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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한 흔적들

The Crying of Lot 49에 관한 10가지 문제와 대답

작성자musebabo|작성시간03.12.05|조회수407 목록 댓글 0
The Crying of Lot 49에 관한 10가지 문제와 대답

박 연희

1.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의와 특징

우리는 살아가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러나 F. Jameson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서구에서조차 그것이 행하는 작업의 비친숙성 때문에 오늘날에도 넓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모호하고 이해되어지지 않는 문화현상들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명칭으로 묶어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포스트모더니즘은 과연 무엇일까?
원래 이 용어는 건축분야에서 처음으로 이론적 틀이 정립되었다. 이 용어가 사회과학의 이론에 수용된 것은 1970년대 말과 8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미국에서 일어난 예술 및 문학분야에서의 논쟁을 지칭하고, 포스트모더니티는 서구유럽에서 일어난 철학분야에서의 논쟁을 뜻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post'는 after가 아니라 beyond를 뜻한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을 전 시대의 사조인 모더니즘과의 단절로 보고 있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후기 모더니즘'이 아닌 '탈모더니즘'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생성 배경이 되는 1960년대는 왜곡된 권력유희, 거대한 음모, 고도의 테크놀리지가 인류문명을 위협하던 묵시록적 시대이자 진보적 사고방식과 다양성과 대중문화가 꽃을 피우던 시대였다. 전후 미국을 휩쓸었던 매카시즘의 여파는 이분법적 가치판단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도록 자극했다. 게다가 일련의 정치적 암살과 월남전과 같은 끔직한 현실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눈을 돌리게 해주었고, 또한 텔레비젼, 비디오, 컴퓨터 등 전자 대중매체의 발달이 가속화됨에 따라 인간은 기계문명 속에서 자아를 소멸시키는 현상을 낳게 되었고, 자아 상실의 문제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첫째, 포스트 모더니즘은 일정한 형식이 없다.
둘째, 포스트모더니즘은 예전 모더니즘 운동의 예언자적 엘리트주의와 권위주의를 가차없이 규탄하고, 스스로를 미학적 대중주의로 내세운다. 셋째, 대중주의에 입각하여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고, 탈정전을 주장한다. 그래서 고급문화에 대한 반발로, 소홀히 취급해왔던 서부개척시대 소설, 과학공상 소설, 혹은 추리소설을 부활시켰고, 팝문화, 락(Rock)문화들의 복귀현상이 나타난다. 넷째, 포스트모더니즘은 '깊이없음'의 문화이다. 토마스 핀천의 소설 [제49호 품목의 경매]는 진실이 유보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 여주인공 에디파 마스는 자신의 모든 수수께기를 해결해줄 사람의 도착, 즉 진실의 도래를 애타게 기다린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소설이 끝난다. 진실은 유보되고, 진리는 다시 베일에 가려진다. 이런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는 달리 구심점도 없고, 축도 없으며, 절대적인 확실성도 없다. 그러한 것은 오히려 '없음'을 찬양한다. 다섯째로, 현실을 구경거리, 환영으로 생각하고, 과거를 망각해버림에 의해 생겨난 역사성의 빈곤이 존재한다. 여섯째, 타인/타자의 구별되는 개별 스타일의 소멸을 말하는 주체의 죽음 또는 해체이다. 니체는 일찍이 주체를 어직 허구에 지나지 않으며,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상 때문에, 누보로망 소설은 자아나 주체의 소멸을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한편, 주체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기호화되고, 기호가 본질을 압도한다. 일곱째, 현실을 일관된 의미로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데서 나타나는 '표현 불가능성'이다.


나, 대표적 이론가들 - 니체, 푸코, 데리다, 수잔 손탁

첫째, 니체는 데리다의 해체이론에 강력한 선구자이다. 그는 세상에는 '진리'나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지 없어질 '진리', 파괴될 '과거만이 존재하며, 현존하는 그것들은 '우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한편, 중심과 근원의 부재에 따른 니체의 절망은 유희와 절망을 통해 긍정으로 승화되고, 바로 이 긍정이 중심의 상실을 중심의 부재로 바꾸어준다.

