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상윳따니까야(Samyutta nikaya) 경전의 구성및 설명(5-3)

작성자혜봉|작성시간19.12.30|조회수232 목록 댓글 0

1.상윳따니까야(Samyutta nikaya) 경전의 구성및 설명(5-3)

3.상윳따니까야(Samyutta nikaya) 경전의 구성및 설명

■제8

PTS5[대품 모음(Mahāvagga)] 가운데 첫 1/4에 해당하는 경전이다.

[대품 모음][쌍윳따 니까야] 가운데 가장 방대한 12쌍윳따 1111208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다가 생략된 부분을 복원하였으므로 역자는 불가피하게 8. 9. 10. 114권으로 나누었다. [대품 모음]은 주로 다음과 같은 7종으로 나누어지는 서른 일곱가지의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법(三十七助道品, 三十七菩提分法:sattatiṃsa bodhipakkhiyā dhammā)을 다루고 있다.

I. 네가지 새김의 토대(사념처 四念處:cattāro satipaṭṭhānā)

① 몸에 대한 관찰(신수관 身隨觀:kāya-anupassanā)

② 감수에 대한 관찰(수수관 受隨觀:vedanānupassanā)

③ 마음에 대한 관찰(심수관 心隨觀:cittānupassanā)

④ 법에 대한 관찰(법수관 法隨觀:dhammānupassanā)

II. 네가지 바른 노력(사정근 四正勤:cattāro sammappadānā)

① 방지의 노력(율의근 律儀勤:saṁvarappadhāna)

② 버림의 노력(단근 斷勤:pahānappadhāna)

③ 수행의 노력(수근 修勤:bhāvanāppadhāna)

④ 수호의 노력(수호근 守護勤:anurakkhaṇāppadhāna)

III. 네가지 신통력의 기초(사신족 四神足:cattāro iddhipādā)

① 의욕의 신통력의 기초 (욕신족 欲神足:chanda-iddhipāda)

② 노력의 신통력의 기초(근신족 勤神足:viriya-iddhipāda)

③ 마음의 신통력의 기초(심신족 心神足:citta-iddhipāda)

④ 관찰의 신통력의 기초(관신족 觀神足:vīmaṃsā-iddhipāda)

IV. 다섯가지 정신적 능력(오근 五根:pañc'indiyāni)

① 믿음의 정신적 능력(신근 信根:saddhā-indriya)

② 정진의 정신적 능력(정진근 精進根:viriya-indriya)

③ 새김의 정신적 능력(염근 念根:sati-indriya)

④ 집중의 정신적 능력(정근 定根:samādhi-indriya)

⑤ 지혜의 정신적 능력(혜근 慧根:paññā-indriya)

V. 다섯가지 힘(오력 五力:pañca balāni)

① 믿음의 힘(신력 信力:saddhābala)

② 정진의 힘(정진력 精進力:viriyabala)

③ 새김의 힘(염력 念力:satibala)

④ 집중의 힘(정력 定力:samādhibala)

⑤ 지혜의 힘(혜력 慧力:paññābala)

VI. 일곱가지의 깨달음 고리(칠각지 七覺支:satta bojjhaṅgā)

① 새김의 깨달음의 요소(염각지 念覺支:satisambojjhaṅga)

② 탐구의 깨달음의 요소(택법각지 擇法覺支:dhammavicayasam -bojjhaṅga)

③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정진각지 精進覺支:viriyasambojjhaṅga)

④ 경이의 깨달음의 요소(희각지 喜覺支:pītisambojjhaṅga)

⑤ 안온의 깨달음의 요소(경안각지 輕安覺支:passaddhisambojjhaṅga)

⑥ 집중의 깨달음의 요소(정각지 定覺支:samādhisambojjhaṅga)

⑦ 평정의 깨달음의 요소(사각지 捨覺支:upekhāsambojjhaṅga)

VII. 여덟가지의 성스러운 길(팔성도 八聖道:ariya aṭṭhaṅgika magga)

① 올바른 견해(정견 正見:sammādiṭṭhi)

② 올바른 사유(정사유 正思惟:sammāsaṅkappo)

③ 올바른 언어(정어 正語:sammāvācā)

④ 올바른 행위(정업 正業:sammākammanto)

⑤ 올바른 생활(정명 正命: sammāājīvo)

⑥ 올바른 정진(정정진 精精進:sammāvāyāmo)

⑦ 올바른 새김(정념 正念:sammāsati)

⑧ 올바른 집중(정정 正定:sammāsamādhi)

