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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속 밴드 인터뷰

◎ 아름다움의 말없는 응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작성자김기자|작성시간05.09.30|조회수2,327 목록 댓글 7

 

 
 



◎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1집
2004년 12월 23일 발매

어두운 방구석, 숨을 죽이고 무릎에 고개를 묻는다. 동그랗게 작아진 몸은 초침소리에 맞춰 점점 시들어간다.

표정만 봐도 기분을 알아채는 옆방의 동생도 전화만 하면 달려와 줄 수 있는 절친한 벗도 위안이 되지 못하는 어느 날. 너무 많이 망가져 손을 쓸 수 없이 마음이 헤어지고 오랫동안 느꼈지만 외면했던 어려움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될 그 날에 한 줄기 빛이 될 음악이 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그러한) 부드러운 말 한마디나 따뜻한 포옹보다도 그날에 필요할 이 음악은 그저 그러한 상황을 긍정도 부정도 않고 옆에 앉아 응시한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자태로.

 


◎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김민홍(기타, 보컬) 송은지(보컬)



Intro

김기자: 반갑습니다. 앉으세요.

류감독: 반갑습니다. 상상공장 류감독입니다.

민홍: 상상공장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웃음)

류감독: 첫 번째는 고정관념을 깨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대표적인 행사는 하이서울 록페스티벌과 서울사랑 컬쳐 퍼레이드 등을 비롯해 주로 관공서에 인디 문화를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보람스러운 것이 작년부터 서울문화재단에서 인디 밴드들을 조금씩 쓰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대거 참여를 시키고 세종문화회관에서도 그런 프로그램을 짜더라고요.

  저는 관공서의 심사를 많이 들어가는데 보통 심사들어가 행사에 인디밴드들이 리스트에 올라오면 심사위원들이 “TV에 나오느냐?” 이런 식으로 물어요. 그런 것들을 좀 깨나가는 작업을 하나 하고 있어요.

  두 번째는 공연 공간 확장인데 공간이 좋아도 절대 공연할 수 없는 공간이 있거든요. 무심코 지나가다가도 ‘저기서 공연했으면 좋겠다, 파티 했으면 좋겠다!' 하는 멋진 공간이 있어요. 2000년도에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파티를 하고 싶었는데 거기는 허가가 안 나기 때문에 절대로 할 수가 없거든요. 한 3개월을 부시장님 쫓아다니면서 부탁해서 파티를 했어요. 만신 이해경 선생님이 오셔서 무당 작두춤도 추시고. 그런 걸 한번 하고 나면 ‘여기에서 이런 것들을 해도 되는구나.' 하고 공무원들이 공간에 대해서 좀 뚫려요.
2000년도에는 시청 앞 광장에서 절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잔디광장이 생이고 2003년도에 하이서울페스티벌이 열렸을 때 저희가 맡은 5월 24일에 인디 밴드들을 메일 무대에 올렸어요. 그걸 계기로 시민들 뿐만아니라 많은 공무원들이 이 씬의 존재와 에너지를 느끼게 됐고 그것이 문화를 접하는 시발이 되면서 그 이후에는 아까 얘기한 것처럼 밴드들을 활용하고 무대에 세우는 움직임이 활발해진 거죠.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모든 게 자연스럽게 된 것 같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게 계속 시도하고 노력해서 물고를 터 주는 작업이 이뤄져야 가능한 거거든요.

  저희가 몇 군데 탐내는 공간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월드컵 공원 수변무대거든요. 이미 여러 방송사에서 그곳에서 행사를 하고 싶어서 접근했었는데 절대로 풀어주질 않았어요. 그런데 작년부터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고 제가 거기 소장님하고 친했거든요. 그래서 이런 곳에서 대중들과 같이 어우러지면 얼마나 좋겠냐고 해서 얘기가 오가다가 요번에 일이 진행되게 됐어요.

  큰 페스티벌도 중요하지만 올해 제가 상상공장에서 정말 하고 싶은 몇 가지 중 하나는 작은 무대를 꾸미고 저희가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같이하고 싶어요. 그게 하나의 프로젝트고 또 하나가 지방과의 교류에요. 전주나 광주에서 공연하면 몇 명이나 오죠?

민홍: 몇 명 안 오죠.

류감독: 심하게는 2명, 많이 오면 15명 이런 식인데. 포커스가 잘못됐다는 걸 저는 알아차렸어요. 예를 들어 전주나 광주에서 라이브 클럽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면 대부분 뭔지 잘 모르거나 좀 이해할 수 없거나(?) 어린 친구들이 가는 곳으로 생각할 거예요. 그러니까 접근방법이 틀렸다는 거죠.

  지방의 각 군에도 모이는 날이 있어요. 그럴 때 인디 밴드가 서면 효과는 되게 커요. 가이아의 인성 씨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서울에서 공연하는 것보다 지방에 내려가서 중고등학생들 앞에서 공연을 하면 음반판매가 몇 배가 올라간데요. 그게 뭐냐면 결국은 많은 사람 앞에서 제대로 보여주고 그 사람들이 “와! 저런 밴드를 어디로 가면 평상시에 만나지?” 했을 때 클럽을 떠올려야 되는데 지금은 그게 반대로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지방의 네트워크 구축사업을 하고 있어요. 이번 주 토요일도 화순 고인돌 축제라고 있거든요.


은지:
저희도 주말에 전주랑 광주에 가요.


류감독:
화순 고인돌 축제에 가면 사람은 많죠. 이번에는 전통음악하시는 분들과 한 시간 정도 공연을 짰어요. 그쪽에서 문화운동하시는 분들하고 연결이 됐는데 지속적으로 교류하자고 얘기가 나왔어요.

  그리고 5월 달부터 매달 첫째 주와 셋째 주에 월드컵 공원 수변무대를 저희가 할애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월드컵 공원에 보면 수변에 넓은 공간이 있거든요. 그냥 마음 맞는 사람들을 모아서 재밌게 놀고 싶어요. 저희 옥상도 갤러리로 꾸며서 공연도 하고 전시회도 하려고 하거든요. 여력이 없어서 제대로 꾸미지는 못하고 있지만 조금씩 준비하고 있고 흔들 그네 하나 갖다놓고 누워있고 그래요. 음악이 대중 앞에 그냥 같이 어우러지는 그런 걸 했으면 하는 게 제 소망인데 소규모와도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재미는 일 많이 저질렀으면 좋겠어요. 제가 이번에 페스티벌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아서 작은 것부터 다시 하자하고 마음을 추스렸어요. 그것 때문에 일주일을 아팠거든요. 정말 힘들더라고요.



김기자: 외국에 나가면 광장이나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음악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것 때문에 명소가 돼서 관광객들이 보러 오는 경우도 있고 가서보면 잘 하는 분들도 많거든요. 꼭 음악이 아니라도 퍼포먼스 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런데 우리는 홍대만 해도 야외에서 뭔가 하면 놀이터에서 하는 게 아닌 다음에는 경찰차가 오죠. 길거리에서 하면 주변가게들이 장사 안 된다고 신고하거든요. 꼭 홍대여야 한다는 건 아니고 뮤지션이나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좀 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게 됐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서 이번 수변작은음악회를 진행하게 됐어요.


민홍:
그게 잘 되면 좋죠.


김기자:
문제는 루트에요. 그 루트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마인드를 가지고 좋은 뮤지션들과 일을 만들어 갈 수 있는가가 관건이죠. 그 문이 열렸으니까 저희는 좋은 팀들하고 같이 하고 싶어요.


류감독:
저희 상상공장은 공연기획사도 아니고 이벤트사도 아니에요. 저희는 그냥 하고 싶은 거 저지르면서 여러 가지를 하고 관심 있는 것들을 만들어가고 그래요. 그냥 꿈이라는 거 있잖아요. 대부분 꿈이 나이라는 것한테 지는데 지지 않고 얼만큼 버틸 수 있나 그런 거 실험하면서 살아요 . 버티고 있답니다.


김기자
: 전에 프로모션을 직접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좋은 자리가 있으면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이야기해봤고요. 지금 인터뷰를 하러온 건지(웃음) 매번 삼천포로 빠져서.


류감독:
우리 인터뷰가 원래 이렇지 모.(웃음)

김기자: 질문 들어가죠. --; 일반인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일번 붙박이 질문이 되겠습니다.





1. 음악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부터 소규모를 만들기 전까지 음악적 행보에 대해 부탁드려요.


은지:
사람들이 그걸 제일 궁금해 하나요?


김기자:
많이 재미있어 해요. 제 주변에는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일반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올리는 것이라서 전에는 글 작업을 하고 가족들에게 읽히거나 그랬어요.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부분 재밌어 하더라고요.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기타 연습하고 그런 이야기들도 있고 여러 가지 경우가 있는데 심도 깊은 음악얘기보 다는 친근해서 그런가 봐요.


