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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훈련자료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 J. I. 패커) 1~2장

작성자숲속의호수|작성시간19.08.08|조회수1,402 목록 댓글 1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

- James I. Packer, ivp. 숲속의호수.

1부 여호와를 알라

1. 하나님에 대한 연구

하나님의 자녀로서 연구해야할 최고의 학문이자 가장 고상한 사색은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과 본성과 인격과 역사와 행사와 존재일 것이다. 이 주제는 그 심오한 깊이와 높이로 인해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한편, 좁은 지상의 일만 가지고 씨름하는 이들보다 훨씬 더 넓은 마음을 갖도록 한다. 또한 그리스도를 묵상할 때에 모든 상처가 나음을 입는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을 연구하는 일이 비실제적이며 삶과는 무관하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을 창조하신 주인이자 다스리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모른 채 살아가려고 애쓰는 것보다 불친절하고 무자비한 것은 없다. 오히려 그러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세상은 이상하고 고통스러운 장소이며, 삶은 실망스럽고 불쾌한 일이 된다. 마치 눈가리개를 하여 아무런 방향 감각 없이 비틀거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이 역사적으로 지속해 온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교묘하게 꾸민 허구이며, 유행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하곤 한다. 우리는 천로역정의 순례자가 그러하였던 것처럼, 어떠한 유혹이나 폭풍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아는 여정을 중단해서는 안된다. 먼저 이 여정에 임하는 5가지 원리를 토대로 하여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에 관하여 성경이 무엇을 보여주는지 상세히 검토할 것이다. 5가지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씀하셨으며,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갖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2. 하나님은 그분이 지으신 세상의 주님이자 왕이시다. 하나님은 하시는 모든 일에 완전함을 나타내시며, 자신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이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미한다.

3.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죄책과 죄의 권세로부터 구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권적인 사랑을 적극적으로 나타내 보이시며, 그들을 자녀로 삼고 합당한 복을 주신다.

4.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이 있으며, 함께 구원사역을 이루신다. 곧 성부께서 구속하기로 결심하시고, 성자께서 그 구속을 이루시며, 성령께서 그것을 적용하신다.

5. 경건이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신뢰와 순종, 믿음과 예배, 기도와 찬양, 복종과 섬김으로 반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삶은 하나님의 말씀 아래서 드러나고 영위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여정에 오르기에 앞서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데, 그것은 배우는 자인 우리의 동기와 목적에 관한 것이다. “내가 이러한 것들에 몰두하는 궁극적인 목표와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면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만약 신학적인 지식을 얻는 것 자체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교만하고 우쭐해져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스스로 다른 이들보다 한 단계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서 판단하고 얕잡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태도를 갖지 않도록 마음을 지키고 기도해야 한다. 교리적인 지식 없이 영적 건강이 있을 수 없지만, 잘못된 목적으로 그것을 추구하며 잘못된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오히려 그 지식이 해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시편 119편은 좋은 본이 되는데, 시인의 관심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이었다. 그의 가장 큰 바람은 하나님을 알고 즐기는 것이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가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자 했던 것은 마음으로 반응하며 삶으로 따르기 위함이었다. 그는 진리와 정통교리, 성경의 가르침과 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 자체를 목적이 아닌, 삶과 경건을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 우리 역시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여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교리들뿐만 아니라, 그 속성을 지닌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 잘아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바꿀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 배운 각각의 진리를 하나님 앞에서 묵상하는 내용으로 바꾸어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찬양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묵상의 기술을 잃어버려 많은 어려움을 당하는데, 묵상이란 하나님의 사역과 도(), 목적과 약속들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을 상기하고 숙고하고 깊이 생각하며 자신에게 적용하는 활동을 가리킨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수단으로써, 의식적으로 수행하는 거룩한 사고 활동이다. 묵상의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정신적, 영적 시각을 밝힘으로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 마음과 뜻에 충분하고도 적절히 영향을 끼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광, 우리의 하찮음과 죄성을 묵상함으로 겸손해진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신비로운 하나님의 자비를 묵상함으로 격려와 평안을 얻는다. 그리하여 겸손해지고 고양되는 체험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더불어 우리의 평화, , 기쁨도 증가한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으로 인해 참으로 여호와를 알게되는 은혜가 임하게될 것이다.

2.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는 경우는 보통 간증거리를 갖고 있다거나 혹은 자신의 회심 이야기에서 그럴듯한 부분을 추려서 말하곤 한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특정한 사건들과 관련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또한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비추어볼 때, 과거의 실망이나 현재의 비통함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초연할 수 있는가?

진정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 신경쓰지 않으며, 잃었을지도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얻은 것에 대해서 생각할 뿐이다. 바울은 자신이 잃어버린 것에 대해 배설물로 여긴다고 하는데, 이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으로 생각할 뿐 아니라 그것들을 계속 마음속에 둔 상태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많은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사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갖고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직면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통해,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개인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쾌활함, 선함, 자유로움 등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약간의 지식이 하나님에 대한 많은 양의 지식보다 값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두 가지 사항을 유념해야 한다.