디가니까야에서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전에 이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법에 대한 가르침의 중요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러므로 수행승들이여, 세상을 애민히 여겨 많은 사람의 이익과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곧 신들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청정한 삶이 세상에서 오래 지속되도록, 내가 너희들에게 초월적인 지혜로서 가르친 것들-예를 들어 네가지 새김의 토대, 네가지 노력, 네가지 신통력의 기초, 다섯가지 능력, 다섯가지 힘, 일곱가지의 깨달음 고리,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을 잘 배우고 공부하고 닦고 수행해야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쭌다에게 자주 만나서 그 가르침의 의미를 일치시키고 그 자구를 일치시켜 수행할 것을 강조했다:

쭌다여, 세상을 애민히 여겨 많은 사람의 이익과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곧 신들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청정한 삶이 세상에서 오래 지속되도록,

내가 너희들에게 초월적인 지혜로서 가르친 것들을 모두가 자주 만나서 의미를 일치시키고 자구를 일치시켜 논쟁 없이 합송해야한다.”

그리고 맛지마 니까야에서는 이러한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가르침과 관련해서 승가내부의 일치(MN. II. 245)를 강조하고 그러한 가르침을 닦는데

모두가 일치하고 화합하여 논쟁하지 말고 배워야할 것(sabbeh’eva sammaggehi sammodamānehi avivadamānehi sikkhitabbaṃ; MN. II. 239)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거기서 많은 제자들이 그러한 초월적 지혜 속에서 성취와 완성에 도달하기(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ti; MN. II. 12)’ 때문이다.

위의 경전상의 7종의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법의 나열순서는 7가지의 점진적인 수행단계를 표현하는 인상을 주지만 그렇지가 않다. 자세히 살펴보면 단지 4에서 8에 이르는 법수적인 나열임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다른 팔정도나 사성제의 순서처럼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한 종류의 요소들이 다른 종류의 요소들에 속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한 종류가 다른 종류의 한 요소로서 간주되기도 한다.

이들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요소들은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유일한 목표를 향해 사람들의 다양한 조건에 맞도록 조정된 다양한 가르침을 내포한다.

각 가르침은 서로 겹치고 상호 교차하면서 법계의 전체구조인 연기법과 관련을 맺고 있으나, 무지나 무명에서 일어나는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난다라는 속박의 연박연기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밝은 지혜에 바탕을 두는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라는 자유의 해탈연기를 지향한다는 점이 다르다.

빠알리 니까야에서 깨달음(覺:bodhi) 또는 완전한 깨달음(正覺: sambodhi)이라는 말은 아라한의 지위에서의 인식 즉 번뇌를 소멸한 지혜(漏盡智:āsavakkhayañāṇa)’를 뜻한다. 그러므로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법들이 충족되면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대품의 모음]에서 각 쌍윳따들은 칠종의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법과 관련해서 일반 빠알리 경전에서 나타나는 순서와는 다르게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부터 등장하는데 이것은 그 내용의 구체성과 중요성의 순서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제시한 해탈의 방법론으로 가장 중요한 고전적형식이 바로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이다. 그 다음에 일곱가지 깨달음의 고리가 다루어진다. 그 이유는 그것이 팔정도를 가장 잘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네가지 새김의 토대, 다섯가지 정신적 능력, 네가지 올바른 노력, 다섯가지 힘, 네가지 신통력의 기초의 순서로 법수적 순서와는 상관없이 배열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등장하는 아누라다 쌍윳따는 네가지 생김의 토대와 관련되는 갓이고 그 이후의 선정 쌍윳따, 호흡 쌍윳따, 흐름에 든 이 쌍윳따, 진리 쌍윳따 네가지는 칠종의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법과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대품의 모음󰡕에서 중요한 것은 판에 박은 듯 반복되는 어구가 각기 특수한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법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I. “수행승들이여, [여덟가지의 법]을 닦고 수행하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이끌어진다.”:이 문장은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 일곱가지 깨달음의 고리, 네가지 새김의 토대, 다섯가지 정신적 능력과 관련해서 서술된다.

II. “수행승들이여, 누구든지 [여덟가지 거룩한 길]을 잃어버린다면, 그는 완전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누구든지 [여덟가지 거룩한 길]을 시도한다면, 그는 완전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 문장은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 일곱가지 깨달음의 고리, 네가지 새김의 토대, 다섯가지 정신적 능력과 관련해서 서술된다.

III. “수행승들이여, [일곱가지 깨달음 고리]를 닦고 수행하여 고귀한 출리를 이루면, 그 사람은 완전한 괴로움의 소멸로 이끌어진다.”: 일곱가지 깨달음 고리, 네가지 새김의 토대, 다섯가지 정신적 능력에만 해당하고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IV. “수행승들이여, 일곱가지 깨달음 고리를 닦고 수행하면 반드시 싫어하여 떠나고 사라지고 소멸하고 고요해져서 잘 알고 올바로 깨닫고 열반에 드는데 도움이 된다.” 이것 역시 일곱가지 깨달음 고리, 네가지 새김의 토대, 다섯가지 정신적 능력에만 해당하고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V. “수행승들이여, 아직 생겨나지 않았더라도 이러한 [여덟가지의 법들은] 사람들이 그것을 닦고 수행하면, 이렇게 오신 이, 거룩한 이,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이의 출현과 더불어 [또는 계율과 더불어] 생겨난다.” 이 문장은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 일곱가지 깨달음의 고리, 다섯가지의 정신적 능력에 해당한다.

