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장 강해 내용입니다.
이 성경 강해는 제가 읽어본 것 중 가장 딱딱하면서도 가장 신뢰가 되는 강해입니다.
그런데 이 강해는 개신교에서 한 것이 아니라 천주교 신부가 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번 주일에 나눌 본문이니 미리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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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장 1~14절
1-14절: 아버지께로 가는 길
1절: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앞의 13장에서 유다의 배반이 예고되었고, 베드로ᄀᆞ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것이라는 예고도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의 이별 예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면서 믿음이 흔들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은 그들에게 믿음을 갖고 침착해지라고 격려하십니다.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라는 말은 동요하지 말고 침착해지라는 말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걱정하지 말라.’라고 의역했습니다. 마음이 걱정으로 흔들리면 믿음도 흔들리는 법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라는 말은 지금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굳은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제자드른 이미 하느님을 믿고 있지만 지금은 그 믿음을 더욱 굳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분이라는 것도 더욱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의 안정과 내적 평화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예수닌ㅁ에 대한 믿음을 함께 강조하는 것은 두 믿음이 하나라는 뜻입니다. 즉 하느님을 믿는 거과 예수님을 믿는 것은 같은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또 이 말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일치를 나타내고,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2절: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 아버지의 집’은 하느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거처할 곳이 많다.’라는 말은 하느님 나라는 모든 사람이 머물 수 있을 정도로 여유 공간이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비유로 생각한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하느님과 예수님이 일치된 공동체에 충분히 참여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여기서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라는 말은 이미 앞에서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 것처럼 표현된 말인데,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그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 성서는,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라고 번역했습니다. 새번역 선셩은 원문대로 직역한 것입니다. 어떻든 예수님이 지금 떠나는 것은 제자들이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가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떠난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고, 예수님의 죽음은 곧 아버지께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아버지께 가서 제자들의 거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떠남(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떠남(죽음)이 제자들을 위한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3절: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죽음, 부활, 승천 등이 다 이루어지고 나면’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 하늘나라에서 제자들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어떤 작업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다시 와서’라는 말은 재림이 아니라 부활 후에 제자들과 늘 함께 계시는 ‘현존’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라는 말은 부활 후에 제자들이 믿음을 통해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에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4절: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예수님은 2절에서 아버지의 집으로 가신다고 목적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제자들이 알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지금 아버지의 집으로 가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길을 알고 있다.’라는 말은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길을 제자들이 알고 있다는 뜻인데, 이 말은 사실상 제자들이 그 길을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즉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 길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의 13장 34절에서 말한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계명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5절: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 구절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음을 나타냅니다. 아마도 토마스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질문한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여행 목적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는 길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6절: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예수님은 토마스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변하지 않으시고 그 질문을 기회로 삼아서 당신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길’이란 삶을 뜻하는 말로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살아야 할 삶, 구원을 얻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살아야 할 삶입니다. ‘진리’와 ‘생명’은 길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나는 길이다.’라는 말은 10장 9절의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라는 말과 가은 뜻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느닌ㅁ을 계시하시는 분이고, 예수님만이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람들이 하느님께로 가는 길, 구원을 얻기 위해 가야 할 유일한 길입니다.
‘나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은 예수님만이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분이고, 그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진리를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그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진리를 실천하면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감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라는 말은 그 길의 목적지가 바로 아버지, 하느님, 구원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예수님만이 그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7절: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이 구절에서 ‘나를 알게 되었으니’라는 말은 ‘나를 알게 되면’으로 바꿔야 합니다. ‘알게 되었으니’는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나를 알게 되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라는 말은 6절의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인격체와 인격체의 만남, 그리고 공동체 형성을 뜻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예수님과 공동체를 이루면서 일치하는 것이고, 예수님과 공동체를 이룬 사람은 아버지와도 공동체를 이루게 될 것(아버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아버지와 일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알게 될 것이다’라는 미래형 표현은 약속을 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이어서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라는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이 말은 제자들이 이미 아버지를 알고 있고, 이미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아버지를 알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이미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아는 것이 곧 아버지를 아는 것이고, 예수님을 보는 것이 곧 아버지를 보는 것인데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보았고 알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를 이미 보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 곧 아버지와 일치를 이루는 것이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아버지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고, 아버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겉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삶의 모든 면이.)
8절: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필립보도 토마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필립보가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고 청하는 것은 모세나 이사야처럼 하느님을 직접 만나 뵙거나 직접적인 체험을 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하겠다.’라는 말은 ‘그것으로 만족하겠다.’로도 번역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9절: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라는 말은 그동안 제자들이 보고 듣고 겪은 예수님의 말씀과 일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았어야 한다고 꾸짖는 말씀입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라는 말은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파견하시니 분이고, 하느님은 예수님 안에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시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이미 12장 45절에서도 하신 말씀이고, 앞의 7절의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라는 말씀을 다시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라는 말은 하느님을 직접 눈으로 보려고 하거나 특별하고 직접적인 체험을 바라지 말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꾸짖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직접 하느님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나 직접적으로 하느님을 체험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10절: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말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라는 말은 10장 38절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은 하느님과 예수님이 완전히 일치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너는 믿지 않느냐?'라는 말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태도를 꾸짖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라는 말은 앞의 8장 26절, 12장 49절~50절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예수님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고 하느님으로부터 들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과 일치되어 있고 예수님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말을 하시는 것이다'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곧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뜻인데, 이 말도 이미 앞에서 여러번 반복되었던 말씀입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이라는 말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완전한 일치를 뜻합니다.
11절: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여기서 '믿어라'라는 명령은 복수 2인칭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명령은 필립보뿐만 아니라 제자들 모두에게 하신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10절의 말은 반복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말을 믿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만일에 예수님의 말씀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면, 즉 믿음이 부족하다면, 믿음의 근거가 될 예수님의 기적도 많기 때문에, 그 기적을 보고서라도 믿어야 합니다.
'믿지 못하겠거든'이라는 말은 '믿음이 부족하다면'입니다. 즉 예수님 말씀이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이 믿음이 부족해서 믿지 못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일들'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징들과 기적들을 가리킵니다.
12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아멘 아멘) 너희에게 말한다'라는 말은 엄숙한 선언을 할 때의 관용어인데, 이제 중요한 약속을 하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이란 예수님을 믿는 참된 신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일'은 일차적으로는 기적과 표징을 뜻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사도들이 하게 될 선교활동을 뜻합니다.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사도들이 이어받아서 하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은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하시지 못한 일을 하게 된다는 뜻도 아니고, 예수님보다 더 놀랍고 위대한 기적을 행하게 될 것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이어받아서 '땅 끝까지' 가서 일하게 된다는 뜻이고, '세상 마지막 날까지' 일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땅 끝까지, 세상 마지막 날까지'라는 점에서 '더 큰 일'로 표현된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말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일을 이어받아서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3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예수님께서 이루어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여기서 '무엇이든지'라는 말은 아무 기도나 다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 이름으로'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라는 말은 단순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뜻이 아니고, 예수님과 일치해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면서 예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이유는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라는 말은 제자들의 기도를 다 이루어 주겠다고 약속하는 이유는 제자들이 예수님으 일을 함으로써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의 일은 예수님의 일이고, 예수님의 일은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13장 31절)
14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이 구절은 13절의 약속을 반복한 것인데, 예수님 자신이 기도의 대상이며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라는 것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계속 일하시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