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오전 예배
주님께서는 충성된 자들을 위하여 천국의 문을 열고 기다리신다(1)
요한계시록 3:7-13
오늘은 소아시아의 일곱 가운데 하나인 빌라델비아교회에 대해 생각하겠습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가운데 서머나교회와 함께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만 받은 훌륭한 교회가 바로 빌라델비아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 시(市)의 역사
먼저 빌라델비아교회가 처한 형편에 대해 생각하기에 앞서 빌라델비아라는 도시가 어떤 도시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빌라델비아는 사데에서 동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도시에 비하면 아주 작은 도시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오늘 본문의 편지를 보낼 때는 불과 2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로서 일곱 도시 가운데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진 도시였습니다.
빌라델비아는 B.C 189년경에 버가모의 왕 유메네스 2세나 그의 형제인 아탈루스 2세가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버가모의 왕들이 자신들이 정복한 중앙지역에 있는 도시들을 안정시키고 자신들의 뜻대로 규제하여 통제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문화인 헬라의 철학과 풍습과 언어를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쪽의 서머나와 루디아에서 브르기아와 같은 동쪽 지역에 있는 도시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지나야만 하는 중요한 곳에 빌라델비아 시(市)를 세웠습니다.
빌라델비아 시는 서쪽의 서머나와 루디아 그리고 북서쪽에 있는 지역들과 부르기아(Phrygia)와 동쪽 지역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그 결과 A.D 19년에는 루디아 말이 사라지고 헬라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이 빌라델비아를 거쳐서 가야 했기 때문에 빌라델비아는 “동쪽으로 가는 관문”(the Gateway to the East)이라고 불리는 국경 도시였습니다. 국경 도시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빌라델비아는 포도주와 직물 그리고 가죽과 농업과 상업이 골고루 발달한 부유한 도시라고 하지만 다른 도시에 비해 산업기반이 부족하였고 대학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빌라델비아는 지리적으로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도시였습니다. A.D 17년에 대지진으로 사데와 다른 12개의 도시가 파괴될 때 빌라델비아도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진은 여러 해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진의 공포에 떨며 언제든지 공터로 피신하여 빠져나갈 준비를 하며 살았습니다. 빌라델비아는 포도 재배로 번성하여 포도주의 신(神)인 디오니시우스를 주신(主神)으로 숭배하였습니다. 그리고 헬라의 신들을 섬기는 신전들이 있어서 ‘작은 아테네’(Little Athens)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가 세워진 과정
이런 빌라델비아에도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어 그곳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어떤 과정을 거쳐 이 도시에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졌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고, 단지 초기 기독교 역사가인 유세비우스(Eusebius)의 기록에 따르면 A.D 100-160년경 암미아(Ammia)라는 여자 선지자의 탁월한 활약으로 복음이 전해져서 교회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빌라델비아교회의 성도들 대부분은 유대교에 속해 있던 유대인들이라고 합니다. 빌라델비아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 가운데 예수님을 주님과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이유로 유대인의 회당으로부터 쫓겨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으로부터 쫓겨난 이들이 빌라델비아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설교 본문 8절을 통해서 생각해 볼 때 빌라델비아교회의 회원은 사데 교회처럼 성도의 수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일을 한 교회도 아니었습니다. 다른 도시의 교회들처럼 잘 알려진 교회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가난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책망을 하나도 받지 않고 칭찬을 받은 교회입니다. 이것을 보면 빌라델비아교회의 성도 수는 비록 소수였지만, 많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살았던 진실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10절). 후에 빌라델비아교회는 소아시아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짓밟힐 때도 신앙을 잃거나 타협하지 않은 유일한 기독교의 보루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실 교회의 사이즈(size)는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빌라델비아교회를 통하여 교회의 능력은 성도의 수가 많고 적음에 있다거나 교회가 거두어들이는 헌금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능력은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로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믿음을 지키며 신실하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목사도 그렇고 성도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을 구원하여 교회당에 모이게 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교회 본연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고는 많이 모이고 헌금이 많이 있어서 교회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다고, 이 시대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여 주의 제자로 삼으라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므로 우리 성도들의 사명이며, 교회의 사명입니다(마 28:18-20; 행 1:8).