VI. “수행승들이여, [해골에 대한 명상]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수행하면 현세에서 완전한 지혜를 얻거나, 취착이 남아 있다면 돌아오지 않는 경지에 이르거나 두 과보 가운데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일곱가지 깨달음의 고리, 네가지 새김의 토대, 다섯가지 정신적 능력에 관계한다.

VI.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이 일곱가지 깨달음 고리를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수행하면 이러한 일곱가지의 결과, 일곱가지 과보가 기대된다.” 일곱가지 깨달음의 고리, 다섯가지 정신적 능력, 네가지 신통력의 기초와 호흡에 대한 새김에 관계한다.

위와 같이 판에 박은 듯 반복되는 어구가 어떤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법들과는 관계를 맺고 어떤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법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의문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비구 보디에 의하면 그 이유는 단지 모든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법들에 적용될 수 있는 문구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적용되지 않은 것은 단지 그렇게 적용되지 않은 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경전들의 결집에서의 누락에 기인한다.

이 한글 쌍윳따 제8권에는 다음과 같은 제45쌍윳따와 제46쌍윳따의 두 쌍윳따가 포함되어 있는데 제46쌍윳따는 지면관계상 전반부 만이 여기에 실렸다.

「제45쌍윳따 길(Magga-Saṁyutta)

「제46쌍윳따 깨달음의 고리(Bojjhaṅga-Saṁyutta)

45쌍윳따 「길 쌍윳따」은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인 팔정도를 다루고 있다. 이 「길」은 PTS본에는 8개의 품으로 나누어졌으나 역자는 미얀마본에 따라 16개의 품으로 나누었다. 이 쌍윳따에 소속된 팔정도에 관한 경전은 모두 180개나 된다. 그런데 이 팔정도의 각 요소들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의 정신현상의 연기로 구분된다.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은 도덕적 현상(戒蘊:sīlakkhandha)으로 올바른 정진, 올바른 마음새김, 올바른 집중은 고차적 정신현상으로서의 명상적 현상(定蘊:samādhikkhandha)으로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의도는 지혜적 현상(慧蘊:paññakk-handha)으로 구분된다. 이것은 팔정도를 계․정․혜(戒定慧)3(三學)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이 여덟가지의 성스러운 견해에 관하여 이 책의 제45쌍윳따 8경 분별경(分別經)에서 자세히 정의하고 있으나 삼학과 관계해서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올바른 견해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성스러운 것 하나만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초보적이고 세속적인 올바른 견해를 언급하지 않는다면 출발이자 완성인 지혜의 속성을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세속적인 올바른 견해는 소업분별경(小業分別經)에 의하면, “모든 존재(衆生 : sattā)는 업()의 소유자들이며 업의 상속자들이며 업을 모태로 삼는 자들이며 업을 친지로 하는 자들이며 업을 의지처로 하는 자들이다.”라고 철저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분별경은 완성된 지혜를 의미하는 성스러운 올바른 견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에 대하여 알고, 괴로움의 생성에 대하여 알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하여 알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알면,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올바른 견해라고 한다.” 라고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올바른 집중의 과정에서 새롭게 동원되는 무상, , 무아에 대한 직관적 통찰(vipassāna)은 세속적인 길(世間道:lokiya magga)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세속적인 윤회에 대한 통찰을 통해 그것을 초월하여 해탈로 이끄는 길을 말한다. 이 길을 통해 세계의 무상, , 무아성이 충분히 깨달아졌을 때에 그 조건성은 파괴되고 무위의 열반이 성취된다. 이러한 무위 열반의 무조건적인 세계로의 관통은 출세간적인 도(出世間道:lokauttara magga)라고 불리운다. 이 때에 네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는 개념적인 이해를 뛰어넘어 궁극적으로는 한순간에 동시에 깨달아진다.

■제9

PTS5[대품 모음(Mahāvagga)] 가운데 2/4에 해당하는 경전이다. [대품 모음]의 내용에 관해서는 이미 쌍윳따니까야 8권의 서문에서 개략적으로 소개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이 한글 쌍윳따 제9권에는 다음과 같은 제46쌍윳따의 후반부와 제47쌍윳따와 제48쌍윳따의 세 쌍윳따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 제목은 아래와 같다.