은지:
저는 1년 전까지 학생이었거든요.(웃음) 그래서 그냥 전업으로 음악을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그냥 마음 맞는 좋은 친구들끼리 좋아하는 노래 카피하고 이런 것부터 시작했어요. 자작곡을 만드는 밴드에도 있었는데 그때 저는 베이스를 쳤었어요. 베이스를 치게 된 이유는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의 다아시(Darcy)가 너무 멋있어서였는데(웃음) 잘 안되더라고요. 레슨을 받기도하고 그랬어요.


- 그게 불과 1년 전인 거예요?


은지:
1년은 아니고 한 3년 전까지 그랬는데 베이스를 안치게 되고나서 홍대에서 술 먹으면서 놀다가 만났어요.(웃음)


- 그럼 2002년까지는 친구들끼리 밴드하고 그런 거네요. 주변에 음악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나봐요.

 

은지: 네. 음악을 좋아하니까 통신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이게 되더라고요. 그런 친구들 중에는 평생 동안 음악 계속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고 저도 그런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이렇게 인터뷰까지 하고 되고 이럴 줄은 몰랐죠.(웃음)


- 민홍 씨하고는 그럼 몇 년도에 만나신 거예요?


민홍:
2001년 말이요.


은지:
그때는 막 머리를 이렇게 하시고 ^^;(웃음)


민홍:
그때 음악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이런 공간에서(상상공장사무실 같은^^;) 술을 먹었는데 그 공간이 제가 일하는 스튜디오였어요. 마이크도 있겠다 컴퓨터도 있겠다 있을게 다 있어서 제가 써 놓은 노래를 은지가 한 곡 한 곡 부르다 보니 시간도 한 3년이 지났고 앨범도 한 장 나왔고 공연도 하게 됐고 인터뷰도 하게 됐네요.(웃음)


- 은지 씨 중,고등학교 때는 어떤 음악 좋아하셨어요?


은지:
그때는 그 당시에 유행하던 것들 다 좋아했죠. 제일 좋아하던 팀이 펄잼이었어요.


류감독:
우리 때는 아바, 김세환. 어렸을 때 아바랑 올리비아 뉴튼 존 제일 좋아했어요.


민홍:
저는 아바의 Waterloo를 제일 좋아한답니다.

- 민홍 씨 이야기도 들어보죠.


민홍:
근데 이게 되게 짧게 할 수도 있고 길게 할 수도 있거든요.


- 길게 해주시면 좋죠. 팬 분들은 상세히 알고 싶으실 거고 저도 궁금하고요.


민홍:
그럼 길게 얘기할께요. 중3 때로 내려갑니다.(웃음) 중3때 제 친구가 잉베이 맘스틴의(Yngwie Malmsteen) 오디세이 앨범을 들고 왔어요. 당시에는 테입이었죠. 쉬는 시간에 졸고 있는데 귀에다 꽂아주더라고요. ‘이런 음악도 있구나!' 그때부터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그 전까지는 제일 좋아하던 가수가 조용필하고 마이클 잭슨 정도였는데 중 3때 메탈리카를 처음 듣고 음악을 하나둘 찾아 듣기 시작해요.


  그렇게 고1이 지나고 고2때 메탈리카와 메가데스에 완전히 빠졌어요. ‘안되겠다. 내가 저걸 해야겠다!' 근데 그때는 ‘음악을 해야겠다.'는 게 아니라 ‘무대 위에서 기타를 메고 날뛰어 보고 싶다'였죠. 누나를 졸라 통기타를 사서 3개월간 연습을 하고 학교에서 밴드를 조직했어요. 3개월 만에.


- 열정이 대단하셨네요.


민홍:
그냥 막 하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은지: 나도 베이스 친지 한 달 만에 공연했어. (웃음바다)

민홍: 제 귀에 잉베이 맘스틴을 꽂아줬던 상윤이란 친구랑 ‘카프리치오쏘'(Capriccioso)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의 (사실 그 전에 그 친구랑 둘이 꿈을 꿀 때는 마스터 던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로 했었는데 친구들이 너무 세다고 부드러운 걸로 가자고 해서 클래식 용어인 ‘카프리치오소'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하고 고 2가을에 첫 공연을 하게 됩니다. 첫 공연은 제 나이 때 누구나 그렇겠지만 헬로윈의 ‘A Tale That Wasn't Right' 과 라우드니스의 ‘Like Hell' 본조비의 ‘You Give Love A Badname' 등을 했어요.


  그 후엔 학업을 포기하게 됐고 성적은 바닥을 치고 대학교를 포기해 아예 시험도 안 봤어요. 지금은 좀 후회가 되는 부분이에요. 만약에 인터뷰 기사를 보는 고등학생이 있다면 공부는 공부대로 하는 게(웃음) 좋아요. 저도 공부할 시간 있었거든요. 근데 정말 노는 게 좋았어요. 그냥 그렇게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기타를 메고 다니고 연주를 하고. 스래쉬 메탈 다운피킹을 하면 되게 멋있어 보이잖아요. 멋있어 보여서 쭉 메탈밴드를 했었어요.


  그러다가 어떻게 대학도 다시 가게 되고 군대를 갔죠. 여태까지 이런 사건들이 음악을 하게 된 발단이었던 거 같아요. ‘음악을 했다' 라고 얘기할 수는 없는 부분이에요 이제는. 예전에는 친구들이 음악을 왜 하냐고 하면 괜히 소주마시면서 “야, 나를 표현해 낼 수 있는 건 음악밖에 없어.” 했는데 그것도 역시 겉멋의 하나일 뿐이었던 것 같아요. 재밌는 헤프닝이었을 뿐이지 음악을 했다고 이야기는 못하죠.


  그러다가 느즈막하게 친구들이 제대할 때쯤 군대를 가서 행군을 하는데 한 7시간쯤 걷다 보니까 생각이 여러 가지가 지나가잖아요. ‘뭘 할까?' 이런 생각 군대에서 많이들 하는데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음악을 정말 시작한 시점은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인 99년도인데 군대에서 돈을 좀 모아서 나왔죠. 제대해서 작업실 만들고 컴퓨터 마련하고 기타를 사고 한 1년 반 동안 칩거 생활에 들어갔어요. 하다보니까 그 작업실이라는 곳에 음악하는 사람들이 한 두명 오게 되더라고요. 그때 앨범이 나왔으면 2001년도에 J-Rock밴드의 기타리스트로 인터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여자보컬에 베이스 치는 친구랑 저랑 셋이 J-Rock스타일의 음악을 했는데 우리 베이스 치는 친구가 기특했던 게 우리가 음악을 하는데 형이 작사,작곡을 하니까 자기가 엔지니어링을 배워올테니 홈레코딩으로 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의 생각이 참 좋았던 게 요즘은 컴퓨터가 좋아지니까 ‘우리가 다 할 수 있어' 하면서 만들어내는 것들 중에는 말도 안 되는 퀄리티의 음반들도 꽤 많잖아요. 물론 저희 것도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 친구가 스튜디오에 가서 사장님한테 레슨을 받게 됐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베이스를 치고 밴드를 한다는 얘길 하게 됐나봐요. 사장님이 음악을 들어보더니 좋다며 여기 와서 녹음하라고 했어요. 저희는 꿈만 같죠. 제대해서 1년 반 동안 칩거하다가 그때 끄적거린 노래들을 스튜디오라는 곳에서 무료로 그것도 시간제약 없이 녹음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요. 그래서 갔어요. 그 당시에 보컬이 미국인이었는데 영주권자가 아닌 상황에서 돈벌이 활동을 하는 게 쉽지가 않아서 그 분은 미국으로 돌아가고 말도 안 되는 오디션을 200명 넘게 보다가 베이스 치는 친구가 공부를 하러 일본으로 떠났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월급을 줄테니 여기서 일하면서 공부를 하라고 해서 일을 하게 됐죠. 그게 2001년 말쯤 되요. 놀다가 보니까 은지를 만나게 된 거고. 스튜디오에서 일할 때 CCM프로듀싱도 하고 시완레코드에서 나온 프로그래시브 앨범 디렉팅도 하고 가요도 몇 개 하고 그러니까 제걸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일하고 그러면서 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음악적인 가치관도 많이 바뀐 상황이었고요. 그때 젤 처음 만든 곡이 So Goodbye에요. 노래 부를 사람이 없으니까 몇 개월을 묵혀뒀었죠. 그러다가 은지랑 소주를 마시다가 “너 녹음한번 해봐라.”그랬는데 되게 좋게 나왔죠. 지금 앨범에 들어있는 So Goodbye가 2002년 말 버전이에요. 그 다음 만든 노래는 나비로 역시 2002년.




