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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기념관

작성자백두산|작성시간26.06.19|조회수119 목록 댓글 0

6월 중순의 기온이 이른 더위로 도심의 기온을 30°C 이상 끌어 올리고, 인도네시아인으로 보이는 단체 관광객이 차려 입은 한복은 땀으로 흠뻑젖어 그 모양새가 가관이지만, 더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이국의 모든 모습이 새롭고 흥겨워져 더위를 잊는다.

 

평소 많이 들어왔던 이름!  경복고 지나 청운 중학교가 낯설지 않다.

윤동주시인의 기념관 방문을 목적으로 승차한 버스의 차창으로 흘리는 서울 도심의 경치에 시선을 멈추지 못하는 사이 청운중학교 다음 정류장인 목적지 하차하니,

1968.1.21년도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하였던 31명의 북 124 특수 공작 부대원들의 흔적을 담은  최규식 서장의 동상. 정종수 경사 흉상이 도로변 세워져 그 아픔을 기억하게 한다.

 

윤동주시인의 기념관은 두 분 동상을 도로 중심으로  마주 위치한 종로.청운 수도가압장을 리모델링하여 1.2.3관으로 분리한 관람실이 있었고, 오후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윤동주 시인을 존경하는 수많은 분들이 줄이어 방문하고 있었다.

 

윤시인은 27세 젊은 청춘 나이로 후쿠시마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움과 죽음의 사실이 베일에 가려져 교도소에서 강제로 맞아왔던 주사의 실체가 인체실험 아니였던가 추측된다.

 

연세전문학교의 의대와 법대 지원을 희망하던 부모님의 뜻을 져버리고 문과를 택하였던 그는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시로 노트하였고, 출판한 책 한 귄 없이 쓸쓸한 죽음을 1945.1월 일본에서 맞이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서시마져 까맣게 잊혀질 위기에서 장석규가 보관하고 있었던 윤동주 시인의 노트 한 권!

학도병으로 끌려가던 장석규는 그의 어머니께 노트 보관을 간곡하게 부탁하여  고향집 텟마루 밑에 항아리를 묻어 보관하였던 작품이 뒤늦게 장석규에 의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한다.

 

2관은 지붕이 설치 되었던 물 저장탱크의 지붕을 철거하여 밤 하늘의 별 흐름과 바람과 구름이 쉬어 가는 모습을 직관할 수 있도록 개조한 건축상을 받은 건축물이였고, 3관은 운동주 시인의 생을 표현한 영상물로 관람할 수 있도록 시설되어 있다.

 

이것으로 문화 탐방을 마무리한 일행모두는 근처 위치한 아늑한 카페로 이동하여 한 자리 앉아 예술문화탐방 계획에 만족하며 다음 사업계획을 참고하는 자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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