둘째, 푸코는 과거, 현재, 미래에 연결고리가 없고, 연속성이 없다고 말한다. 과거란 향수이고, 계보학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역사를 고고학이라 부른다. 또한 그는 우리가 알고있는 것의 근원에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서구적 낙관주의를 거부하며, 그런 의미에서 근원은 불가피한 상실의 장소에 놓여있다고 주장한다.

셋째, 데리다는 서구의 낙관적인 말중심주의logocentrism으 부정하면서 해체이론을 주장한다. 그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절대적 진리, 또는 데리다의 용어로 초월적 지시대상은 사실은 부재하기 때문에 그것은 단지 하나의 환상illusion, 자취trace, 또는 존재presence, 또는 유사simulation일 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절대적인 진실 또는 의미는 언제나 유보된다고 주장한다.

넷째, 수잔 손탁은 [반해석론]을 출간하면서 캠프이론을 주장했다. 그느 여기에서 내용과 형식을 구분하는 전통관념을 비판하며, 비평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심미적인 체험을 제시한다. 그녀는 스스로 캠프라고 부른 반전통적, 반귀족적 문화의 존재와 그 중요성을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문화시대의 지성의 대변자로 등장했다. 그녀는 예술작품에 대한 과도한 분석을 경계했으며, '해석지상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한편, 비트겐슈타인의 세 가지 명제를 살펴보자. 첫째, 세계는 사실 그대로의 전부이다. 뒤집어 말하면, 언어의 한계성 때문에 언어는 세계를 다 담아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둘째, 세계는 사실의 총체이다. 수잔 손탁이 이 명제에 영향을 받아 반해석론을 주장한다. 셋째, 세계는 우발적인 것과 자발적인 의지 사이에 우연적인 관계만 존재한다. 이 말은 세계에는 불가사의한 신비적 요소가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요약해보면, 해석을 하는 자체, 그것이 이데올로기일 수 있고, 해석자의 이익, 욕망이 해석에 숨어있기 때문에 해석을 하지말자는 것이다.

2.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학적 측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문학은 매끄러운 논리가 해체되고 실체와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다. 내용도 극도로 불안정한 무질서의 세계를 그리는 초현실주의로 바뀐다. 독자참여 소설의 경향을 띠게 된다. 어떤 실험작가는 아예 소설을 언어의 각종 시험장으로 바꾸어 버린다. 문장을 토막내기도 하고 질문지를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고,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도 하고, 진지한 내용과 하찮은 내용을 대비시켜 놓기도 하여 재미와 게임을 하는 듯한 즐거움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이런 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은 혼돈과 대적하는 길은 혼돈 그 자체가 되는 것, 아니 더 나아가 더 깊은 혼돈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들어오면 메타픽션이 등장한다. 스토리를 꾸밀 수 없고, 그래서 스토리를 부정하는 작가들은 이제 엔트로피와 니힐리즘과 지루함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기 위한 시도로써 상상력의 세계를 확장한다. 이렇게 창조된 세계는 인위적이고 주관적이어서 도덕적 상대성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비난을 받지만, 메타픽셔니스트들은 이것이 더 큰 파괴와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잘 꾸며진 소설도 현실만은 못하기 때문에, 코진스키라는 소설가는 구성이 없이 자신의 경험을 에피소드별로 서술해 나가는 픽션을 쓰며, 트루먼 카포티나 노만 메일러는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추적하여 리포트 형식을 빌려 서술하는 저널리즘식 소설을 쓰고, 고어 비달은 과거 미국의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들에 관해 실제 자료들을 수집해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는 역사소설, 혹은 전기식 소설을 쓴다.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주의와 과학 지상주의의 근대적 세계관이 무너짐으로써 나타난 부산물이다. 절대적 진리가 유보된 불확실성의 시대, 두려움과 불안, 부조리와 혼란, 무의미, 무질서, 성의 해방, 우연성, 자아상실, 정신분열 등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말해 주는 바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몰락의 위기에 직면한 서구문명의 한계를 볼 수 있다.