은지: ‘나비' 베이스는 제가 쳤답니다.(웃음)


민홍:
‘나비' 베이스는 이 친구가 치고 그러다가 S까지. 2003년 초에 그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어요. 가만히 들어보시면 녹음 퀄리티가 제일 좋은 게 그렇게 3개 일거에요. 그런 식으로 한 곡 한 곡 점점 늘어났고고 스튜디오에서 나왔는데 거기서 일을 계속하면 제 음악을 꾸준히 못하겠어서 스튜디오에서 나왔어요. 계속 곡 작업을 하고 녹음해보고 버리고 괜찮은 건 살려두고 그러다가 이번 앨범을 제작한 프로듀서 형님을 만나게 됐어요.

- 그게 언제쯤인가요?


민홍:
작년 여름이요. 프로듀서 형이 제주도에 계신데 전화 몇 번 하다가 “민홍아 내려와라” 그래서 8월 20일 날 내려갔어요. 내려가서 11월 20일까지 앨범작업을 하고 올라왔고 12월 23일 날 앨범발매가 됐어요. 아 진짜 길다. ^^;


- 스튜디오에서 일 그만두신 건 언제쯤이에요?


민홍:
2003년 말이요.


- 그러면 한 곡 한 곡 작업을 하시면서 차근차근 진행이 된 거네요. 프로듀서 하시는 분을 만난 것도 참 중요한 일이였을 텐데요.


민홍:
제가 일했던 스튜디오 사장님과 헤어지고 서로 연락을 안했었는데 1년 7개월 정도 지나서 다음카페에 글을 남기셨더라고요. 글을 남기게 된 계기는 그 형의 형수님이 ‘나비'라는 음악을 인터넷에서 들으신 거예요. 그래서 형님도 같이 듣게 됐는데 작사, 작곡이 김민홍이었던 거죠.(웃음) 때마침 그때 사장님의 친구였던 프로듀서 형이 앨범제작을 생각하고 있어서 한번 만나보라고 해서 연결이 됐어요. 인터넷의 힘이죠.

-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신 건 언제부터로 보면 될까요?


민홍:
음악을 처음 올린 건 2002년 12월 31일이에요. 그때 제가 카페를 만들었어요. 녹음만 해놓으면 뭘 해요. 사람들이 좀 들어야 저도 좋잖아요. 그때 처음 올렸고 공연은 앨범 내고 나서가 처음이에요.


- 그러면 그 이전에 소규모의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하신 분들은 음원을 듣고 얘기하신 거겠네요.


민홍:


은지:
다음에 음악 좋아하는 분들이 가는 카페 있잖아요. 그런데다 퍼트려주셨어요.


민홍:
초반 회원들의 힘이 커요. 처음에 40~50명 정도 회원이 생겼는데 그 분들이 다 뿌려주셨죠.

2. 앨범이 나온지 4개월 가까이 된 시점이라 1집 앨범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해야할지 좀 고민이 됐어요. 약간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앨범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으니 1집 앨범 작업 진행과정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부탁드려요. (녹음, 믹싱, 마스터링)


민홍:
아까 전반부는 다 이야기를 했고 제주도에서 작업한 것들이 이야기가 되겠네요. 일단 제주도에 저 먼저 내려가서 곡 선정을 하고 재편곡을 하고 악기파트 녹음을 한뒤 은지가 내려와서 10일 동안 후다닥 녹음을 해버렸죠. 마스터링 전까지는 프로듀서 형과 같이 했고 마스터링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사운드 미러 황병준 씨한테 했어요.


- 꾸준히 곡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내려가서는 비교적 간단하게 작업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앞의 3곡은 전에 녹음 해놓은 것이 있고 나머지는 곡을 추려서 녹음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던 거죠.


민홍:
네. 앨범을 만들자고 머리 싸매고 곡을 쓰고 고민하고 그런 건 거의 없었던 거 같아요.


- 내려가서는 여유있게 작업을 하셨나봐요.


민홍:
금전적인 여유는 하나도 없었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에요. 물론 지방에 3개월 동안 가있으면 핸드폰비, 인터넷 사용료 등 원하지 않는 빚이 또 쌓이잖아요. 하지만 그 부분은 신경을 껐고 제주도에서의 3개월은 정말 음악밖에 안했던 거 같아요. 눈떠서 자기 전까지 음악만하고. 명상도 하고 소주도 먹고. 근데 일렬의 모든 행동들이 음악과 관련이 있었던 것이죠. 지금도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게 음악과 관련이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음악의 일직선상에 있는 활동은 아니거든요. 제주도에서는 저의 모든 생활과 행동과 패턴들이 음악에 맞춰져 있었어요. 가장 좋았었죠. 물론 올라와서 돈 갚느라 머리가 아프긴 했지만.


- 민홍 씨가 곡 작업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근본적인 곡 작업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민홍:
노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평소에 잘 안하고 머리 안 싸매는 스타일이에요.


- 그럼 생각이 나거나 영감이 떠오를 때?


민홍:
네. 그냥 ‘오늘은 기타를 잡고 싶다.'라는 날 곡이 써지고 작업 방법은 그때그때 달라요. 어떨 때는 미디 작업하다가 곡이 나오고 통기타 갖고 놀다가 쓸 때도 있고 말도 안되게 반주부터 쫙 만들어 놓고 멜로디를 붙이는 경우도 있고.


- 소규모의 음악을 들어보면 가사도 이미지 메이킹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민홍 씨가 작업을 하고 계시죠?


민홍:
네. 많은 부분이요. 근데 가사도 그래요. 제가 전에 칩거 했다고 했잖아요. 다행히 그때 연습이 많이 된 거 같아요. 제가 천재도 아니고 곡 쓰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99년부터 2001년까지 그런 연습들을 많이 했어요.

- 가사도 그렇고 음악이 여러모로 남다르다고 할까요. 우울하거나 잔잔한 그런 계열의 음악들이 없는 건 아닌데 소규모의 음악은 많이 다른 거 같아요. 뭐라고 딱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민홍:
저희가 뭐라고 딱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럴 거예요.(웃음)


류감독:
나는 좀 이상한 거 같아. 제가 허클베리핀의 ‘길을 걷다'나 이기용 씨가 끝까지 가서 만든 음악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들으면 편하거든요. 소규모도 마찬가지인거 같아요. 김기자가 질문지에 다중적이고 자폐적이며 우울하다고 적어놨는데 왜 나한테는 우울하게 느껴지지 않는거죠?


김기자:
그게 우울하다는 게 아니고요. --; 여기서 생각을 잘해야 하는데 언어라는 것은 다수의 약속입니다. 제가 들었을 때 우울하지 않아도 언어를 인지하는 일반인들이 우울하다고 느끼면 우울하다고 써줘야 되요. 그걸 제가 환상적이고 아름답다고 쓰면 거기서부터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거죠. 언어라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기호이고 다수의 약속이잖아요.


류감독:
그게 아니라 나는 편안하고 좋은데.


은지:
좋은 태도 같아요. 왜냐면 음악기사 쓴다고 괜히 굉장히 주관적이 언어로 쓰다보면 독자들은 “이게 뭔 소리여?” 그런 게 많잖아요. 음악잡지에서도.


김기자:
참 불가피한 일이에요. 그 사람들은 어차피 글을 써야 되니까. 그냥 평범하게 쓸 수도 없고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서 쓰는 거지만 음악 하는 사람입장에서는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음악이니 그걸 하나의 단어나 한 줄의 문장으로 말한다는 거 자체가 용납이 안 되죠. 하지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알린다거나 평론가로써 해야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저희야 그런 건 아니니까.


  단어라는 부분에 대해 개인적인 차이는 분명히 있을 수 있는데 되도록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쪽으로 얘기를 하는데 감독님은 그렇게 단어로 규정짓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세요. 어떻게 보면 좀 더 뮤지션 입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데 생각으론 언어로 표현하지 않으면 전달할 수가 없으니까 그게 문제죠. 결국엔 소규모아카시아의 음악은 소규모아카시아의 음악이다가 되어 버리거든요.


류감독:
제도 되게 싫은 게 못하고 인터뷰 할 때 다른 기사들 써놓은 걸 보면 ‘모던록이다 트립합이다' 이런 이야기가 많았는데 저는 우리나라에서 트립합을 가장 먼저 들은 사람 중에 한명이거든요. 근데 그걸 왜 갖다 붙이는지 이해가 안가요.