1. 우리는 하나님을 많이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익히 아는 바대로 17세기 무렵 신학은 신사라면 누구나 즐기는 취미였다. 하지만 신학에 대한 관심, 하나님에 대한 지식, 기독교의 주제들에 대해 명료하게 생각하고 잘 말하는 능력은 결코 하나님을 아는 것과 같지 않다. 우리는 많은 신학자와 신앙서적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알면서도, 하나님을 거의 알지 못할 수도 있다.

2. 우리는 하나님을 많이 알지 못하면서도 경건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법, 기도하는 법,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법, 봉사하는 법 등 온갖 주제들에 대한 책들이 차고 넘쳐 기독교의 관행들을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은 전혀 모를 수 있다. 정말로 우리는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과거에 경험한 불쾌한 일이나 경험못한 유쾌한 일들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손해나 십자가들이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증거로 다니엘서를 통해 크게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1.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다. 다니엘서에는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11:32) 하는데, 이를 다른 성경에서는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확고히 서서 행동을 취하리라’(RSV)고 번역하였다. 이것은 앞뒤 문맥을 들여다볼 때 주변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경향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도전이나 무시받는 것에 대하여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을 뜻한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그러하였듯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명예가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는 상황에 민감하며, 개인적인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그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며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도록 한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기도하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그들의 열심과 에너지도 기도에서 표현된다. 하나님을 아는 이들의 내적 긴장은 실로 기도를 통해서만 표출되고 경감될 수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많아질수록 그러한 열망은 더욱 커진다. 우리는 이것으로 자신을 점검해볼 수 있다. 우리에게 그러한 기도를 하고자 하는 열망이 없으며, 실제로 그러한 기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2.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생각을 품고 있다. 다니엘서는 인간적인 기준으로 이스라엘이 어느 때보다도 미약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주가 되셔서 다스리심을 이야기한다. 역사(history)는 실로 그분의 이야기(His story),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펼쳐지는 장이며, 결국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승리하리라는 것을 극적으로 상기시켜 준다. 이러한 것들이 다니엘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었고, 그의 기도들이 이를 입증해 준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러한 분으로 생각하며, 우리의 기도는 그 하나님에 대한 견해를 잘 표명하고 있는가? 그것으로 인해 다니엘처럼 겸손하고 의존하며 경외하고 순종하게 되는가?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어느 정도 아는지를 측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3.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담대함을 드러낸다. 다니엘과 친구들이 위험을 자초하였을 때, 그들은 무엇을 하는지를 알았고 그것을 위해 치러야할 댓가를 계산했으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간섭하지 않으시면 어떤 결과를 맞이할 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 자신들이 취해야 하는 태도를 확신하고 나자 그들은 결과에 상관없이 기쁘게 그 일을 행하였다. 이것이 다니엘과 친구들은 물론, 하나님을 아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다. 어떤 길이 올바른가를 결정하는 것은 고민스럽고 어렵지만, 일단 알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 개의치 않고 담대하게 받아들인다. 우리 역시 이러한 잣대를 통해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아는지를 측정해볼 수 있다.

4.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커다란 만족을 얻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다는 확신, 그 관계가 죽음을 넘어 영원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증해 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누리는 평화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이러한 평화가 있었기에 그들은 풀무불에 던지겠다는 위협에도 자신들의 입장을 굽히지 않고 담대히 말하였다.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하나님이 계시다면 맹렬히 타는 풀무불과 왕의 손에서 건져내실 것이라고... 혹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않을 줄을 아옵소서(3:16-18) 라고... 우리의 만족이 얼마나 광범위한가 하는 것 역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척도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원한다면 우리는 다음의 두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째로, 우리는 자신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나 은사와 교회에서의 직분 혹은 책임이 아니라, 어떻게 기도하며 우리 마음에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가에 의해서 스스로를 측정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무지하며 연약한지를 보여주시도록 주님께 간구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구세주를 찾아야만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그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과 사귀셨으며, 이로써 사람들은 구세주를 알았고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다니엘의 세 친구와 함께 풀무불 속에서 함께 거닐었던 네 번째 사람, 그리고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 사자들의 입을 막도록 하신 천사를 기억하는가?... 예수님께서 지금 몸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지만,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는 예수님을 찾고 발견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고 알 수 있다. 예수님을 발견하기까지 그분을 찾은 사람들만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하나님을 안다고 증거할 수 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예수님을 찾으면, 분명히 그분을 찾게 되리라는 것이 예수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첨부파일 20하나님을아는지식(Knowing God) 1-2장.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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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숲속의호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8.08 패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학생 시절,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더불어 언젠가는 넘어야할 산이라 여겨지던 책인데... 이번 기회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정리를 해 봅니다.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을지라도 함께 읽고 나누는 가운데 많은 유익이 있으리라 기대하며... 중간에 포기하지 마시구요.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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