3. entropy의 문학적 적용- Oedipa의 상황

문학이 동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볼 때 Thomas Pynchon의 The Crying of Lot 49은 양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현실이나 미래에 대한 어두운 비젼의 60년 대의 부조리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2 차 세계 대전 이후 날로 가속화되어 가던 산업화의 영향 때문에 비대한 물질 사회에서 생겨나는 부조리한 상황으로 인해 기계화에 밀려 인간이 소외되는 현실을 낳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하나의 결말을 찾으려는 탐색과정을 통해 현대인의 절대적 의미에 대한 탐색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도는 그동안 인류가 널리 믿어온 기존 세계관에 근거한 본질에 대한 관점과 그 본질에 있어 그가 전통적인 사실주의 작가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Entropy라는 용어는 1865년 독일의 물리학자 Rudolf Cllausius가 희랍어로 변형을 뜻하는 ‘tropy'에다가 에너지를 의미하는 접두어 ’en'을 붙여 만든 신조어였다. 그가 정리한 두 가지 법칙은 첫째, 우주의 에너지는 일정하다. 둘째, 우주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라는 개념에서 출발하는 데 물리학에서는 전자를 열역학 제 1 법칙, 후자를 열역학 제 2 법칙이라고 한다. 여기서 두 번째 법칙은 에너지가 변형되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사용가능한 에너지가 감소되고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가 생겨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엔트로피가 극에 달하면 운동이 정지되고 그 결과로 열이 소모되어 모든 것이 사멸하는 냉각 상태가 된다.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질서 정연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무질서하게 되며, 새 것도 결국 헌 것처럼 되고 만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죽는 것도 곧 엔트로피가 극에 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지구가 닫힌 체계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주위의 세계와 에너지는 교환하지만 물질은 교환하지 않는 체계를 ‘닫힌 체계(closed system)'이라고 부른다. 김 성곤, 「포스트모던 소설과 비평」( 서울: 열음사, 1993), p230-233.
작가는 현실의 엔트로피적 상황에 대한 위기 의식을 작품 속에 투영시킴으로써 더 이상의 발전 상황이 없는 닫힌 체계에 대한 인식을 전달함과 동시에 그 동안 신뢰해 온 기존의 경직된 질서관을 해체함으로써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통해 ’이것 아니면 저것‘이 강요되던 50년 대 상황에서 탈피해 ’이것도 그리고 저것도‘를 포용하는 60년대의 다양성과 다원화의 문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추구하였다. ibid., p.252.
Oeidipa의 생활을 보자. 그녀는 그저 평범한 가정 주부로 하루 하루의 무미건조한 생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어느 여름 날 터퍼웨어 파티에 참석한 후 돌아와 좀 취한 상태로 TV를 켜 놓고 있다. Tupperware라는 용어는 음식물을 신선하게 오래 보관하기 위해 제작된 밀폐 용기인데, 뜨거운 것을 담을 경우는 외부와 단절되어 열을 잘 빼앗기지 않는 용기이다. 이는 완전히 밀폐된 닫힌 세계,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를 암시한다. 또한 그녀의 남편 Mucho가 다니는 방송국 이름이 KUCF로 거꾸로하면 ’fuck'가 되어 ‘꺼져’ 또는 ‘방해하지마’라는 의미가 됨으로 둘 사이에도 진정한 대화가 없음을 암시한다. 외부와 단절된 상황에서 그녀는 하루의 일과가 ‘like a conjurer's deck'(11)이라고 느끼지만 그녀가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과거의 애인의 유산 상속 집행인으로 임명을 받게 되어 혼란과 방황을 통해 자아 탐색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상황 설정으로 볼 수 있다.

4. 과학적 이론의 소설에의 적용 김 상구, "핀천 소설의 창작 배경“ The Crying of Lot 49 (Seoul: SHINASA,1994). p.11-15.