우리는 ‘우리 것'이라는 걸 자꾸 만들어 내야 되는데 뭐하나 만들면 사람들이 다 난도질해놔요. ‘아 이거는 이쪽에서 왔어. 이거는 저쪽에서 왔어.' 그런데 그걸 ‘맞다'라고 만들어 가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 들으면서 사는 건 당연하고 ‘ 우리 걸 만드는 게 중요하다 '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표현에 대해서도 좀 고민을 하고 이제는 다르게 접근을 했으면 해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 김기자의 되새김 :
류감독 님이 인터뷰 때마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음악을 언어화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라기보다는 성의 없는 끼워 맞추기식 평론과 시각에 대한 비판이다. 어떤 좋은 음악에 대한 담론을 만들 때 평론이나 시각 자체도 신선하고 좋은 음악을 외국의 경우를 끌어와 비교 분석하기보다는 우리의 것으로 이름 붙일 수 있는 통찰력 있는 평론과 시각을 요구하는 것이다.

민홍: 제가 삼천포에서 원래 자리로 돌려놓으면요. 제 생각에는 아까 언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미 언어화되어있는 곡이잖아요. 거기에 대해서 더 이상 할 말은 없는 거 같아요. 어떤 사람이 그림을 그려서 걸어놨을 때 거기에 작가 나름대로 제목을 붙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1차적인 부분은 이미 끝난 거거든요. “왜 이런 가사를 썼을까?” 라는 것보다는 어차피 언어화 되어있는 가사니까 그냥 그걸 그대로 사람들이 받아들이면 그게 그 사람들이 말하는 언어가 되는 거 같아요. 방금 말씀하신 우울함이 될 수도 있고 따뜻함이 될 수도 있고요.


김기자:
이게 참 힘든 게 밴드들마다 생각하는 게 다 달라서 어떤 팀은 언급하길 싫어하고 어떤 팀들은 자신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로 하고 싶어 하죠. 그래서 질문을 하긴 하는데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은 충분히 해요.

은지: 그러니까 인터뷰가 재미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웃음)


민홍:
저도 막상 얘기하라고 하면 할 얘기 되게 많아요. 하지만 제가 무슨 애길 하면 오히려 듣는 사람들 방해하는 것 밖에 안 되는 거 같아요. 다른 생각하고 있다가 제 얘길 듣고 “얜 이거래. 뭐야” 이럴 수도 있잖아요.(웃음)


김기자: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런 게 좀 강하죠. 뭘 얘길 하면 다 그거라고 생각해야 될 것같이 정답을 찾는 경향이 있어요.



◎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1집

2004년 12월 23일 발매

- 앨범 자켓도 특이한데요.


민홍:
말 많죠.


- 그래요? 근데 이게 혹시 적혈구인가요? --;


민홍:
아니요. 올해 홍대 2월 달에 있었던 동양학과 졸업 전시회에 이것과 비슷한 이미지의 열 몇 개의 작품이 있었어요. 이건 그 중에 하나고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이 저의 오래된 친구 중 한명이에요.


은지:
메인 이미지는 '달'이에요. 가사에 달이 많이 나와서 그 친구한테 달을 소재로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나왔어요.


민홍:
사람들의 가장 큰 불만은 속지와 가사가 없다, 케이스가 너무 얇다 인데 사실 그 안에 가사 빼놓고 있을 내용은 다 있거든요. 어쨌든 생각보다 많이 팔려서 다음 달에 재판을 찍을 거 같은데 그때는 자켓이 앞면만 빼놓고 다 바뀝니다. 부클릿도 들어가고요.

 

- 처음에는 일부러 그렇게 만드신 건가요?


민홍:
네. 저희 의도는 이거였고 팀 이름도 안 넣었어요. 근데 시각적인 부분을 원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이번에는 작업을 다시해서 시디를 한 장 이라도 더 살 수 있게 하려고요.(웃음)


김기자:
저는 이게 좋은데요.


은지:
제가 되게 좋아하는 밴드의 케이스 전개도를 따가지고 보내서 이렇게 해달라고 한 건데.(웃음)


민홍:
저희는 애착이 되게 많이 가는 앨범이에요. 그런데 원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요. 손을 봐서 맞춰줄 수 있는 부분이고 다행히 앨범 자켓을 한 친구도 자기가 좀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얘기를 해서 한 거라 저희는 둘 다 좋아요.


- 타이틀도 소규모 아카시아 1집으로 심플하게 가셨어요.


민홍:
앨범 타이틀엔 별다른 의도는 없었어요.


은지:
작업 기간이 너무 길다보니까 하나로 묶기도 무리인거 같아요.


- 전체적으로 작업기간이 어느 정도 된 건가요?


민홍:
만 2년이요.


3. 1집의 수록곡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관련 에피소드들이 궁금해요.


- 우선 많은 분들이 곡 목록을 보고 1번 Hello과 2번 So goodbye 트랙의 순서에 대해 궁금해하시는데요. 보통 곡의 흐름이나 제목의 임펙트 등을 고려해서 곡의 배치를 신경쓰는데 이 순서가 어떤 연유가 있는 건가요?


은지:
제가 보컬을 한 노래들이랑 오빠가 나오는 노래들이랑 많이 이질적이다 라는 말이 많았고 저희도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곡 순서가 굉장히 중요하고 그것이 앨범 전체의 이미지에 영향을 많이 미칠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순서를 같이 정했는데 제일 신경 쓴 부분이 전체적으로 곡배치를 했을 때 지루하지 않으면서 서로 잘 어울리게끔 느껴지도록 했거든요.


  어떤 분들은 색깔이 다른 두 부류의 곡이 섞어 있는게 생뚱맞고 분위기를 흐린다고 하시는데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냥 각자의 장점이 표현된 거라고 생각하는데 몇 개의 후보들 중에서 그게 최대한 잘 어울리는 순서를 골랐어요. 그러다보니까 제목이랑 관계없이 그렇게 된 거 같아요.


  물론 So goodbye가 제목만 봤을 때 제일 마지막 곡이 돼야하지 않느냐 하는 게 중론이었는데 그런 것보다는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최대한 덜 지루하고 덜 이질적인 순서로 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민홍: 그리고 그것도 있어요. 저희 앨범의 하이라이트는 Fish예요. 아주 단순하게 음의 배치로 봤을 때는 그래요. 그런 곡 순서의 느낌도 있어요.

 

- So goodbye 의 경우에는 M/V의 아이디어가 재밌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일상적인 모습인데 화면도 특이하게 분리되어있고. 어떤 분이 작업을 해주셨고 어떻게 아이디어가 나오게 됐는지 궁금해요.

 

민홍: 일단 작업은 조상윤씨가 해주셨고요. 그 친구는 지금 영화판에서 촬영을 하고 있고 발레교습소에도 참여를 했는데 아마 촬영부에서 세컨드인가 그럴 거예요. 그 친구가 촬영을 하는 덕분에 남자 주인공이 발레교습소 조연을 했던 친구에요. 제가 아는 건 거기까지고 뮤직비디오의 의도에 대해서는 상윤이 말고는 아무도 몰라요.

 

김기자: 의도를 설명하실 필요는 없고요. ^^; 그럼 그 분이 소규모 아카시아의 음악을 듣고 나름대로 작업을 하신 거군요.

 

민홍: 자켓이랑 마찬가지에요. “하나 만들어와라. 우리는 아무 얘기 안하겠다.” 는 식이라 친구에게 So goodbye를 들려주고 “니가 알아서 해라” 이렇게 된 거죠.


- 아주 좋은 친구네요. ^^

 

민홍: 네. 고등학교 밴드할 때 보컬하던 저랑 제일 친한 불알친구에요. 같이 밴드 하다가 그 친구는 영화로 가고 저는 계속 음악을 하게 됐죠.


- 많이들 그러시겠지만 3번 트랙 'S'를 듣고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그랬어요.


민홍:
이질감이 많이 느껴지는 곡이죠.


은지:
어떤 점이 신기하셨어요?

 

김기자: 저는 처음에 소규모의 곡 인줄 모르고 우연히 들었는데 ‘야 이거 누가 만들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익숙한 뽕짝 리듬인데 굉장히 특이하게 들리더라고요. 물론 그게 1,2번 트랙의 은지 씨 곡들과 비교되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저는 그 이전에 S를 우연히 들었거든요. ‘이게 누구 노래야?'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앨범에서 또 듣게 된 거죠.