「제46쌍윳따 깨달음의 고리 II(Bojjhaṅga-Saṁyutta)

「제47쌍윳따 새김의 토대(Satipaṭṭḥāna-Saṁyutta)

「제48쌍윳따 능력(Indriya-Saṁyutta)

46쌍윳따 「깨달음 고리 쌍윳따」는 전반부는 쌍윳따니까야8권의 뒤에 실려있는데 모두 18개의 품 184개의 경전으로 이루어져있고 일곱가지 깨달음의 고리를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다. 일곱가지 깨달음의 고리(七覺支:satta bojjhaṅgā)는 다음과 같다.

① 새김의 깨달음 고리(염각지 念覺支:satisambojjhaṅga)

② 탐구의 깨달음 고리(택법각지 擇法覺支:dhammavicayasambojjhaṅga)

③ 정진의 깨달음 고리(정진각지 精進覺支:viriyasambojjhaṅga)

④ 희열의 깨달음 고리(희각지 喜覺支:pītisambojjhaṅga)

⑤ 안온의 깨달음 고리(경안각지 輕安覺支:passaddhisambojjhaṅga)

⑥ 집중의 깨달음 고리(정각지 定覺支:samādhisambojjhaṅga)

⑦ 평정의 깨달음 고리((사각지 捨覺支:upekhāsambojjhaṅga)

역자는 칠각지(七覺支)를 깨달음의 고리라고 번역했으나 일반적으로는 깨달음의 요소라고 번역한다. Srp. III. 138에 따르면, ‘깨달음의 요소이거나 깨달은 자의 요소가 깨달음의 고리이다.(bodhiyā bodhissa vā aṅgā ti bojjhaṇgā)’ 깨달음의 요소란 새김(sati)등의 법의 집합을 의미하고 깨달은 자의 요소란 사성제를 꿰뚫거나 열반을 실현하는 것(cattāri vā ariya-saccāni pativijjhati, nibbānaṃ eva vā sacchikaroti)’을 말한다. SN. V. 72에 의하면, 부처님 스스로는 각지(bojjhaṅgā)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것(bodhāya saṃvattantīti)’이라고 정의했다. 이 가운데 역자가 번역에서 가장 고민한 단어는 희열(pīti)이라는 단어이다. PTS. 사전에는 즐거움(joy), 환희(delight), 흥미(zest), 충만(exuberance), 황홀(rapture)’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단어가 다섯가지 존재의 다발 가운데 감수의 다발(受蘊:vedanākkhandha)이 아니라 형성의 다발(行蘊:saṅkhārakkhandha)에 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상에 의해 창조된 관심이나 흥미를 뜻한다. 희열은 대상을 바람직한 것(아름답거나 착하거나 덕스러운 것)으로 파악하는 특징을 지녔다고 말해진다(ārammaṇaṃ kallato gahaṇalakkhaṇāti vuttam. Cdp. 243). 이 희열에는 다섯가지 종류의 희열(pañcavaṇṇā Pīti)가 있다. ㉠ 짧은 흥미(khuddakā pīti), ㉡ 순간적 기쁨(khaṇikā pīti), ㉢ 거듭 나타나는 기쁨(okkantikā pīti), ㉣ 황홀한 기쁨(ubbegā pīti), ㉤ 가득찬 기쁨(pharaṇā pīti). 한때에 필자는 이 단어를 경이(驚異)라고 번역하고는 만족했으나 아무래도 놀라움(wonder, miracle)을 뜻하는 경이와는 뜻이 현격히 차이가 나는 것 같아 희열로 바꾸었다. 그러나 탐구와 정진이후에 나오는 희열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나오는 무엇인가에 의문을 가지고 놀라고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란 뜻의 경이(thauma)와 전혀 다른 것이라고 보기도 힘든 것 같다.

(kāyaSN. V. 63)이라는 경에는 일곱가지 깨달음 고리의 자양분에 관하여 상세히 나온다. 초기불교에서 자양분이란 그것을 일으키는 조건들을 말한다. 각각의 그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① 새김의 깨달음 고리의 조건:새김의 깨달음 고리의 토대가 되는 법에 대하여 이치에 맞게 숙고하고 익히는 것으로 붓다고싸(Srp. III. 141)에 따르면, ‘마음새김의 대상이 되는 법은 삼십칠조도품(三十七 助道品)과 구출세간법(九出世間法)에 대한 것이다.

② 탐구의 깨달음 고리의 조건:건전한 법과 건전하지 못한 법이 있고, 비난받아야 할 법과 비난 받을 것이 없는 법이 있고 열등한 법과 수승한 법이 있고 어둡고 밝은 법의 대조가 있는데 그것에 대해 이치에 맞게 숙고하고 익히는 것이다.