사실 빌라델비아 시민들은 많은 우상을 섬기고 있었고, 그 가운데 디오니시우스를 주신(主神)으로 섬기는 우상숭배가 성행한 도시에서,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사탄의 모임”이라고 책망받은 유대인들의 미혹이 있는 도시에서, 소수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신앙의 정절을 지키고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말씀드렸듯이 빌라델비아는 작은 도시입니다. 번번한 대학도 없었고 산업도 무역도 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도시에 비해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도시였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빌라델비아에는 유대인들이 상당히 많이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 설교 본문 9-10절에 의하면 빌라델비아에는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미혹을 받았고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유대인들의 미혹과 박해에서도 말씀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향한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에 계시된 주님의 모습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런 형편에 처해 있는 빌라델비아교회에게 오늘 우리 설교 본문의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오늘 우리 설교 본문 7절에 의하면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당신을 세 가지로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첫째는 거룩하신 분으로, 둘째는 진실하신 분으로, 셋째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서 [한번]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분으로 계시(啓示)하셨습니다.
먼저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을 “거룩하신 분”이라고 계시하여 주신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기 “거룩하신 분”이라는 말은 구약 성경에 의하면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사용할 수가 있었습니다(사 1:4; 5:19. 24; 10:7, 20; 12:6; 욥 6:10; 렘 1:29; 51:5; 겔 39:7; 합 3:3). “거룩”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기오스”(a{gio")는 ‘구별’(區別), ‘순일’(純一), ‘봉헌’(奉獻)이라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구별과 순일’, 즉 ‘피조물들과 구별되시고, 죄가 없는 깨끗하신 분’이라는 의미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거룩하신 분이라고 계시하신 것은 ‘당신은 무죄(無罪)하신 분’이라는 것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는 의미로써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을 “거룩하신 분”이라고 계시하신 것은 빌라델비아 시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을 미혹한 일과 관련해서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빌라델비아 시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 곧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주님으로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라고 고백하고 믿는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유대교의 이단자에 불과하므로 잘못 믿고 있다고 하면서 다시 유대교로 돌아오라고 미혹하고 박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에게 당신을 “거룩하신 분”이라고 계시하여 주심으로 당신은 무죄하신 분이시며 당신이 바로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고 확증하여 주심으로 유대인들의 미혹된 가르침에 속지 말고 박해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설교 본문 9절을 보시면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교회의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사탄의 회당”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탄의 회당”이라는 말은 ‘사탄의 가르침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말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시(市)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사탄의 회당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 구원의 도리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진정한 언약 백성이라고 말씀하여 주심으로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을 위로해 주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옛 언약에 속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구원 경륜(oijkonomiva, Economy)을 따라서 이제는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피로 세운 새 언약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과 그리스도께서 대속(代贖)의 죽음을 죽고 부활하셨다는 이 믿음의 도리, 구원의 도리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인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아니고 사탄의 모임에 속한 자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여 주심으로 예수님을 주님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이 참 언약의 백성이라고 인정하여 주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에게 이 말씀을 하여주심으로 예수님을 주님과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믿음은 거짓이며,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참믿음이고 그들의 고백이 참 고백이라고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 오실 때까지 참믿음을 붙들고 전파하고 살아가라고 용기를 주신 것입니다(10절).
여러분, 말씀드린 것처럼 빌라델비아교회 성도의 수는 적었습니다. 비록 빌라델비아교회 성도의 수는 적었지만, 주님께 대한 그들의 믿음만큼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참믿음이라고 인정하고 확증해 주심으로 이 말씀을 읽고 듣는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에게는 믿음의 용기와 새 힘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을 “진실하신 분”으로 계시하여 주신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의 원문은 ‘알레디노스’(ajlhqinov")입니다. “알레디노스”는 ‘이름과 외모뿐만 아니라 이름에 상응하는 진정한 자질도 갖추었다’, ‘모든 면에서 이름이 의미하는 개념과 일치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거짓이 없는 분’이라는 의미보다는 ‘존재에 있어서 실제로 계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빌라델비아교회에게 당신을 “진실한 분”으로 소개하신 것은 당신이 참 신(神), 즉 완전하신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시민들은 포도주의 신(神)인 디오니시우스를 주신(主神)으로 섬겼고, 여러 신전(神殿)에서 헬라의 여러 신들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다 우상으로서 헛된 것이고 죽은 신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신(神), 즉 하나님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빌라델비아 시민들이 섬기고 있는 것들은 우상으로서 죽은 신이고, 부활하신 주님만이 살아있는 참 신이신 것을 견고하게 믿게 하려고 당신을 “진실하신 분”으로 소개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라고 계시하여 주신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우리 설교 본문에서 “열쇠”는 ‘소유’, ‘권세’, ‘관리’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열쇠”는 ‘다윗 집의 열쇠’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이사야 22:15-25을 보시면 다윗의 후손인 히스기야 왕이 통치할 때 히스기야 왕이 소유한 제물을 출납하고 보관하는 국고(國庫)와 왕궁의 출입을 맡은 궁내 대신 셉나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국고와 왕궁의 출입을 맡은 이 셉나는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앗수르의 공격을 받아 나라가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도 셉나는 한가롭게 자기를 위하여 왕실 묘지에 웅장한 묘실을 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청지기로서의 사역을 감당하지 못한 불의한 셉나를 공처럼 말아서 꽁꽁 묶어 저 멀리 내던져 버림으로 심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당신의 종인 엘리아김을 세우겠다고 하시면서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사 22: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셉나나 엘리아김이 맡은 일은 일종의 왕궁의 청지기입니다. 