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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말씀★

190120 주일말씀 - 나는 아니지요? (막14:17~21)

작성자숲속의호수|작성시간19.01.20|조회수297 목록 댓글 0

나는 아니지요? (14:1721,6)

예수님께서 보이시는 행동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메시야로서의 징표를 전혀 발견할 수 없던 유다는 실망감을 넘어 예수님께 대한 배신감마저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에 사단이 들어가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었고(13:2, 22:3), 그는 종교지도자들을 찾아가 실행에 옮기게 되지요. 한편으로는 히어로 무비에서 보듯 메시야의 사명을 일깨우려 함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이러는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 두 제자가 예비된 장소에서 유월절 식사 준비를 마쳤고, 저녁 때가 되어 예수님의 일행이 성내로 들어가 다락방을 찾으십니다.

보통 유월절 식사는 해가 진 후에 시작해서 자정까지는 마쳐야 했는데, 아마도 8-9시 정도 되었겠지요. 함께 식탁 주위에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앉아 식사를 하였는데, 제자들은 미처 몰랐지만 이것이 선생님과 더불어 하는 마지막 만찬이었지요. 이 자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고별설교로 알려진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은 요한복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요. 마가는 식사 중에 있었던 두 가지 사건만을 언급하는데, 제자들 가운데 배신자가 있다는 것과 주의 만찬 의식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던 중 예수님께서 마치 중대한 발표라도 하시듯 입을 여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저 우스갯소리로,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지요. 이에 제자들이 식사를 멈추고 자연스럽게 선생님을 향하여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그 말씀이 충격적입니다.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갑자기?...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씀에 제자들은 당황스러울 수밖에요. 지금 예수님께서는 시41:9절 말씀을 염두에 두신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그동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최소한 세 차례 이상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으실 것을 말씀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식사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당신을 팔 것이라고 하시지요.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가 자신을 팔 것인지 알고 계신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으시고 이렇게만 말씀하십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주님께서는 제자들로부터 어떠한 반응을 기대하셨을까요?... 차라리 누군가를 밝히시며 다른 제자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그를 막아서 이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으셨다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니까 좋게 말할 때 마음 고쳐먹고 돌이키도록 기회를 주시기 위함일까요?... 여하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알려서 그를 막거나 혹은 직접적으로 그를 야단치고 책망하여서 돌이키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도무지 너의 얼굴을 보면서 밥을 먹을 수 없다며 쫓아내시지도 않으셨지요. 저같으면 분명 체하였을 것 같은데도 함께 식사를 이어가지시죠. 결국 누가 자신을 팔 줄을 알면서도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죄악인가를 보여주시고자 하는 예수님의 경고라 할 수 있겠지요.

반면에 이미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과 거래를 끝낸 유다는 다시 돌아와 넘겨줄 기회를 엿보면서 함께 어울리고 웃으며 뻔뻔하게 식사를 합니다. 그러는 중에 예수님으로부터 제자들 중 하나가 배신하여 넘겨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으니, 유다는 이미 자신의 배신을 예수님께서 알고 있음을, 자신의 비밀 거래가 발각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요. 그렇다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금 자신이 지금 행하고 있는 것이 옳은 것인지 깊이 생각하고서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면 좋았으련만, 거기서 멈추지 못한 채 태연하게 식사를 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이럴 때 갑분싸라는 말을 할 수 있겠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지면서 제자들 가운데 술렁거림이 일어납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자신들 가운데 한 사람이 선생님을 팔 것이라고 하시니... 마음이 무거워진 제자들은 근심하며 한 사람씩 예수님께 묻습니다. “나는 아니지요?”... 이것은 분명 그래, 너는 아니다라는 대답을 기대하고 묻는 것이지요.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예수님께 확인받고 싶어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유다의 배신과 이를 알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시고 그저 제자들에게 알리기만 하시는 예수님보다도 오늘 본문에서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지금 이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정말 끝까지 그들은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날 소위 복불복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그대로 발휘된다. “나만 아니면 돼!”...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근심을 하였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우리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배신하고 판다구요? 주님,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십니까? 우리가 함께 지내온 세월이 얼마인데요? 지난 3년여 동안 그야말로 먹고 자고 함께 생활하며 희노애락을 모두 함께 해왔는데, 그런 우리가 선생님을 판다구요? 그리고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진리이고 생명이며 구원이심을 누구보다도 우리가 잘아는데, 어떻게 우리가 선생님을 배신하고서 팔 수가 있단 말입니까?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우리 중에 누가 감히 그런 생각을 한다고 그러십니까?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잘못된 정보이니 걱정일랑 붙들어 매십지요. 다른 사람들이 선생님을 팔아넘기려고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이 앞장 서서 그 길을 막고 선생님을 구해낼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들끼리 서로를 돌아보며 안그러냐, 맞지?... 라고 하면서 서로를 독려했어야죠. 그것이 하나된 공동체로서 제자들이 보였어야 하는 반응이지 않습니까?... 그러할 때에 혹시라도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돌아설 수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한 사람씩 나와서 저는 아니지요?” 라고 묻고 있습니다. 물론 제자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믿음에 대하여 확신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 혹여라도 자신이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하며 의심하고 있는 셈이지요. 사실 우리들 가운데 어느 누가 자신의 마음, 믿음, 의지 등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앞으로 남은 우리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을 텐데, 그 가운데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깊고 견고해질 것이라는 건 그저 막연한 희망적인 기대일 수밖에요.

