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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과 순수, 그 아찔한 유혹
- 내귀에 도청장치 단독공연 '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의 공존'
96년 11월 결성된 이래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내귀에 도청장치. 오랜 기간 꾸준히 사랑받아온 그들이 올해의 세 번째 단독공연을 펼친다는 소식에 고스트 시어터를 찾았다. 입장시간도 채 되기 전에 길게 늘어선 관객들의 줄에서부터 이미 탄탄한 팬층을 확보한 그들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신축한지 얼마 되지않은 고스트 씨어터는 600석으로 근방에서 보기 드물 만큼 큰 규모의 공연장이었다. 공연장 내부는 무척 말쑥했고, 뒤편에는 보관함도 마련되어 있었다. 다만 지하 3층임에도 입퇴장시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이용해야한다는 점이 좀 불편했지만 내귀에 도청장치의 하드한 공연을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이 정도는 기꺼이 감내했으리라 생각된다.
공연 시작되기 전, 무대 앞으로는 커다란 스크린이 내려와 공연실황 영상을 틀어주고 있었다. 이 영상은 종종 끊기기도 해서, 멤버들의 순간 캡처(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로 기다리던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 '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라는 타이틀과 잘 어울리는 내귀에 도청장치의 무대 예정된 공연 시간인 7시가 조금 지나 서서히 스크린이 올라갔다. 메탈 소재의 마네킹과 커다란 날개, 깃털로 장식된 무대 위에 멤버들이 등장하자, 관객들은 야광봉을 흔들며 큰 환호로 그들을 맞았다. 왼쪽의 베이스(황의준)는 말끔한 흰 수트를, 오른쪽의 기타(김태진)는 검은 민소매 티셔츠에 붉은 깃털을 두르고 있었고, 가운데 선 보컬 이혁은 흰 옷에 붉은 깃털을 두르고 있어, 색채로 ‘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의 공존’을 표현하려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들의 평소 의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얌전(?)하다고도 할 수 있었던 모습. 과연 공연은 어떨까?
관객들의 환호와 매혹적인 퍼포먼스 속에 순식간에 두 곡이 끝났다. 반가운 인사를 하며 멘트를 시작한 이혁이 공연 테마인 ‘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의 공존’에 대한 얘기를 풀어나갔다. 순수한 면과 잔인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이 테마는 자신들과 꼭 닮았단다. ‘Why Can Not’을 기점으로 내귀에 도청장치는 서서히 객석을 달구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이혁 특유의 모션인 흐느적거리는 손놀림(!)을 따라하며 공연에 흠뻑 빠져들었다. 내귀에 도청장치는 이 날 새로운 앨범을 작업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열광적인 무대 매너로 신곡 'Erotopathy'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내 1부가 끝나고 2부의 막이 올랐다. 2부의 초반은 게스트인 신태권이 밴드와 DJ를 이끌고 등장해 진행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내귀에 도청장치를 존경해 이번 앨범에 피쳐링을 부탁하기도 했다며 내귀에 도청장치와의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신태권 밴드가 퇴장하자 경쾌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흘러나오고, 드럼(정재훈)이 등장해 심장까지 그 진동이 전해져 오는 열정적인 드럼 솔로 공연을 펼쳐보였다. 곧장 이어진 뱀부트립의 두 멤버와 내귀에 도청장치의 합동공연! 미션 임파서블의 테마를 섹소폰과 일렉기타로 편곡해 들려주는 그들의 솜씨는 나무랄 데 없었다. 한편 뱀부트립의 박문권은 난생 처음 보는 악기를 선보였는데, 석기시대부터 호주에서 사용되었던 민속 악기인 '디주리두'라고 했다. 그냥 길고 굵은 나무막대처럼 생겨 모양새는 매우 의심스러웠으나 막상 들어보니 무척 묘한 소리가 났다. 단소나 리코더처럼 딱히 손가락으로 막을 구멍도 없어 보이는데 음정도 조금씩 조절되는 신기한 악기였다.
* '디주리두'를 연주하는 뱀부트립(좌)과 내귀에 도청장치 보컬 이혁(우)
이색적인 디주리두와 색소폰까지 합류해 'Cry'를 포함한 인기곡들을 선보이면서 공연은 서서히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혁의 물세례는 객석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이에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무대 쪽으로 뻗어 흐느적대며(?) 아찔한 공연의 클라이맥스를 즐겼다. 앵콜 직전에는 팬들의 깜짝 이벤트도 있었다. 10월에 생일을 맞았던 보컬 이혁을 위한 생일 축하 파티가 바로 그것! 벌써 생일이 3주나 지났다며 웃던 이혁은 열정적인 앵콜곡으로 이 이벤트에 보답했고, 마지막 곡 'Angry Inch'와 함께 장장 2시간 반 동안 이어져 온 공연의 막이 내렸다.
멤버들이 체력 보강을 위해 두 달간 헬스장까지 다녀가며(!) 준비했다는 이번 공연은 그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을 매력적인 라이브였고, 그들이 그토록 오래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실감하게 했다. “전보다 사운드가 발전했다고 생각한다”던 신곡들도 기대 이상이라 작업 중이라는 새 앨범을 기대하게끔 했다. 이번 공연을 통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왔다는 것을 증명해준 내귀에 도청장치. 앞으로 더 오래도록 그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길 바란다.
취재 황수영 사진 문성연, 박효정 에디터 김기자
2007. 10. 2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