③ 정진의 깨달음 고리의 조건:시도의 세계, 노력의 세계, 용맹의 세계가 있는데 그것에 대해 이치에 맞게 숙고하여 익히는 것이다. 붓다고싸(Srp. III. 141)에 따르면 시도, 노력, 용맹은 정진의 세가지 점증적 단계이다.

④ 희열의 깨달음의 조건:희열의 깨달음 고리의 토대가 되는 법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 이치에 맞게 숙고하여 익히는 것, 붓다고싸(Srp. III. 141)에서도 별다른 설명 없이 토대가 되는 법이란 희열의 대상이 되는 것(pītiyā ārammaṇa-dhamm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⑤ 안온의 깨달음의 조건:몸의 안온과 마음의 안온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 이치에 맞게 숙고하여 익히는 것이다. SN. V. 67의 계행이라는 경은 몸의 고요함과 마음의 즐거움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붓다고싸(Srp. III. 141)에 따르면, ‘몸의 안온세가지의 정신적 다발(감수, 지각, 형성)의 스트레스를 고요히 하는 것(tiṇṇaṃ khandhassa daratha-passaddhi)’이고 마음의 안온의식의 다발의 스트레스를 고요히 하는 것(viññāṇa-kkhandhassa daratha-ppassadhi)’이다.

⑥ 집중의 깨달음의 조건:멈춤의 특징(samatha-nimittaṃ)과 부동의 특징(avyagga-nimittaṃ)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 이치에 맞게 숙고하여 익히는 것이다. 그런데 붓다고싸(Srp. III. 141)에 따르면 두 단어는 동의어(同義語:vevacanaṃ)이다.

⑦ 평정의 깨달음 고리의 조건:평정의 깨달음 고리의 토대가 되는 법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 이치에 맞게 숙고하여 익히는 것이다. 붓다고싸(Srp. III. 141)에서도 별다른 설명 없이 토대가 되는 법이란 평정의 대상이 되는 것(upekhāya ārammaṇa-dhamm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Cdp. 66에 따르면, 그것은 선악이나 고락에 영향을 받지 않는 마음의 균형(majjhattatā)에 의해서 성숙한다.

그리고 그 다음의 계행(sīla)이라는 경은 ① 새김(念:sati)→ ② 탐구(擇法:dhammavicaya)→ ③ 정진(精進:viriya)→ ④ 희열(喜:pīti)→ ⑤ 안온(輕安:passaddhi)→ ⑥ 집중(定:samādhi)→ ⑦ 평정(捨:upekhā)의 인과적인 연쇄에 관하여 말한다. 경전은 또한 이곱가지 깨달음 고리를 닦고 익히면 일곱가지의 결과, 일곱가지의 과보가 기대된다고 설하고 있다. 이러한 법수적인 일치는 부자연스러운 것인데 이는 쌍윳따니까야의 후반부가 전반부보다는 고층에 속하지 않는 후대의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긴 하다. 그 일곱가지란 다음과 같다.

① 현세에서 죽기 전에 깨달음을 실현한다(現法智證樂). 붓다고싸(Srp. III. 143)에 따르면 죽음의 시간이 도달되기 전에(asampatte yeva maraṇakāle)’ 완전한 智慧에 이른다. 따라서 죽기전에 阿羅漢의 지위의 실현한다.

② 만약에 현세에서 죽기 전에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목숨을 다할 때에 깨달음을 성취한다(終命時 現法智證樂).

③ 만약에 목숨을 다할 때에도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서 하부의 다섯가지 장애를 극복하여 감각적 쾌락의 세계에서 형상의 세계로 태어나는 도중에 열반에 드는 중반열반에 이른다. 중반열반자(中般涅槃者:antarā-parinibbāyī)는 다음에 등장하는 생반열반, 무행반열반, 유행반열반, 색구경천에서의 상류반열반자와 더불어 돌아오지 않는 이(不還者)’에 대한 다섯가지 유형을 언급한 것이다. 중반열반은 글자 그대로 하면 감각적 쾌락의 세계에서 형상의 세계로 태어나는 도중에 즉 중유(中有)의 세계에서 열반에 드는 자를 의미한다. 앙굿따라니까야(AN. II. 134)에서는 중반열반자를 존재의 속박(bhavasaṃyojana)’을 버리지 못했으나 태어남의 속박(upapattisaṃyojana)’을 버린 자로 보는데 이것은 문자적인 의미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석서의 아비달마(阿毘達摩的)인 해석은 다르다. 붓다고싸(Srp. III. 143)에 따르면, ‘생애의 절반을 넘지 않아 열반에 드는 자로 세가지 종류가 있다. 천겁의 수명을 가진 무번천(無煩天)에 태어나서 그 태어난 날에 열반에 들거나 태어난 날에 들지 못한면 일백겁가량 지난 뒤에 얻는다. 이것이 첫 번째 중반열반자이다. 다른 자가 이와 같이 불가능하면 이백겁이 지난 뒤에 열반에 든다. 이것이 두 번째의 중반열반자이다. 다른 자가 이와 같이 불가능하면 사백겁이 지난 뒤에 열반에 든다. 이것이 세 번째의 중반열반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붓다고싸의 주석은 너무 아비달마적이고 계량화된 것이다.