 

은지: S가 3번인건 제가 의도한 것도 있어요. 보통 3번 트랙이 중요하다고 얘기를 하는데 곡 작업을 민홍이 오빠가 다 했기 때문에 (제 색깔도 물론 가미가 되어 있지만) 민홍이 오빠의 어떤 색깔이 드러나야 된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S같은 곡은 정말 민홍이 오빠다운 곡이에요. 노래도 참 잘 만들어졌지만 아무나 못내는 그런 느낌인거 같아요. 그래서 그 노래가 제가 제일 좋아하는 트랙이랍니다. ^^

 

민홍: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아까 2003년 초에 만들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작업 중에 하나에요. 그 시작점이라고 보셔도 될 거 같아요. 이게 단순히 아이디어 얘기라면 다른 사람들이 안 베껴 갔으면 좋겠는데 제가 해보니까 제가 지금 말하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있었으면 좋겠거든요.


  저는 영국음악 되게 좋아하는데요. 반면에 우리나가 뽕짝을 되게 좋아해요. 요즘 나오는 뽕짝 말고 옛날에 패티김 아줌마가 1집을 내던 ‘하얀손' 같은 앨범. 아날로그로 녹음된 뽕짝을 되게 좋아하고 50년대에 녹음된 일본의 엔카도 좋아해요. 흔히 우리가 뽕짝이라고 하는 느낌은 한국이나 일본사람만큼 잘 할 수는 없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그 뽕짝이 뽕짝에서만 머무른 단계에 있는 거 같아요. 한국 사람이 갖고 있는 좋은 그루브고 정말 좋은 느낌임에도 불구하고 그게 밤무대를 통해서 변질됐는지 뭘 통해서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느끼기엔 상당히 많이 변했거든요.

 

은지: 뭔가 되게 천대받는 그런 느낌이죠. 대중음악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듣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인상이고.

 

민홍: 그리고 나훈아 같은 분도 계시지만 정말 상업적으로 가기 위해서 ‘4천만 땡겨주세요' 같은 김숙의 앨범도 있고.

 

은지: 근데 난다 김 노래는 잘 하더라.

 

민홍: 정말 세련된 뽕짝을 지금도 시도하고 있거든요. 세련된 뽕짝을 해보고 싶어요. 물론 영국에서는 그런 작업을 고릴라즈가(Gorillaz) 이미 했죠. 고릴라즈가 치보마토(cibomatto) 보컬을 데려다가 뽕짝이랑 약간 일렉트로닉한거랑 섞어서 음악을 만들었잖아요. 그게 가능했던 건 치보마토(cibomatto) 멤버가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꼭 치보마토 멤버가 참여한 고릴라즈 앨범 같은 걸 만들고 싶은 건 아니지만 좀 더 다른 작업들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정말 징함에는 우리나라 트로트가 끝이에요. “철사줄로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그건 데스메탈에도 없는 가사거든요.

 

은지: 그게 무슨 가사야?

 

민홍: 미아리. 단장의 미아리 고개. (즉석노래)철사 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그런 한은 정말 우리나라 밖에 없는 거 같아요. 물론 아일랜드 쪽에 비슷한 정서가 있긴 하지만 그만큼 징하지는 않거든요. 유일하게 2주 작업한 노래가 ‘S'에요. 테마를 하나 만들고 뽕짝이라는 리듬위에 나름대로 최대한 팝적인 멜로디를 넣어보고 그리고 이제는 얘기해야 될 거 같은데 가사가 되게 야해요. 이게 시작점이라고 보고 지금도 계속 뽕짝 리듬에 대해서는 공부를 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제가 정말 실력이 된다면 나중에라도 꼭 해보고 싶어요.

 

은지: 뭐랄까 오리지널리티가 제일 많은 곡 같아요.

 

민홍: 얼마 전에 EBS에 재즈퍼커션 유복성씨가 나오셨거든요. 연주를 하다가 마이크를 잡고 'Mo' Better Blues'를 한국말로 부르시는데(웃음) 근데 그 아저씨가 그게 나오더라고요. 그 꺾기가 R&B 꺾기도 아니고 어디서도 나올 수 없는 그냥 한국 사람이 꺾는 꺾기거든요. 너무 자연스러워요. 근데 제 생각에는 제가 그런 음악을 만들려면 나이가 50은 돼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점차적으로 해보고 싶은 부분이에요.

 

- 이 정도로 애정을 쏟아서 곡을 만들었으면 제목도 고민을 많이 하셨겠네요.

 

민홍: 제목은 고민은 별로 안했어요. 전에 라디오 나가서는 '스페셜 트롯'이라고 했는데 그 뒤에 숨겨진 게 있는데 그건 끝까지 비밀로 할랩니다.(웃음)

 

은지: 궁금하시면 나중에 저한테 물어 보세요 ^^

 

김기자: 저희 [인디 속 밴드 이야기] 카페운영을 도와주는 에디터분들이 10여명 정도 되거든요. 한 달 한 번씩 음감회를 하는데 어떤 분이 소규모 음반을 가져왔더라고요. 근데 누가 몽키가 무섭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나중에 들어보니까 약간 섬뜩한 그런 게 있더라고요. 뒷부분에 읊조리는 것도 그렇고요.

- 민홍 씨가 전체적인 디렉터잖아요. 곡을 만드는 것도 그렇고 보이스에 대해서도 그렇고.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민홍 씨 트랙을 들으면 좀 음산하면서 불안하고 퇴폐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이 또 단어들에 대한 각자의 이미지가 달라서 문제가 되겠습니다만 --;)

 

* 국어사전

 

- 퇴폐적: 도덕·기풍 등이 썩거나 어지러워져 건전하지 못한 (것).
- 음산하다: 을씨년스럽고 썰렁하다.
- 을씨년스럽다: 보기에 쓸쓸하다.

 

은지: 인간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겠죠.(웃음)

 

민홍: 제가 부른 게 뭐있죠? S랑 몽키랑 컴백 3개죠. 아 뚜뚜뚜까지 4개. 그 에디터분이 무섭다고 하신 건 제가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에 나가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했던 ‘방언'이야기 때문에 그래요. 그때 신해철 씨가 한 술 더 떠서 노래가 나오면 불 다 끄고 볼륨을 높이고 들으라고 했거든요.

 

김기자: 그런 모드가 좀 조성이 됐군요.

 

은지: 근데 실제로 노래가 좀 무섭긴 해요.

 

- 몽키는 어떻게 만들게 되신 거예요? 참 독특한 거 같은데.

 

민홍: 여기 실린 곡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곡이에요. 2001년도에 만들었으니까요. 그리고 원래는 Rock곡이었어요. 굳이 따지면 레니크레비츠 스타일의 곡이었는데 재편곡을 들어가서 다시 녹음을 한 곡이고요.

 

은지: '피쉬'도 처음에는 디스코였지.(웃음)

민홍: 몽키라는 곡이 2개의 섹션으로 나눠져 있거든요. 앞에 가사가 나오고 뒷부분에 랄랄라~ 이렇게 나눠져 있는데 뒷부분을 계속 완성을 못하고 있다가 장난삼아 랩을 한번 넣어보자 해서 말도 안 되는 영어로 흥얼거리기 시작했죠. 녹음기 틀어놓고. 실제로 방언에 가까운 게 나왔어요.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다시 그걸 할래도 못하죠. 녹음을 하고 나서 제가 좀 무섭기도 하고요.

 

은지: 그때 무섭다고 하도 그러기에 장난으로 불꺼놓고 라이터로 확 비추고(웃음)

 

김기자: 사람들이 조금씩 다르긴 해도 느낄 건 다 느껴요.

 

민홍: 그러게요.

 

- 저번에 공연에 갔을 때 'Love is lie' 가 저한테 꽂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곡이 너무 아름다운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참 궁금하더라고요.

 

민홍: 그 노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졌어요. 제주도에서 음악하는 후배가 디미니쉬에 대한 느낌을 물어보길래 C다음에 디미니쉬를 잡아 줬어요. “여기서는 이런 멜로디가 있으면 될 거 같아. And I've fallen when I first kissed you~” 그러면서 그 자리에서 노래를 다 만들었어요.(웃음) 만들고 제가 대충 큰 가사는 써놓고 은지한테 가사 좀 쓰라고 하고. 너무 신파라서 가사를 좀 바꾸라고.

 

은지: 거의 못 바꿨어요. 바꾸려고 했는데 안 바뀌더라고요. 디미니쉬가 좀 신파 느낌이 나는 거 같아.

 

민홍: 은지가 가사를 수정하자마자 콘덴서 마이크를 이쪽에 걸어놓고 이쪽 소파에서 가사들고 저는 저쪽 구석에서 통기타를 들고 가녹음을 한 게 앨범에 들어간 거예요. 첫 녹음 버전이죠.

 

김기자: 오!

