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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

주님께서는 충성된 자들을 위하여 천국의 문을 열고 기다리신다(2)

작성자데라폰|작성시간26.06.22|조회수27 목록 댓글 0

주일 오전 예배

주님께서는 충성된 자들을 위하여 천국의 문을 열고 기다리신다(2)

요한계시록 3:7-13; 사 60:10-22

 

오늘도 지난 주일에 이어서 소아시아의 일곱 가운데 하나인 빌라델비아교회에 대해 생각하겠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빌라델비아교회가 열린문교회였다는 것은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참 백성이라는 의미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빌라델비아 시(市)에 사는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참 백성이라고 주장했습니다(9절).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비록 성도들의 수는 적었지만,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 앞에 열린 문을 두심으로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참 백성이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8절).

 

누구에게 천국 문이 열려 있는가?

오늘 우리는 지난 주일에 이어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 앞에 열린 문을 두셨다는 말씀과 관련하여 하나 더 생각하려고 합니다. ‘교회이면 누구에게나 천국 문이 열려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설교 본문 8절은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교회 앞에 열린 천국 문을 두셨다고 하시면서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의 행위를 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의 행위는 작은 능력으로도 주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설교 본문 8절에서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하고, 또 10절에서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의 수가 적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한 말씀은 적은 수로 충성스럽게 교회를 이루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힘들게 교회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중간에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충성스럽게 주님의 교회를 잘 이루어 갔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주님께 충성을 다했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빌라델비아 시(市)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비웃음과 조롱함으로 인한 박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 때문에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들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인내하면서 그들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잘 감당하였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비웃음과 조롱으로 인한 박해에도 모든 일을 주님께서 맡기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는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설교 본문 8절 하반절에서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라는 말씀 가운데 “지키다”라는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기본형은 ‘테레오’(threvw)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순종하다’라는 의미보다는 ‘돌보다’, ‘보호하다’, ‘관찰하다’라는 의미로서 ‘파손되지 않도록 잘 관찰하고 보존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사도가 가르쳐 준 복음, 즉 사도가 전해 준 주님의 말씀을 왜곡시키지 않았습니다. 사도가 전해 준 주님의 말씀을 잘 살피면서 살았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살 뿐만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다음 세대를 위하여 잘 보존하려고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자기의 생각을 넣지 않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의미를 잘 관찰하여 깨닫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천국의 능력은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신자가 이 세상에서 겪는 고난을 이길 수 있고, 소망 가운데서 삶에 만족과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일체(一切)의 비결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시(市)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나사렛 예수를 유대교의 이단자라고 정죄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은 구원자가 될 수 없으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은 거짓 복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참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주님과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외우고 가르침을 받고 살았으면서 예수님이 주님과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면서 메시아를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또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믿는 사람들을 세속적인 힘을 이용해서 박해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아이심을 부인하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탄의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

 

빌라델비아 시(市)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참교회인 빌라델비아교회를 비웃고 조롱함으로써 박해하였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진정한 언약의 자녀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주님과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주님과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예수님은 주님과 그리스도로서 구원자이심을 믿었습니다. 사도가 가르쳐 준 복음, 즉 사도들이 전해 준 주님의 말씀을 왜곡시키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이 전해 준 주님의 말씀을 잘 살피면서 살았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살 뿐만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다음 세대를 위하여 잘 보존하고 믿었습니다.

 