엔트로피의 이론이 쓰였다는 것은 위에서 밝힌 바와 같고, 다음의 이론은 ‘불확실성의 이론’을 들 수 있다. 현재를 알면 미래를 알 수있다는 가지론자들의 주장은 Boltzmann과 Heisenberg의 불확실성의 원리에서 보면 전혀 합리화될 수 없는 주장이다. 불확실성의 원리는 현재를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래도 알 수 없으며, 인과의 법칙에 따라 사물의 본질 이면에 하나의 순수한 형상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플라톤의 본질의 세계를 정면으로 논박한다. Heisenberg의 불확실성의 원리는 사건이나 사실이 변화하는 상황을 예측할 수 있고 알 수 있다는 주장에 반기를 들고 인간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며 사물의 본성의 바탕에는 근본적으로 불합리와 무질서가 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불완전 이론‘이다. 이것은 Heisenberg와 비슷한 이론으로 1931년 체코슬로바키아 태생의 미국의 수학자 Kurt Goedel에 의해 제창되었다. Heisenberg가 소립자 이론에서 사건과 현상을 인과 관계로만 보지 않듯이 Goedel도 어떤 체계를 생각할 때 그 제도 밖의 원리들을 고려하지 않고는 그것의 진실을 주장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어떤 논리적인 제도는 그 제도의 이론 속에 내재해 있는 모든 모순을 다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핀천은 이 법칙을 「중력의 무지개」에서 “Murphy's Law"로서 설명하고 있다. 이 법칙은 Heisenberg의 원리와 더불어 폐쇄된 사회나 체제의 근본이 되는 결정론에 우연적 요인이 내재하고 있다고 보아서 정보의 이해와 인식에 있어서 상대성을 강조한다.
다음은 Albert Einstein의 상대성 이론이다. 이 이론은 한 사물의 정확한 묘사는 시공의 연속체 속에서 하나의 사물을 다른 사물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으로, 핀천은 하나의 개체나 사물은 그 특징을 동시에 여러 개 가질 수 있다고 시사한다. 그의 이러한 시사는 상관 관계를 인정하는 상대성 원리에 근거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 상대성 이론의 원용은 어떤 지시 개념에 대한 절대적 형상화를 부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이론이 적용되면 일인칭 다화자 우위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며, 사건에 대해 객관성을 배제하고 주관성을 강조하는 시점이 된다. 그 리고 시점에 대한 원리가 다르게 적용되면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의 이야기에 관한 해석에 독자의 의문의 여지를 남겨놓아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 속의 진실을 가려내도록 하는 수법으로 나타난다. 이 경우 인물들은 각각 우위의 위치에서 말하며 자기 나름 대로의 객관성을 가지기 때문에 이 이론은 화자 중심의 시점에 적용된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시공의 개념이 배재된다. 도한 양립적인 세계관을 제시하여, 플롯의 구조에 절대성을 배제하고 특히 작품의 결말에 개방 종결의 형식을 자연히 취하게 된다.
다음은 Niels Bohr(1885-1962)의 ‘상보성의 원리’이다. 이 원리는 Bohr가 빛의 역설적 작용을 설명하는데 전용한 용어로 하나의 전자가 입자임과 동시에 파장임을 인식해서 상반되는 사실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해 선택의 논리를 배제하는 논법이다. 이 원리는 특히 절대성이 아닌 상반과 모순을 강조한다.
이런 다양한 원리들의 적용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소설의 의미와 구조가 복잡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소설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찰자의 대상과의 관계에서 본질에 대한 인식이 다르게 나타나듯이 독자의 상관 관계에 의해 소설을 파악해야 한다. 왜냐면 의미는 텍스트 안에만 존재한다고 할 수 없고 바꾸어 말하면 의미 파악에 절대성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5. The Crying of Lot 49속의 다양한 상징

Oedipa Maas는 테베의 눈먼 여왕 ‘Oedipus'의 여성 이름이고, Maas는 Newton의 제 2 운동 법칙을 뜻하는 ’ 불 활동성‘을 뜻함으로써 주인공의 눈멀어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상황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Pierce Inverarity는 “pierce in verity'로 풀어 볼 경우 ’진리를 꿰뚫다‘라는 뜻이 된다. `Tristero'는 여주인공이 접하게 되는 비밀 체계의 표현으로 다양한 암시를 지니고 있는 말이다. 이 말이 ”trystero"로 쓰여 질 때는 ’tryst'(밀회)와 `terror'를 암시한다. ‘Tristero'는 이탈리아어의 ’tristo(사악한)'과 `triste(슬픔)‘이 뜻도 담고 있다. 비정규 우편 배달 제도의 Tristero의 상징은 약음기가 끼워진 우편 나팔이다. “Tristero'가문은 ”Thurn and Taxis'가문의 차별과 음모에 의해 상속권을 박탈당하고 유럽의 우편 배달 제도의 독점권마저도 빼앗긴 후 지하로 들어가 검은 옷을 임고 ’툰과 탁시스‘의 우편 배달부를 급습해 살해하는 공포의 비밀 조직이 되었으며, 1849년에는 미국으로 건너와 인디언으로 가장하고 당시 미국의 우편 배달 부 제도인 Pony Express와 싸웠으며 위조 우표를 제조한 것으로 되어있다. 특기할 것은 작가가 `Tristero'를 상속을 거부당한 슬프고 소외당한 집단으로서 긍정적으로 묘사하였을 뿐 만 아니라 공포와 죽음의 비밀 집단으로서의 부정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김 성곤. op.cit., p. 242참조.