 

민홍: 은지도 가사를 보고 불렀고 휘파람도 전혀 계획된 게 아닌데 하다보니까 1절이 끝났더라고요. 간주는 넣어야겠고 그래서 휘파람을 불었더니 끝나니까 알아서 은지가 2절을 들어가더라고요. 그리고 마지막도 알아서 마무리를 하길래 저도 마무리해서 만들어진 노래에요. 구성이나 그런 게 있어서 녹음이 되 거 아니라 그냥.

 

류감독: 멋지다!

 

은지: 잘 들어보면 가사도 틀려요. 써놓고 처음 불러보는 거라서.

 

김기자: 근데 노래가 인트로 딱 들어가면서부터 벌써 짠해지는데.

 

은지: 디미니쉬의 힘이에요.

 

- 4번 트랙 IN 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식으로 보이스를 활용하는 것이 국내에서는 흔하지 않잖아요. 음악을 만들 때 보이스만 돋보이게 하려고 생각하고 작업을 하는 건 아니겠지만 이렇게 보이스를 잘 활용하면서 유기적으로 곡전체가 이뤄지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요.

 

민홍: 아 다행이네요. 진짜 고민 많았던 노래 중에 하나가 IN 인데 원래 버전은 저게 아니거든요. 리듬감이 좀 더 있고 드럼 파트가 좀 더 강했는데 맘에 안 들더라고요. ‘이걸 어떻게 고칠까?' 버전이 한 4개는 되요. 그 중에 가장 괜찮은 걸로 한거고. 나름대로 신스 장난도 좀 했고 저는 되게 어렵게 작업한 곡이에요. 믹스도 너무 어려웠고. IN은 가사들을 많이 좋아하시더라고요.

 

김기자: 이런 쪽 좋아하시는 분들은.

 

민홍: 나에게 칼을 대지마 내가 다가설 수도 있어!

 

은지: 난 그거 무서워

 

민홍: 무슨 맞장을 뜨자는 얘기도 아니고 ^^;

 

김기자: 듣는 분들이 좀 강한 걸 좋아하셔서 (전체 웃음)

 

은지: 앞으로 이런 자료들을 지면으로 만들 계획도 있으세요? 정기적인 간행물이라던지.

 

김기자: 항상 생각은 하고 있어요. 제가 전에 웹진을 했었고 주마다 보내는 전체 메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게 그냥 전체 메일은 아니거든요. 보통 전체메일 쓰려면 최소 2시간 정도 걸려요.

 

류감독: 홍대앞에 있으면서 저희가 홍대와 관련된 자료가 제일 많을 거예요. 김기자에게 끊임없이 얘기하는 것이 이게 또 하나의 역사거든요. 우리는 그 역사를 정리하거나 보관하는 데 너무 약하더라고요. 록 발전협의회에 가서도 좀 의아했던 게 ‘록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록 박물관하나 없을까?' 그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우리 음원의 원본을 다 일본사람들이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 걸 하나하나다 모으고 인디 밴드들의 음반은 다 희귀음반이니까 그런 것들이 자꾸 모였을 때 그게 많은 힘이 될 텐데.


  아마 김기자가 주간 메일로 보내는 것들도 나중에 그거 하나만 갖고도 논문을 쓸 수 있을 거예요. 왜냐면 서울에 있는 홍대앞에 있는 모든 공연들이 리스트 업이 되니까요. 책 만드는 게 돈이 들어서 그렇지 기회가 되면 제일 먼저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예요.

민홍: 그리고 부탁인데요. 그런 차원에서 제발 산울림 좀 되짚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사람들. 제발 Please!

 

류감독: 그렇다면 저희도 그런 거죠. 인터뷰 하고 싶은 사람들 중에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산울림이 될 수 있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사람들이 궁금하지만 상은 씨 그리고 남상아 그 친구는 91년도부터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음악발전에 굉장히 중요한 자료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희는 버리질 않아요.

이것도 어쩌다 여기 있는데 저희 아버지가 1963년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군대 있을 때 보낸 편지인데 이게 이어지더라고요. 제가 홍대와 관련된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논문이 되고 구청 사이트의 핵심의 글들이 되더라고요.

 

은지: 예전에는 그런 잡지도 팬진처럼 잡지들도 있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에 그게 싹 없어졌어요. 밴드들이 게으른 탓도 있으니 피해라고 말하면 어폐가 있겠지만 당시에 활동하던 밴드들이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건 너무 안타까웠어요.

류감독: 요즘 밴드분들 만나면 앨범 자켓의 원화를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거든요. 그런 거 다 모아서 저희가 전시회하고 제 개인적인 꿈 중에 하나가 '홍대앞생활예술 박물관'을 만드는 거예요. 기증도 받고.


  홍대앞 문화를 자꾸 얘기하는데 문화가 뭐가 있어요? 실질적으로 외부의 사람들이 와서 하룻밤에 찾을 수 있는 건 술집, 고깃집, 노래방 이런 것밖에 안보이거든요. 그런 것들을 찾아서 만날 수 있는 걸 만들고 싶어요.


  다 같이 준비하고 모여서 전략도 짜고 같이 즐겁게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한 첫 번째 페스티벌이 월드컵 공원 수변 작은 음악회거든요. 제가 하는 역할은 큰 그림 만들어주는 거고. 반대로 밴드분들이 와서 저희를 인터뷰해도 재미있을 거 같아요.

 

은지: 저는 항상 그래보고 싶었어요. 궁금했거든요. 여기 오면 놀기도 되게 좋을 거 같아요, 책도 많고 만화책도 많고

 

류감독: 저희는 항상 열려있어요. 문화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커뮤니케이션이거든요. 서로 대화를 해야지. 누구는 슥 왔다가 가고 그렇게 해서는 발전이 안돼요. ‘수없이 많은 록페스티벌과 행사들이 있는데 왜 대한민국의 인디 씬이나 록의 문화는 어두울까? 그 어두운 이유가 뭐냐?' 라는 것을 끊임없이 고민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인 거죠. 권위적인 것 너무 싫어요. 다 똑같은 사람들인데 서로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민홍: 저랑 정확히 같은 생각이시네요. 제가 앨범을 낼 때 카페에 “여러분이 공연장에 찾아오는 게 아니라 시간이 날 때 오셔서 보십시오.” 라는 얘기를 했어요. 요즘 “니네 진짜 공연 많이 한다. 니네 요즘 잘 나간다.” 그런 얘기를 되게 많이 듣는데 실제로 잘 나가고 그런 건 둘째 치고 그 약속을 지키려고 지금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원래 되게 무리거든요. 전주, 광주, 아까 말씀하셨지만 가봤자 몇 명이나 오겠어요, 저희 차비도 안 나와요. 그렇다고 회사에서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근데 약속인거 같아요. 제가 했던 약속. 라이브 물론 많이 봤지만 에릭 클랩튼의 언플러그드 라이브를 보면 정말 즐겁기 위해서 연주를 하고 사람들도 정말 즐거워하죠. 막 열광적이고 그런 건 아니지만 충분히 즐거워해요. 에릭 클랩튼하고 나단 이스트 (Nathaneast)가 일어나서 90도로 인사를 하고 그럼 그 인사에 맞는 기립박수를 관중이 쳐주죠.


  예전에 스튜디오 사장 형이 포 플레이의 제임스 아저씨랑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 있었어요. 어떻게 제임스 아저씨랑 사진을 찍었냐고 했더니 술집에서 만나서 얘기하다가 찍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저를 많이 변하게 했어요. 어려서 겉멋에 음악 할 때는 공연 끝나면 딱 기타 챙겨가지고 딱 나가고 그랬는데 공연보시면 아시겠지만 끝나면 90도로 인사하려고 하거든요. 마케팅이나 그런 게 아니라 무대에 서는 사람의 당연한 생각인거 같아요. 그 사람들이 몇 명 안 되지만 정말 감사한 마음이니까요.

 

  전에 쌈지에서는 좀 놀란 게 인사하려고 나갔는데 사람들이 싸인 받으려고 줄을 확 서버리는 거예요. ‘어 이건 아닌데' 그랬죠. ^^; 아마 말씀하시는 부분이 그런 거 같아요. 공연장은 되게 많더라고요. 전화 한번 하면 스케줄 서로 맞춰서 다 되니까 최대한 공연 많이 하려고 해요. 따져보니까 두 달 반 동안 공연 횟수가 20회가 넘어 가더라고요. 다른 팀들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은지: 계산이 안 나와. 어떻게 두 달 반 동안 횟수가 그렇게 되지?

 

민홍: 세 달 정도 되지. 내가 어제 세어 봤거든.

 

은지: 내가 괜히 바쁜 게 아니었어. “바쁘건 아닌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시간이 없지?” 했더니.