여러분, 그뿐만 아닙니다. 빌라델비아는 포도 재배로 포도주 산업이 발달하였습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시민들은 포도주를 많이 생산하여 수입을 얻게 해 준다는 포도주의 신(神)이며, 빌라델비아의 여러 신(神)들 가운데 주신(主神)인 디오니시우스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하나님만이 천지를 창조하신 신(神)으로서 하나님만이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주(救主)가 되심을 믿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외부의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신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도 빌라델비아교회처럼 작은 교회입니다. 이 세상과 비교하면 더욱더 작은 교회입니다. 작은 교회를 이루면서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무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로부터 조롱과 무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사탄의 역사(役事)로 인하여 사탄과 영적 전쟁을 해야 하므로 힘이 들고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우리도 빌라델비아교회의 성도들처럼 천국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자들인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충성된 자들을 위하여 천국의 문을 열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믿음과 자부심을 품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만 있다면 우리 능력은 보잘것없고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우리만 있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8:18-20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여 주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어떻게 우리와 함께하여 주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까? ‘항상’,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여 주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어느 때는 계시고 어느 때는 계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금 잘못할 때도 나에게 부족함이 있을 때도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뿐만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다른 보혜사를 보내어주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를 영원히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이십니다. 부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영이신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우리 안에 거처를 정하고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심으로 항상, 오늘도,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4:26-27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언을 따라서 오순절에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다른 보혜사로 교회 위에 오셨습니다. 오순절에 오신 보혜사 성령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 안에 거처를 정하시고 우리 안에 영원히 계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령님이 내 안에 갇혀 계시는 분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 안에 거처를 정하시고 내 안에 영원히 사신다”라는 말은 ‘성령님이 내 안에 갇혀 계신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님의 친밀함과 통치’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이 세상이 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기쁨과 평강을 주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과 어떠한 여건에 놓이더라도, 삶의 악조건 아래에 놓이더라도, 죽음의 공포가 우리에게 닥쳐온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고 주님을 배반하지 않으면 하늘의 기쁨과 평안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 결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의 근심과 두려움을 몰아낼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처럼 믿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충성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의 말씀에서 보았듯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가르치시고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고, 어떠한 상황과 어떠한 여건에 놓이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순종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마음의 근심과 두려움을 몰아내고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닫쳐있지만, 우리에게는 이미 천국 문이 활짝 열려 있음을 기억하시고, 주님만을 의지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충성하는 삶을 사사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제 오늘 우리 설교 본문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탄의 모임인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로서 천국 문이 자신들에게 열려 있다고 하면서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을 비난하고 조롱함으로써 박해했습니다. 그렇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시(市)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사탄의 회당”, 즉 ‘사탄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참소하는 사탄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가는 모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어떻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빌라델비아 시(市)에 사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빌라델비아교회의 성도들을 비난하고 조롱함으로써 박해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은 유대교의 이단자이므로 만민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하고 조롱함으로써 박해했습니다. 세속적인 힘을 이용하여 박해 했습니다. 빌라델비아 시(市)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을 비난하고 조롱함으로써 박해하면, 그리스도교에서 유대교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우리 설교 본문 9절을 보시면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에게 “[내가]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유대교에 속한 유대인 몇 사람을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유대교에 속한 유대인 몇 사람을 구원하여, 즉 유대교에서 나오게 하여서 빌라델비아교회 회원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종말에 성취될 이사야서 60:14 말씀 일부가 성취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작은 능력으로 끝까지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빌라델비아교회를 통해서 이 종말론적 사건이 성취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사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인 유대교가 빌라델비아교회에게 참패하고 굴복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심으로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몸인 빌라델비아교회를 지극히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하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유대교가 아니라 유대교가 하나님의 참 교회가 아니라 빌라델비아교회가 하나님의 참 교회라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참 언약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빌라델비아교회가 내부적으로는 성도의 수가 적어서 주님의 일을 하는데 몇 배의 힘이 들었고, 외부적으로는 비난과 조롱으로 인한 박해를 받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힘든 삶을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인내로서 말씀을 지키고 산 자들을 시험의 때에 지켜주신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교회를 향하여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10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구원받은 성도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순종해야겠다고 마음만 고쳐먹는다고 해서 순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가는 일에는 항상 마귀가 방해 공작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과 그 능력에 대해 부정적인 요소들을 넣어 줍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환경을 좋지 않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때로는 환난이나 거센 풍파와 시련을 주어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또 적용하며 살지 못하게 방해 공작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인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을 따라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인내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참음도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에 성령님을 의지해서 살아갈 때만 인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는 인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참고 견디고 순종하는 삶을 위하여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내주해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인내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십니다.