Paranoid란 말은 본래가 일종의 정신적 장애로서 자신에 대해 늘 두려워하는 감정이나 스스로 자학하는 증세를 지닌 병이며, 이 작품 도처에 나타나서 Oedipa가 전반적으로 겪는 편집증적 자아 세계를 상징한다. Pierce의 사업 영역인 fangoso Lagoons 호수는 이탈이아어 혹은 스페인어로 ’진흙탕의 더러운 , 또는 부패한‘을 의미할 수 있다. 1부에 나오는 Rapunzel의 의미는 라푼젤은 마녀에 의해 탑꼭대기에 갇혀서 머리를 늘어 뜨려 왕자가 올라 올 수 있게 하고 왕자는 결국 마녀에게 잡혀서 장님이 되지만 결국은 라푼젤의 눈물로 시력을 회복하게 된다. 하지만 Oeidipa에게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다.
제 1부에서 Oedipa가 Varo의 그림 앞에서 깨달았던 탑의 이미지는 매우 모호하다. 즉 무력한 남성에 대해 난소가 제거된 어머니의 비접근성과 은거하거나 자유롭게하기 위해 너무나 이상화된 여자에 대한 불가능성을 상징한다.
2부에는 San Narciso가 나오는 데 이 도시는 Inverarity가 그 자신의 이미지에 따라 만든 도시의 이름이라 할 수 있고 사람들이 주거지, 따스함, 행복을 찾기 위해 모여 사는 실제 도시라기 보다는 , Oedipa가 처음 도착해서 느끼는 도시에 대한 개념을 모아놓은 곳으로 보는 것이 옳다.

6. 질서해체의 양상

주인공 Oedipa가 탐색하는 과정에서 인류가 이제가지 신뢰해온 기존의 고정된 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질서로의 변화의 양상은 구체적으로 정보의 왜곡이나 또는 바뀐 모습으로 종종 등장한다. 그녀가 접하는 숱한 용어의 의미는 기존의 질서 체계에서와는 전혀 다르다. 예를 들면, CIA는 “The Conjuracion de los Insurgents Anarquistas(반항적 무정부주의자들의 음모단체)”(p.119)라는 스페인어의 약자로 사용되는가 하면, DEATH는 “ Don't Ever Antagonize The Horn(언제라도 나팔을 적대시하지 마시오)” (p, 121)의 약자로, NADA(스페인어로 없다는 뜻)은 “National Autobobile Dealers'Association(전국 자동차 판매인 협회)의 약자로 , WASTE는 ”We Await Silent Tristero's Empire(우리는 침묵의 트리스테로의 제국을 기다린다)“(p.169)의 약자로 쓰인다.
즉“postmaster'를potsmaster'(마약국장)”로 변형 왜곡시킨다거나, Mucho가 Oedipa를 Enda Mosh로 부른다거나, 또는tristero가trysts로놀이터에서는 또“tristoe"로 나타내고, 또한"thum and taxis"는 The Courier's Tragedy에서 "Turning taxi from across the sea"라는 전혀 다른 변형된 모습으로 제시되어 본질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것은 바로 기존의 이분법적인 질서의 고정된 틀을 해체하는 실례로서 그 메시지의 내용에 한층 모호함을 더해주고 있다.
Oedipa는 술집 The Scope의 화장실에서 Tristero를 체계를 상징하는 호기심을 끄는 기호와 W.A.S.T.E라는 단어를 처음 보게 된다. 그때부터 “TRISTERO"의 의미에 대한 그녀의 추적은 시작된다. 질서 탐색에 대한 욕구는 Oedipa로 하여금 이 기호에 대해 그녀가 San Narciso에 대해 느꼈던 감정을 불러일으킴은 물론 질서화작업에 참여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변형의 양상은 소설의 플롯에서도 나타난다. Oedipa의 탐색의 행위 과정에는 질서와 무질서, 정보와 왜곡, 계속적인 변형된 모습의 나열과 돌고 도는 반복적 순환 형식을 드러낼 뿐, 그 탐색 행위를 궁극적인 조화와 질서 그리고 하나의 통합화로 유도해 나가지는 않는다. 이야기의 전개는 주인공 Oedipa를 중심으로 고정된 시야와 시간적 순서에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접하는 정보들은 오직 파편화되고 왜곡된 단서의 나열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을 끝까지 다 읽더라도 독자는 어떤 결론에 도달 할 수가 없다.

