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인물 탐구

현대 로켓 공학의 아버지 "로버트 고더드"

작성자황장군467|작성시간09.03.16|조회수144 목록 댓글 0

로버트 고더드


로켓은 중국에서 약 1000년경 혹은 그 보다 좀 더 이른 시기에 처음 만들어졌다. 화약(이것 역시 중국인들이 발명한 것이다)의 힘으로 추진되는 초기의 로켓은 주로 악귀를 쫓아내기 위한 불꽃놀이에 쓰였지만, 14세기 들어서면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화약으로 추진력을 얻어 철령전(쇠화살)을 발사하는 화차(火車)라는 조선 시대의 병기도 일종의 로켓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화약의 추진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오늘날 로켓하면 떠오르는 우주비행체가 탄생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느 화창한 가을날 오후, 집 뒤뜰에 심어진 벚나무에 올라, 화성까지 갈 수 있는 장치를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소년이 있었다. 나무에서 내려올 때 소년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목표도 뚜렷해졌다. 그는 이 날을 자신의 ‘기념일’이라고 부르고 해마다 일기에 기록한다. 세월이 흐른 후, 소년은 우주 시대를 개척한 사람 중 하나가 된다.

 

로버트 허칭스 고더드는 1882년 10월 5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우스터 시에서 태어났다. 신체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동생이 하나 있었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었다. 고더드도 몸이 허약해 감기와 기관지염에 자주 걸리곤 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침대에 누워 공상을 하는 시간이 많았다. 심지어는 2년 동안이나 병상에 누워 지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공상을 현실로 만들고 싶어 했다. 아버지가 사준 허버트 조지 웰스의 과학소설 <우주 전쟁>을 읽으며 그가 꾼 꿈은 우주를 나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그는 과학 실험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는 비행에 매료되어 연이나 기구로 실험을 하기도 했다. 고더드는 건강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2년 늦게 들어간 고등학교를 1904년에 수석으로 졸업했고 덕분에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했다. 답사에서 그는 “불가능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어제의 꿈은 오늘의 희망이며 내일의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다.

 

 

 

고더드는 대학에서 공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그 시절 그는 자이로스코프를 써서 비행기 안정성을 향상시키는 방안에 대한 글을 써서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지에 투고하기도 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프린스턴 대학의 특별연구원이 된 그는 진공관 개발 연구를 하는 틈틈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로켓의 비행과 관련된 수학적 문제들, 즉 로켓과 추진제의 무게와 분출되는 가스 속도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몰두했다. 1916년 고더드는 클라크 대학의 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도 자신의 교수 연봉 1000달러 등 사재를 써가며 실험과 연구를 계속해나갔다. 그는 모든 운동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는 뉴턴의 법칙을 이용하면 로켓을 진공에서도 날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로켓의 노즐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분사 가스의 힘은 마치 총구멍에서 빠져나가는 탄환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로켓 속의 화약이나 추진제가 연소하면 로켓은 탄환이 총 구멍을 빠져나가는 것과 똑같은 힘으로 날아간다. 뒤를 향해서 뿜어나가는 가스가 로켓을 앞으로 전진시키는 추력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 공간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문제될 리 없지 않은가?”

 

고더드는 1919년 <극한 고도에 도달하는 방법>이라는 논문을 스미스소니언 협회를 통해 발표했다. 제트 추진을 이용하면 지구의 중력권을 벗어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속도인 이탈 속도를 얻을 수 있다는 이론이 담긴 이 논문에 미국 언론은 의외의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사의 머리 제목을 ‘현대의 쥘 베른, 달로 가는 로켓 발명’이나 ‘새로운 로켓으로 달 여행을 꿈꾸다’라고 뽑은 신문들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갈 길은 멀었다. 자신의 구상을 현실로 만드는데 필요한 로켓 제작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 그리고 로켓을 빠른 속도로 추진시켜 줄 연료도 문제였다. 처음 그가 사용한 것은 고체연료였다. 고체연료는 단순하고 비용도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실험은 늘 실패했다. 더 이상의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1920년부터 그는 클라크 대학, 미국 해군 등의 지원을 받으며 고체연료 대신 연소조절이 쉽고 열효율이 높은 액체연료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액체연료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러시아인 치올콥스키와 루마니아계 독일인 헤르만 오베르트 역시 액체연료를 이용하는 로켓을 연구하고 있었다. 고더드는 연료 탱크 두 개를 만들어 하나에는 가솔린을, 그리고 다른 하나에는 액체 산소를 채운 다음 두 물질을 혼합시켜 점화시키기로 했다. 몇 번의 예비 실험도 마친 상태였다.