 

마귀의 방해 공작은 마귀가 어려운 가운데 놓이게 하는 환난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외부적으로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지만, 마귀가 내 마음에 작용하여 여러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못하게 만들고 이미 들은 은혜의 말씀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이런 것들이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마귀의 방해 공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안에 죄(罪)가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말씀을 깨닫고 지키는 일에 있어서 여러 가지의 적(敵)이 있습니다. 따라서 빌라델비아교회가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라는 것은 ‘그런 유혹을 참고 견디면서 은혜를 누렸다’라는 것을 말합니다. 내 속에서 은혜를 누리는 것을 파괴하는 것들을 하지 못하게 하고 말씀에만 꼭 의존하고 나가는 것이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 설교 본문 10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시험의 때”는 ‘이 세상의 끝에 있을 환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환난은 모든 사람에게 시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환난이 시험 거리가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시험 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바울과 같은 사람에게는 환난이 시험 거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옥에 갇힌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바울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늘의 소망으로 부유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칙칙한 지하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로마 옥에 갇혔을 때도 그랬습니다. 로마 옥에 갇혀 있는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존귀하게 된다면 살든지 죽든지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서는 잠깐은 더 살아야겠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옥에 갇혔을 때나 로마 옥에 갇혔을 때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며 기도하였고, 기도하면서 찬송하였습니다. 그 상황이 분명히 바울에게는 안 좋은 상황이었지만 그를 좌절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좌절시키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감옥에 갇히는 환난이 바울에게는 시험 거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더 드러내고 전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에게 무엇이 있었기에 이런 능력이 났을까요? 바울 안에 성령님이 계셨고, 바울이 내주해 계신 성령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인내할 수 있었고 시험에 빠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설교 본문 10절에서 말하는 “시험”은 ‘로마 황제들의 박해’를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환난이 임할 때 인내하며 말씀을 지킨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삶을 지켜 보호하여 주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말씀을 배반하지 않고 충성한 빌라델비아교회의 성도들에게 앞으로 어려움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오늘도 이 땅 위에 사는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살아가면 고난과 환난의 때에도 지켜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은 교회가 결코 고난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충성을 다한 빌라델비아교회도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로마 황제들이 교회를 박해할 때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도 그 고난이 피해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도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고난 가운데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함께하실 것입니다. 위로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위로해 주실 것이고, 능력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그들을 붙잡아 주심으로 그들이 믿음을 잃지 않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고난이 잘 지나가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환난과 박해가 임한다고 하더라도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하심으로 굴복당하지 않고 승리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더 큰 믿음의 세계로 나가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내하면서 지킴으로 끝까지 충성한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천국의 능력을 주셔서 실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가면, 앞으로 닥칠 환난 가운데서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피할 길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하심으로 그 시험을 잘 견디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내일로 미루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이 바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이 바로 주님의 일을 해야 할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고 지금 즉시 충성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을 내일로 미루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환난이 임하기 전에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환난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자녀들에게 시간을 남겨두셨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잘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시련의 때가 임할 때 우리 아이들이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미리미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을 때 이때가 우리의 영적인 실력을 갖추고 능력을 갖추는 기회인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기회를 놓치면 우리에게 시련이 올 때 믿음을 잃어버릴 수 있음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아이들에게 환난이 임하지 않는다고 무엇으로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지금 평안하다고 우리 앞에 환난이 임하지 않는다고 평안만이 있다고 무엇으로 보장하겠습니까? 본래 이 땅을 사는 삶은 고난의 삶입니다. 따라서 우리 아이들에게 환난이 임하기 전에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미리미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사업장에 환난이 임하기 전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운영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직장생활에 환난이 임하기 전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가면,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형통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알려고 하면 여러분들이 너무도 잘 아시는 시편 1편을 조용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에게 형통의 복을 준다고 했는지 마음에 확 다가오는 말씀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형통의 복을 받아서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 설교 본문 11절에서 빌라델비아교회의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현재 있는 믿음을 굳건하게 잡고 살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지 않으면 우리에게 영광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살지 않으면 믿음을 붙잡지 않으면 내일의 영광은 없습니다. 내일의 삶의 평안은 없습니다. 내일의 삶의 안정도 없습니다. 내일 우리가 영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내일 우리가 평안을 얻고 삶의 안정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현재 있는 이 믿음을 굳건하게 붙잡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가운데서 서머나교회와 함께 책망받지 않은 유일한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 앞에는 열린 천국 문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참 백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천국의 열쇠가 맡겨졌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 성도의 수는 적었고, 작은 능력이 있었지만, 인내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인내하면서 주님의 말씀대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천국의 열쇠를 받은 자로서 그 권세를 잘 활용하여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가 시련을 겪는 동안에도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마귀와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의 박해로부터도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 교우들 가운데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다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서 장차 영원한 천국 문을 통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영광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2026. 6. 21 주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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