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부왕으로 유명한 찰스 척 피니는
1931년 뉴저지의 가난한 아일랜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간호사였고 아버지는 보험업자였다.
어머니 매들린 피니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루게릭병을 앓는 이웃을
정기적으로 돕는 등 조용한 사마리아인처럼 남을 도왔다.
어머니의 이같은 자선 활동은 피니의 인생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어린 시절 피니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팔고 눈을 치우며 용돈을 벌었다.
한국전쟁 때는 일본에 주둔하며 통신병으로 활약했고
제대군인 지원법으로 코넬대학교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1960년 그는 대학 동창과 함께
면세점 사업 개념을 최초로 창안하며 DFS 그룹을 시작했다.
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돈이 쌓여갈수록 그는 사치로운 삶에 불편함을 느꼈다.
특히 1970년대 후반 앤드류 카네기의 에세이 ’부의 복음‘을 읽고 큰 충격을 받는다.
카네기는 에세이에서 “부자로 죽는 사람은 불명예스럽게 죽는 것이다.
가능한 한 많은 부를 축적한 후 모두 나눠주라“고 조언했다.
결국 피니는 1984년 자신이 소유한 DFS 지분 38.7% 전체를
비밀리에 자신이 만든 자선재단에 양도했다.
당시 가치는 약 5억 달러(7,200억원)에 달했다.
피니는 기부를 할 때 철저히 익명을 고집했다.
수혜 기관들조차 누가 기부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15년 넘게 이 비밀을 지켰다.
피니가 강조한 것은 생전 기부였다.
“살아있을 때 기부하면 그 영향을 직접 볼 수 있고
더 현명하게 기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생전에 코넬 대학교, 아일랜드의 대학들,
베트남의 병원들, 호주의 연구소 등
전 세계에 걸쳐 조용히 수십억 달러를 기부했다.
워런 버핏은 피니를 만난 후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나의 영웅이자 빌 게이츠의 영웅이기도 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의 영웅이어야 합니다.”
빌 게이츠 역시 이렇게 말했다.
“척의 생전 기부에 대한 헌신은 멜린다와 나에게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피니의 영향으로 2010년 기빙 플레지가 시작되었고
234명의 억만장자들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서약했다.
그는 생전에 극도로 검소한 생활을 유지했다.
출장 때는 이코노미석을 타고 다녔고 집이나 차를 소유하지 않았으며
10달러(1만4천원) 짜리 카시오 시계를 착용했다.
서류는 비닐봉지에 들고 다녔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는 2016년 샌프란시스코의 임대 아파트에 살았으며
자신에게는 약 200만 달러(28억원) 만을 남겼다.
2020년 9월 14일, 89세의 피니는 자신의 재단을 공식적으로 폐쇄했다.
목표했던 모든 돈을 다 썼기 때문이다.
38년간 그가 기부한 금액은 총 80억 달러(11조 5,000억원)에 달했다.
지난 2023년 10월 피니는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매우 행복합니다. 내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은 진정한 부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훈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