왕궁의 청지기는 왕의 곳간 열쇠를 가지고 있고, 왕궁을 출입하는 문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왕궁의 청지기가 가지고 있는 그 열쇠를 내주지 않으면 아무도 왕의 곳간에 접근할 수 없고, 왕이 있는 왕궁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왕궁에 있는 왕을 찾아뵙고 무엇을 아뢰려고 하면 반드시 이 왕궁 문 열쇠를 가진 엘리아김과 같은 청지기를 거쳐야 합니다. 청지기가 열어주지 않으면 아무도 왕을 만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왕을 알현하려고 하면 이 청지기를 통해야만 했습니다. 오직 청지기만이 왕궁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설교 본문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바로 당신이 다윗의 집 열쇠를 가지신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다윗의 집”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구약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의 언약이 아브라함에게서 다윗에게로 계승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서 당신의 나라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창 12:2-3). 따라서 “다윗의 집”은 바로 ‘옛 언약 백성들 모두’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 모두’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설교 본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을 “다윗의 집 열쇠를 가지신 분”이라는 계시하신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천국 문을 열고 닫고 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헌상이, 우리의 예배가 누구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상달되느냐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상달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만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로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제가 자주 말씀을 드리듯이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중보의 기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도고”(禱告)라는 말을 채택해서 사용하였습니다. 우리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 교단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중보의 기도라고 하지 않아야 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다윗 집의 열쇠를 맡은 엘리아김이 아무리 신실하다고 하더라도 그도 사람이기 때문에 연약함과 부족함과 결핍이 있는 청지기입니다. 그래서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열어주지 않아야 할 사람에게 문을 열어줄 수도 있고, 열어주어야 할 사람에게 열어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거룩하시고 진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십니다.
그 거룩하시고 진실하신 예수님께서 새 예루살렘, 즉 천국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열쇠를 맡으셨습니다. 오직 왕궁의 곳간 열쇠를 가진 청지기를 통해서만 왕궁의 곳간에 접근할 수가 있고, 왕궁 문의 열쇠를 가진 청지기를 통해서만 열린 문을 통하여 왕을 만날 수 있듯이, 천국 문의 열쇠를 맡으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예수님께서 열어놓으신 열린 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무슨 말씀을 아뢸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내가 곧 길(the way)이요 진리(the true)요 생명(the life)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영어의 정관사 “the”가 붙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만이 길이시고, 예수님만이 진리이시고, 예수님만이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새 예루살렘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구조적으로 병행되고 있는 계 21:25; 22:14 참조).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 권세를 당신의 몸인 교회에게 위임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16:18-19에서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앞으로 당신의 몸인 교회를 세우실 것이고, 당신의 몸인 교회에게 천국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세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교회는 천국의 열쇠를 맡아서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이 없고,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천국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천국의 권세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 천국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렇게 크고 높은 권세가 있고 이 세상의 권세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존귀한 자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둠의 권세가인 사탄과 그의 휘하에 있는 귀신들도 우리를 어찌할 수 없는 존귀하고 권세 있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마라톤에서 처음 출발도 중요하고 그 과정도 중요합니다. 중간에 페이스(pace)를 잃어버리면 완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입니다. 최종적으로 누가 먼저 도착 라인에 있는 테이프를 끊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건강하고 많이 가지고 지위가 높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그의 생의 마지막에는 아름답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누구든지 우리가 전하는 복음, 우리 교회가 전하는 복음을 믿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천국 열쇠를 맡은 교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교회에 맡기신 천국 열쇠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 열쇠입니다. 이 사실을 주님의 대 위임 명령인 마태복음 28:18-20의 말씀에서, 즉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설교 본문에서 천국 열쇠를 가지신 주님께서 빌라델비아교회에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라고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빌라델비아교회 앞에 천국 문을 열어두었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모두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 앞에 천국 문을 열어두었다는 것은 빌라델비아교회가 참 교회인 것을 주님께서 인정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 앞에 천국 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인정하여 주신 것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의 성도들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로부터 기독교는 유대교의 아류(亞流)이며 나사렛 예수는 이단이기 때문에 너희들의 믿음은 참믿음이 아니라는 말로 유혹을 받았고 때루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 설교 본문 8절을 보시면 부활하신 주님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 설교 본문 10절에서는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라고 