7. Tristero의 존재

Tristero는 The Courier's Tragedy라는 Jacobean 복수극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Oedipa가 Tristero를 암시하는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많은 암시와 정보들은 하나의 메타포로서 인류가 논리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구분해 놓은 진리와 거짓에 대한 위협이 되며 모든 것은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모호성과 상대성을 암시한다. 이런 모호함에 대한 묘사는 곧 현실에 대한 은유로 제시된다.
이 복수극을 통해 Tristero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Oedipa는 연출자인 Driblette를 찾아가서 Tristero에 관해 물어 보지만 대본이 없다는 사실과 그 연극은 연출자 자신이 손질한 것이며 리얼리티는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 the reality is in this head."(P.79)라고 말할 뿐이다. 또한 이 연극은 Paranoids 단원들이 이 연극을 ‘마리화나’에 비유하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 담배에서 피어오르는 소용돌이치는 연기“와도 같은 Tristero의 존재는 그녀의 탐색이 혼돈으로 향하고 있음을 암시해주며 입수된 정보끼리의 상호연관성을 기대하는 그녀의 질서 추구의 행위를 언제나 원점으로 돌려 놓는다. 따라서 주인공인 그녀가 많은 단서들을 확보하면 할수록 Oedipa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연극 대본이 없다는 것은 지금 까지 이성과 질서를 추구해 온 서구 사상의 근본적 해체이며, 논리와 말에만 집착하는 현대인들의 무모함을 질책하고 있다. Inverarity가 구축해 놓은 Yoyodyne회사에는 인간이 추구해 온 논리와 질서화로 이루어진 세계가 있으며, 바로 이런 산업화, 질서화 추구에 의한 종속 당해 가는 그들의 모습은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서 드러난다. 종업원들이 회사에 충실하고 인간의 이성과 논리가 만들어 낸 미사일과 탄두들에 관해 나열되는 언급은 인류가 이제까지 진리로 믿어온 과학화, 질서화에 대한 일종의 해체 행위이다. Yoyodyne의 세계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지닌 발명가가 아니라 그저 전체의 조직을 따라가는 기계적인 인간일 뿐이다. 이러한 획일화된 닫힌 체계 속에서 Oedipa는 유일한 탐색자로 색안경너머로 움직이지 않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핀다.

Nobody paid any attention to them: The air-conditioning hummed on,
IBM typewriters chiggered away, swivel chairs squeaked, fat
reference manuals were slammed shut, rattling blueprints folded and refolded,
while high overhead the long silent fluorescent bulbs glared merrily:
all with Yoyodyne was normal. Escept right here, where Oedipa Maas,
with a thousand other people to choose from, had had to walk uncoerced into
the presence of madness. (p.87)