④ 만약에 중반열반에 들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상부의 다섯가지 장애를 극복하여 감각적 쾌락의 세계에서 형상의 세계에 태어나서 열반에 드는 생반열반에 이른다. 생반열반자(生般涅槃者:upahaccapa-rinibbāyī)는 글자 그대로 하면 다시 태어나자마자 涅槃에 드는 자를 뜻하지만, 붓다고싸(Srp. III. 143)에 따르면, ‘五百劫을 넘어서 阿羅漢에 도달한 자가 生般涅槃者이다.’ 이 붓다고싸의 주석도 너무 아비달마적이다.

⑤ 만약에 생반열반에 들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상부의 다섯가지 장애를 극복하여 감각적 쾌락의 세계에서 형상의 세계에 태어나서 노력 없이 열반에 드는 무행반열반에 든다. 무행반열반자(無行般涅槃者:asaṅkhāra-parinibbāyi)에서 무행반(asaṅkhāra)형성이 없는=업의 잔여가 없는, 조건이 없는의 뜻이다. 앙굿따라니까야(AN. II. 155156)에 따르면, 無行般涅槃은 감각적 쾌락의 세계에서 형상의 세계에 태어나서 四禪定을 통해서 涅槃에 드는 것을 의미한다. 붓다고싸(Srp. III. 144)에 의하면 노력 없이(appayogena)’의 뜻이다. 따라서 다시 태어나 별다른 노력 없이도 열반에 드는 자를 의미한다. asaṅkh-āraparinibbāyi는 그 의미가 無餘涅槃(anupādhisesa-nibbāna)을 의미한다고 하면 asaṅkhāra는 언어학적으로는 無餘(anupādhisesa)의 의미를 지닐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러한 뜻이 아니다.

⑥ 만약에 무행반열반에도 들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상부의 다섯가지 장애를 극복하여 감각적 쾌락의 세계에서 형상의 세계에 화생하여 오랜시간 수행하여 열반에 드는 유행반열반에 든다. 유행반열반자(有行般涅槃者:sasaṅkhāro parinibbāyī)는 다시태어나 많은 노력을 기우려 열반에 드는 자이다. 붓다고싸(Srp. III. 143)에 따르면, ‘고행적인 명상[加行]을 통해 阿羅漢의 地位에 到達하는 자(sappayogena arahattaṃ patto)’의 뜻이다.

⑦ 만약에 유행반열반에도 들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상부의 다섯가지 장애를 극복하여 상류의 색구경천에 이른다(uddhaṃ-soto akaniṭṭha-gāmī). 이를 한역에서는 상류반열반자(上流般涅槃者)라고 하는데, 그를 열반자로 번역하면 돌아오지 않는 이의 우위를 가려내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는 형상계의 최고천에 도달하는 자이지 거기서 열반에 든다는 표현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전은 깨달음 고리가 모든 경우에 보편 타당한 수행방법이 아님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사람이 큰 불더미를 끄려고 한다고 하자. 그가 여기에다 마른 풀잎을 던지고 마른 쇠똥을 던지고 마른 나무를 던지고 입으로 바람을 불고 먼지를 뿌리지 않으면 그 사람은 큰 불더미를 끌 수 있는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수행승들이여, 마찬가지로 마음이 들뜨면 그때에 탐구의 깨달음 고리를 닦으면 옳지 않고 정진의 깨달음 고리를 닦으면 옳지 않고 희열의 깨달음 고리를 닦으면 옳지 않다. 그것은 어떠한 까닭이냐? 수행승들이여, 마음이 들뜨면 그것을 이러한 조건으로 고요하게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SN. V. 114)”