 

류감독: 저희도 똑같은 생각이에요. 김기자하고 저하고도 ‘우리가 뭘 갖고 만족을 할까?' 사실 이번에 페스티벌이 스폰서 때문에 일방적으로 중단됐는데 ‘이런 것들을 우리가 언제까지 끌고 가야될까?'하는 생각도 들고. 사람들도 힘들겠지만 저도 되게 힘들어요.

 

민홍: 반면에 그런 것도 생겨요. 공연을 많이 하면 좋긴한데 앨범 낼 때 프로듀서 형한테 날 따뜻해지면 길거리공연하면서 우리음악을 들려주고 우리가 만든 시디 팔고 사실은 그게 최고거든요. 근데 시스템에서 문제가 좀 생기더라고요. 인디면 상관이 없는데 이미 큰 유통사를 낀 상황에서는 그게 좀 어려워지는 거죠. 그걸 하려면 우리가 유통사에 돈을 주고 앨범을 사와야 돼요. 불법유통이 되어 버리니까.

 

  그리고 처음에 둘이었을 때는 크게 상관이 없었는데 넷이 되니까 (물론 형들은 상관없다고 하지만) 리더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페이에 신경을 쓰게 되더라고요. 저기 상계동에서 차에 콩가 싣고 막 왔는데 공연 끝나고 “그냥 가세요.” 라고 할 수는 없는 부분이 또 생기더라고요. 큰돈이 아니라도 기름 값이라도 드려야지 맞는 건데. 해보니까 뜻은 좋은데 현실화시키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생겨요.

 

류감독: 근데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감동이라는 것들은 보이지 않게 소리없이 만들어지는 것이거든요. 근데 그게 참 어려워요. 저는 그냥 어느 날 서울시의 미친놈이 됐고 그 미친것 때문에 사실 홍대라는 것도 변화시켰거든요. 변화를 위한 계기라는 걸 저는 지켜봤고 그 자리에 항상 있었기 때문에 알거든요. 진짜 많이 달라졌는데 재밌는 건 지금까지 그렇게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게 몹시 놀랍다는 얘기에요. ‘왜 그걸 안하지? 아무도? 그렇게 유명하고 내가 존경해마지 않았던 사람들은 왜 그걸 안했지?'


  가장 간단한 건 그거에요. ‘인디'라는 개념은 보통 자기돈 가지고 음반 만들고 그렇게 얘기하는데 그건 개념 중에 하나인거고 제가 말하는 인디는 언더보다도 오버보다도 더 가능성 있고 더 많은 실험들이 이뤄지는 씬 을 인디라고 보는 거고 그런 음악을 하는 친구들을 인디밴드라고 보거든요. 그래야만이 더 다양하게 많은 것들을 상대할 수 있고 실제로 그들을 제대로 표현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맨날 배고프고 뭐하고 그게 아니라 “ 정말 좋은 음악이 있는데 사람들 앞에 못서거나 그만한 것들이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일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그렇게 변해가는 걸 같이 해야되는데 그러한 감동들을 만들어가는 게 참 힘들어요. 참 멀고 저희도 상처 되게 많이 받았거든요. 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나마 이렇게 가는 게 그런 것들을 또 이겨나가는 재미로 만들어 가고 이렇게 좋은 분들 만나면 그 다음에 “와 이번엔 이런 거 만들자!” 그게 기획하는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끝나고 맛있는 것도 같이 먹고.


  저희가 수없이 많은 기획을 했는데 그중에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좋았던 기획이 몇 개 있거든요. 그 중에 하나가 저희 상상공장 사무실 오픈 때 여기에서 공연했던 거거든요. 소리도 잘 들리고 너무 좋았어요. 그냥 호흡 한다는 그런 느낌들이 있었고 또 하나는 진짜 사람이 없었던 작년 10월 30일 날 밀리오레 꼭대기에서 했던 공연인데 그때 사람이 없었는데 저희는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번에도 기타리스트 김광석 씨를 처음 만났는데 사무실에 오셔서 저희 둘을 위해 연주를 해주시더라고요. 너무 벅찼어요. 같이 나눠들어야 되는데. 그래서 기획을 하는 거 같아요. “싸들고 나가자!” 거리공연이 그래서 참 좋은 거 같아요.

 

* 김기자의 되새김 : 류감독 님이 말씀하신대로 ‘인디'를 실험성과 창조성, 독창성이 가득한 것이라고 본다면 과연 지금 인디라고 부를 수 있는 밴드는 얼마나 될까? 그러한 생각으로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될까? 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예측 가능한 질문이다.

  이 씬의 모든 밴드들이 그렇게 독창적인 것도 아니고 실험적인 것도 아니며 이 씬을 그렇게 가능성 있는 것으로 봐야할지에 대해서는 좀 더 여지를 두어야한다. 하지만 류감독 님의 이야기의 초점은 그것이 아니다. 밴드들이 모두 그렇게 창조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인디 '라는 말을 그렇게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기보다) 친구들에게 이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알리기 위한 담론이.


  ‘인디'라는 말이 과거에 매체를 통해 ‘배고픈 어둠의 자제들'로(?) 표현된 것에 대해 음악 하는 친구들은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당시에도 그 후에도 그에 대항해(?) 자신들의 이름을 짓고 담론을 만드는 것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단지 ‘인디'라는 말을 싫어하거나 “나는 그냥 나에요” 라는 식으로 정의하기를 부정하는 이야기들을 했는데 2000년대에 “나는 그냥 나에요”라는 표현은 몹시 진부한 것이다.


  누군가를 부르기 위해서는 이름이 필요하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불리우기 위해선 이름이 있어야한다. 물론 뮤지션의 메인은 음악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곧 돈이 흘러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음악을 계속 하려면 팔려야한다. 팔리려면 알려야하고 알리려면 담론이 있어야한다. 그럼 측면에서 봤을 때 ‘인디'라는 말은 하나의 포장이며 그럴듯함이다. 알리기 위해서는 이름이 필요한데 ‘인디'라는 말이 그것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별달리 마땅한 말이 없음으로.)


  규정짓는 것이 싫다면 인터뷰를 하지 말고 음악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지 않아도 매체에서는 맘대로 정의를 내릴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 생리를 이용해 매체와 대중을 역습하는 재치를 발휘하지는 않는건가?(물론 그런 팀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단지 밴드에 국한 된 것이고 씬 전체에 대한 아우름은 아니었다.) 물건을 하나 만들어서 파는데도 많은 전략과 마케팅 개념이 요구된다. 음악은 그것과는 좀 다르지만 우리를 알리고 보기 좋게 포장하는데 너무나 소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또 이 포장이라는 말 오해하지 말길. 여러분이 물건을 살 때 내용도 좋고 포장도 좋으면 좋지 않나.)

 

김기자: 제가 원래 기획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까 기획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약간 완벽주의적인 경향이 있어서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나 일이 제대로 진행이 안 되면 머리가 복잡해지거든요. 아까 말하신 것처럼 밴드들에게도 대접을 해주고 우리도 대접을 받고 뭔가 쾌적하게 진행이 됐으면 하는데 현장이 그러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아까 밀리오레 꼭대기에서 공연한건 사람도 별로 없었는데 그때가 지금까지 공연 중에 제일 좋았어요. 제가 진짜 좋아하는 밴드들만 불러서 박수치면서 노래 따라 부르고 그랬는데 기획자들이 공연을 볼 때 그렇게 즐기기는 쉽지 않거든요. 하이서울록페스티벌 같은 때는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그날은 진짜 내가 귀족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옛날에는 귀족들이 모차르트나 이런 음악가들을 불러다가 연주회를 듣고 그런 거잖아요. 내가 정말 부자구나.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밴드들이 연주를 하고. 그런 부분 때문에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알리고 함께하고 싶어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정말 아름다운 것은 누구나 알아보기 마련지요.


  이번 하이서울도 전체메일 보셨으니까 아시겠지만 살면서 자기가 지켜야 될 것들이 있잖아요. 자기가 말한 것들이 있고. 그런데 의도하지 않은 상황 때문에 지키질 못하니까 뇌가 혼란스러워지는 거죠. 어떻게 수습을 해야 되나. 남들이 뭐라고 하는 것 이전에 자신이 용납이 안 되는 거죠. 근데 계속 가는 게 답인 것 같아요. 계속 가서 더 좋은 걸 만들고 더 많은 팀들을 소개하고 더 좋은 음악들을 사람들한테 알리는 중간자 역할을 하는 게 일인 것 같아요. 그날 Love is lie를 듣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하면서 ‘이러면 안 된다. 인터뷰를 해야 돼!'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류감독: 그만 두려고 그러더라고요.