이처럼 작가는 미국인들이 심지어 일종의 신화처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각종 발명품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등, 현대 사회가 끝없이 추구해온 산업화, 기계화, 자동화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인 시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또한 주인공 Oedipa는 파편화된 단서들을 연결시켜 줄 대상을 Tristero에서 찾으려고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Tristero에 대한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워 질뿐이다. 또한 WASTE 시스템의 전달과정을 그녀가 우연히 목격하고 그것의 근원지를 추적하지만 자신이 출발했던 원점으로 되돌아와 있는 것을 스스로 발견할 뿐이다. 그녀는 무질서, 혼돈, 파편의 새로운 세계 보다는 질서가 있는 세계를 원하게 된다. 그래서 질서 속에 있던 사람들을 찾아가지만 그들은 모두 현실로부터 이미 벗어나 버린 모습들이다. 정신과 의사인 Hilarius는 광신도들이 자신이 쫓아온다는 망상증에 사로잡혀 있으며, 남편 Mucho는 이미 LSD에 중독되어 있고, 변호사 Metzger는 어린 소녀와 도망을 가버렸다. Oedipa가 신뢰했던 규칙과 질서들은 그녀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고, 이제 그녀는 점점 더 불어나는 혼돈 속에서 절망할 수 밖에는 없다. Tristero로 상징화되고 있는 세계의 이면에 대한 인식을 습득해 가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현실 속에 안주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Tristero가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해석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해 온 허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향한 탈출구 역할을 하고 질서 체계인 현실의 대응되는 무질서 세계이며 거울이기도 한 Tristero의 세계는 Oedipa가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세계이고, 분명한 자신의 위치나 영역이 부재하며 질서가 해체된 세계로서 그 이면에는 많은 가능성과 잠재성을 제공하며 의미의 불확실성과 변화의 불연속성을 내포하는 세계를 뜻하는 것이고, 기존의 세계관이 배척해온 우리와 공존하고 있는 또 다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엔트로피 이론에 의하면 타자와 교류하지 않는 닫힌 세계는 모두 필연적으로 파멸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닫힌 체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열린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때 “맥스웰의 요정"이라는 존재의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 1871년 스코트랜드의 물리학자 James Clerk Maxwell은 조그만 체계에서는 ‘맥스웰의 수호정령’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의 정리 작업으로 인해 열역학 제 2법칙에 위반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설을 주장했다. 즉 맥스웰의 요정이 분자의 정리 작업을 통해 분자들의 동질성을 막고 서로 교류하게 해주면 다행히도 엔트로피가 감소되어 그 체계는 파멸을 면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양자를 이어주는 구실을 하는 것이 Oedipa로 되어있다. 이상에서 살펴 보았 듯이 Oedipa의 탐색의 과정 속에서 두 세계를 다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8. 새로운 질서 추구

주인공 Oedipa는 이야기 속에서 무질서로 존재에서 부재로의 반복적인 진행을 통해 허무와 혼돈의 상황을 겪는다. 작품 속의 주인공이 추구하는 질서와 통합의 세계는 그저 해체된 모습으로 제시될 뿐이며 Tristero의 세계는 질서에서 변화된 무질서의 양상으로 나타남으로 해서 이 해체된 현실은 그 동안 인류가 믿어온 기존의 세계관을 위협하게 된다. 이처럼 질서가 사라지고 무질서화한 모호한 현실의 상황 묘사를 통해 작가는 다양한 세계를 그려낸다. 그는 논리적 사고 방식에 따라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을 벗어나서 ‘이것도 저것도’될 수 있는 다양성을 제공하고 있다. 두 가지 극단적인 상황은 어느 것이나 오류와 위험이 수반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을 선택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은 Fallopian을 통해 설명한다.

"Good guys and bad guys. You never get to any of the underlying truth.
Sure he was against industrial capitalism. So are we. Didn't it lead, inevitably
to Maxism? Underneath, both are part of the same creeping horror." (p.51)

Inverarity의 많은 유산을 질서 잡힌 단일화된 체계라고 본다면 ,Tristero는 질서가 해체된 다양한 세계인 것이다. 사람들은 기존의 경직된 논리적 사고, 질서화된 사고로 오직 하나의 의미와 결론만을 끝없이 추적하고 있지만 하나의 이미지라고 생가가했던 Tristero를 실제로는 너무도 많은 다양성과 가능성을 내포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외되어 온 사람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러한 세계는 Tristero의 의미가 “비참한”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듯이 기존의 사회 체계로부터 버림받은 WASTE같은 사람들을 포함하는 세계로서 탈중심화된 현대 사회에서 이분법적 틀에 의해 별도로 구분되어 억압받고 소외되어온 대상들이 이제는 각기 제 몫의 발언권을 갖게 되고, 이 변화된 사회에서는 하찮은 대상들이 중요해지는 열린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9.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 시사하는 것

이 작품은 그 어떤 확정된 결말도 없이 그 의미가 영원히 유보된 채로 완전 숫자인 7이 아니고 불완전 숫자인 6장에서 경매장에서 경매를 기다리고 있는 Oedipa의 모습이다.