하심으로써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내하면서 지켰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예를 오늘 우리 설교 본문 9절에서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들, 즉 ’자신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참 언약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들을 ‘사탄의 회당’, 즉 ‘사탄의 모임’이라고 하셨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의 교우들은 많지 않았고 아주 적었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유대교 회원들이 하나님의 참 언약의 자녀가 아니고, 소수인 너희가 내 참 언약의 백성이라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또 빌라델비아교회 앞에 “열린 천국 문”을 두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기회’,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원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능률적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기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빌라델비아교회가 참 교회인 것을 인정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여서 사람들을 천국에 들어가게 할 수 있게 하는 천국의 열쇠를 빌라델비아의 유대인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님과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는 빌라델비아교회에 맡기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옛 언약 시대에는 옛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열쇠를 맡기셨습니다. 따라서 옛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여서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의 복을 받고 누리며 살므로 하나님을 모르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메시아께서 오시면 영접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 즉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었습니다. 그러나 옛 언약 백성인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결국, 사명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맡기셨던 천국의 열쇠를 거두셔서 그것을 당신의 교회에 맡기신 것입니다. 천국의 열쇠를 가지신 부활하신 주님께서 빌라델비아교회 앞에 천국의 문을 열어놓으심으로 빌라델비아교회가 참 교회인 것을 인정해 주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교회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기셨습니다.
여러분, 말씀드렸듯이 오늘 우리 설교 본문 8절에 의하면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교회였으며 작은 능력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큰 교회가 아니었다는 의미이고, 그 사회에 크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사회의 평범한 시민들 소수가 빌라델비아교회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위하여 일할 때 각자의 지체들은 다른 큰 교회보다 몇 배를 더 크게 부담해야 했습니다. 빌라델비아 시(市)는 산업이나 상업이 발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성도들의 삶도 넉넉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에 있어서 철저했습니다. 그래서 힘이 들고 어려워도 주님과 교회의 일에 있어서는 힘껏 봉사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도 빌라델비아교회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외부적으로는 당시 빌라델비아에 있는 불신자들 대다수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로 인하여 이단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지키고 사는 정말로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빌라델비아교회의 성도들은 잘 견디고 승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사실을 인정해 주실 정도로 정말로 신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정말로 자기의 것을 아낌없이 드리며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그들 앞에는 천국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위로입니다. 충성을 다하고 사는 교회에게 주시는 주님의 위로의 말씀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천국 열쇠를 주셨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본의(本意)에 합당하게 천국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기능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바르게 믿고 전함으로써 그 기능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천국의 문을 열고 닫는 열쇠를 가진 ‘열린문교회’였습니다. 세상의 기준과는 다르게 당시 빌라델비아 시에서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교가 ‘열린문교회’ 혹은 ‘천국의 열쇠를 가진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적은 무리인 빌라델비아교회가 천국의 열쇠를 가진 권세 있는 교회였습니다.
여러분, 종교개혁 당시 거대한 세력을 가진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는 자기 교회가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공적주의(功績主義) 신앙을 가르치는 ‘사탄의 회(會)’로서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가로막고 들어가려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잡아당겼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적은 무리였지만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贖罪) 은혜만을 믿고 전하였던 개혁교회가 천국의 열쇠를 맡은 교회였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개신교 안에도 거대한 세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천국의 열쇠를 갖지 못하고, 그들 앞에 천국 문이 열려 있지 않는 사탄의 회(會)와 같은 교회가 있을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 땅의 교회는 완전하지 못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거대한 세력을 거느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 공효(功效)를 바르게 믿고 전하는 교회가 아니라면 사단의 회(會)로써, 그들에게는 천국 문이 닫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르게 전해서 천국 문을 열어주는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그런 신자가 참된 신자입니다. 그리스도를 잘못 전하여 천국 문을 닫아 버리는 교회라면 그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라 할 수 없고 사단의 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속죄 공효를 바르게 믿고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천국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 권세를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장차 우리가 주님 앞에서 섰을 때 확연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천국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세를 잘 활용하여서 이 땅의 많은 사람을 천국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일에 힘쓰는 우리가 되십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 충성된 자들을 위하여 천국의 문을 열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확신하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과 확신에 의한 소망이 있을 때 이 땅에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견고하게 믿음을 지키고 나가고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하였다”라고 하는 주님의 칭찬을 듣게 될 것입니다. 아멘.
(2026. 6. 14 주일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