47쌍윳따는 「새김의 토대 쌍윳따」는 네가지 새김의 토대(四念處)에 관한 경전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10개의 품과 102개의 경전으로 이루어져있다. 네가지 새김의 토대의 어원은 satipaṭṭhāna인데, 주석서들(Smv. III. 74161; Pts. II. 244266)에 의하면, satipaṭṭhāna란 말은 sati-upaṭṭhānasati-paṭṭhāna의 두가지로 분석이 가능한데 전자일 경우는 새김의 발생으로 새김의 장치에 해당하고 후자일 경우는 새김의 토대로 새김의 대상에 해당한다. 역자는 후자인 새김의 토대를 취한다. 정확한 번역은 새김의 발취(發趣)일 것이나 오늘날 일상용어로 쓰이지 않으므로 제외한다. 이 새김의 토대는 뭇삶을 청정하게 하고 슬픔과 비탄을 뛰어넘고 고통과 근심을 소멸하여 바른 방도를 얻게 하고 열반을 실현시키는 하나의 길이다. 이 하나의 길이란 원어로 ekāyano maggo인데 하나의 행선지로 통하는 길을 말하는데 한역에서는 일승도(一乘道)라고 한다. 마지마니까야(MN. I. 55)ekāyano ayaṃ maggo도 유명한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영역할 때에 Soma‘This is the only way’라고 했고 Nyanaponika‘This is the sole way’라고 했다. 이 두 표현은 모두 해탈에 이르는 유일한 독점적인 길이라는 인상을 준다. 주석서들(Smv. III. 743744; Psm. I. 229230)에 따르면, 그것은 오로지 다섯가지의 설명방식 가운데 하나이다. Srp. III. 177도 그 첫 번째 설명방식만을 따르고 있다: ‘수행승이여, 하나의 길은 이 길은 갈림길이 아니다.(ekamaggo ayaṃ bhikkhave maggo na dvedhāpathabhūto)’ MN. I. 74에 나오는 ekāyano maggo란 곧바로 행선지로 이르는 가장 가까운 길을 말한다. 그러므로 大乘佛敎 특히 妙法蓮花經(Saddharmapuṇḍarikasūtra)에서 말하는 一乘(ekayāna)과는 다르다. 새김(SN. V. 142)이란 경은 네가지 새김의 토대인 ① 몸에 대한 몸의 관찰(身隨觀), ② 감수에 대한 감수의 관찰(受隨觀), ③ 마음에 대한 마음의 관찰(心隨觀), ④ 사물에 대한 사물의 관찰(法隨觀)’과 뿐만아니라 그 자매적인 수행법으로 올바른 앎의 실천도 중요하다고 언급을 하고 있다.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은 어떻게 올바른 앎을 실천하는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이 세상에 수행승은 나아가는 것과 물러서는 것에 관해 올바로 알고, 보는 것과 살피는 것에 관해 올바로 알고, 굽히는 것과 펴는 것에 관해 올바로 알고, 법복과 발우와 가사를 지니는 것을 올바로 알고,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는 것에 관해 올바로 알고, 대변과 소변을 보는 것에 관해 올바로 알고, 가고 서고 앉고 잠자고 깨고 말하고 침묵하는 것에 관해 올바로 아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은 이와 같이 올바른 앎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행승(SN. V. 142)이란 경은 네가지 새김의 토대는 청정한 계행과 올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아주 흥미로운 경전들이 있는데, 거기서 부처님은 매와 메추라기의 우화(SN. V. 146), 사냥꾼과 원숭이의 비유(SN. V. 148)를 인용하며 오욕락의 감각적 쾌락은 자신의 영역, 아버지의 경계가 아니고 이 네가지 새김의 토대야말로 자신의 영역, 아버지 경계임을 선언하고 자신의 영역, 아버지의 경계가 아닌 곳을 거닐지 말 것을 충고하고 있다.

수행승들이여, 자신의 영역이 아니 곳, 다른 경계를 거니는 자는 이와 같다. 수행승들이여, 그러므로 자신의 영역이 아니 곳, 다른 경계를 거닐지 말라. 수행승들이여, 자신의 영역이 아닌 다른 경계를 거닐면 악마가 그 기회를 얻고 악마가 그 대상을 얻는다.

그러므로 자신을 섬으로 하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지 남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법을 섬으로 하고 법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유훈은 곧 자신의 영역, 아버지의 경계인 네가지 새김의 토대를 거닐며 수행하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 쭌다(SN. V. 161)라는 경에서 확인 할 수 있다.

48쌍윳따 「능력 쌍윳따은」는 17178경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경전들은 주로 다섯가지 능력(五根:pañca indriyāni)에 관하여 설하고 있는데 분별경(SN. V. 196)에 그 다섯가지 능력에 대한 정의는 아래와 같다.

① 믿음의 능력(信根:saddindriyam)세존께서는 공양받을 만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지혜와 덕행을 갖추신 님, 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이해하는 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신 님, 사람들을 길들이시는 님, 신들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 세상에서 존경받는 님이다라고 여래의 깨달음을 믿는 능력이다.

② 정진의 능력(精進根:viriyindriyaṃ):건전하지 못한 법을 버리고 건전한 법을 갖추어 확고히 용맹정진하여 건전한 법에 멍에를 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며 노력하고 정진하는 것 또는 네가지의 노력(四精勤)을 실천하는 능력이다.