 

 

 

1926년 3월 16일, 모든 준비가 끝났다. 고더드는 매사추세츠 주 오번 인근 한 농장 들판에 설치된 발사대에 첫 액체연료 로켓을 설치했다. 발사대의 골격은 중간 크기의 수도관으로 만든 아주 간단한 구조물이었다. 드디어 고더드의 조교가 로켓의 점화기에 불을 붙이고 몸을 피했다. 잠시 후, 로켓은 하늘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로켓은 고작 높이 41피트(12.5미터)를 날아올라 2.5초 동안 184피트(56미터)를 비행했다. 노즐의 하단부도 타버렸다. 어찌 보면 실망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1903년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기가 난 거리 역시 고작 36미터였다. 게다가 바닥에 떨어진 로켓은 얼음과 눈 속에 처박혀서도 ‘아주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고더드와 조수들은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어쨌든 역사상 최초로 액체연료 로켓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넬이란 별명으로 불린 이 로켓의 비행 장면은 고더드의 아내가 카메라에 담을 계획이었지만, 필름이 떨어지는 바람에 사진은 남기지 못했다.

 

그 후로도 연구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가 하는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지 못했다. 로켓 발사 실험 중 주민들의 항의로 경찰이 출동해 실험 중단을 명령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소수나마 있었다. 그는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 구겐하임 재단 등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계속했다.


 

그는 뉴멕시코 주 로즈웰로 가 새로운 연소 방법과 정밀한 유도 장치를 고안해가면서 실험을 계속했다. 그리고 실험이 거듭될수록 로켓의 비행 거리와 높이는 높아져 갔다. 1935년 5월 31일에는 음속 보다 빠른 속도로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고더드의 로켓 연구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 사이 독일은 엄청난 위력을 지닌 V-2 로켓을 개발해 실전에 투입했다.

 

 

고더드는 1945년 8월 10일 볼티모어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쉽게도 그는 자신이 로켓이 되어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로 날아감으로써 오랜 꿈이 실현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러시아의 콘스탄틴 치올콥스키이나 독일의 베르너 폰 브라운과 함께 현대 로켓의 선구자란 평가를 받게 된다. 그는 다단로켓을 포함해 모두 214개의 특허를 획득했다. 그 중 83개는 생전에 획득한 것이다.

 

 

 

1966년, 미국 정부는 특허를 침해한 데 대한 보상으로 고더드의 아내에게 100만 달러를 지급했다. 그리고 1920년 고등학생도 알만한 내용으로 지식조차 없다며 고더드에게 지독한 혹평을 가했던 <뉴욕 타임스>는 닐 암스트롱이 달에 발을 딛기 사흘 전인 1969년 7월 17일, 고더드에게 사과하는 글을 실었다. “좀 더 진전된 탐구와 실험 결과 17세기 아이작 뉴턴의 발견이 확실히 증명되었으며, 이제 대기 중에서와 마찬가지로 진공에서도 로켓이 작동한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확립되었다. 뉴욕 타임스는 실수를 후회한다.”

 

 

로버트 고더드만을 다룬 우리말 책은 아직 없다. <20세기 대사건들>(리더스 다이제스트, 동아출판사)과 <로켓 이야기>(채연석 지음, 승산)에 각각 한 편씩 실린 글이 고더드와 관련해 그나마 가장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20세기 대사건들>은 굳이 고더드 때문이 아니더라도 헌책방에서 한 권쯤 구해 놓으면 좋을 것이다. ‘격동과 비약의 기록’이라는 부제처럼 20세기에 일어난 중요한 일들을 정리해 놓은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할 필요 없이 아무 때고 아무 쪽이나 펼쳐 읽어도 된다. 그림과 사진을 보는 즐거움도 꽤 크다.


로켓이야기

 

 

<오늘의 세계인물> 관련글 이어보기ㅣ고더드와 같은 시기 미국 한편에서 20세기의 획기적인 발명품 나일론을 발명했던 화학자 월리스 캐러더스
                                                고더드가 우주로 날기 위해 로켓을 개발하는 동안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 명왕성을 발견한 클라이드 톰보
                                                액체연료 로켓 발사 성공 후 50년 뒤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그 안에 탑승한 크리스타 매콜리프
                                                여동생과 함께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천왕성을 발견한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