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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다루게 될 버그는 철학사에 있어 가장 오래된 것 중에 하나이다. 이 버그를 제시한 사람은 바로 파르메니데스이다. <철학의 숲>에서 이미 다루었듯이, 그는 변화(그리고 운동)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했다. 다소 어렵고 오해의 여지가 있지만,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위해서 파르메니데스의 증명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중요한 점은 ‘변화’를 ‘무(無, 없는 것, 비존재)에서 유(有, 있는 것, 존재)가 나오는 것’으로 생각한 데 있다. 우리는 ‘무에서 유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 물론 파르메니데스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에너지 보존 법칙을 염두에 둔다면, 21세기의 우리 역시 이것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무에서 유가 나온다’는 의미의 ‘변화’ 역시 인정할 수 없다. |
무에서 유가 나올 수는 없다. 변화의 원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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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은 가능한 가장 유쾌하게, 그리고 가능한 가장 괴롭지 않게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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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런 설명을 파르메니데스와 비교해보자. 없던 것에서 무언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설명은 그의 생각과 일치한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철학의 숲>에서 이미 살펴보았지만 그에게 존재하는 것은 하나, 즉 일자이다. 하지만 위의 과학적 내용에서 이미 존재하는 것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원자들이다. 그리고 그는 무에서 유가 나오는 것, 즉 새로운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을 변화라고 보았지만, 위에서 변화란 이미 있는 것들의 새로운 배열이 된다. 이렇게 현대 과학과 유사한 방식으로 변화를 설명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바로 원자론자들이다.
원자론자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대상들이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우주에 있는 원자들의 수는 무한하고, 그 크기와 모양은 무척 다양하다. 그리고 각각의 원자는 완벽하게 꽉 찬 것으로, 원자 내부에는 빈 곳이 없으며, 더 이상 자를 수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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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의 움직임과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빈 공간의 존재를 전제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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