③ 새김의 능력(念根:satinriyaṃ):최상의 분별있는 사려를 갖추어 오래 전에 행한 일이나 오래 전에 행한 말도 기억하고 상기하며 새김을 실천하는 것 또는 네가지 새김의 토대(四念處)를 실천하는 능력이다.

④ 집중의 능력(定根:samādhindriyaṃ):마음의 대상을 보내버리고 집중을 얻어 마음의 통일을 성취하는 것 또는 네가지 선정(四禪)에 드는 능력이다.

⑤ 지혜의 능력(慧根:paññindriyaṃ):사물의 생성과 소멸에 관한 지혜를 갖추고 성스럽게 꿰뚫어 봄으로서 올바른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지혜를 갖추는 것 또는 네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를 여실히 아는 능력이다.

그밖에 이 제48쌍윳따 능력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두종류의 세가지 능력(tīṇi indriyānai)이 있다. 먼저 ① 여성의 능력(itthindriyam), ②남성의 능력(purisindriyaṃ), ③ 생명의 능력(jīvitindriyaṃ)이 등장한다. 붓다고싸(Srp. III. 237)에 따르면, 여성의 능력이란 여성의 본성을 지배하는 것(itthibhāve ind'aṭṭhaṃ kāreti)’을 뜻하고 남성의 능력은 남성의 본성을 지배하는 것(purisabhāve ind'aṭṭhaṃ kāreti)’을 뜻한다. 수명의 능력(jīvitindriya)는 생명의 능력을 뜻한다. 그 다음으로는 인식론적인 것인데 ①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알고자 하는 능력(未知當知根:anaññātaññassāmītindriyam), ② 알려진 것을 아는 능력(知根:aññindriyam), ③ 알려진 것을 완전히 아는 능력(具知根:aññātāvindriyaṃ)이다. 붓다고싸(Srp. III. 237)에 따르면,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알고자 하는 능력이란 시작을 알 수 없는 윤회에서 예전에 몰랐던 법을 알 것이다라고 실천할 때에 예류향의 순간에 일어나는 능력을 말한다. 알려진 것을 아는 능력이란 알려진 법을 아는 형태에 의해서 예류과등 여섯가지 상태에 생겨나는 능력을 말한다. 알려진 것을 완전히 아는 능력이란 알려진 것을 완전히 아는 아라한의 지위의 상태에서 생겨난 능력을 말한다. 그 밖에 또한 여섯가지의 능력(cha indriyāni) 곧 시각능력, 청각능력, 후각능력, 미각능력, 촉각능력, 정신능력은 붓다고싸(Srp. III. 240)에 따르면, 시각능력이 시각과 시각기관에 생겨난 현상에 대하여 지배하거나 조정하는 의미에서 능력을 의미하듯이 나머지 능력도 그러한 관계의 의미를 지니다.

그밖에 일반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다섯가지 능력(五根:pa-ñca indriyāni)이 언급되고 있다.

① 안락의 능력(sukh'indriyam):몸이 안락한 것, 몸이 유쾌한 것, 몸의 접촉에서 생겨나는 안락함과 유쾌함을 느끼는 능력.

② 고통의 능력(dukkh'indriyam):몸이 고통스러운 것, 몸이 불쾌한 것, 몸의 접촉에서 생겨나는 고통스러움과 불쾌함을 느끼는 능력.

③ 만족의 능력(somanass'indriyam):마음으로 안락한 것, 마음으로 유쾌한 것, 마음의 접촉에서 생겨나는 안락함과 유쾌함을 느끼는 능력.

④ 불만의 능력(domanassa'indriyam):마음으로 고통스러운 것, 마음으로 불쾌한 것, 마음의 접촉에서 생겨나는 고통스러움과 불쾌함을 느끼는 능력.

⑤ 평정의 능력(upekkh'indriyaṃ):몸이나 마음으로 유쾌하지도 않고 불쾌하지도 않는 것을 느끼는 능력.

우리는 세존께서 말라의 우루벨라의 네란자라 강 언덕의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 아래서 처음으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했을 때의 깨달음의 내용에 관하여 일반적으로는 12연기의 역관과 순관이라고 알고 있다. 그것은 율장의 대품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쌍윳따니까야 대품의 기록에 따르면, 부처님께서 정각을 얻었을 때의 깨달은 내용은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八正道; SN. V. 12)에 대한 체험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네가지 새김의 토대(四念處; SN. V. 167), 다섯가지 능력(五根, 믿음, 정진, 새김, 집중, 지혜; SN. V. 232)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쌍윳따니까야5권은 이 세가지의 수행체계야말로 모든 수행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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