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본문 해석
<삼손이 자기 부모에게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2절).
삼손은 사사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에 앞서 블레셋 여인과의 결혼을 원했습니다. 딤나에 갔다가 그곳에서 한 블레셋 여인을 보고 돌아와 부모에게 <그 여자를 내 아내로 삼게 해 달라>며 조릅니다. 부모는 당연히 <네가 어찌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의 딸을 아내로 맞으려 하느냐>(3절)며 반대했지만 삼손의 고집과 끈질긴 요구를 이기지 못해 결국 허락하고 맙니다.
<내가 그 여자를 좋아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3절).
성경은 당시 삼손이 그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기를 원했던 동기를 두 가지로 전합니다.
①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3절)
이 말은 <그 여자가 나를 즐겁게 하므로>라는 뜻입니다.
② <그 여자와 말하니>(7절)
이 표현은 <그 여자와 말이 통한다>는 의미입니다.
삼손은 딤나의 블레셋 여인의 이 두 가지 매력에 끌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관철하다 결국은 엄청난 실패에 직면하고 맙니다. 결혼 상대의 신앙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겉모습이 아름답고, 서로 대화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큰 아픔을 겪었던 삼손의 선택이 오늘 이 시대 성도들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아합 왕이 이세벨이라는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자신과 나라를 참혹한 비극에 빠뜨린 것처럼 삼손도 그렇게 자신의 정욕대로 이방 여인과 결혼하면서 그의 모든 것이 철저하게 어긋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부모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결혼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삼손의 이방 결혼과 또 실패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랴>(고후 6:14-15).
결단과 적용
-<딤나>는 원래 어느 지파의 기업이었습니까(수 19:34)?
-이방 결혼을 금하는 출애굽기 34:16 말씀을 옮겨 보십시오.
-삼손의 아내 선택에 대한 당신의 소감을 간략히 적어 보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님, 삼손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나실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이나 부모님보다는 모든 걸 철저하게 자신의 인간적인 취향대로 결정하고 또 아내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실패로 이어졌고, 그 비극은 또 다른 불행을 잉태하며 그의 삶과 사명과 운명을 위협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소명을 받은 자는 자신의 기호나 바람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뜻이 우선임을 깨닫고 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단으로 살아가게 해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
더 보기“사람의 뇌는 동시에 두 가지 반대 감정을 가질 수 없다.
곧 사람의머리에는 오직 한 의자만 놓여 있어서
여기에 절망이 먼저 앉아버리면희망이 함께 앉을 수 없고,
반대로 희망이 먼저 앉아버리면 절망이함께 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차동엽 저(著) 《희망의 귀환》 (위즈 앤 비즈, 9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의자 하나에는 한 사람만 앉을 수 있다는 ‘한 의자의 법칙’이라는말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의자와 같습니다. 마음의 의자에 낙심이앉으면 평화가 올 수 없고,
반대로 평화가 앉으면 낙심이 앉지 못합니다.
평화와 낙심의 합은 100입니다. 평화가 ‘50’ 일 때 낙심은 ‘50’이 되고,
평화가 ‘90’일 때 낙심은 ‘10’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하늘의 평화가 임합니다.
하늘의 평화가 충만할수록 낙심이 작아집니다.
낙심을 몰아내는 길은 내 마음에 앉은
낙심의 자리를 몰아내는 하늘의평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그림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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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He will wipe every tear from their eyes.
There will be no more death or mourning or crying or pain,
for the old order of things has passed away.(NIV)
도서 큐티
더 보기교회는 아직 더 많은 퍼즐 조각들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교회에 대한 어떤 퍼즐 조각도
내 마음의 뿌리에 숨어있는 늪에 빠져 삼켜질 수 있었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따뜻함이라는 지나치게 감정적인 요소,
심지어 선지자적 말씀의 선포까지도 예외 없이 무력하게
소진시킬 수 있는 자기중심적 욕망, 자기 존재를 입증하려는
우상이 이 늪에 붙은 이름이었다. 결국 자신의 기대,
자신의 욕구,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열망이 문제였다.
-정갑신의 [대답하는 공동체] 중에서-
교회를 세워가고자 하는 열망은 귀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것에 자기중심성을 버리지 못하면
자신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노력이 자기 의나 공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바벨탑이 우리 안에도 날마다 자라고 있습니다.
자기 부인이 없으면 자기중심성에서 떠나지 못합니다.
십자가를 붙들지 않으면 우리는 골고다 언덕 너머에 있는
구원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자기라는 늪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리의 숙제입니다.