The man inside the auction room were black mohair and had pale ,
cruel faces. They watched her come in, trying each to conceal his thought.
Loren Passerine, on his podium hovered like a puppet-master, his eyes bright,
his smile practiced and relentless. He stared at her, smiling, as if saying,
I'm surprised you actually came. Oedipa sat alone, tosard the back of the
room, looking at the napes of necks, trying to guess which one was her target,
her enemy, perhaps her proof. An assistant closed the heavy door on the
lobby windows and the sun, she heard a lock snap shut; the sound
echoed a moment. Passerine spread his arms in a gesture of some remote
culture; perhaps to a descending angel. The auctioneer cleared his throat.
Oedipa settled back, to await the crying of lot 49. (p.183).

오순절(Pentecost)는 부활절 이후의 일곱 번째 일요일 즉, 49번째 날이다. 그러므로 49의 상태는 결국 계시 직전의 순간으로 그 계시가 현현되지 않고 잠재하여 있는 마지막 순간인 것이다. 이 작품도 Tristero의 정체가 드러나기 직전에서 끝을 맺고 있는 것이다. 지금 까지 Oedipa는 Tristero가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에 다가가면 갈수록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했었다. 그런데 그 존재를 발견하는 순간 Oedipa는 또 다른 세계에 눈을 뜨고 마음을 열어 놓게 되는데, 또 동시에 Tristero가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그녀의 마음을 두배로 넓게 열어 놓게 되는 것이다. 왜냐면 Tristero에 대한 확신도 또 다른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Tristero란 이미 그냥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이기 때문에 확인할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작가는 그러므로 0과 1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0과 1은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의 대표이며 0과 1사이에 있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찾아보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Tristero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라 그것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통해 Oedipa가 겪게 되는 인식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10. 여성적 원리와 열림의 세계

아무래도 주인공이 여성인 이유는 여성이 더 닫힌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이 열림과 닫힘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면 여성이 주인공이어야 더 본질에 잘 접근할 수가 있다. Oedipa Maas는 평범한 중산층의 가정 주부로 남편과 대화가 단절되어 있으며 자신이 매일 반복 되는 일상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가정 주부라는 것이 또한 거의 반복 되는 가사일에 매여있게 되고 대중 매체를 통하지 않고는 사회와 단절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또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여성은 유연하기 때문에 열림과 눈뜸의 과정을 그려나가는 데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터퍼웨어로 상징되는 그녀의 생활은 갇혀있는 생활이고, 이는 Varo의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갇혀있는 생활에 답답해했는지를 알 수 있다. 라푼젤의 동화를 암시하는 이 그림은 라푼젤이 결국은 그 탑에서 나와 왕자와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볼 때 그녀도 탈출에의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만약 그녀가 유언 집행인으로 위촉되지 않았다면 Tristero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서 아마 생각하지 않고 살아갔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작가는 부지 불식간에 여성이 억압된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Oedipa가 숙소로 정한 모텔의 이름 Echo 는 반복된 메아리만 들려오는 곳이다. 도한 그곳이 처해있는 San Narsico는 Narcissus가 자신의 연장인 수면에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여 닫혀진 체계가 되고 마비되어 결국은 사멸하고 말았듯이 미국 역시 물질적인 풍요에 근거한 자신의 꿈 이미지에 스스로 도취되어 마비된 일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이런 사회는 어떤 방향도 없는 수동적인 세계이며 그 세계 속의 여성은 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니 의사 소통이 불가능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이 Echo 모텔은 바로 Oedipa를 제한하고 고립시키는 탑으로부터의 탈출의 출발점이 된다. 왜냐면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그녀의 탐색과정에서 그녀는 이 사회에서 Echo의 역할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Tristero를 발견하게 되며, 그 과정 속에서 자신도 더 이상은 메아리가 아닌 자신의 목소리, 곧 진실을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여 열린 체계로 향하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Hite, Molly. Ideas of Order in the Novels of Thomas Pynchon. Columbus: Ohio
state UP., 1983.
Pynchon, Thomas. The Crying of Lot 49. Philadelphia&New York: J. B. Lippincott Company, 1966.
. The Crying of Lot 49 with essays in criticism. Seoul: Shinasa, 1994.
김 성곤. 「포스트 모던 소설과 비평」. 서울: 열음사, 1993.
“토마스 핀쳔의 엔트로피적 비젼.” 「세계 문학」(겨울호, 1987).
문 영식.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해” . 인천: 인천 대학교.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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