다들 두렵고 떨림으로 예수님께 자신은 아니라는 확인을 받기를 원하는데, 어쩌면 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가룟 유다였겠지요. 마태에 의하면 유다도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께 나아가서 나는 아니지요?’ 라고 물었다고 하니까요. 다들 예수님께 묻는데 자신만 안하면 오히려 티가 날 수 있으니 그야말로 분위기 때문에 등떠밀려 나간 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유다의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답하셨지요(26:25).

제자들의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명시적으로 한번 더 말씀하십니다. “열 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20)...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이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바로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12명의 제자들, 바로 너희들 가운데 하나라며 분명히 하십니다. 그러면서 덧붙이시길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라고 하시지요. 이 말은 그만큼 가깝고도 친밀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일러주시는 것이지요.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찌개를 끓여서 가운데 놓고 함께 먹는 것처럼 이스라엘도 소스를 만들어서 빵이나 고기를 함께 찍어서 먹었는데, 그처럼 막역했던 친구가 돌아서서 배신을 하는 것이니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 믿었던, 최소한 그래서는 안되는 친구로부터의 배신임을 암시하는 것이고, 그러니 더욱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겠지요.

이와 관련하여 마지막 식사자리에서 하신 예수님의 고별설교 가운데 한 말씀을 요한이 들려주고 있는데, 15:13-14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그야말로 극과 극의 대조를 보이고 있지요.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여 대적들에게 팔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친구라 부르시고 그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기꺼이 버리시고 희생하시는 고귀한 사랑을 하시니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배신을 당하고 죽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제자들 가운데 배신자가 나와서 별안간 죽으시는 것이 아님을 마지막 21절에서 명확하게 밝히시는데요.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죽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배신하여 팔아넘기고, 그리하여 고난과 핍박을 받아 죽게 되는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기록된 말씀의 성취이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시지요.

그렇습니다. 한편에서는 눅22:3절이나 요13:2절에서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는 말씀처럼, 사단 마귀가 가룟 유다를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원인은 사단에게 있지, 유다의 잘못은 아니라고 하기도 하지요. 또한 예수님께서 여기서 밝히시는 것처럼, 결국 예언된 말씀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유다의 배신은 필요하였고, 그래서 유다의 배신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가능했다며 배신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아넘긴 유다의 잘못과 죄악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어서 말씀하시는데, 당신께서는 기록된 대로 가시지만 그러나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유다를 향한 예수님의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가 있지요. 비록 그가 사단의 대리자로, 혹은 기록된 말씀을 이루는데 있어서 악역을 감당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선택과 결정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져야만 합니다. 앞서도 이야기 하였던 것처럼 종교 지도자들이 접근하여 유혹한 것에 넘어간 것도 아니고 그가 먼저 이들을 찾아가서 자신이 예수를 넘겨주겠노라고 제안을 할 정도로,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적극적으로 행하였으니까요.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홍세화씨의 책 중에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물론 같은 악역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지만 말입니다. 사실 저도 학생 시절에 악역을 도맡아서 하기도 했습니다. 그려지실지 모르겠지만 소위 말하는 군기반장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혹시라도 야단칠 일이 있으면 선배인 제가 나서서 야단을 치고, 나중에 간사님들이 가서 다독이는 것으로 역할을 나누었으니까요. 그래서 후배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감히 말도 못걸 정도였지요.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대한 책임 또한 자신이 져야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과의 마지막 만찬 이후에 유다가 언제 자리를 떴는지 마가가 언급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제자공동체를 이탈하여 종교 지도자들에게로 갔고 병사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 다시 등장하게 되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 잘못과 죄악들까지도 포함하여 모든 것이 합력하여 당신의 궁극적인 선을 이루도록 사용하신다고 하지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우리의 죄악과 잘못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 3년여 동안 예수님과 모든 것을 함께 하였던 가룟 유다 또한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될 것인지, 사단의 도구가 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자신이 한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팔 생각을 집어넣었고, 십자가의 구원을 위해 배신하는 악역을 유다가 맡았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등 어떠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오롯이 져야함을 분명히 하십니다. 우리의 선택과 결정에 대해 책임을 물으실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단의 도구가 아닌 그리스도의 동역자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울러 우리가 그저 혼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몸의 지체임을 기억하며,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며 스스로의 의로움에 만족하며 사는 것에 머물지 않고, 서로를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하나된 공동체의 지체들로 함께 세워져 가는 일산호수교회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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