, 유의하시면서 봐 주십시오.)

청송 심씨 (심온 - 심회 부자)

장수 황씨 (황희 - 황수신 부자)

남양 토홍  (홍언필 - 홍섬 부자)

해평 윤씨 (윤두수 - 윤방 부자)

신 안동 장동 김씨 (김수항 - 김창집 부자)

연안 김씨 (김익 - 김재찬 부자)

청풍 김씨 (김재로 - 김치인 부자)

[역사 이야기]

청송 심씨 (심온 - 심회 부자)

심온은 세종의 장인으로, 세종 즉위 직후, 영의정이 되어, 명나라에 정사로 다녀오는 도중, 자신의 막내 동생 도총제 심정이, 상왕인 태종의 병권 장악을 비난한 것이 화근이 되어, 자신과 이전에, 세자 책봉 문제로 다툰 적이 있는, 평소, 서로, 사이가 안 좋았었던 좌의정 박은의 무고로, 사사되었다. 문종 즉위 직후, 신원 복관작되었다. 32년간 관직 생활을 하였다.
아들인 심회는 음보로 영의정까지 된 특이한 경우이다. 세종대왕의 처남으로, 연산군 때, 모친 윤씨 폐출 사건 때, 동조하였다는 죄로, 부관참시되었으며, 중종 반정 직후, 신원 복관작되었다. 36년동안 벼슬살이를 하였고 76세로 사망하였다.

장수 황씨 (황희 - 황수신 부자)

황희는 조선왕조 제1의 청백리 정승으로, 1389년(공양왕1) 문과에 급제해, 59년간의 벼슬살이에서, 90세로 죽을 때까지, 수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성품이 어질고 청렴했으며, 충효가 지극하였다.
그의 아들 황수신은 음보로 벼슬길에 나와, 40년간 벼슬살이를 했다. 그는 최초로 비문과 출신으로 도승지가 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그의 벼슬살이는 본인보다는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은 것으로,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남양 토성 홍씨 (홍언필 - 홍섬 부자)

홍언필은 문과에 두 번 급제한 최초의 인물로, 평소 검소하고 청빈해, 주위의 우러름을 받았다. 또 그는 조광조와 내외종간이었으나 기묘사화 이후 조광조를 멀리하였다. 41년동안 벼슬살이를 하고 74세로 사망하였다. 아들인 홍섬은 1531년(중종26) 문과에 급제했다. 조선 사회의 최초로, 삼대임(三大任) 세 관직 (좌찬성 - 이판 - 대제학) 을 겸한 인물로, 청백리가 되었다. 43년동안 벼슬살이를 하고 82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해평 윤씨 (윤두수 - 윤방 부자)

윤두수는 1558년(명종13) 문과에 급제해, 대사간, 도승지를 지냈고, 임진왜란ㆍ정유재란의 위기극복에 최선을 다했다. 41년간 벼슬생활을 하고 69세로 사망하였다.
아들인 윤방은 1588년(선조21) 문과에 급제한 인물로, 인품이 중후하고 문장에 능했으며, 효성이 지극했다. 이율곡의 문인으로, 여러 벼슬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다. 51년간 벼슬살이를 하고 78세로 사망하였다.

신 안동 장동 김씨 (김수항 - 김창집 부자)

김수항은 효종 2년의 문과 장원 급제자로, 김상헌의 손자이다. 송시열의 노론에 속했으며, 남인의 집권(기사환국)으로, 사사되었다. 그의 아들인 김창집은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죽자, 산중에 들어가 나오지 않다가, 갑술옥사로 정국이 바뀌자, 여러 벼슬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42년간 관직생활을 하였고 75세로 사망했다.

연안 김씨 (김익 - 김재찬 부자)

김익은 뒤늦은 41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다 유배된 적도 있었으나, 풀려나와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아들인 김재찬은 정조실록 편찬 등 주로, 서적편찬에 관여 하였고, 53년간 벼슬살이를 하다가, 78세로 사망하였다.

청풍 김씨 (김재로 - 김치인 부자)

김재로는 우의정 김구의 아들로, 3대 정승 집안이다. 벼슬생활의 절반은 모두, 대신으로 재직하여, 노론의 선봉자 역할을 하였다. 아들인 김치인은 정조의 명으로 당쟁의 조정에 힘썼으며, 영의정을 수 차례 역임하고, [대전통편] 편찬을 총재하였다. 김재로는 78세, 김치인은 75세로 생을 마감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