 

민홍: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아름답다'라는 단어거든요. 그 단어의 어원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너답다'라는 어원에서 나왔데요.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4. 앨범이 나온 지 4개월이 다 되가는데 활동을 하시면서 여러 가지 느낀 게 많을 것 같아요. 프로모션도 같이 진행을 하셨으니 곡작업 할 때와는 분명히 다른 점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민홍: 첫 번째 비즈니스는 무척 힘들다. 두 번째 공연은 되게 재밌다.(웃음) 근데 사람 만나는 건 정말 힘들더라고요. 저번 주에 제주도에 모든 걸 다 놔버리고 5일을 다녀왔는데 덕분에 많이 쉬었어요. 사람 만나고 서류상의 문제들이 생기고 그런 것들은 상당히 어렵지만 공연은 하면 할수록 재밌고요. 공연할 자리를 만들면서 생기는 어려움은 공연으로 상쇄가 다되요.

 

- 앨범 내고 나서 라이브를 하셨다고 했는데 처음에 고민을 좀 했겠어요, 라이브를 어떻게 해야 되나.

 

민홍: 그냥 가서 하자지 고민은 없었는데.

 

은지: 처음에는 편곡이 어쿠스틱이 아닌 게 있으니까 MR을 썼었는데 너무 이상하더라고요. 그래서 어쿠스틱으로 둘이 하다가 퍼커션하시는 분이 합류를 하시면서 좀 더 재밌어 졌어요.

 

김기자: 그럼 근래에 공연할 때는 그렇게 세분이 하시는 거죠.

민홍: 좀 큰 공연장에는 베이스까지 4명이 올라가고

 

- 연습실은 당산에 있다고 하셨죠?

 

은지: 나훈아 씨가 연습하던 연습실인데 국내의 손꼽히는 초 A급 연습실이죠.

 

민홍: 거기 사장님이 저희 드럼 치는 형의 선배세요. 그래서 운 좋게 무료로 거기서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드럼 치는 형은 원래 클래식 타악 전공하신 분이에요.


5. 음악을 메인으로 하는 입장에서 음악을 하면서 먹고 사는 부분에 대해 나름대로 대안이 있다면 어떤 것들을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민홍: 그냥 제 생각을 얘기하면 되는 거죠?

 

은지: 다른 팀들은 뭐라고 대답해하는지 궁금해요.

 

김기자: 시간이 되시면 제가 얘기를 할 텐데 연습가셔야 하니까요 ^^;

민홍: 살길은 하나, 공연밖에 없던데요. 물론 앨범이 어느 정도 나가면서 한 달에 몇 만원의 수입이 생기기는 하지만 공연밖에 살길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봤을 때는 공연장이 너무 부족하죠. 실제로 일주일에 2회씩 공연을 해서 한 달에 8번 공연을 하고 한번 공연할 때 멤버 한 사람 당 7~10만원 정도 수입이 되면 개인생활이 가능하잖아요.

  아직은 그게 공연장의 문제도 아니고 음악 하는 사람의 문제도 아니고 관객의 문제도 아닌 거 같아요. 전체적으로 그러기엔 역부족인 상태 같아요. 근데 그런 공간들이 더 생기고 그 만큼의 공연을 해야 되는 건 당연하고요. 무대 위에 서는 사람들이 입장료를 4만원을 받을 만큼의 공연을 준비하는 건 당연하다고 봐요. 거기에 대한 가격책정을 정확하게 하고 수익이 제대로 나뉜다면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지 않을까 하는 꿈같은 생각을 해봐요.

 

은지: 공연을 하면 관리비나 기본적인 쌀값 같은 건 제외하고 교통비, 밖에 나와서 밥 먹는 것들은 나오더라고요. 그 방법 밖에는 없는 거 같아요. 물론 고나 드라마에 음악이 들어간다거나 하는 부수입들이 생길 수 있겠죠.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공연밖에 없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6. 라이브에서는 전체적으로 은지 씨가 부른 곡을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실연의 문제 때문인가요?

 

은지: 일단 그렇게 하려면 4명이 들어갈 무대 공간이 필요하니까 작은 데서는 안 되죠. 쌈지에서는 단독 공연할 때 했었는데 그 때는 공간이랑 분위기가 잘 어울렸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그런 모습들 더 많이 보여드리겠죠.

 

민홍: 제가 부른 노래는 컴백 빼고는 어쿠스틱으로 하면 좀 분위기가 안 나요.

 

김기자: 저는 몽키를 들으면서 제목이 몽키가 아니라 몬스터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어요. 제가 몬스터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혹시 만화 몬스터 아세요? 몬스터를 읽었을 때의 그 등줄기 오싹한 느낌이 몽키를 들으면서 느껴졌는데 민홍씨가 보컬을 하는 곡들에서 느껴지는 그런 느낌은 참 드물거든요. 그래서 많이 반갑고 다음 앨범이 더 기대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요.

 

민홍: 전에 인터뷰 할 때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 “음악을 만들면서 듣는 사람을 생각 하느냐?” “생각합니다.” 라고 대답을 했는데 제가 듣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한다는 건 여자보컬을 쓴데 100%가 있어요.


  제가 저기 있는 노래를 다 부르잖아요. 그러면 소주 한 6병 먹고 길거리 가다가 슈퍼 가서 천하장사 뜯어먹는 필이 딱나요. 되게 우울해지고 근데 제가 원하는 분위기가 꼭 그건 아니거든요. 가사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지만 전체적인 주제는 어두울지언정 엔딩이 어둡지는 않아요. 제가 부른 노래는 소주필이 더 어울리는 곡이라서 부른거고. 제가 부른 노래를 은지가 불렀을 때의 느낌이랑 은지가 부른 노래를 제가 불렀을 때 정말 많이 틀리거든요. 그 차이가 다 인거 같아요.

 

김기자: 아까도 얘기 하셨지만 앨범을 전체적으로 들어보면 은지 씨가 부르는 곡과 민홍 씨가 부르는 곡이 굉장히 다르죠. 근데 곡배치건 전체적인 흐름이 됐건 그 밸런스를 맞추려고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신 거 같아요. 다 듣고 났을 때는 그렇게 이질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듣고 나서도 신기하고.

 

  개별적으로 보면 은지 씨 목소리는 굉장히 아이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완전히 그런 건 아니지만 외국 꼬마가 노래하는 느낌 있잖아요. 그러면서도 뭔가 목소리에 오라가 있어서 처음부터 ‘짠'하는 Love is lie 같은 노래를 들으면 막 황홀하다가 민홍 씨 곡이 나오면 분위기가 또 다르잖아요. 근데 그게 되게 많은 기대를 갖게 하는 거 같아요. 벌써 다음 앨범이 기대가 되요.

 

민홍: 근데 아마 2집 때는 제 목소리는 점점 없어질 거예요. 정말 제가 불러야 되는 그런 곡 아니면. 제가 제 목소리를 별로 안 좋아해요. 제가 노래한 걸 제가 듣는 걸 참 싫어하거든요.

 

은지: 다 마찬가지 아닌가?

 

민홍: 근데 친구들도 다 그래요. 노래하지 말라고.(웃음)

 

- 그건 아닌데.

 

민홍: 그렇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뚜뚜뚜'를 불러놨더니 어떤 형이 전화해서 “민홍 씨 노래 진짜 잘 한다” 그런 형도 있고요. 근데 아닌 사람이 더 많아요.(웃음)

 

은지: 난 좋던데.

 

김기자: 근데 이런 느낌과 이런 감성이 없어요. 정말 없거든요.

 

민홍: 감사합니다. 그럼 몇 곡 더 해보죠.

 

김기자: 이런 느낌과 감성을 계속 느끼고 싶어요. 은지 씨가 부른 곡도 그렇지만 민홍 씨가 안하신다니까 얘기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굉장히 한편으론 충격적이고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진짜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민홍: 감사합니다. 힘을 좀 내 볼께요.

김기자: 절대 그런 생각하지 마시고요. 긴 인터뷰 감사드려요. 합주시간 늦으신 것 같은데 공연장에서 또 뵐께요.

인터뷰/글 김기자 사진/류감독
인터뷰 2005.4.19
기사작성 200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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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보이meets걸 | 작성시간 06.03.21 아..거참..음악이...
  • 작성자만철이 | 작성시간 07.07.20 ^^
  • 작성자체게바라 | 작성시간 07.09.18 필꽃힌 밴드... 늘 듣고다니는 음악... 넘 좋아요...^ㅅ^ 벨소리 홈피배경음악까지 ㅋㅋ
  • 작성자시아누크 | 작성시간 08.01.07 잘 읽었어요. 여기 오니까 이런것도 있고 좋네요 ^^
  • 작성자정자옥 | 작성시간 10.02.25 메일로 담아가요~감사합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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